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가난한 자의 하나님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5-23 21:32
조회
1728
(11월 27일 창조절 제13주일)

설교제목: 가난한 자의 하나님
성경본문: 사무엘 상 2장 8절
교독문: 6번 (시편 15편)
찬송; 349, 431

<본문 주해>사무엘 상 2장 1절-10절은 신약성경의 마리아의 찬가의 모델(누가복음 1장 46절-55절) 한나의 노래이다.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다.(삼상 1장 2절) 엘가나의 처 한나는 아들을 낳지 못하여 엘가나는 부닌나를 둘째 아내로 삼았다. 한나는 자식이 없어 자식이 있는 부닌나의 대적을 받아 번민하며 울고 먹지 못하였다. 그녀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아들을 주신다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을 한다.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를 들으사 그녀를 잉태케 하시고 아들을 낳게 하셨다. 한나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아들의 이름을 사무엘 곧 그 뜻은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라고 하였다. 한나는 하나님께 맹세한대로 사무엘이 젖을 뗄 때까지 기르다가 그를 하나님께 바치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가 한나의 노래이다.(사무엘 상 1장 1절-28절)
한나는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요 인간의 운명을 손에 쥐신 분이시요 그리고 가난 자의 편이 되신 분이시다라고 찬양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요(2장 2절) 인간의 생사화복과 흥망성쇄를 주재하시는 분이시다(1장 4절-7절),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일으켜서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 분이시다”(삼상 2장 8절)
.
이런 한나의 고백, 가난한 자의 하나님 사상은 신구약을 꿰뚫는 또 하나의 중심사상이다.
시편 113편 7절은 한나의 기도를 그대로 반복하여 하나님을 찬양한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무더기에서 드시는 하나님....”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신원하며 궁핍한 자를 구원하시는 분이시다(시편 72편 4절, 82편 4절)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신원하며 궁핍한 자를 구원하시는 분이시다(시편 72편 4절, 82편 4절)
하나님은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긍률히 여기어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시는 분이시다(시편 72편 13절)

그리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는 여호와(그를 지으신 분)를 멸시하는 자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만이 주를 존경하는 자다(잠언 14장 31절)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외면한 자는 자기가 그런 처지에 빠질 때 도움을 얻지 못한다(잠언 21장 13절)
가난한 자를 압제하는 자는 부르짖는 사자요 주린 곰과 같다(잠언 28장 15절)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주는 자이며, 악인은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궁핍한자를 학대하며(아모스 4장 1절, 8장 4절) 칼을 빼고 활을 당기어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어뜨리는 자이다(시편 37편 14편),

신약성경 누가복음 4장 18절은 예수의 전도의 핵심이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고 밝힌다. 더나아가 가난한 자는 하나님의 주인이다(눅 6장 20절)라고 선포한다.
결론적으로 가난한 자에게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주지 않는 자는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이다(마태복음 25장 42절-43절)라고 선언한다.

<예화> 지난 12일부터 19일 까지 일주일 동안 우리 언론은 온통 제13차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의 보도로 연일 분주하였다. 태평양 연안의 21개국 정상들을 포함하여 1만 명의 각계 대표가 참석한 ‘건국 후 최대 행사’를 별 탈 없이 끝내어 ‘국가 브랜드’를 각인 시키는데 성공한 행사했음을 물론 다자외교 무대에서 외교력을 과시하였다고 정부는 자평하고 있다 또한 ‘정보기술’(IT) 분야의 강국임을 과시하고 ‘북핵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였으며, 자유무역을 위한 ‘부산선언’과 ‘DDA(도하개발 아젠다) 협상성명' 특별 성명’을 이끌어 낸 것 그리고 6억 달라 상당의 외자 유치를 이룬 것은 정부의 큰 성과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축제 분위기 보도의 다른 한 구석에서는 성주의 농민 오씨, 장성의 농민 정씨, 수원의 농민 한씨 등의 자살에 대한 슬픈 보도가 연이었다.
비닐 하우스에서 혼자 살던 아홉 살의 소년가장이 개에 물려 죽었다는 보도도 있다.
또한 10만이상의 국내외의 APEC 반대 단체들 회원들이 반대시위를 했다고 한다.
정부는 APEC의 성공적 개최에 기뻐하고 있는데, 이런 일들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것에 어리둥절해 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10년 전 독재 정권 시대에나 있었던 폭력 시위인가 하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빈부 격차가 커져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국민소득이 1만 불을 넘어선 세계 11위의 경제부국에서 생활을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조금 지나친 행동이 아닌가 하고 못 마땅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비극적 현상이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라고 보고 있다.
우리 사회의 소위 상위 20%계층의 소득은 더 늘어 가고 있고 80% 계층의 소득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오히려 감소하여 중산층은 서민층은 빈민층으로 추락해 가는 전반적인 궁핍화 협상이 확대되고 있는 것도 신자유정책에 편승한 결과라고 본다
전 세계의 인구 20%가 전체 소득의 80%를 소유하고 있고, 나머지 80%가 14% 소득을 차지 하고 있으며, 가진 자들의 단백질 공급을 위해 전 세계 미곡 생산량의 47%가 가축 사료로 사용되고 있는 반면, 전 세계의 굶주리는 아동수가 2억을 헤아리며, 오늘도 매일 4만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 가고 있는 것은 바로 선진국 중심의 신자유정책 때문이라고 본다.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APEC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WTO(세계무역기구)와 ‘자유무역협정‘의 정책을 강요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신자유주의를 보다 확실하고 완벽하게 실현하자는 것을 내용으로 한 ‘자유주의를 위한 부산 선언‘이나 선진공업국을 위해 후진 농업국은 희생해도 좋다는 취지의 'DDA(도하개발아젠다)협상성명‘이나 무역자유화의 실시일정을 구체화한 ’부산 로드맵’의 성공적 도출을 기뻐하는 우리를 그들은 어떤 눈으로 보고 있을까?
그들이 혹시라도 양극화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200만불을 내 놓겠다는 노 무현 대통령의 제안을 신자유무역주의 실현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우리의 속 샘을 감추기 위한 얄팍한 제스츄어로 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진다.
“너희가 가난한 자를 밟고 저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취하였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심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아모스 5장 11절)의 말씀이 가난한 자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시는 질책이 되지 않을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