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나그네의 하나님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5-23 21:32
조회
1307
(11월 20일 창조절 제12주일)

설교제목:나그네의 하나님
성경본문:신명기 10장 12절-22절
찬송;356, 483
교독:40(이사야 58장)

<본문주해>거의 모두가 모세의 격려와 권면의 형식으로 되어있는 본문은 신명기 전체를 이해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내용을 지니고 있을 뿐 만 아니라, 신구약 전체를 통하여 기독교인들이 지켜야 할 규범의 정수로 여겨지고 있다.
저자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자신들이 걸어 온 길을 회상케 함으로써, 하나님께 복종하기를 그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신명기적 기술방법은 우선 율법자체를 설명하고 사랑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일을 기억하게 하고 그들에게 교훈을 여러 번 거듭 말하는 식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렇게 반복하여 자식들을 가르치는 교육을 자자손손 이어 온 것이다.
이 교훈 중에 중요한 것의 하나가 나그네에 대한 것이었다. 신명기 10장 19절의 나그네는 히브리어로 ‘게르’인데 자기 백성을 떠나 이스라엘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이국인을 통칭하는 말이다. 외국인도 내국인과 똑같이 대우하라는 하나님의 계율은 지배층의 항변거리가 되었지만 여기에 편백되지 않은 하나님의 구속적 공의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있는데 이 점은 이미 10장 12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여호와 네 하나님을 공경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에서 발기고 있다.
“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신명기 10장 19절> 하나님이 나그네를 사랑 하셨으므로 이스라엘도 그들을 사랑하여야 한다.
여기에 대해 항변하는 지배층에 대해 여호와께서는 그래야 할 이유를 밝힌다.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는데....” 여호와께서 아무런 이유 없이 너희를 구원해 주시 않았느냐고...그리하여 우리의 주 하나님은 나그네의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이 신구약 성경의 곳곳에서 나타나며 나그네들을 억압치 말고 사랑하라는 것이 고아와 과부에 대한 배려와 함께 성경의 중심 교훈의 하나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출애굽기 22장 21절>(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이었었음이니라.) <말라기 3장 5절 >(....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증거하리라. 만국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에스겔 22장 ,6절 -7절>( 그들이 네 가운데서 부모를 업신여겼으며 네 가운데서 나그네를 학대하였으며, 네 가운데 고아와 과부를 해 하였도다.)
<마태복음 25장 35절, >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43절....,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지 않았으며....)
<욥기 31장 32절>(나그네로 거리에서 자게 하지 아니하고 내가 행인에게 내 문을 열어 주 었었노라.)
<시편 94편 6절>(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를 살해하며...).
<스가랴 7장 9절 10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미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 하며 피차에 인애와 긍률을 베풀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 )
딤전 5장 10절, 딤전 3장 2절, 디도서 1장 8절 등은 장로나 집사나 감독 등 기독교 신자 가 할 일로 나그네를 대접할 일...).

<예화 1>1966년 개봉된 영화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가는 2차대전을 소재로 한 수 많은 영화 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영화인데 그 이유는 그 마지막 장면의 감동 때문일 것이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성공한 연합군이 파리로 진격해 오자 독일의 히틀러는 파리 점령군 사령관에게 파리를 불태우고 퇴각하라고 명령한다. 차마 문화의 상징인 파리를 불태울 수
없어 망설이는 그에게 히틀러의 채근이 거듭되자 그는 수화기를 놓아 버린다. 책상에 대롱대롱 매달린 수화기에서 계속되는“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라는 목소리는 히틀러의 절망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지금 그 파리가 불타고 있다. 히틀러도 태우지 못한 그 파리가 불타고 있는 것이다.
지난 27일 파리 외곽 빈민촌에서 시작된 무슬림 청년들의 소요사태는 열흘째를 넘기며 차량, 공공시설물 방화로 이어지면서 폭동으로 변하였다. 이번 소요사태로 프랑스 전역애서 불탄 차량만 6일 현재 4,300여대, 공공력에 대한 도전도 공공연해지고 있다. 인명피해도 발생했고 정부는 야간통지조치까지 발동하였다.
사태가 이렇게 커진 것은 프랑스에서 소외된 삶을 살고 있는 아프리카, 중동계 이민자들의 불만이 일거에 폭발하였기 때문이다. 1960년-70년대에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 산업국가들은 부족한 일손을 메우기 위해 이민을 대량으로 받아 드렸다. 그러나 2차산업이 사양화 되면서 일자리가 줄자 프랑스는 이들을 내팽개쳐버린 것이다. 이번 사건은 이른바 “알아서 해라”식 처방이 남긴 부메랑인 것이다.
지난 여름 카트리나가 미국을 강타한 후 미국사회의 혼란상을 보고 이들 국가들은 미국이 사회 통합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유럽의 한 신문은 “런던의 7.7테러 영국의 다문화주의적 접근이 실패했음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사태는 프랑스의 사회통합 모델이 실패했음을 보여 준다”고 주장하였다.(내일신문 2005년 11월 9일 자)

