사회/시사
북한 핵문제의 본질과 우리의 대응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2-11-12 00:14
조회
2490
북한 핵문제의 본질과 우리의 대응
김승국 박사 (디지털 말 이사, 평화활동가)
지금 북한의 핵문제를 에워싼 논란이 뜨겁다. 국내외의 언론이나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현상의 분석에만 집착할 뿐, 북한 당국이 핵문제를 에워싸고 苦鬪하고 있는 부분에 소홀하다. 따라서 필자는 북한 당국의 苦鬪의 현장에 밀착하는 가운데 이 사태의 맥락(Context)을 분석하려고 한다. 맥락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지난 25일 발표한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담화 등을 참고자료(Text)로 사용하려고 한다.
1. 몇 가지 해석의 문제
1) ‘핵무기 개발 시인’ 담론에 대한 해석
필자는 미국 특사 켈리가 방북하기 이전에 쓴 글 「북한의 변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http://www.digitalmal.com/news/news_read.php?no=5030)」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김 정일 위원장은 미국의 특사를 향해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당신들 미국인들이 말하는 북한의 개혁개방이란 미국식 시장경제를 북한에 뿌리내리게 하여 북한을 붕괴시키려는 게 아닙니까? 우리는 당신들의 북한 붕괴극에 따라 신의주에 미국식 자본주의의 전시장을 만들 계획이니 우리를 잡아먹고 싶으면 신의주에 자본을 투자하시오. 자본을 투자하려면 북한에 대한 경제제제를 풀고, 이를 위한 사전작업으로 북-미 수교를 해야 할 것 아니오. 그러니 이제부터 북-미 수교를 위해 미국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오. 이게 우리가 당신들에게 마지막으로 보내는 호의적인 'love call'이니 명심하시오. 부시 정권이 이런걸 눈치채지 못하면 우리는 진짜로 핵무기를 개발할 거요.”라고...
만약 평양에서 열린 강석주-켈리의 대좌에서 위와 비슷한 언사들이 오고 갔다면, 미국 쪽에서 주장하는 ‘북한 핵개발 시인’은 ‘북한 핵개발 의지 시인’으로 받아들여야한다. 생각컨대 강석주 부장은 ‘신의주 특구 개방 등 북한이 미국을 향해 호의적인 love call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화답이 없으면 진짜로 핵무기를 개발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뉘앙스로 말했을 것이다. 북한의 외무성 대변인이 10월 25일자로 발표한 담화문 중 ‘이런 상황하에서 우리가 팔짱끼고 가만히 앉아 있으리라고 생각했다면 그보다 더 단순한 사고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미국 대통령 특사에게 미국의 가중되는 핵압살 위협에 대처하여 우리가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는 물론,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명백히 말해주었다’는 부분이, 필자가 언급한 ‘진짜로 핵무기 개발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뉘앙스를 확인해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핵무기를 개발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뉘앙스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켈리는 ‘북한 지도부가 핵무기 개발을 시인했다’는 쪽으로 몰고 갔다. 여기에서 ‘시인’이라는 말이 중요한데, 북한 당국이 발표한 문서의 어느 곳을 보아도 ‘시인’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시인’이라는 말은 켈리와 미국 정부가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한 용어이다. 켈리가 ‘북한의 농축 우라늄 생산에 관한 첩보’를 강석주 부장에게 들이밀고 북한을 협공하자 북한 쪽에서 ‘핵무기를 개발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를 강석주-켈리 사이의 논쟁이 일어난 시간순서로 다시 보면, 켈리가 ‘농축 우라늄 생산’의 증거물을 들이대자 강석주가 의외로 ‘핵무기를 개발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대답을 했기 때문에, 켈리는 이를 ‘농축 우라늄 생산을 북한이 시인한 것’으로 간주했다. 켈리는 북한 지도부가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빠진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미국 정부의 공식적 견해(‘북한 지도부, 핵개발 시인’)로 만든 다음 소동을 일으켰다.
이런 켈리의 ‘특종’에 대해 한국의 ‘냄비 언론’과 냉전 수구 세력이 준동하기 시작했고 북?일 수교에까지 악영향을 미치자, 북한의 외무성 대변인이 10월 25일자로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 담화문에서 돋보이는 부분은 ‘핵무기는 물론,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명백히 말해주었다’는 문구이다. 핵무기보다 더한 것이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지(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생화학 무기인지, 미국에 대한 결사항전의 인간방패인지, 북한의 미사일 남한의 핵발전소?일본의 핵발전소를 폭파하면 핵무기 보다 더 위력적인 피해를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인지)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지게 되어 있다”는 부분이 핵문제 소동의 본질을 이해하는 열쇠이다.
‘가지게 되어 있다’는 현재 진행형이 아니다. 따라서 미국?한국의 정보기관과 강경파들이 주장하는 ‘현재 북한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가지게 되어 있다’는 미래의 수동태 시제이다. 따라서 미래에 수동적으로 핵무기를 가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쪽으로 해석해야 온당하다. 그런데 이 말의 앞에 ‘앞으로도 미국이 계속 북한에 대한 핵압살 정책을 고수한다면...’이라는 조건절이 붙는다. 즉 ‘미국이 대량파괴무기에 대한 반확산(counter-proliferation) 전략?NPR(핵태세 수정 보고)등을 통해 북한에 대한 핵선제 공격을 한다면 이는 제네바 협정의 중대 위반이므로 우리도 생존권 차원에서 핵개발 의지를 가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북한의 붕괴를 위한 전쟁 책동 등을 계속 벌여나간다면, 우리도 생존을 위해 핵무기보다 더한 것도 개발하지 않을 수 없다. 최악의 사태에 북한이 핵물질을 보유하게 되더라도 이는 미국이 유발한 것이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가지게 되어 있다’가 미래 시제라고 해서 ‘북한이 앞으로 핵무기를 가질 것이다’라고 비약하면 곤란하다. ‘앞으로 가질 것이다’는 ‘미래에 핵무장을 할 생각이다’와 연결되므로 이를 회피하여 ‘가지게 되어 있다’라는 고뇌어린 문구를 선택한 듯하다. ‘가지게 되어 있다’에 현재 진행형의 의지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즉 현재의 북미관계(미국의 북한 압살 정책)가 ‘핵무기보다 더한 것을 가지게 되어 있는’ 형국이므로 이에 대비하기 위하여 ‘우리도 무언가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는 북한 당국의 ‘고투(苦鬪)’가 배어 나온다.
필자는 이런 정황을 종합하여 ‘북한이 핵개발 의지를 시인’한 것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북한이 핵개발을 시인’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 이유를 북한식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정책의 탄력적 운용에서 찾는다.
2) NCND 정책과 북한의 ‘핵개발 의지의 시인’
필자 역시 고심 끝에 북한이 핵개발 의지를 시인한 쪽으로 정리하자마자 머리에서 경련이 일어날 정도의 공포감이 엄습했다. 북한이 핵개발 의지를 시인한 것 자체가 민족의 생명을 담보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민족의 생명은 ‘다모클레스의 칼’(주1)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북한의 핵개발 의지 시인’ 사태가 해결되는 방향에 따라 민족의 운명이 왔다 갔다 하는 심각한 상황이 되었다. 심각성의 측면에서 ‘2003년 한반도 위기설’을 몇 백배 뛰어 넘는다.
이제부터 한반도의 모든 정세분석은 ‘다모클레스의 칼’이 우리 민족의 생명선에 얼마나 깊이 박혀 전쟁의 접경지대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칼집 자체를 없앤 다음 북-미 수교로 나아가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하느냐를 중심으로 파악해야한다. 그래서 ‘북한의 핵개발 의지 시인’사태를 우선 평화의 시각에서 바라보아야한다. 이런 시도의 첫 번째 순서로 북한의 NCND 정책의 변용 여부에 대해 언급한다.
북한은 오래전부터 비핵지대화를 제안하면서 한반도의 ‘비핵(非核) 평화’를 염원해왔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의 평화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번에도 ‘핵개발 의지를 시인’하는 한편 ‘미국과의 불가침 조약 체결’을 제안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핵개발 의지를 시인한 것’이 북한의 전통적인 평화의지를 전면부정하고 ‘핵전쟁을 감수하기로 했느냐’의 여부를 따져보기에 앞서 이런 양면성을 아주 동적으로(dynamically) 검증해야 한다.
필자는 이를 검증하는 수단으로 북한의 NCND 정책의 변용 여부를 고찰한다. 일반적으로 NCND란 글자 그대로 핵무기의 존재 여부를 시인도 부인도 않는 정책이다. 핵무기는 본래 ‘악마의 무기’ ‘죽임의 무기’이므로 핵무기 보유 국가일지라도 ‘보유를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것’이 국제질서의 일반상식이다. 이러한 NCND 정책의 운용 폭이 확대되어 각 나라들은, (핵물질을 원자력 발전에만 투입하는) 평화적인 이용단계를 벗어난 상태에서부터 NCND 정책을 구사한다. 특히 늦깎이 핵무기 개발 국가일수록 NCND 정책을 엄밀하게 적용한다.
자칫 핵무기 개발 의지를 시인했다가는 미국을 비롯한 핵무기 5대 강국(이들 국가들이 유엔 안보리의 상임 이사국이다. 이런 측면에서 유엔은 핵 독점 체제의 종속물이다)의 응징을 받아 국가의 사멸까지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라크의 경우 NCND 정책으로 일관하면서 ‘오리발’을 내밀었음에도 불구하고 걸프전의 포화를 맞아 오늘날까지 고전하고 있다. 북한도 예외가 아니었다. 북한은 이라크 보다 더욱 선명하게 NCND 정책을 운용하면서 미국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 노력의 압권은 김일성 주석이 ‘우리는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도 의사도 없다’고 잘라 말한 것이다. 특히 북한은 1993년의 핵위기로 인한 전쟁 일보 직전에서 구출당한 쓰라린 경험이 있기 때문에 NCND는 국가의 생존을 위한 비방중의 하나이었다.
그런데 북한이 핵개발 의지를 ‘시인’함으로써 NCND중 'ND(Nor Deny; 핵무기 개발의지를 부인하지 않는다)’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필자가 말하는 ‘핵개발 의지의 시인’은 ‘북한이 핵개발 의지를 부인하지 않았다’로 옮겨야 정확하다. 필자는 앞으로 ‘부인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시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여기에서 '의지로서의 ND(심리적인 ND)'와 ‘사실상의 ND(핵개발 의지를 실행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농축 시설?기자재의 보유)’로 구분할 수 있겠다. 앞으로 북-미간, 북한-국제원자력 기구(IAEA)간에 벌어질 사찰은 전자의 ND이냐 후자의 ND이냐를 검증하는데 주력할 듯하다.
