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시사

노엄 촘스키의 신자유주의정책 평론: 왜 세계사회포럼인가?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1-04-13 23:32
조회
1509
왜 세계사회포럼인가?

노엄 촘스키 (Noam Chomsky)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화'라는 이름 하에 국제경제의 통합이 가속화되었다. 이것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양차 대전을 겪으며 발생한 감소분을 양적으로 회복하게 했다. 예를 들면 세계경제의 규모와 관련한 무역의 양에 있어, 엄청난 수단들을 동원하여 1차 세계대전 이전 수준에 도달하게 했다. 그러나 그 양상은 상당히 복잡한 것이었다.

전후 통합은 두 가지 뚜렷한 현상을 거쳤다. (1) 1970년대 초까지 브레튼우즈의 시기 (2) 브레튼우즈 시스템이 환율규제와 자본운동에 대한 통제에서 손을 뗀 이후의 시기. 이 시기를 통상 "세계화'의 시기로 부르고, 소위 "신자유주의 정책"과 연합하는 시기라고 본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대다수 제3세계에 대한 "워싱톤 컨센서스"(역주: 아래의 참고글 참조)에 따른 구조조정과 "개혁"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이것은 1990년이래, 인도와 "이행 경제"를 경험하고 있는 동유럽과 같은 나라들에게 산업화가 보다 더 진전된 국가들, 가장 두드러지게는 미국과 영국이 추구하는 것과 동일한 정책을 각색해서 그대로 수용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두 국면은 눈에 띄게 다른 것이다. (1) "첫번째 시기"는 산업국가자본주의의 황금시대를 가리키고 (2) "두번째 시기"는 전세계 거시경제지표(성장률, 생산성, 자본투자 등)의 중대한 악화와 불평등이 가중된 "납의 시대"로서 "세계화의 시기"를 가리키고 있다.
가장 부유한 국가들 내에서, 대부분의 노동자 임금은 정체되거나 삭감되었고, 노동시간은 극적으로 늘어났으며. 공적부조체계(사회안전망 혹은 사회복지시스템)는 감소되었다.
"황금시대"를 통하여, 매년 GDP를 갱신하던 사회지표는, 1970년대 중반이후, 차츰 기울기 시작해, 최근의 엄밀한 학문적 조사자료에 의하면, 40년전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현대의 세계화는 "자유무역"의 확장으로 설명될 수 있으나, 그것은 우리를 혼란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무역의 대부분은 사실상, 중개자, 원료장악, 그밖에 다른 수단들을 동원해 뒤에서 조정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 시기에 두드러진 특징은 국가영역에 광범위하게 의존하는 기업들 사이에서 미국경제의 본질적인 모습인 경제전반에 걸친 위험요소와 비용을 사회화하기 위해 독과점과 전략적 제휴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국제적 "자유무역" 협정은 자유화와 보호주의의 결합구조로 되어 있고, 많은 중대한 경우들(특별히 의약관련)에서 거대기업들이 공공영역의 본질적인 공헌을 목적으로 개발된 의약품에 대해 독점적인 가격을 책정함으로써 막대한 이익을 챙기게 하고 있다(역주: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세계화 시대의 건강 - 희생자로부터 역사의 주역이 되기까지" 참조)

(2)항 "세계화의 시기"에서 거론된 것처럼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단기투기자본의 이동은 각국 정부들을 위한 정책기획 및 선택을 엄청나게 제한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투기자본은 정치적 시스템이 민주적(투기자본을 규제하지 못한고 방치한다는 차원에서)인 한에 있어서는 민중주권을 제한하는 요소라 할 수 있다. "무역"의 체질(구성요소)은 1차대전 이전 시기와는 꽤 다른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현재 제조업의 대부분은 부유한 국가들의 확고한 전유물이 되어 있다. 이러한 선택들은, 생산 이동에 대한 단순한 위협만이 아니라, 일하는 노동자들과 민주주의의 기능에 대항하는 또 다른 강력한 무기이다.
최근의 체계는 "기업(법인) 중상주의"의 하나로 사회, 경제, 정치적 삶을 아우르는 결정들이, 점점 더 설명할 수 없는 사적 힘의 집중이라는 이름의 손아귀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2백년 전 민주주의에 위협을 가하는 요소로 "사적 힘의 집중(사유화)"에 대해 James Madison은 "사적 힘의 집중은 왜곡된 공권력에서와 같이 폭군과 같은 기능을 한다"
는 주목할 만한 언급을 한 바가 있다
별로 놀랄 것도 없이, (2)구절-세계화의 시기-의 영향은 전세계적으로 많은 형태로 드러날 본질적인 보호와 공공의 반대를 도출한다.

(편역: 황순찬)

** 참고

워싱톤 컨센서스: 89년 3월 Brday Plan이 발표되고 이를 이행하기 위해 미국과 초국적금융자본의 핵심이 워싱톤에 모였다. 여기 모인 그룹들은 미재무부/FRB/세계은행/워싱톤에 있는 think tank인 IIE(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 존 윌리암스 중심) 등과 라틴아메리카 인사들이었다. 이들은 이미 Brady plane을 논의하면서 상당부분 의견을 주고받은 바 있었다. 89년 가을 존 윌리암스가 회의에서 그동안 논의됐던 것을 정리해서 발표한 것이 "워싱턴 컨센서스"(對라틴아메리카 경제정책)이다. 존 윌리암스는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준을 10개로 요약했다. 이것은 라틴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시장경제의 선진국도 실행해야 하는 정책 에센스라 불리운다. 윌리엄스는 이를 "Universal conversions"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반인플레이션과 자본도피에 대한 대책이 문제가 되고, 워싱톤 컨센서스가 남미에서 성장을 견인해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다음은 윌리엄스의 논문에서 언급하지 않은 내용이다.
① 자본시장개방문제/ ② 기업지배구조/ ③ 금융시스템 개조/ ④ 노동시장
특이한 것인 ①,②,③,④가 한국에선 핵심적 현안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워싱턴 컨센서스는 동아시아위기 전에 완전하진 않지만 한국에선 어느 정도 수행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세계은행의 부총재인 스티그니츠는 Post 워싱턴 컨센서스를 주창한다. 스티그니츠는 블레어, 슈뢰더 등이 언급했으나 사실은 클린턴의 정책인 "제3의 길"을 강조했다. 클린턴의 이데올로기가 바로 "신자유주의". 좀더 멋있는 수사법을 구사하고자 하던 차에 거기에 부합하는 내용을 스티그니츠가 정리한 것이다. 그러나 스티그니츠는 세계은행 부총재 임기를 다 채우기전에 물러났다. 이견으로 아직 컨센서스를 못이루고 있을 뿐이다. 주목할 점은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거시정책이 훨씬 큰 문제이고 우리 나라는 구조조정이 훨씬 큰 문제라는 것이다 (김석진,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와 제3세계의 경제위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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