<예화 2> 문화일보의 보도에 의하면,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미국 내 불법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합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포함, 획기적인 내용의 새로운 이민 정책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정책이 도입되면 약 18만 명에 달하는 한국인 불법 체류자 중 일부도 혜택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새 이민정책의 핵심은 미국 내 불법 외국인 근로자의 합법화이다. 부시의 새 이민정책은
지난 86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이 이민법을 개정해 수백만 명의 불법 이민자를 구제한
이후 최대의 합법화 조치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재 미국 내 외국인 불법 체류자는 최대
1400만 명. 이중 노동인구 는 약 10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조처에 대해
미국상공회의소의 토머스 도너휴 회장은 “불법근로자들이 모두 귀향 조치된다면 미국 경제는
아마도 정지사태를 맞게 될 것”이라며 부시 행정부의 조치를 환영했다고 한다.

바로 이러한 발표가 보도된 날, 한국에서는 이주노동자를 강제단속하기 위해 가스총을
발사하고 성직자를 구타하는 어처구니없는 횡포가 자행되었다. 출입국관리사무소는 7일
방글라데시 대사관 앞에서 평화적인 항의집회 후 해산하여 지하철을 타기 위해 이동하던
이주노동자들을 경찰과 합동으로 단속을 시도, 이주노동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짓밟고
욕설과 폭행을 가했다. 또한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은 범인들에게나 발포하는 가스총까지
발사하였다.

미국에서 18만여 명의 한국인 불법 체류자가 합법화되는 것을 한국 사람은 누구나 환영할 것이다.
한국인이 미국에서 합법화되는 것은 환영하면서도 우리나라에 있는 불법체류자는 합법화하지 않고
강제 추방시킨다는 것은 국제화 시대에 적응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다. 이미 우리는 4년 이하의 불법
체류자를 모두 합법화시키는 조처를 취하였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에는 합법화 되지 못한
불법체류자들이 자진출국을 거부하고 있다.
합법화 대상이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신고하지 못한 3만 5천여 명의 이주노동자, 그리고
4년 이상 된 5만 여명의 이주노동자를 포함하여 10여만 명의 합법화를 고대하고 있다.
영세기업에서는 오히려 4년 이상 된 불법체류자를 선호하는 현실을 중시하여 미국처럼 모두
합법화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조처를 기대한다. 18만여 명의 한국인 불법체류자가 합법화되는 것을
기념하여 우리도 10만여 명의 불법체류노동자를 합법화하는 기쁜 소식을 이주노동자의 고국에 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서울 외국인 노동자 센타 간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2004년 1월 11일 자)



<결론> 문화의 나라, 평등과 박해의 나라, 톨로란스(관용)의 나라, 더욱이 90%이상의 기독교인을 자랑하는 기독교 나라 프랑스가 나그네를 천대하지 말고 사랑하라는 여호와의 말씀 대로 살지 않아 최근의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프랑스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살펴 보아야 한다.
상주 외국인 비율이 국민 전체의 1%가 넘어섰고 40만의 이주노동자가 좋지 않은 작업환경속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에 사는 나그네들이 얼마나 깊은 차별과 소외감 과 학대와 착취를 받고 있는 지를 돌아다 보면, 프랑스 사태가 결코 우리와 무관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너는 나그네를 사랑하느냐는 물음에 예하고 대답할 수 있는 신자들이 얼마나 될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