필자가 보기에 전자의 심리적인 ND는 ‘미국을 북한의 안마당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작전’의 요소가 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다. 더욱이 이런 작전이 성공하여 북-미 수교로 이어져 평화통일의 대로로 나아가길 바란다. 그러나 후자의 ND일 경우 문제는 자못 심각하다. 어느 누가 보아도 북한이 핵무기 개발의 입문 단계로 들어갔다고 보기 때문에 국제 사회가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 최악의 경우 이라크처럼 미국의 선동에 의한 국제 사회의 심판을 받아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워질지 모른다.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사실상의 ND’가 미국과의 불가침 조약 체결의 방해물이 될 뿐 아니라, 한반도에서의 (핵)전쟁을 유발함으로써 북한의 붕괴는 물론 ‘민족 절멸의 판도라 상자’가 열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핵무기는 물론,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되어 있다’는 수사적인 표현을 즐기다가 ‘민족절멸의 판도라 상자를 열어제끼는 최악의 상황’을 우려하는 것이다. 기아(飢餓)의 나라 파키스탄이 핵개발 한 뒤 더욱 가난한 나라로 전락한 사실을 볼 때, 북한이 제2의 파키스탄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전자의 ND와 후자의 ND의 분기점은 민족의 생사의 갈림길이다. 따라서 한국의 평화통일 운동 세력은 전자의 ND가 성공하도록 지원하되 후자의 ND로 나아가지 않도록 쐐기를 박는 운동을 전개해야한다. 이게 민족이 평화롭게 살길이다.
북한이 미국에 불가침 조약의 체결을 제의한 점,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 의지’에 대한 무력공격을 회피하는 점, 미국이 ‘후세인과 김정일을 역차별’(주2)하는 점을 미루어 보건데, ‘전자의 ND’의 수위를 에워싸고 북-미간에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기조에서 살펴보면 북한은 미국을 불가침 조약-북?미 수교협상-경제제재 해제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로 전자의 ND 정책을 이용하다가 막상 IAEA의 사찰 카드가 들어오면 부인(NC; Neither Confirm)하는 쪽으로 나아갈 듯하다. 이런 의미에서 북한 당국이 ‘NCND의 분리-통합 정책(일단 NC와 ND를 분리하여 ND하는 체 하다가 미국이 말려들면 NC를 한다)’을 구사한다고 볼 수 있으며, 미국과의 협상과정에서 치고 빠지는 ‘hit and run 전술'을 운용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게릴라 NCND'로 명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제아무리 뛰어난 천출명장이더라도 ’후자의 ND‘의 늪지대로 빠져들기 시작하면 ‘다모클레스의 칼’ 세례를 받아 국가(정권)의 사멸?민족의 절멸이 내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동아시아에서는 ‘핵무장 민족주의’가 설 땅이 없음을 깊이 새겨두기 바란다.
2. 북한의 패러다임 전환과 ‘핵개발 의지의 시인’
정치?군사?사상?경제의 강성대국을 표방해온 북한의 지도부는, 정치?군사?사상의 측면에서 강성대국의 발판을 마련했으나 경제적인 강성대국을 이루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경제적 강성대국을 가로막는 최대의 원흉은 미국의 북한 압살 정책이므로, 강성대국의 대외적인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을 끌어들여 북?미 수교에 이은 경제제재의 해제를 이끌어내야한다.
그런데 부시 대통령이 집권하는 한 북?미관계의 난맥상이 거듭되고 ‘과거 핵’문제로 미국과 지루한 샅바 싸움을 해야 할 상황이다. 경제발전의 관건인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KEDO의 경수로가 완공되기만을 넋 놓고 기다릴 수 없다. 이런 고통스러운 상황을 정면돌파하기 위해 북한의 지도부는 과거와는 다른 대외정책을 포함한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을 시도하면서 ‘과거사 시인’ 작전(‘과거사 시인’의 첫 번째 시나리오는 일본인 납치의 시인이며, 두 번째 시나리오는 핵개발 의지의 시인임)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1) 북한의 苦鬪와 핵개발 의지의 시인
이는 패러다임 전환 이전의 과거사(냉전의 유산)를 훌훌 털어 버리고 정정당당하게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아가면서 평화공세(미국과의 불가침 조약 체결 제의)를 펼친다면, 결국 미국도 북한을 인정할 것이 아니냐는 발상이다. 필자는 이런 발상의 전환 즉 패러다임의 전환을 ‘고슴도치 전략에서 두꺼비 전략(주3)에로 이행중인 국가발전 大計’ 속에서 발견하고자 하며, 북한의 핵개발 의지 시인(전자의 ND)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생사를 건 인정투쟁의 苦鬪(주4)’로 본다. 북한의 패러다임 전환과 핵개발 의지 시인과의 연관을 이해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표1>을 작성했다.
<표1> 북한의 패러다임 전환과 ‘핵개발 의지 시인’의 관련(생략)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북한은 전자의 ND(일반적인 NCND 아래의 핵개발 옵션)와 후자의 ND(NCND의 분리-통합 정책에 따른 핵개발 의지 시인)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경계 자체를 모호하게 하는 ‘게릴라 NCND 전략’을 구사하며 ‘다모클레스의 칼’ 위에서 미국과 살풀이 춤을 추고 있다.
이런 苦鬪는 세계외교사에서 보기 드문 진검승부를 예고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핵개발 의지 시인도 ‘북한의 국가발전 大計 속에서 묻어나오는 苦鬪(생사를 건 인정투쟁)’와 연관지어 이해할 필요가 있다.
3. 도전적인 ‘핵개발 의지 시인’ 카드의 파장
1) 미국의 ‘북한 압살-일방주의 외교’에 대한 도전
북한의 지도부가 미국을 끌어들이는 국가발전 大計의 일환으로 핵개발 의지 시인(전자의 ND) 카드를 사용하는 듯하다. 그런데 이 카드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응 여하에 따라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뇌관이다. 이 카드는 부시 정권의 대량파괴무기 반확산 전략(전쟁을 통해서라도 대량 파괴무기를 없애겠다는 counter-proliferation 전략)에 대한 도전장이다.
미국의 반확산 전략은, 북한에 대한 핵선제 공격을 용인한 NPR(핵태세 수정 보고)로 이어져 있다. 또한 미국은 ‘테러지원 국가’로 낙인찍은 북한과의 반테러 전쟁의 고비를 늦추고 있지 않다. 이라크와의 전쟁 다음에 북한과의 전쟁을 치루려한다. 이러한 상황은 북한으로 하여금 도저히 제네바 협정을 준수할 수 없게 만든다. 미국이 북한에 대하여 핵선제 공격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제네바 협정의 기본정신을 미국이 파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제네바 협정이라는 북?미간 계약의 중차대한 위기를 말해준다. 따라서 현 상황은 미국이 엉망진창으로 만든 제네바 협정을 파기하고 북?미간에 새로운 계약서를 써야할 단계이다.
그런데 국제관계는 냉혹하기 때문에 북한의 지도부가 새로운 계약서를 쓰자고 선포하는 대신에 핵개발 의지의 시인이라는 도전장을 내놓은 것이다. 도전장을 받은 부시 정권이 끝내 북한 압살 전략(대량파괴 무기의 반확산 전략?NPR?반테러 전쟁)을 포기하지 않으면, 북한이 핵개발 의지를 실제행동으로 보여줘 핵개발로 나아갈지 모른다. 이럴 경우 북한의 정권과 부시 정권이 동반자살하는 사태(북한의 ‘두꺼비 전략’의 가장 비극적인 상황)가 벌어질지 모른다.
그러므로 북한의 핵개발 의지 시인은 북한정권의 생존의 문제일 뿐 아니라, 부시 정권의 생존과도 연결된 문제이다. 북한의 도전장에 대하여 졸속 대응을 할 경우 부시 정권을 먹여살려온 ‘일방주의 외교의 맛’이 사라져 부시는 ‘정치적인 식물인간’이 되고, 전쟁으로 응수할 경우 부시 정권의 생명을 내놓아야한다. 이런 엄청난 도전장 앞에서 부시 정권이 움찔거리며 평화적으로 해결하자고 나오면서 후세인 정권과의 역차별 정책을 수행중이다.
2) 세계의 핵질서에 대한 도전장?
미국이 평화적으로 해결하자고 나올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북한의 핵개발 의지 시인 카드가 국제 핵질서를 뒤흔들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지도부가 이런 부수효과까지 노리고 ‘핵개발 의지 시인’ 카드를 쓰는지 모르겠지만, 이 카드는 미국으로 하여금 1990년 초반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1990년대 초반 소련의 붕괴 직후 (소련에 필적할) 새로운 가상적을 제3세계 반미국가의 대량파괴무기에서 찾은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이러한 미국의 음모(?)에 정면대응한 북한은 ‘NPT(핵확산 방지 조약)를 탈퇴하겠다’는 초강수를 두었다. 마침 미국은 1995년에 있을 NPT조약의 기한 연장을 위해 인도 등의 제3세계 국가를 구워삶기 위해 갖은 로비를 벌이고 있던 때이었다. 이미 핵개발 의지를 내비친 인도 등 제3세계 국가의 불만을 방치하면, ‘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이 핵독점을 하고 나머지 국가들은 핵물질의 보유조차 불가능하게 통제(미국 중심의 통제)하는 NPT 체제’가 붕괴하는 것은 시간문제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엄중한 상황을 노린 듯 북한이 NPT 조약을 탈퇴하겠다고 선언했으니, 이는 5대 핵강국 중심의 유엔질서는 물론이고 NPT 조약 등으로 얽혀 있는 지구촌 질서 자체의 ‘예약된 파열구’이었다. 미국은 이런 ‘예약된 파열구’를 미봉하기 위해 북한과 제네바 협정을 숨 가쁘게 체결했다. 제네바 협정은, 미국이 대량파괴무기의 비확산(non-proliferation)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2국간에 체결한 유일한 조약이다(제네바 협정은 미국이 북한을 특등대우하며 생색내는 가운데 체결한 조약이지만, 이 조약에 발이 묶여 이라크처럼 ‘과거 핵’을 트집 잡아 전쟁 카드를 선뜻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계륵이다).
