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시사

경제특구법안을 즉각 철회하라!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2-11-12 00:15
조회
1461
경제특구법안을 즉각 철회하라!

류미경(정책부장, 사회와 진보연대)


외자유치 정책의 궤적

금융화된 세계경제에 종속적으로 편입하는 것을 경제위기 극복 전략으로 삼아온 김대중정부는, 지난 4년동안 '외자유치'를 최우선의 정책과제로 내세웠다. 초국적 자본에 최적의 투자환경을 제공하고,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각종 조처들을 단행하여 해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자 했다.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을 대부분 개방했고, 「외국인투자촉진법」을 제정하여 외국인투자기업{{) 98년 제정된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르면, 외국인이 주식을 10%이상 소유하고 5000만원 이상만 투자하면 '외국인투자기업'이 되고 5000만 달러 이상만 투자하면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선정되어 각종 특혜를 누릴 수 있다. 이나마도 계속 완화되어 이미 개발이 완료된 산업단지를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지정하는 경우에는 3000만 달러 이상, 관광사업의 경우는 2000만 달러 이상만 투자하면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선정된다. 외국인투자기업으로 선정되면 법인세·소득세·취득세·등록세·재산세 및 종합토지세가 거의 면제되고, 국·공유 재산을 50년 간 임차·매수할 수 있게 된다. 또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선정되면 국토관리이용법·도시계획법·중소기업의사업영역보호및기간협력증진에관한법률의 일부가 적용 면제된다.
}}에 각종 세금감면, 국공유지를 50년동안 임차·매수할 수 있는 등의 각종 혜택을 부여했고, 2단계에 걸친 「외환거래 자유화 조치」를 통해 기업간·개인간 외자의 유출입을 자유화했다. 이 밖에도, 현재 국회비준 일정에 올라있는 '한일투자협정', 협상중인 '한미투자협정'등 양자간 협정을 통해 해외투자자들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무런 손실이 없도록 '소유권'을 철저하게 보장하려 한다. 이렇듯 김대중 정부는 초국적 자본에 온갖 혜택을 주면서 한국 사회를 이들의 투기장으로 변모시켜 왔다. 여기에 더하여 지난 8월 19일 재정경제부가 입법예고한 「경제특별구역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법률안」은 외자유치를 위해서 노동권을 내팽개치겠다고 노골적으로 선언하고 있어서 민주노총을 비롯한 민중운동 진영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방안」, 그리고 「경제특구법안」

