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5-23 21:38
조회
985
(2006년 1월 8일 주현절 둘째주일)

설교제목:산지를 내게 주소서
성서본문: 여호수아14:6-12
찬송:278, 305
교독: 교독문 53(계시록 21장)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다가왔을 때에,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주께서 나와 당신에 대하여 가데스바네아에서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알고 계십니다. 내가 마흔 살이 되었을 때에, 주의 종 모세가 가데스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그 땅을 정탐하게 하였습니다. 나는 돌아와서, 내가 확신하는 바를 그에게 보고하였습니다.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나의 형제들은 백성을 낙심시켰지만, 나는 주 나의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따랐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 날 '네가 주 나의 하나님께 충성하였으므로, 너의 발로 밟은 땅이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유산이 될 것이다' 하고 맹세하였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주께서 모세에게 이 일을 말씀하신 때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생활하며 마흔다섯 해를 지내는 동안, 주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나를 살아 남게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이제 나는 여든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나를 정탐꾼으로 보낼 때와 같이, 나는 오늘도 여전히 건강하며, 그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힘이 넘쳐서, 전쟁하러 나가는 데나 출입하는 데에, 아무런 불편이 없습니다. 이제 주께서 그 날 약속하신 이 산간지방을 나에게 주십시오. 그 때에 당신이 들은 대로, 과연 거기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은 크고 견고합니다. 그러나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만 한다면,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는 그들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 갈렙
병술년 두 번째로 맞는 주일 아침에 출애굽의 영웅 중 한 사람인 갈렙의 삶과 믿음을 통해서 우리의 마땅한 삶의 자세를 배워보고 싶습니다. 그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가데스바네아에서 모세의 보냄을 받고 가나안 땅을 염탐했던 이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강성한 토착민들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땅과 거민들이 강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땅이니 우리가 차지할 수 있다고 말했던 두 사람 가운데 하나가 갈렙입니다. 올해가 丙戌年 개의 해라지요? 갈렙이라는 이름의 뜻은 ‘개’입니다. 이스라엘의 영웅 가운데 한 사람의 이름이 ‘개’라는 것은 좀 뜻밖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그가 자기를 낮출 줄 아는 사람(self-abasement)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가 주인에게 신실한 종(faithful servant)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마침내 꿈에 그리던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파별로 땅을 분배받는 과정 가운데서 벌어진 사건을 보여줍니다. 여분네의 아들인 갈렙은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 앞에 나가서 지난 날 가데스바네아에서 있었던 일을 상기시킵니다. 다른 염탐꾼들이 백성들을 낙심시켰을 때 자기는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따랐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에게 “네가 주 나의 하나님께 충성하였으므로, 너의 발로 밟은 땅이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유산이 될 것이다” 하고 맹세하였다는 것입니다. 갈렙은 이제 여호수아에게 헤브론이 속해 있는 산간 지방을 달라고 청합니다. 그곳에는 여전히 아낙 사람이 살고 있고, 성읍은 크고 견고하지만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만 한다면 그들을 쫓아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호수아는 갈렙에게 그 땅을 주었고, 갈렙을 통해 그 땅에는 마침내 평화가 깃들게 되었습니다. 이 짧은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갈렙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몇 가지 핵심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 충성
첫째로 그는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좇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갈렙’입니다. 충성스러운 개처럼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산 사람입니다. 믿음이란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은 결단이고 모험입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길 수는 없습니다. 그는 삶 전체를 기울여 하나님의 뜻을 수행해나갑니다. 힘겨울 때도 있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속에서 일어나는 회의의 싹을 자르며 하나님의 일을 위해 자신을 내던졌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 분을 위하여 싸우는 것이다. 그 분의 뜻과 충돌되는 우리의 이익을 포함하여 우리 안에서 그 분을 대적하는 모든 것들과 싸우는 것이다. 오직 자기를 잊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그 분을 사랑하게 되고 그분은 우리의 요구, 이익, 관심이 되신다. 그러나 그 사랑의 길은, 혹시 우리가 그 분의 지상 명령을 범하고 있지나 않는지, 인간의 정의로움을 그 분이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잊고 있지나 않는지, 늘 두려워하는 가운데 가야 하는 길이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 <<사람은 혼자가 아니다>>, 199쪽