제네바 협정이 없었더라면 1995년의 NPT조약 기한 연장도 불가능했을 것이다(그만큼 제네바 협정은 미국의 효자노릇을 했다. 그러나 전쟁 중독에 걸린 부시 정권은 제네바 협정이 ‘북한과의 전쟁’에서 불효자 노릇을 하기 때문에 파기하려고 한다). 이제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 의지 시인 카드를 잘못 건드려 북한이 제네바 협정을 파기하고 NPT 조약에서 탈퇴한다면, ‘미국에 의한 핵 禁壓 체제(NPT 체제)의 해체’조짐이 보일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 의지 시인 카드가 잘못 관리되어 우리 민족의 생명을 절멸할 판도라의 상자가 될지 모른다’는 필자의 우려는, 한반도의 차원에서만 바라보고 진단한 것이다. 만약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 시인 카드를 잘못 관리하여 1990년대 초처럼 북한의 NPT탈퇴로 이어진다면, 인류 전체에 판도라의 상자가 던져질 것이다. 이 판도라의 상자는 (미군을 포함한) 미국인이 가장 먼저 열어보게 되어 있기 때문에, 핵개발 의지 시인 카드는 북한의 지도부가 미국에게 보내는 마지막 ‘love call'이다. 이 ‘love call의 의미'를 잘 새겨들어 북한을 승인(북?미 수교-경제제재 해제)하면 북한?미국의 정권이 ’동반 생존‘을 할 수 있고 거부하면 북한?미국 정권의 ‘동반 자살’이 내정되어 있다.
북한의 핵문제를 에워싸고 북?미 양국의 정권은 목숨을 건 투쟁을 하고 있지만, ‘다모클레스의 칼’ 위에서 ‘동반 자살과 동반 생존’이라는 결단을 강요받고 있는 운명 공동체이다. 부시 정권이 ‘NPT 체제라는 핵의 바다’ 위에서 적(북한)과의 동침을 승인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북한의 지도부가 간파하고 핵개발 의지를 시인했는지 알 수 없으나, 부시 정권은 이를 반드시 숙지하고 북한이라는 천적(두꺼비)과의 공존(북한의 생존권 인정)을 도모해야할 것이다. 이게 미국이 살 길이며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물론 동아시아의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다.
4.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라는 표현이 너무나 추상적이므로, ‘북한 핵’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여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예약할 수 있는 당사자로서의 ‘우리’로 좁힌다. 한-미-일 군사동맹 및 이를 지지하는 정권은 일단 ‘우리’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세계평화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염원하는 평화애호 세력이 큰 범주의 ‘우리(A 그룹)’일 것이고, 한반도의 주민중 평화애호 세력이 좁은 범주의 ‘우리(B 그룹)’일 것이다.
너무 막연한 이야기이지만 A 그룹은 북한 핵 문제의 심각성을 재빨리 간파하여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가 북한 압살정책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는 것을 ‘평화의 임무’로 상정하면 된다. 그러나 B 그룹은 당사자이므로 구체적인 평화의 임무를 띠지 않을 수 없다. B 그룹이 북한 핵문제를 에워싼 대안을 찾으며 잊지 말아야할 강령 차원의 모토(Motto)는 민족의 생명과 한반도 주민 개개인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어야 한다. 즉 민족의 평화적인 생존권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대안을 마련해야한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한반도 민중 개개인의 인간안보를 보장받는 길을 모색해야한다. 이 두 가지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한 ‘한반도 주변의 비핵지대화’를 평화통일의 전략으로 올곧게 밀고 나아가야한다.
‘북한 핵’ 사태의 해법은 ‘핵이 없는 한반도’를 이룩하는데 집중되어야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미국이 북한에 대한 핵선제공격 의지를 포기하고 북한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동시에 북한도 핵개발 의지를 포기해야한다. 핵문제는 민족의 생명에 관한 중차대한 문제임을 북한의 지도부가 깨닫기 바란다.
‘핵이 없는 한반도’를 이룩하기 위해 북한?미국은 제네바 협정을 준수하는 한편, 남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준수하여 이를 ‘한반도 주변의 비핵지대화’로 승화시켜야한다.
‘핵이 없는 한반도’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외국군(미군)의 개입이 없는 한반도’를 만들어야한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은, 여태껏 한반도에서의 핵전쟁에 대비한 최전방 군단의 역할을 해왔다. 이런 역할은 한반도 상공과 해상에 걸쳐져 있는 미국의 핵우산이 대변해준다. 미국은 북한에게만 핵문제를 해결하라고 윽박지를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한반도 주변에 설치한 핵 우산을 철거해야한다. 이 것이 ‘북한 핵’사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다.
1) 평화운동 세력의 임무
국내외의 평화운동 세력은, A 그룹과 B 그룹의 임무를 구체적으로 실행할 ‘평화의 전략’을 짜야할 것이다. 평화의 전략을 짜는데 있어서 경계해야할 사항은, ‘국수주의적인(jingoistic) 핵무장 민족주의’로는 자주는커녕 평화보장도 얻어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핵무장 민족주의’가 자주를 가져올 것이라는 소견은 국제적인 핵질서에 대한 무식의 소치이며, 이런 무식은 되레 한반도에서의 분쟁(재래식 전쟁, 심지어는 핵전쟁)을 부채질할 뿐이다. 그러므로 오로지 ‘비핵(非核) 민족주의 아래의 자주노선에 입각한 평화의 전략’을 내와야할 것으로 믿는다.
2) ‘비핵(非核) 민족주의 아래의 자주노선에 입각한 평화의 전략’과 일괄타결안의 원칙
첫째, 한국의 평화운동 세력은 핵과 관련된 기존의 협정을 당사국들이 지키도록 압력을 넣는 게 바람직하다. 즉 남북한이 맺은 한반도 비핵화 협정과 북?미간의 핵협정인 제네바 협정을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 아예 작동하지 않는 비핵화 협정과 주로 미국 쪽의 위반으로 위기에 놓인 제네바 협정을 왕성하게 기능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한다. 일괄 타결이든 포괄적 타결이든 이러한 방향에서 틀이 잡혀야한다.
필자는 이 시점에서 미국과 북한, 미국과 남북한 사이에 ‘새로운 계약서 쓰기 운동’을 전개할 것을 제안한다. 미국과 북한은 제네바 협정이라는 기존의 계약서(협정)를 개폐(제네바 협정의 문제점을 수정보완하든지 이를 폐기하고 새로운 협정을 체결하든지)하고, 미국과 남한은 한?미 상호방위 조약의 개폐를 동시 추진하는 운동을 남북한 정부와 민간 진영(남한의 경우 NGO)이 합심하여 벌여가길 바란다. 때마침 내년은 정전협정?한미 상호 방위조약 체결 50주년이다. 50주년에 즈음하여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이의 기초작업으로서 한?미 상호 방위조약을 개폐하는 운동을 동시에 전개하면 좋겠다.
민간진영이 개입해야하는 이유는, 제네바 협정 등이 지나치게 국가권력의 안보에 치우쳐 협상이 국가권력의 이익을 기계적으로 주고받는 ‘zero sum game’으로 일관되기 때문이다. 이 바람에 민족의 생명이 걸려 있는 핵문제가 남북한-미국 사이에서 깊이 거론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민간 진영은 시민사회의 안보라는 측면에서 개개인의 인간안보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북한의 핵문제가 일괄타결(포괄적으로 타결)된 다음 민족의 생명을 온전히 보전하는데 기여해야할 것이다.
특히 인간안보를 확대하기 위해 북한의 핵문제 해결과정에 민간진영이 개입할 수 있는 통로를 발견해야할 것이다. 핵문제의 발생부터 해결까지의 전 과정을 민간진영이 모니터 할 수 있는 능력을 NGO 스스로 갖추어야한다. 통일 운동 세력도 민족의 생명이 걸린 사안인만큼 민간진영의 선두에 서서 북한 핵 사태에 직접 개입하길 희망한다.
그리고 일괄타결 과정에서 북?일 수교가 성사된데 이어 북?미 수교로 이어지길 바란다. 즉 일괄타결의 결과가 교차승인의 완결(미국?일본의 북한 승인으로 남북한을 에워싼 주변 국가들의 교차승인 구도 완료)로 이어져 한반도의 평화협정 체결과 동아시아의 다국간 안전보장 틀로 발전했으면 좋겠다.
둘째, 한반도의 군축 지향적인 일괄 타결안을 마련하여 평화통일의 기틀을 마련해야한다. 한반도의 군축(핵을 포함한 군축)을 가로막는 2대 흉물인 주한미군 문제와 북한 핵문제를 당사자인 남북한?미국이 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3자간 평화협정의 틀을 갖춰 나아가는 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정석이다.
셋째, 미국의 지나친 개입을 방지하는 일괄 타결안이 되어야한다. 북한 핵 문제는 외세가 한반도에 개입한 분단의 역사에서 비롯되었으므로, 외세의 입김을 되도록이면 배제한 가운데 남북한이 민족의 생명을 온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북한 핵문제는 미국 정부의 이해관계와 대외전략의 변화에 따라 숨가쁘게 변질되어 왔다. 이제 미국에서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변함없는 국제사회의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남북한 공조를 통해 마련하는 게 급선무이다.
넷째, 일괄타결안은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제네바 협정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 일괄타결안이 낳을지도 모르는 ‘제2의 제네바 협정’은 협정 위반시 강력하게 제제할 수단이 있어야한다. 특히 협정을 주로 어기는 미국이 위반했을 때 이를 징벌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한다.
다섯째, 일괄 타결안은 (북한 핵문제를 간접적으로 야기한) 부시 정권의 일방주의를 부인하는 정신에서 출발해야한다. 대량파괴무기에 대한 반확산 전략 및 이에 수반된 북한 핵선제공격 계획(NPR)이 북한을 자극한 결과 북한의 핵개발 의지 시인으로 줄달음친 경과를 생각할 때, 미국 스스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원칙 아래 북한에 대한 일방주의적 조치를 즉각 풀어야한다. 이런 조치가 없는 일괄타결안은 일시적인 미봉에 지나지 않는다.
여섯째, 일괄 타결안은 북한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북한의 주권을 존중해야한다. 특히 북한 지도부의 존립을 인정함으로써 최근에 야심작으로 추진하는 국가발전 大計가 성공할 수 있는 대외적인 여건을 마련하는데 공헌하는 게 바람직하다. 생각컨대 북한의 지도부는 국가발전 大計에 장해가 되는 일괄타결안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한-미-일 군사동맹은 이 점에 유의하여 협상에 나서야할 것이다. 북한은 생사를 건 인정투쟁의 일환으로 북한 핵문제의 해결에 임할 것이므로, 서방세계(특히 미국)가 북한을 인정하는 드라마를 연출하는 일괄타결(포괄적인 타결)이 되도록 당사자들이 노력해야한다.
5. 맺음말
민족의 숙원인 평화통일과 핵은 숙적이다. 우리 민족이 핵문제를 에워싸고 앓으면 앓을수록 평화통일의 날은 지체된다. 핵은 강대국들이 세계적인 차원에서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권력의 노리개’이다. 만약 북한이 ‘벼랑끝 외교의 노리개’로 핵 카드를 사용한다면 오산이다. 북한의 ‘사실상의(실제적인) 핵개발’은 강대국간의 세력균형으로 겨우 유지되는 동북아시아의 정치지형에 지진을 일으키므로 어느 나라도 원하지 않는다.