이 법안은 지난 7월 29일 정부가 발표한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방안」을 입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 몇 개 도시를 세계적인 첨단IT산업과 서비스산업기반을 갖춰, 초국적 자본의 금융거래와 기업활동이 집중되는 이른바 '세계도시'로 개발, 최적의 투자환경을 조성함으로서 외자유치를 촉진한다는 것이 정부의 구상이다. 정부는 이「실현방안」에서 인천국제공항과 부산항, 광양항을 동북아 물류 중심으로 만들고, 그 인근 지역을 경제특구로 지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는, 인천공항 인근지역인 영종도, 송도, 김포매립지, 고양시를 각각 '국제적인 관광·레저단지', '국제업무·지식 기반산업 중심지', '국제금융단지', '관광·숙박 전시단지'로 개발하고, 부산항 인근의 마산 자유무역지역을 확대하며, 광양항 주변의 대불공단을 새롭게 '자유무역지역'으로 지정하여 지방의 수출 및 물류 거점지역으로 육성한다고 한다. 또한,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지정, '세계적인 관광명소'이자 '첨단과학기술단지', '동북아 국제 선박 등록 중심지'로 육성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상을 실현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높은 임금구조와 강성노조의 존재', '높은 토지가격과 높은 임대료', '높은 소득세·법인세'를 제거하기 위한 법제도 정비가 바로 「경제특구 법안」인 셈이다.
이와 더불어 「실현방안」은 한일투자협정의 국회비준을 조속히 마무리할 것과 한미투자협정 및 한칠레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남은 협상을 빠른 시일내에 마무리할 것, WTO 도하개발의제 협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 1·2차 외환거래 자유화시 유보된 외환부문 규제를 획기적으로 완화하여 2011년에는 「외국환거래법」을 폐지하고 유사시의 안전장치를 제외한 모든 외환규제를 없애는 「외환법」을 제정할 것 등을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경제특구 법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앙행정기관의 장 또는 시·도지사는 경제특별구역의 지정을 위하여 경제특별구역 지정 및 개발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경제특별구역위원회에 제출하여야 하며, 경제특별구역위원회는 이를 심의한 후 경제특별구역 지정여부를 결정한다.(3조)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외국인투자기업에 대하여 세제 또는 자금을 지원하거나 임대용지를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경제특별구역의 활성화를 위하여 도로, 용수 등 기반시설에 대하여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한다.(8조, 10조)
경제특별구역에 입주한 외국인투자기업에 대하여는 「공업배치및공장설립에관한법률」상의 기준공장면적율의 적용, 「근로기준법」상 월차유급휴가 및 생리휴가,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상의 파견기간 및 파견대상 업무, 「중소기업의사업영역보호및기업간협력증진에관한법률」 상의 고유업종분야에 대한 대기업자등의 참여제한, 지정계열화 업종, 「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상의 출자총액의 제한 등을 적용하지 않도록 한다.(9조)
경제특별구역에서는 외국교육기관이나 내국인에 의한 외국 교육기관 분교·분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고, 내국인이 경제 특별구역에 있는 외국 교육기관에 입학하고자 하는 경우 이를 제한할 수 없도록 한다.(13조)
외국인은 경제특별구역위원회의 허가를 얻거나 등록하는 경우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이나 약국을 개설할 수 있도록 하고, 외국 의사 또는 약사 면허자는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한 기준에 위배되지 않는 경우 경제특별구역에 개설된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 도는 약국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한다.(14조)

노동기본권 짓밟는 경제특구법안

이 법안이 쟁점이 되는 이유는 '경제특별구역으로 지정된 지역에 입주한 외국인투자기업에 대해,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월차유급휴가, 유급생리휴가를 적용하지 않아도 되며, 파견법에 명시된 근로자 파견 대상 업무 제한과 파견기간 제한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혜택을 부여함'으로써, 노골적으로 노동권을 공격하겠다고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차유급휴가와 유급생리휴가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노동자의 건강권을 최소한이나마 보장하는 요소이다. 현재 '주5일제'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정부와 자본은 '국제 기준'을 운운하며 이를 폐지할 것을 주장하고 있고, 노동운동 진영은 이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제정경제부가 이번 경제특구 법안을 통해 이 두 조항을 면제하도록 하는 것은 노동법개악을 시도하는 탐색전으로 볼 수 있다. 근로자 파견제는 애초부터 중간 착취를 용인하는 등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파견법에서는 파견허용대상업무와 파견기간을 제한하고 있는데, 이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것은 사실상 파견제를 완전 자유화하여 비정규직을 악무한적으로 양산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시도는 한정된 지역에서 노동권을 제한하려는 것쯤으로 여길 수만은 없다. 재경부는 경제특구가 국내 자본에 대한 역차별, 혹은 지역간 차별을 조장한다는 문제가 제기되면, 그 범위와 대상을 확대해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되면 전국적으로 근로기준법과 파견법이 적용되지 않는 '자본의 특구'가 확산될 것이다. 또한 역외펀드로 들어오는 재벌기업에게도 동일하게 법적 책임을 면제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한국사회가 금융세계화에 종속적으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노동자 민중은 극악한 노동조건을 경쟁의 무기로 삼는 '밑바닥을 향한 경쟁'의 나락으로 내몰린다는 점이다.