하나님께 충성스럽다는 말은 자기를 잊는다는 말입니다. 오직 자기를 잊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그 분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本’을 든든히 붙잡은 사람은 어떠한 시련이 닥쳐와도 좌절하지 않습니다. ‘본’은 뿌리입니다. 뿌리가 깊다면 바람이 제 아무리 심해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작고한 시인 고정희는 <상한 영혼을 위하여>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원의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바람에 흔들릴 수는 있어도 뿌리조차 뽑힐 수는 없습니다. 그는 고통을 회피하기보다는 고통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바람에 몸을 뒤채는 나뭇잎처럼 생의 뿌리를 하나님께 깊이 내리지 못한 사람일수록 작은 일렁임에도 몸과 마음을 가누지 못한 채 비틀거립니다. 갈렙은 자기 나이가 85세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건강하고 힘이 넘친다고 말합니다. 건강의 비결은 믿음이고 신뢰입니다. 체질의 약함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바로 서면 우리는 건강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무엇을 혹은 누구를 충성의 대상으로 삼고 살았든지 이제는 진리와 생명이신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십시오. 그것이 잘 사는 비결입니다.

● 약속에 대한 신뢰
둘째,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실현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너의 발로 밟은 땅이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유산이 될 것이다.” 사람의 꿈은 허황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허황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비록 더딜 수는 있지만, 취소될 수는 없습니다. 더디고 빠른 것도 우리의 생각일 뿐이지, 가장 좋은 때를 아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성전을 지어 하나님께 바치면서 솔로몬은 이런 찬가를 부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주셨으며, 그의 종 모세를 시켜서 하신 선한 말씀을, 한 마디도 빠뜨리지 아니하시고 다 이루어 주셨으니, 주님은 찬양을 받으실 분이십니다.(왕상8:5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고 그 법도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천 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언약을 지키시며,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신7:9). 우리는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물려주고 싶어합니다. 기업과 집과 땅을 물려줄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유산은 어버이의 신실한 삶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대로 살기 위해 자기를 잊은 사람의 삶을 책임져주실 뿐만 아니라 그 자녀들에게까지도 복을 내려주십니다.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었기에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낙심할 수 없었습니다. 약속을 믿는 이들에게 닥쳐오는 어려움은 걸림돌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도약하도록 해주는 디딤돌이 되는 것입니다.

● 도전 정신
셋째로 갈렙은 도전정신을 가지고 산 사람입니다. 그는 건장한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는 땅을 눈 앞에 두고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 산간지방을 나에게 주십시오.” 갈렙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만 하면 그들을 쫓아낼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신앙인은 도전하는 사람입니다. 거짓된 세상에 도전하고, 그릇된 질서에 균열을 내는 사람입니다.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아니오’라고 말하고,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는 ‘예’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거대한 벽처럼 당신을 죄어오는 세상 권력과 당당하게 맞섰습니다. 부활절 이후 사도들도 그랬습니다.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위협하는 산헤드린 공의회원들 앞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인가를 판단해 보십시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행4:19-20) 하고 말합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의회에 끌려가 매를 맞고 방면된 사도들은 어떠 했습니까? “예수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공의회에서 물러나왔다”(행5:41). 오직 하나님께만 충성하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만을 신뢰하는 사람들의 삶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도 배금주의라는 아낙 자손이 버티고 있습니다. 물질 우위의 자본주의 질서는 강고한 성벽처럼 여겨집니다. 오늘의 세계는 죽임의 세력들이 생명을 억압하고 파괴하는 죽음의 벌판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싸움터에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생명과 평화의 노래가 넘치는 세상을 만들자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약합니다. 하지만 나약하지는 않습니다. 여리디 여린 나무 뿌리가 단단한 바위를 깨뜨립니다. 우리에게는 물리적인 힘, 지배하는 힘(force)은 없지만, 사랑으로 돌보고 섬기고 나누려는 내적인 힘(power)이 있습니다.

평화는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불의에 저항하면서도 마음이 모질어지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 옵니다. 생명세상은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피조물의 신음 소리에 마음 아파하며 스스로 불편함을 택한 사람들을 통해 옵니다. 우리 앞에 있는 강고한 성읍, 그리고 아낙 자손 앞에서 지레 주눅 들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만 충성을 바치는 사람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는 사람들,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사람들,
주님께서 올 한 해 내내 우리와 동행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