북한이 ‘심리적인 핵개발 의지 시인’ 카드로 이러한 세력균형을 깬 다음 평화통일을 이룩할 대안과 능력이 있다면, 한반도 내외의 평화통일 세력으로부터 지지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핵전쟁과 이로 인한 민족의 절멸이 내다보이는 ‘사실상의 핵개발’은, 민족의 평화적인 생존권과 한반도 주민 개개인의 인간안보를 위해 거부해야한다.
필자는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일방적으로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일방주의라고 생각한다. 실물로 존재하지 않는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거론하기에 앞서 실물로 존재하는 모든 핵무기를 먼저 제거해야한다. 이를 위해 ‘한반도 안팎에 드리워진 미국의 핵우산을 제거함으로써 동북아시아의 비핵지대화를 추동하는 힘’을 일괄타결안이 가져야한다.
북한 핵문제의 뿌리를 캐면, 한반도 주변의 핵강대국인 미국?러시아?중국 사이의 냉전 및 이에 따른 분단의 역사가 나온다. 이 분단의 철조망을 거두어내기 위해서는 분단선 부근에서 어른거리는 핵무기의 유령을 모두 쫓아내야한다. 핵무기의 유령과 함께하는 민족주의는 민족의 자멸을 초래할 뿐이다.
핵무장 민족주의자들은 독일이 패망한 역사를 바로 보아야한다. 독일의 민족주의자들이 히틀러의 유혹에 넘어가 ‘중무장 게르만 민족 제1주의’를 펼친 끝에 나라를 패망시키는 역적이 되었다. 핵은 본래 국수주의적인 민족주의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박정희 독재의 국수주의적인 일탈인 핵무장 시도가 결국 정권의 사멸로 이어졌다.
일본 극우파의 지도자인 이시 신따로 동경도지사가 일본민족의 ‘야마토(大和) 魂’을 강조하며 일본의 핵무장을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을 보라. ‘일본의 히틀러’ 이시 신따로의 노선에 의한 일본 군사대국화의 파시즘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한국의 ‘핵무장 민족주의자’들은 직시해야한다.
애초에 평화통일 지향적이었던 민족주의가 정세를 오판하여 핵무장에 박수치는 순간 ‘반(反)평화통일적인 국수주의’로 흘러 국제 파시스트 무리들에게 민족의 평화적인 생존권(민족의 권력)을 헌납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핵은 부시를 비롯한 국제 파시스트 무리들의 권력(패권)장악 수단이다. ‘부시가 히틀러와 닮은 꼴’이라고 비난하던 진보세력이, 미국의 일방주의적(제국주의적) 대외정책의 맞불로서 핵무장을 선호한다면, 이시 신따로 같은 ‘동아시아의 히틀러’를 뜻밖에 지원함으로써 민족의 권력을 상납하게 된다. 이게 바로 민족의 자주를 빙자한 핵무장이 민족의 자멸을 초래하는 ‘핵무장의 부머렝 현상’이다. ‘非核의 호수’한반도에 던져질 핵무장 카드는 민족의 생명을 위협하는 부머렝으로 되돌아오리라.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비핵의 호수’를 우리 민족이 자주적으로 관리하면서 평화협정을 맺음으로써 시작된다.
이 땅의 민족주의자들이여! 독일과 일본의 중무장 파시스트의 아류가 될 것인가? 한반도의 비핵화 실현과 동아시아의 비핵지대화 실현을 통한 평화통일의 기수가 될 것인가?
오로지 ‘비핵 민족주의 아래의 자주노선’만이 민족의 생명을 지피고 평화통일을 예약할 수 있다. 북한 핵문제를 에워싼 일괄타결(또는 포괄적 타결)안은 이와 같은 노선을 지킬 때만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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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주1) 고대 그리이스 시대에 다모클레스라는 사람이 디오니시오스에게 아첨하며 행복을 기원하자, 디오니시오스는 그를 호화로운 연회에 초대하여 한 올의 말총으로 매단 칼 밑에 앉히고, 참주의 행복이 항상 위기 및 불안과 함께 있음을 깨닫게 하였다. 그 이야기는 키케로에 의해 전해졌고, 그 후 절박한 위험을 뜻하는 ‘다모클레스의 칼(Sword of Damokles)’이라는 속담이 생겼다. 1961년 9월 25일 UN 총회에서 당시의 미국 대통령 케네디가 행한 연설 가운데 이 이야기를 인용, 우연히 일어날 수 있는 핵전쟁의 위험을 경고함으로써 유명해졌다.
(주2) 미국이 대량파괴무기의 보유를 ‘부인’하는 후세인에게는 전쟁으로 화답하고, 보유의 의지를 ‘시인’한 김정일에게는 외교적인 해결로 화답하는 ‘2중 기준(double standard)’이 이상하지 않은가? 후세인과 김정일을 역차별하는 이상한 반응 속에 미국의 중동정책과 아시아 정책의 온도차이가 있는 게 아닐까?
이 온도차이는 중동지역에서의 전쟁에 1점을 아시아에서의 반테러 전쟁에 0.5를 배점하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1.5 전쟁’은, 중동과 아시아에서 동시에 전쟁이 진행되더라도 승리한다는 Win-Win 전략의 축소판이다.
역차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핵문제와 관련하여 동아시아는 중동보다 휠씬 민감한 지역이기 때문인 듯하다. 미국의 입장으로서는, 핵무장 국가(러시아?중국)와 핵무장 잠재력 보유국(일본)으로 에워싸인 한반도를 ‘비핵(非核)의 호수’로 만들어야하는데, 핵개발 의지를 시인한 북한을 잘못 건드리면 정말로 핵무기를 개발하게 되고, 이에 따라 일본의 핵무장→한국의 핵무장으로 이어지는 재앙이 발생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핵통제 정책을 통한 아시아 지배의 구도’가 무너진다. 미국은 이런 끔찍한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김정일 정권을 ‘달래며(대화) 뺨을 치는(전쟁) 양면 전술’로 나아가고 있다.
핵 개발 의지를 ‘시인’한 김정일을 오히려 달래고 핵개발을 ‘부인’하는 후세인을 전쟁으로 위협하는 역차별의 배후에, 미국의 이와 같은 딜레마(dilemma)가 있다. 이 딜레마가 이라크 전쟁을 에워싼 미국 내외의 저항에 부닥쳐 증폭되면 될수록, 이라크 전쟁도 북한에 대한 전쟁도 여의치 않은 상황으로 내몰릴지 모른다.
(주3) 고슴도치는 특유의 가시로 무장한 채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지만 정태적이다. 가만히 앉아서 나를 잡아먹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투다. 그러나 이 고슴도치의 가시를 외세(미국 등)의 최첨단 무기로 두들기면 죽게 되어 있다. 이게 바로 아프간 전쟁 이후 북한의 지도부가 느끼는 불안감이다. 북한의 지도부와 거의 같은 군사전략을 채택해온 탈레반 정권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고슴도치 전략(핵무기 개발 옵션 전략)의 한계를 인식한 끝에 새로운 대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를 우화적으로 표현하면 ‘두꺼비 전략’이다.
두꺼비는 체내에 독소를 지니고 있으나 자연의 적자생존 원칙에 따라 독사에 잡혀 먹는다. 그러나 사로잡힌 두꺼비는 독사의 체내에 독소를 뿌림으로써 결국 독사를 잡아먹는다. 이런 걸 잘 아는 독사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두꺼비를 함부로 잡아먹지 않는다. 이런 내막을 잘 아는 두꺼비 역시 독사를 만나면 흥정을 한다; “독사야 내가 헌집 줄게 새집 다오”. 이렇게 생사를 건 ‘배짱 있는 서바이벌 게임’의 도전장을 받은 독사는 줄행랑을 칠 수밖에 없다.
미국?러시아?중국?일본 등의 전갈로 에워싸인 한반도 주변정세의 동물의 왕국에서 북한이 살아남으며 대국과 어깨를 겨루는 방법은 고슴도치의 전략보다는 두꺼비 전략이 훨씬 극적이며 효율적이다.
(주4) 북한의 (두꺼비 전략에로의) 패러다임의 전환은 주체사상의 원리에 대한 배반이 아니라, 변증법적으로 주체의 정신을 계승?발전시키려는 것이다. 변증법은 세계가 ‘正(These)-反(Anti These)-合(Synthese)'로 발전한다는 논리체계이다. 이 논리체계를 북-미관계에 적용해보면, 미국의 '북한 위협론?북한 붕괴를 위한 전쟁 계획'이라는 These의 모순을 지양하기 위한 Anti These로서, 북한은 고슴도치 전략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 고슴도치 전략이 아프간 전쟁 이후의 세계정세의 변환이라는 현실과 부딪쳐 내부 모순이 발생하자, 이를 종합적으로 지양하는 Synthese로서 ‘두꺼비 전략’을 모색한 첫 번째 작품이 ‘신의주 특구’, 두 번째 작품이 ‘북?일 수교’, 세 번째 작품이 ‘북?미 수교로 직행하기 위한 핵개발 의지 시인’인 듯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고슴도치 전략(Anti These)에서 두꺼비 전략(Synthese)에로의 변증법적인 이행과정을 만천하에 인정받기 위한 인정투쟁을 북한이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을 잘 보아야 북한의 숨가쁜 움직임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변증법의 대가인 헤겔(Hegel)이 설파하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 나오는 ‘생사를 건 인정투쟁(Kampf der Anerkennung auf Leben und Tod)’을 북한에 적용할 수 있다.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국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는 북한이 ‘아름다운 반란’의 이름으로 두꺼비 전략(국가발전 大計)을 채택하면서, 이 국가발전 大計를 전 세계가 인정해달라고 투쟁하고 있는 게 ‘신의주 특구’ 발상이다.
이런 인정투쟁의 대외적인 나타남은 북한의 전방위 평화공세 외교이다. 이미 유럽 등을 향한 전방위 평화공세가 성공을 거두었고 ASEAN 등을 파고드는 북한의 평화공세 외교가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최근 ASEM 회의에서 한?일 정상이 미국을 향하여 북-미 수교에 박차를 가하라고 암시를 준 것도, 이런 평화공세 외교가 한차례 순환을 돈 끝자리의 성과이다.
인정투쟁-평화공세 외교의 종착역은 미국이다. 이 종착역의 중간 계류장인 신의주에서, 두꺼비가 독사를 향해 ‘우리 이불속에 들어오라’는 겁나는 그러나 우호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한편 이런 두꺼비의 생사를 건 인정투쟁이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실패할 가능성도 있다. 실패할 경우 두꺼비의 죽음이 내정되어 있기 때문에 ‘생사를 건’ 투쟁이다. 신의주 특구는 안이한 발상이 아니라 두꺼비의 생사를 건 ‘국가발전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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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필자가 11월 1일 평화운동단체들이 주최한 토론회「북 핵문제의 본질과 올바른 접근방안」에서 발표한 것이며, 평화만들기 26호에도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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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국 박사 (디지털 말 이사, 평화활동가)
지금 북한의 핵문제를 에워싼 논란이 뜨겁다. 국내외의 언론이나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현상의 분석에만 집착할 뿐, 북한 당국이 핵문제를 에워싸고 苦鬪하고 있는 부분에 소홀하다. 따라서 필자는 북한 당국의 苦鬪의 현장에 밀착하는 가운데 이 사태의 맥락(Context)을 분석하려고 한다. 맥락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지난 25일 발표한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담화 등을 참고자료(Text)로 사용하려고 한다.