노동의 불안정화 부추기는 금융투기의 양산

김대중정부는 '해외투자 유치만이 한국 경제가 살 길'이라고 외쳐왔다. 그러나,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해외투자'는 공장을 설립하는 등 생산설비를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초국적 금융자본의 투기행위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다. 산업자원부의 통계에 따르면 2001년 한 해동안 외국인 직접투자(신고기준)는 3424건, 118억 7천만 달러이다. 그러나 이 중 공장을 실제로 짓고 신규고용을 창출한 투자는 단 한 건뿐이었고, 외국자본이 증자를 하여 시설투자와 고용증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투자까지를 포함해도 전체 직접투자의 10%를 넘지 않는다.
이를 제외한 해외투자의 대부분은 헐값에 나온 국내기업을 사거나, 지분을 인수하였다가 다시 되파는 주식투기에 불과하다. 게다가 외자유치 가운데는 국내 자금이 해외 조세피난처의 역외펀드를 통해 들어오거나, 외국의 투기자본에 담보를 제공하고 들여오는 사실상 '해외차입'인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외자유치'란 것이 초국적 금융자본이나 이에 편입된 국내재벌기업의 투기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이에 몰두하고 있는 초국적 자본은 '언제든지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만으로 기업의 항상적인 구조조정을 강제하고 임금억제, 노동강도 강화, 고용불안을 획책한다. 그럼으로써 생산활동과는 전혀 상관 없이도 주식가치를 증대하여 이윤을 남기고, 거품을 형성하였다가 무너지기를 반복하여 국민경제 전체에 커다란 위기를 가져온다. 아르헨티나와 같은 급격한 투기자본의 유입으로 인한 거품형성과 뒤이은 붕괴, 그리고 이에 따른 외환/외채위기로 국가경제가 파산나버린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역간 불균형의 확대

금융세계화에 안정적으로 편입하기 위해서는 '형평 위주의 경제정책'에서 '생존을 위한 차별화' 중심으로 정책을 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방안」이 제시하듯, 특정 지역만 '세계도시'로 육성하여 산업기반과 자금을 집중시키겠다는 정부의 정책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전국은 기본적인 노동법조차 무시되고 금융투기가 만연하는 '외자유치의 발판'과, 산업기반이 전반적으로 붕괴되는 지역으로 양극화될 것이다. 이것이 양자의 노동자 민중 모두에게 치명적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대표적인 탄광촌이었던 정선이 '부족한 세수를 늘리고 침체된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명목으로 폐광카지노를 설립하면서, 지역전체가 도박장이 되어 고용이라고는 청소·경비등의 용역직밖에 남지 않는가 하면, 그 인근 태백 등은 주민들의 급속한 전출로 '공동화'를 이루게 된 예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미 수도권 중심으로만 금융시장, IT산업이 팽창하여 자금이 이곳으로만 집중되고, 나머지 지역은 중소기업의 연쇄부도, 지역 금융기관의 합병과 퇴출을 겪고 있다. 「경제특구법안」의 도입은 해외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지역간 경쟁을 더욱 부추길 것이다.

경제특구법안 도입을 저지하자!

이를 종합해 볼 때, 한국을 동북아 경제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구상은 민중의 삶을, 그리고 한국 경제를 해결할 수 없는 파탄의 길로 모는 처방임에 분명하다. 「경제특구법안」으로, 김대중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해 온 외자유치 정책이, 초국적 자본에게 매력적인 조건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노동자 민중의 삶에 대한 총체적인 공격이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지속되는 경제 위기 앞에서 김대중 정부가 내릴 수 있는 처방이라고는 민중의 삶을 통째로 팔아먹고서라도, 환율이 출렁이고 경제가 불안해도 초국적 자본은 아무런 손실 없이 이동하며 이익을 남길 수 있도록 보장하여 끌어들이는 것 밖에는 없는 것이다. 민중의 삶을 파괴하고 나아가 국가경제 전반을 위기로 내몰 「경제특구법안」의 도입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시급히 벌여야 한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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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월간 <사회와 진보연대> 2002년 9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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