1. 몇 가지 해석의 문제
1) ‘핵무기 개발 시인’ 담론에 대한 해석
필자는 미국 특사 켈리가 방북하기 이전에 쓴 글 「북한의 변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http://www.digitalmal.com/news/news_read.php?no=5030)」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김 정일 위원장은 미국의 특사를 향해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당신들 미국인들이 말하는 북한의 개혁개방이란 미국식 시장경제를 북한에 뿌리내리게 하여 북한을 붕괴시키려는 게 아닙니까? 우리는 당신들의 북한 붕괴극에 따라 신의주에 미국식 자본주의의 전시장을 만들 계획이니 우리를 잡아먹고 싶으면 신의주에 자본을 투자하시오. 자본을 투자하려면 북한에 대한 경제제제를 풀고, 이를 위한 사전작업으로 북-미 수교를 해야 할 것 아니오. 그러니 이제부터 북-미 수교를 위해 미국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오. 이게 우리가 당신들에게 마지막으로 보내는 호의적인 'love call'이니 명심하시오. 부시 정권이 이런걸 눈치채지 못하면 우리는 진짜로 핵무기를 개발할 거요.”라고...
만약 평양에서 열린 강석주-켈리의 대좌에서 위와 비슷한 언사들이 오고 갔다면, 미국 쪽에서 주장하는 ‘북한 핵개발 시인’은 ‘북한 핵개발 의지 시인’으로 받아들여야한다. 생각컨대 강석주 부장은 ‘신의주 특구 개방 등 북한이 미국을 향해 호의적인 love call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화답이 없으면 진짜로 핵무기를 개발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뉘앙스로 말했을 것이다. 북한의 외무성 대변인이 10월 25일자로 발표한 담화문 중 ‘이런 상황하에서 우리가 팔짱끼고 가만히 앉아 있으리라고 생각했다면 그보다 더 단순한 사고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미국 대통령 특사에게 미국의 가중되는 핵압살 위협에 대처하여 우리가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는 물론,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명백히 말해주었다’는 부분이, 필자가 언급한 ‘진짜로 핵무기 개발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뉘앙스를 확인해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핵무기를 개발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뉘앙스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켈리는 ‘북한 지도부가 핵무기 개발을 시인했다’는 쪽으로 몰고 갔다. 여기에서 ‘시인’이라는 말이 중요한데, 북한 당국이 발표한 문서의 어느 곳을 보아도 ‘시인’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시인’이라는 말은 켈리와 미국 정부가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한 용어이다. 켈리가 ‘북한의 농축 우라늄 생산에 관한 첩보’를 강석주 부장에게 들이밀고 북한을 협공하자 북한 쪽에서 ‘핵무기를 개발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를 강석주-켈리 사이의 논쟁이 일어난 시간순서로 다시 보면, 켈리가 ‘농축 우라늄 생산’의 증거물을 들이대자 강석주가 의외로 ‘핵무기를 개발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대답을 했기 때문에, 켈리는 이를 ‘농축 우라늄 생산을 북한이 시인한 것’으로 간주했다. 켈리는 북한 지도부가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빠진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미국 정부의 공식적 견해(‘북한 지도부, 핵개발 시인’)로 만든 다음 소동을 일으켰다.
이런 켈리의 ‘특종’에 대해 한국의 ‘냄비 언론’과 냉전 수구 세력이 준동하기 시작했고 북?일 수교에까지 악영향을 미치자, 북한의 외무성 대변인이 10월 25일자로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 담화문에서 돋보이는 부분은 ‘핵무기는 물론,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명백히 말해주었다’는 문구이다. 핵무기보다 더한 것이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지(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생화학 무기인지, 미국에 대한 결사항전의 인간방패인지, 북한의 미사일 남한의 핵발전소?일본의 핵발전소를 폭파하면 핵무기 보다 더 위력적인 피해를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인지)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지게 되어 있다”는 부분이 핵문제 소동의 본질을 이해하는 열쇠이다.
‘가지게 되어 있다’는 현재 진행형이 아니다. 따라서 미국?한국의 정보기관과 강경파들이 주장하는 ‘현재 북한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가지게 되어 있다’는 미래의 수동태 시제이다. 따라서 미래에 수동적으로 핵무기를 가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쪽으로 해석해야 온당하다. 그런데 이 말의 앞에 ‘앞으로도 미국이 계속 북한에 대한 핵압살 정책을 고수한다면...’이라는 조건절이 붙는다. 즉 ‘미국이 대량파괴무기에 대한 반확산(counter-proliferation) 전략?NPR(핵태세 수정 보고)등을 통해 북한에 대한 핵선제 공격을 한다면 이는 제네바 협정의 중대 위반이므로 우리도 생존권 차원에서 핵개발 의지를 가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북한의 붕괴를 위한 전쟁 책동 등을 계속 벌여나간다면, 우리도 생존을 위해 핵무기보다 더한 것도 개발하지 않을 수 없다. 최악의 사태에 북한이 핵물질을 보유하게 되더라도 이는 미국이 유발한 것이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가지게 되어 있다’가 미래 시제라고 해서 ‘북한이 앞으로 핵무기를 가질 것이다’라고 비약하면 곤란하다. ‘앞으로 가질 것이다’는 ‘미래에 핵무장을 할 생각이다’와 연결되므로 이를 회피하여 ‘가지게 되어 있다’라는 고뇌어린 문구를 선택한 듯하다. ‘가지게 되어 있다’에 현재 진행형의 의지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즉 현재의 북미관계(미국의 북한 압살 정책)가 ‘핵무기보다 더한 것을 가지게 되어 있는’ 형국이므로 이에 대비하기 위하여 ‘우리도 무언가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는 북한 당국의 ‘고투(苦鬪)’가 배어 나온다.
필자는 이런 정황을 종합하여 ‘북한이 핵개발 의지를 시인’한 것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북한이 핵개발을 시인’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 이유를 북한식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정책의 탄력적 운용에서 찾는다.
2) NCND 정책과 북한의 ‘핵개발 의지의 시인’
필자 역시 고심 끝에 북한이 핵개발 의지를 시인한 쪽으로 정리하자마자 머리에서 경련이 일어날 정도의 공포감이 엄습했다. 북한이 핵개발 의지를 시인한 것 자체가 민족의 생명을 담보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민족의 생명은 ‘다모클레스의 칼’(주1)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북한의 핵개발 의지 시인’ 사태가 해결되는 방향에 따라 민족의 운명이 왔다 갔다 하는 심각한 상황이 되었다. 심각성의 측면에서 ‘2003년 한반도 위기설’을 몇 백배 뛰어 넘는다.
이제부터 한반도의 모든 정세분석은 ‘다모클레스의 칼’이 우리 민족의 생명선에 얼마나 깊이 박혀 전쟁의 접경지대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칼집 자체를 없앤 다음 북-미 수교로 나아가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하느냐를 중심으로 파악해야한다. 그래서 ‘북한의 핵개발 의지 시인’사태를 우선 평화의 시각에서 바라보아야한다. 이런 시도의 첫 번째 순서로 북한의 NCND 정책의 변용 여부에 대해 언급한다.
북한은 오래전부터 비핵지대화를 제안하면서 한반도의 ‘비핵(非核) 평화’를 염원해왔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의 평화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번에도 ‘핵개발 의지를 시인’하는 한편 ‘미국과의 불가침 조약 체결’을 제안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핵개발 의지를 시인한 것’이 북한의 전통적인 평화의지를 전면부정하고 ‘핵전쟁을 감수하기로 했느냐’의 여부를 따져보기에 앞서 이런 양면성을 아주 동적으로(dynamically) 검증해야 한다.
필자는 이를 검증하는 수단으로 북한의 NCND 정책의 변용 여부를 고찰한다. 일반적으로 NCND란 글자 그대로 핵무기의 존재 여부를 시인도 부인도 않는 정책이다. 핵무기는 본래 ‘악마의 무기’ ‘죽임의 무기’이므로 핵무기 보유 국가일지라도 ‘보유를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것’이 국제질서의 일반상식이다. 이러한 NCND 정책의 운용 폭이 확대되어 각 나라들은, (핵물질을 원자력 발전에만 투입하는) 평화적인 이용단계를 벗어난 상태에서부터 NCND 정책을 구사한다. 특히 늦깎이 핵무기 개발 국가일수록 NCND 정책을 엄밀하게 적용한다.
자칫 핵무기 개발 의지를 시인했다가는 미국을 비롯한 핵무기 5대 강국(이들 국가들이 유엔 안보리의 상임 이사국이다. 이런 측면에서 유엔은 핵 독점 체제의 종속물이다)의 응징을 받아 국가의 사멸까지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라크의 경우 NCND 정책으로 일관하면서 ‘오리발’을 내밀었음에도 불구하고 걸프전의 포화를 맞아 오늘날까지 고전하고 있다. 북한도 예외가 아니었다. 북한은 이라크 보다 더욱 선명하게 NCND 정책을 운용하면서 미국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 노력의 압권은 김일성 주석이 ‘우리는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도 의사도 없다’고 잘라 말한 것이다. 특히 북한은 1993년의 핵위기로 인한 전쟁 일보 직전에서 구출당한 쓰라린 경험이 있기 때문에 NCND는 국가의 생존을 위한 비방중의 하나이었다.
그런데 북한이 핵개발 의지를 ‘시인’함으로써 NCND중 'ND(Nor Deny; 핵무기 개발의지를 부인하지 않는다)’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필자가 말하는 ‘핵개발 의지의 시인’은 ‘북한이 핵개발 의지를 부인하지 않았다’로 옮겨야 정확하다. 필자는 앞으로 ‘부인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시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여기에서 '의지로서의 ND(심리적인 ND)'와 ‘사실상의 ND(핵개발 의지를 실행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농축 시설?기자재의 보유)’로 구분할 수 있겠다. 앞으로 북-미간, 북한-국제원자력 기구(IAEA)간에 벌어질 사찰은 전자의 ND이냐 후자의 ND이냐를 검증하는데 주력할 듯하다.
필자가 보기에 전자의 심리적인 ND는 ‘미국을 북한의 안마당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작전’의 요소가 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다. 더욱이 이런 작전이 성공하여 북-미 수교로 이어져 평화통일의 대로로 나아가길 바란다. 그러나 후자의 ND일 경우 문제는 자못 심각하다. 어느 누가 보아도 북한이 핵무기 개발의 입문 단계로 들어갔다고 보기 때문에 국제 사회가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 최악의 경우 이라크처럼 미국의 선동에 의한 국제 사회의 심판을 받아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워질지 모른다.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사실상의 ND’가 미국과의 불가침 조약 체결의 방해물이 될 뿐 아니라, 한반도에서의 (핵)전쟁을 유발함으로써 북한의 붕괴는 물론 ‘민족 절멸의 판도라 상자’가 열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핵무기는 물론,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되어 있다’는 수사적인 표현을 즐기다가 ‘민족절멸의 판도라 상자를 열어제끼는 최악의 상황’을 우려하는 것이다. 기아(飢餓)의 나라 파키스탄이 핵개발 한 뒤 더욱 가난한 나라로 전락한 사실을 볼 때, 북한이 제2의 파키스탄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전자의 ND와 후자의 ND의 분기점은 민족의 생사의 갈림길이다. 따라서 한국의 평화통일 운동 세력은 전자의 ND가 성공하도록 지원하되 후자의 ND로 나아가지 않도록 쐐기를 박는 운동을 전개해야한다. 이게 민족이 평화롭게 살길이다.
북한이 미국에 불가침 조약의 체결을 제의한 점,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 의지’에 대한 무력공격을 회피하는 점, 미국이 ‘후세인과 김정일을 역차별’(주2)하는 점을 미루어 보건데, ‘전자의 ND’의 수위를 에워싸고 북-미간에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기조에서 살펴보면 북한은 미국을 불가침 조약-북?미 수교협상-경제제재 해제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로 전자의 ND 정책을 이용하다가 막상 IAEA의 사찰 카드가 들어오면 부인(NC; Neither Confirm)하는 쪽으로 나아갈 듯하다. 이런 의미에서 북한 당국이 ‘NCND의 분리-통합 정책(일단 NC와 ND를 분리하여 ND하는 체 하다가 미국이 말려들면 NC를 한다)’을 구사한다고 볼 수 있으며, 미국과의 협상과정에서 치고 빠지는 ‘hit and run 전술'을 운용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게릴라 NCND'로 명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제아무리 뛰어난 천출명장이더라도 ’후자의 ND‘의 늪지대로 빠져들기 시작하면 ‘다모클레스의 칼’ 세례를 받아 국가(정권)의 사멸?민족의 절멸이 내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동아시아에서는 ‘핵무장 민족주의’가 설 땅이 없음을 깊이 새겨두기 바란다.
2. 북한의 패러다임 전환과 ‘핵개발 의지의 시인’
정치?군사?사상?경제의 강성대국을 표방해온 북한의 지도부는, 정치?군사?사상의 측면에서 강성대국의 발판을 마련했으나 경제적인 강성대국을 이루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경제적 강성대국을 가로막는 최대의 원흉은 미국의 북한 압살 정책이므로, 강성대국의 대외적인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을 끌어들여 북?미 수교에 이은 경제제재의 해제를 이끌어내야한다.
그런데 부시 대통령이 집권하는 한 북?미관계의 난맥상이 거듭되고 ‘과거 핵’문제로 미국과 지루한 샅바 싸움을 해야 할 상황이다. 경제발전의 관건인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KEDO의 경수로가 완공되기만을 넋 놓고 기다릴 수 없다. 이런 고통스러운 상황을 정면돌파하기 위해 북한의 지도부는 과거와는 다른 대외정책을 포함한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을 시도하면서 ‘과거사 시인’ 작전(‘과거사 시인’의 첫 번째 시나리오는 일본인 납치의 시인이며, 두 번째 시나리오는 핵개발 의지의 시인임)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1) 북한의 苦鬪와 핵개발 의지의 시인
이는 패러다임 전환 이전의 과거사(냉전의 유산)를 훌훌 털어 버리고 정정당당하게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아가면서 평화공세(미국과의 불가침 조약 체결 제의)를 펼친다면, 결국 미국도 북한을 인정할 것이 아니냐는 발상이다. 필자는 이런 발상의 전환 즉 패러다임의 전환을 ‘고슴도치 전략에서 두꺼비 전략(주3)에로 이행중인 국가발전 大計’ 속에서 발견하고자 하며, 북한의 핵개발 의지 시인(전자의 ND)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생사를 건 인정투쟁의 苦鬪(주4)’로 본다. 북한의 패러다임 전환과 핵개발 의지 시인과의 연관을 이해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표1>을 작성했다.
<표1> 북한의 패러다임 전환과 ‘핵개발 의지 시인’의 관련(생략)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북한은 전자의 ND(일반적인 NCND 아래의 핵개발 옵션)와 후자의 ND(NCND의 분리-통합 정책에 따른 핵개발 의지 시인)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경계 자체를 모호하게 하는 ‘게릴라 NCND 전략’을 구사하며 ‘다모클레스의 칼’ 위에서 미국과 살풀이 춤을 추고 있다.
이런 苦鬪는 세계외교사에서 보기 드문 진검승부를 예고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핵개발 의지 시인도 ‘북한의 국가발전 大計 속에서 묻어나오는 苦鬪(생사를 건 인정투쟁)’와 연관지어 이해할 필요가 있다.
3. 도전적인 ‘핵개발 의지 시인’ 카드의 파장
1) 미국의 ‘북한 압살-일방주의 외교’에 대한 도전
북한의 지도부가 미국을 끌어들이는 국가발전 大計의 일환으로 핵개발 의지 시인(전자의 ND) 카드를 사용하는 듯하다. 그런데 이 카드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응 여하에 따라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뇌관이다. 이 카드는 부시 정권의 대량파괴무기 반확산 전략(전쟁을 통해서라도 대량 파괴무기를 없애겠다는 counter-proliferation 전략)에 대한 도전장이다.
미국의 반확산 전략은, 북한에 대한 핵선제 공격을 용인한 NPR(핵태세 수정 보고)로 이어져 있다. 또한 미국은 ‘테러지원 국가’로 낙인찍은 북한과의 반테러 전쟁의 고비를 늦추고 있지 않다. 이라크와의 전쟁 다음에 북한과의 전쟁을 치루려한다. 이러한 상황은 북한으로 하여금 도저히 제네바 협정을 준수할 수 없게 만든다. 미국이 북한에 대하여 핵선제 공격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제네바 협정의 기본정신을 미국이 파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제네바 협정이라는 북?미간 계약의 중차대한 위기를 말해준다. 따라서 현 상황은 미국이 엉망진창으로 만든 제네바 협정을 파기하고 북?미간에 새로운 계약서를 써야할 단계이다.
그런데 국제관계는 냉혹하기 때문에 북한의 지도부가 새로운 계약서를 쓰자고 선포하는 대신에 핵개발 의지의 시인이라는 도전장을 내놓은 것이다. 도전장을 받은 부시 정권이 끝내 북한 압살 전략(대량파괴 무기의 반확산 전략?NPR?반테러 전쟁)을 포기하지 않으면, 북한이 핵개발 의지를 실제행동으로 보여줘 핵개발로 나아갈지 모른다. 이럴 경우 북한의 정권과 부시 정권이 동반자살하는 사태(북한의 ‘두꺼비 전략’의 가장 비극적인 상황)가 벌어질지 모른다.
그러므로 북한의 핵개발 의지 시인은 북한정권의 생존의 문제일 뿐 아니라, 부시 정권의 생존과도 연결된 문제이다. 북한의 도전장에 대하여 졸속 대응을 할 경우 부시 정권을 먹여살려온 ‘일방주의 외교의 맛’이 사라져 부시는 ‘정치적인 식물인간’이 되고, 전쟁으로 응수할 경우 부시 정권의 생명을 내놓아야한다. 이런 엄청난 도전장 앞에서 부시 정권이 움찔거리며 평화적으로 해결하자고 나오면서 후세인 정권과의 역차별 정책을 수행중이다.
2) 세계의 핵질서에 대한 도전장?
미국이 평화적으로 해결하자고 나올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북한의 핵개발 의지 시인 카드가 국제 핵질서를 뒤흔들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지도부가 이런 부수효과까지 노리고 ‘핵개발 의지 시인’ 카드를 쓰는지 모르겠지만, 이 카드는 미국으로 하여금 1990년 초반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1990년대 초반 소련의 붕괴 직후 (소련에 필적할) 새로운 가상적을 제3세계 반미국가의 대량파괴무기에서 찾은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이러한 미국의 음모(?)에 정면대응한 북한은 ‘NPT(핵확산 방지 조약)를 탈퇴하겠다’는 초강수를 두었다. 마침 미국은 1995년에 있을 NPT조약의 기한 연장을 위해 인도 등의 제3세계 국가를 구워삶기 위해 갖은 로비를 벌이고 있던 때이었다. 이미 핵개발 의지를 내비친 인도 등 제3세계 국가의 불만을 방치하면, ‘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이 핵독점을 하고 나머지 국가들은 핵물질의 보유조차 불가능하게 통제(미국 중심의 통제)하는 NPT 체제’가 붕괴하는 것은 시간문제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엄중한 상황을 노린 듯 북한이 NPT 조약을 탈퇴하겠다고 선언했으니, 이는 5대 핵강국 중심의 유엔질서는 물론이고 NPT 조약 등으로 얽혀 있는 지구촌 질서 자체의 ‘예약된 파열구’이었다. 미국은 이런 ‘예약된 파열구’를 미봉하기 위해 북한과 제네바 협정을 숨 가쁘게 체결했다. 제네바 협정은, 미국이 대량파괴무기의 비확산(non-proliferation)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2국간에 체결한 유일한 조약이다(제네바 협정은 미국이 북한을 특등대우하며 생색내는 가운데 체결한 조약이지만, 이 조약에 발이 묶여 이라크처럼 ‘과거 핵’을 트집 잡아 전쟁 카드를 선뜻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계륵이다).
제네바 협정이 없었더라면 1995년의 NPT조약 기한 연장도 불가능했을 것이다(그만큼 제네바 협정은 미국의 효자노릇을 했다. 그러나 전쟁 중독에 걸린 부시 정권은 제네바 협정이 ‘북한과의 전쟁’에서 불효자 노릇을 하기 때문에 파기하려고 한다). 이제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 의지 시인 카드를 잘못 건드려 북한이 제네바 협정을 파기하고 NPT 조약에서 탈퇴한다면, ‘미국에 의한 핵 禁壓 체제(NPT 체제)의 해체’조짐이 보일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 의지 시인 카드가 잘못 관리되어 우리 민족의 생명을 절멸할 판도라의 상자가 될지 모른다’는 필자의 우려는, 한반도의 차원에서만 바라보고 진단한 것이다. 만약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 시인 카드를 잘못 관리하여 1990년대 초처럼 북한의 NPT탈퇴로 이어진다면, 인류 전체에 판도라의 상자가 던져질 것이다. 이 판도라의 상자는 (미군을 포함한) 미국인이 가장 먼저 열어보게 되어 있기 때문에, 핵개발 의지 시인 카드는 북한의 지도부가 미국에게 보내는 마지막 ‘love call'이다. 이 ‘love call의 의미'를 잘 새겨들어 북한을 승인(북?미 수교-경제제재 해제)하면 북한?미국의 정권이 ’동반 생존‘을 할 수 있고 거부하면 북한?미국 정권의 ‘동반 자살’이 내정되어 있다.
북한의 핵문제를 에워싸고 북?미 양국의 정권은 목숨을 건 투쟁을 하고 있지만, ‘다모클레스의 칼’ 위에서 ‘동반 자살과 동반 생존’이라는 결단을 강요받고 있는 운명 공동체이다. 부시 정권이 ‘NPT 체제라는 핵의 바다’ 위에서 적(북한)과의 동침을 승인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북한의 지도부가 간파하고 핵개발 의지를 시인했는지 알 수 없으나, 부시 정권은 이를 반드시 숙지하고 북한이라는 천적(두꺼비)과의 공존(북한의 생존권 인정)을 도모해야할 것이다. 이게 미국이 살 길이며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물론 동아시아의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다.
4.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라는 표현이 너무나 추상적이므로, ‘북한 핵’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여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예약할 수 있는 당사자로서의 ‘우리’로 좁힌다. 한-미-일 군사동맹 및 이를 지지하는 정권은 일단 ‘우리’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세계평화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염원하는 평화애호 세력이 큰 범주의 ‘우리(A 그룹)’일 것이고, 한반도의 주민중 평화애호 세력이 좁은 범주의 ‘우리(B 그룹)’일 것이다.
너무 막연한 이야기이지만 A 그룹은 북한 핵 문제의 심각성을 재빨리 간파하여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가 북한 압살정책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는 것을 ‘평화의 임무’로 상정하면 된다. 그러나 B 그룹은 당사자이므로 구체적인 평화의 임무를 띠지 않을 수 없다. B 그룹이 북한 핵문제를 에워싼 대안을 찾으며 잊지 말아야할 강령 차원의 모토(Motto)는 민족의 생명과 한반도 주민 개개인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어야 한다. 즉 민족의 평화적인 생존권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대안을 마련해야한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한반도 민중 개개인의 인간안보를 보장받는 길을 모색해야한다. 이 두 가지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한 ‘한반도 주변의 비핵지대화’를 평화통일의 전략으로 올곧게 밀고 나아가야한다.
‘북한 핵’ 사태의 해법은 ‘핵이 없는 한반도’를 이룩하는데 집중되어야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미국이 북한에 대한 핵선제공격 의지를 포기하고 북한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동시에 북한도 핵개발 의지를 포기해야한다. 핵문제는 민족의 생명에 관한 중차대한 문제임을 북한의 지도부가 깨닫기 바란다.
‘핵이 없는 한반도’를 이룩하기 위해 북한?미국은 제네바 협정을 준수하는 한편, 남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준수하여 이를 ‘한반도 주변의 비핵지대화’로 승화시켜야한다.
‘핵이 없는 한반도’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외국군(미군)의 개입이 없는 한반도’를 만들어야한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은, 여태껏 한반도에서의 핵전쟁에 대비한 최전방 군단의 역할을 해왔다. 이런 역할은 한반도 상공과 해상에 걸쳐져 있는 미국의 핵우산이 대변해준다. 미국은 북한에게만 핵문제를 해결하라고 윽박지를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한반도 주변에 설치한 핵 우산을 철거해야한다. 이 것이 ‘북한 핵’사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다.
1) 평화운동 세력의 임무
국내외의 평화운동 세력은, A 그룹과 B 그룹의 임무를 구체적으로 실행할 ‘평화의 전략’을 짜야할 것이다. 평화의 전략을 짜는데 있어서 경계해야할 사항은, ‘국수주의적인(jingoistic) 핵무장 민족주의’로는 자주는커녕 평화보장도 얻어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핵무장 민족주의’가 자주를 가져올 것이라는 소견은 국제적인 핵질서에 대한 무식의 소치이며, 이런 무식은 되레 한반도에서의 분쟁(재래식 전쟁, 심지어는 핵전쟁)을 부채질할 뿐이다. 그러므로 오로지 ‘비핵(非核) 민족주의 아래의 자주노선에 입각한 평화의 전략’을 내와야할 것으로 믿는다.
2) ‘비핵(非核) 민족주의 아래의 자주노선에 입각한 평화의 전략’과 일괄타결안의 원칙
첫째, 한국의 평화운동 세력은 핵과 관련된 기존의 협정을 당사국들이 지키도록 압력을 넣는 게 바람직하다. 즉 남북한이 맺은 한반도 비핵화 협정과 북?미간의 핵협정인 제네바 협정을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 아예 작동하지 않는 비핵화 협정과 주로 미국 쪽의 위반으로 위기에 놓인 제네바 협정을 왕성하게 기능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한다. 일괄 타결이든 포괄적 타결이든 이러한 방향에서 틀이 잡혀야한다.
필자는 이 시점에서 미국과 북한, 미국과 남북한 사이에 ‘새로운 계약서 쓰기 운동’을 전개할 것을 제안한다. 미국과 북한은 제네바 협정이라는 기존의 계약서(협정)를 개폐(제네바 협정의 문제점을 수정보완하든지 이를 폐기하고 새로운 협정을 체결하든지)하고, 미국과 남한은 한?미 상호방위 조약의 개폐를 동시 추진하는 운동을 남북한 정부와 민간 진영(남한의 경우 NGO)이 합심하여 벌여가길 바란다. 때마침 내년은 정전협정?한미 상호 방위조약 체결 50주년이다. 50주년에 즈음하여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이의 기초작업으로서 한?미 상호 방위조약을 개폐하는 운동을 동시에 전개하면 좋겠다.
민간진영이 개입해야하는 이유는, 제네바 협정 등이 지나치게 국가권력의 안보에 치우쳐 협상이 국가권력의 이익을 기계적으로 주고받는 ‘zero sum game’으로 일관되기 때문이다. 이 바람에 민족의 생명이 걸려 있는 핵문제가 남북한-미국 사이에서 깊이 거론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민간 진영은 시민사회의 안보라는 측면에서 개개인의 인간안보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북한의 핵문제가 일괄타결(포괄적으로 타결)된 다음 민족의 생명을 온전히 보전하는데 기여해야할 것이다.
특히 인간안보를 확대하기 위해 북한의 핵문제 해결과정에 민간진영이 개입할 수 있는 통로를 발견해야할 것이다. 핵문제의 발생부터 해결까지의 전 과정을 민간진영이 모니터 할 수 있는 능력을 NGO 스스로 갖추어야한다. 통일 운동 세력도 민족의 생명이 걸린 사안인만큼 민간진영의 선두에 서서 북한 핵 사태에 직접 개입하길 희망한다.
그리고 일괄타결 과정에서 북?일 수교가 성사된데 이어 북?미 수교로 이어지길 바란다. 즉 일괄타결의 결과가 교차승인의 완결(미국?일본의 북한 승인으로 남북한을 에워싼 주변 국가들의 교차승인 구도 완료)로 이어져 한반도의 평화협정 체결과 동아시아의 다국간 안전보장 틀로 발전했으면 좋겠다.
둘째, 한반도의 군축 지향적인 일괄 타결안을 마련하여 평화통일의 기틀을 마련해야한다. 한반도의 군축(핵을 포함한 군축)을 가로막는 2대 흉물인 주한미군 문제와 북한 핵문제를 당사자인 남북한?미국이 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3자간 평화협정의 틀을 갖춰 나아가는 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정석이다.
셋째, 미국의 지나친 개입을 방지하는 일괄 타결안이 되어야한다. 북한 핵 문제는 외세가 한반도에 개입한 분단의 역사에서 비롯되었으므로, 외세의 입김을 되도록이면 배제한 가운데 남북한이 민족의 생명을 온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북한 핵문제는 미국 정부의 이해관계와 대외전략의 변화에 따라 숨가쁘게 변질되어 왔다. 이제 미국에서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변함없는 국제사회의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남북한 공조를 통해 마련하는 게 급선무이다.
넷째, 일괄타결안은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제네바 협정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 일괄타결안이 낳을지도 모르는 ‘제2의 제네바 협정’은 협정 위반시 강력하게 제제할 수단이 있어야한다. 특히 협정을 주로 어기는 미국이 위반했을 때 이를 징벌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한다.
다섯째, 일괄 타결안은 (북한 핵문제를 간접적으로 야기한) 부시 정권의 일방주의를 부인하는 정신에서 출발해야한다. 대량파괴무기에 대한 반확산 전략 및 이에 수반된 북한 핵선제공격 계획(NPR)이 북한을 자극한 결과 북한의 핵개발 의지 시인으로 줄달음친 경과를 생각할 때, 미국 스스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원칙 아래 북한에 대한 일방주의적 조치를 즉각 풀어야한다. 이런 조치가 없는 일괄타결안은 일시적인 미봉에 지나지 않는다.
여섯째, 일괄 타결안은 북한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북한의 주권을 존중해야한다. 특히 북한 지도부의 존립을 인정함으로써 최근에 야심작으로 추진하는 국가발전 大計가 성공할 수 있는 대외적인 여건을 마련하는데 공헌하는 게 바람직하다. 생각컨대 북한의 지도부는 국가발전 大計에 장해가 되는 일괄타결안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한-미-일 군사동맹은 이 점에 유의하여 협상에 나서야할 것이다. 북한은 생사를 건 인정투쟁의 일환으로 북한 핵문제의 해결에 임할 것이므로, 서방세계(특히 미국)가 북한을 인정하는 드라마를 연출하는 일괄타결(포괄적인 타결)이 되도록 당사자들이 노력해야한다.
5. 맺음말
민족의 숙원인 평화통일과 핵은 숙적이다. 우리 민족이 핵문제를 에워싸고 앓으면 앓을수록 평화통일의 날은 지체된다. 핵은 강대국들이 세계적인 차원에서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권력의 노리개’이다. 만약 북한이 ‘벼랑끝 외교의 노리개’로 핵 카드를 사용한다면 오산이다. 북한의 ‘사실상의(실제적인) 핵개발’은 강대국간의 세력균형으로 겨우 유지되는 동북아시아의 정치지형에 지진을 일으키므로 어느 나라도 원하지 않는다.
북한이 ‘심리적인 핵개발 의지 시인’ 카드로 이러한 세력균형을 깬 다음 평화통일을 이룩할 대안과 능력이 있다면, 한반도 내외의 평화통일 세력으로부터 지지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핵전쟁과 이로 인한 민족의 절멸이 내다보이는 ‘사실상의 핵개발’은, 민족의 평화적인 생존권과 한반도 주민 개개인의 인간안보를 위해 거부해야한다.
필자는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일방적으로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일방주의라고 생각한다. 실물로 존재하지 않는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거론하기에 앞서 실물로 존재하는 모든 핵무기를 먼저 제거해야한다. 이를 위해 ‘한반도 안팎에 드리워진 미국의 핵우산을 제거함으로써 동북아시아의 비핵지대화를 추동하는 힘’을 일괄타결안이 가져야한다.
북한 핵문제의 뿌리를 캐면, 한반도 주변의 핵강대국인 미국?러시아?중국 사이의 냉전 및 이에 따른 분단의 역사가 나온다. 이 분단의 철조망을 거두어내기 위해서는 분단선 부근에서 어른거리는 핵무기의 유령을 모두 쫓아내야한다. 핵무기의 유령과 함께하는 민족주의는 민족의 자멸을 초래할 뿐이다.
핵무장 민족주의자들은 독일이 패망한 역사를 바로 보아야한다. 독일의 민족주의자들이 히틀러의 유혹에 넘어가 ‘중무장 게르만 민족 제1주의’를 펼친 끝에 나라를 패망시키는 역적이 되었다. 핵은 본래 국수주의적인 민족주의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박정희 독재의 국수주의적인 일탈인 핵무장 시도가 결국 정권의 사멸로 이어졌다.
일본 극우파의 지도자인 이시 신따로 동경도지사가 일본민족의 ‘야마토(大和) 魂’을 강조하며 일본의 핵무장을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을 보라. ‘일본의 히틀러’ 이시 신따로의 노선에 의한 일본 군사대국화의 파시즘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한국의 ‘핵무장 민족주의자’들은 직시해야한다.
애초에 평화통일 지향적이었던 민족주의가 정세를 오판하여 핵무장에 박수치는 순간 ‘반(反)평화통일적인 국수주의’로 흘러 국제 파시스트 무리들에게 민족의 평화적인 생존권(민족의 권력)을 헌납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핵은 부시를 비롯한 국제 파시스트 무리들의 권력(패권)장악 수단이다. ‘부시가 히틀러와 닮은 꼴’이라고 비난하던 진보세력이, 미국의 일방주의적(제국주의적) 대외정책의 맞불로서 핵무장을 선호한다면, 이시 신따로 같은 ‘동아시아의 히틀러’를 뜻밖에 지원함으로써 민족의 권력을 상납하게 된다. 이게 바로 민족의 자주를 빙자한 핵무장이 민족의 자멸을 초래하는 ‘핵무장의 부머렝 현상’이다. ‘非核의 호수’한반도에 던져질 핵무장 카드는 민족의 생명을 위협하는 부머렝으로 되돌아오리라.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비핵의 호수’를 우리 민족이 자주적으로 관리하면서 평화협정을 맺음으로써 시작된다.
이 땅의 민족주의자들이여! 독일과 일본의 중무장 파시스트의 아류가 될 것인가? 한반도의 비핵화 실현과 동아시아의 비핵지대화 실현을 통한 평화통일의 기수가 될 것인가?
오로지 ‘비핵 민족주의 아래의 자주노선’만이 민족의 생명을 지피고 평화통일을 예약할 수 있다. 북한 핵문제를 에워싼 일괄타결(또는 포괄적 타결)안은 이와 같은 노선을 지킬 때만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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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주1) 고대 그리이스 시대에 다모클레스라는 사람이 디오니시오스에게 아첨하며 행복을 기원하자, 디오니시오스는 그를 호화로운 연회에 초대하여 한 올의 말총으로 매단 칼 밑에 앉히고, 참주의 행복이 항상 위기 및 불안과 함께 있음을 깨닫게 하였다. 그 이야기는 키케로에 의해 전해졌고, 그 후 절박한 위험을 뜻하는 ‘다모클레스의 칼(Sword of Damokles)’이라는 속담이 생겼다. 1961년 9월 25일 UN 총회에서 당시의 미국 대통령 케네디가 행한 연설 가운데 이 이야기를 인용, 우연히 일어날 수 있는 핵전쟁의 위험을 경고함으로써 유명해졌다.
(주2) 미국이 대량파괴무기의 보유를 ‘부인’하는 후세인에게는 전쟁으로 화답하고, 보유의 의지를 ‘시인’한 김정일에게는 외교적인 해결로 화답하는 ‘2중 기준(double standard)’이 이상하지 않은가? 후세인과 김정일을 역차별하는 이상한 반응 속에 미국의 중동정책과 아시아 정책의 온도차이가 있는 게 아닐까?
이 온도차이는 중동지역에서의 전쟁에 1점을 아시아에서의 반테러 전쟁에 0.5를 배점하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1.5 전쟁’은, 중동과 아시아에서 동시에 전쟁이 진행되더라도 승리한다는 Win-Win 전략의 축소판이다.
역차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핵문제와 관련하여 동아시아는 중동보다 휠씬 민감한 지역이기 때문인 듯하다. 미국의 입장으로서는, 핵무장 국가(러시아?중국)와 핵무장 잠재력 보유국(일본)으로 에워싸인 한반도를 ‘비핵(非核)의 호수’로 만들어야하는데, 핵개발 의지를 시인한 북한을 잘못 건드리면 정말로 핵무기를 개발하게 되고, 이에 따라 일본의 핵무장→한국의 핵무장으로 이어지는 재앙이 발생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핵통제 정책을 통한 아시아 지배의 구도’가 무너진다. 미국은 이런 끔찍한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김정일 정권을 ‘달래며(대화) 뺨을 치는(전쟁) 양면 전술’로 나아가고 있다.
핵 개발 의지를 ‘시인’한 김정일을 오히려 달래고 핵개발을 ‘부인’하는 후세인을 전쟁으로 위협하는 역차별의 배후에, 미국의 이와 같은 딜레마(dilemma)가 있다. 이 딜레마가 이라크 전쟁을 에워싼 미국 내외의 저항에 부닥쳐 증폭되면 될수록, 이라크 전쟁도 북한에 대한 전쟁도 여의치 않은 상황으로 내몰릴지 모른다.
(주3) 고슴도치는 특유의 가시로 무장한 채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지만 정태적이다. 가만히 앉아서 나를 잡아먹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투다. 그러나 이 고슴도치의 가시를 외세(미국 등)의 최첨단 무기로 두들기면 죽게 되어 있다. 이게 바로 아프간 전쟁 이후 북한의 지도부가 느끼는 불안감이다. 북한의 지도부와 거의 같은 군사전략을 채택해온 탈레반 정권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고슴도치 전략(핵무기 개발 옵션 전략)의 한계를 인식한 끝에 새로운 대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를 우화적으로 표현하면 ‘두꺼비 전략’이다.
두꺼비는 체내에 독소를 지니고 있으나 자연의 적자생존 원칙에 따라 독사에 잡혀 먹는다. 그러나 사로잡힌 두꺼비는 독사의 체내에 독소를 뿌림으로써 결국 독사를 잡아먹는다. 이런 걸 잘 아는 독사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두꺼비를 함부로 잡아먹지 않는다. 이런 내막을 잘 아는 두꺼비 역시 독사를 만나면 흥정을 한다; “독사야 내가 헌집 줄게 새집 다오”. 이렇게 생사를 건 ‘배짱 있는 서바이벌 게임’의 도전장을 받은 독사는 줄행랑을 칠 수밖에 없다.
미국?러시아?중국?일본 등의 전갈로 에워싸인 한반도 주변정세의 동물의 왕국에서 북한이 살아남으며 대국과 어깨를 겨루는 방법은 고슴도치의 전략보다는 두꺼비 전략이 훨씬 극적이며 효율적이다.
(주4) 북한의 (두꺼비 전략에로의) 패러다임의 전환은 주체사상의 원리에 대한 배반이 아니라, 변증법적으로 주체의 정신을 계승?발전시키려는 것이다. 변증법은 세계가 ‘正(These)-反(Anti These)-合(Synthese)'로 발전한다는 논리체계이다. 이 논리체계를 북-미관계에 적용해보면, 미국의 '북한 위협론?북한 붕괴를 위한 전쟁 계획'이라는 These의 모순을 지양하기 위한 Anti These로서, 북한은 고슴도치 전략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 고슴도치 전략이 아프간 전쟁 이후의 세계정세의 변환이라는 현실과 부딪쳐 내부 모순이 발생하자, 이를 종합적으로 지양하는 Synthese로서 ‘두꺼비 전략’을 모색한 첫 번째 작품이 ‘신의주 특구’, 두 번째 작품이 ‘북?일 수교’, 세 번째 작품이 ‘북?미 수교로 직행하기 위한 핵개발 의지 시인’인 듯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고슴도치 전략(Anti These)에서 두꺼비 전략(Synthese)에로의 변증법적인 이행과정을 만천하에 인정받기 위한 인정투쟁을 북한이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을 잘 보아야 북한의 숨가쁜 움직임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변증법의 대가인 헤겔(Hegel)이 설파하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 나오는 ‘생사를 건 인정투쟁(Kampf der Anerkennung auf Leben und Tod)’을 북한에 적용할 수 있다.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국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는 북한이 ‘아름다운 반란’의 이름으로 두꺼비 전략(국가발전 大計)을 채택하면서, 이 국가발전 大計를 전 세계가 인정해달라고 투쟁하고 있는 게 ‘신의주 특구’ 발상이다.
이런 인정투쟁의 대외적인 나타남은 북한의 전방위 평화공세 외교이다. 이미 유럽 등을 향한 전방위 평화공세가 성공을 거두었고 ASEAN 등을 파고드는 북한의 평화공세 외교가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최근 ASEM 회의에서 한?일 정상이 미국을 향하여 북-미 수교에 박차를 가하라고 암시를 준 것도, 이런 평화공세 외교가 한차례 순환을 돈 끝자리의 성과이다.
인정투쟁-평화공세 외교의 종착역은 미국이다. 이 종착역의 중간 계류장인 신의주에서, 두꺼비가 독사를 향해 ‘우리 이불속에 들어오라’는 겁나는 그러나 우호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한편 이런 두꺼비의 생사를 건 인정투쟁이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실패할 가능성도 있다. 실패할 경우 두꺼비의 죽음이 내정되어 있기 때문에 ‘생사를 건’ 투쟁이다. 신의주 특구는 안이한 발상이 아니라 두꺼비의 생사를 건 ‘국가발전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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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필자가 11월 1일 평화운동단체들이 주최한 토론회「북 핵문제의 본질과 올바른 접근방안」에서 발표한 것이며, 평화만들기 26호에도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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