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시사

신자유주의와 제3세계 농민운동: 멕시코 사파티스타 운동 사례를 중심으로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0-10-13 23:22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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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와 제3세계 농민운동: 멕시코 사파티스타 운동 사례를 중심으로

최형익({진보평론} 편집위원/한신대 강사·정치학)


1. 문제제기

1994년 1월 1일을 기해 멕시코 남동부의 치아파스(Chiapas)주에서 무장봉기가 일어났다.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Zapatista Army of National Liberation: EZLN)' 이라는 이름으로 결집된 약 3천명의 인디오 농민군은 오랫동안 뿌리깊게 내려온 과두지배체제와 폭력에 맞서 투쟁할 것을 선언하였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봉기가 일어난 1월1일은 역사적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된 날이라는 점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들의 봉기가 흥미를 끄는 것은 농민혁명이 발생한 1910년이래 제도혁명당의 과두적 정치-사회지배체제하에서 근 80년 동안 다른 라틴 아메리카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치적 안정을 구가해온 남미 제2의 강국 멕시코에서 말생 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이번과 같이 원주민 중심의 커다란 농민봉기는 멕시코 근대 역사 약 150년만에 거의 최초의 일이다. 그렇다면 멕시코 정부는 어째서 소수의 원주민 게릴라들을 여하히 진압하기는커녕 봉기 이후 7년이 다 되어 가는 현재의 시점에까지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이는 역설적으로 사파티스타가 멕시코 내에서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며, 그만큼 멕시코인들의 상당한 정도의 보편적 지지를 확보했다는 말이다. 사파티스타는 그렇게 짧은 시간동안, 물론 상대적 관점에서이긴 하지만, 어떻게 그러한 정치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지구화된 신자유주의와 제3세계, 특히 멕시코와 같은 중진자본주의 국가내에서의 농민운동의 새로운 흥기는 어떤 함수관계를 갖는 것은 아닐까. 지구적 자본주의와 포스트 공산주의 시기에 발호(?)하고 있는 농민정치운동의 성격을 사파티스타 운동사례를 통해 규명 혹은 일반화하고자 하는 게 이 글의 주요한 문제의식이며, 결론에 있어서는 신자유주의의 지구적 도발이 강화하는 현재의 국제정세하에서라면 향후 농민운동의 빈발과 그 급진화가 더욱 가속화될 것임을, 그리고 그러한 농민정치운동은 과거의 그것과 상당한 차이점이 있음을 덧붙일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 글이 중심적으로 다루고자 혹은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번째로는 사파티스타 봉기의 역사적 타이밍이다. 즉, 다른 시점도 아닌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경제질서라 할 수 있는 NAFTA와 발효시점과 때를 같이 하여 봉기했냐는 점이다. 이는 봉기의 객관적 조건을 묻는 것임과 함께 제3세계의 농민운동의 사회-경제적 조건과 이를 통해 제기되는 정치적 이슈가 상당히 일변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을 통해 우리는 사파티스타의 정치적 입장의 한계와 연대세력의 일차 기준이 반신자유주의냐 아니냐를 묻는 것임을 또한 확인 할 수 있다.
둘째로는 이들이 가히 많은 사람들에게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질 지도 모를 무장봉기와 농촌게릴라 운동을 20세기말에, 그리고 새 천년을 얼마 앞두고 감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지금까지 살아 남을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 봉기의 사회-경제적인 객관적 조건과 정치적 대응이라는 주체적 조건을 횡단하여 연결하는 문제이다. 유사한 객관적 조건에서 어느 지역에서는 봉기가 발생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았다면, 그 변수는 정치적 실천 또는 행위의 맥락에서 찾아 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사파티스가 제기한 정치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필자는 가설적 수준이지만 이러한 정치의 내용을 보편성과 연대를 그 주된 내용으로 하는 민중정치의 관점에서 찾고자 한다. 이러한 가설은 사파티스타의 정치적 문제제기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과도하게 강조하여 추종하는 관점을 경계함과 아울러 그들이 지닌 강점과 함께 약점을 일별함으로써 확보될 수 있다.
보편성이라 함은 원주민-농민이라는 사회-경제적 배경에서 운동이 시도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어떻게 원주민-농민을 뛰어 넘으려는 움직임을 가시화 시킬 수 있는가 하는 점을 분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명은 기존의 맑시즘적 계급관계에 대한 이론과 그에 따른 정치역학의 동선에 대한 심대한 문제제기를 포함한다. 맑스에 의해서 '부대에 담긴 감자'들로 정의된 농민들은 과연 보수세력의 항구적 온상인가 아니면 새로운 사회건설의 주요세력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는가.
나는 현재와 같은 초현대와 신자유주의라는 사회-경제적 조건하에서 후자가 가능할 수 있는 경우란 농민운동이 사회주의적 정치와 결함되고 유통될때 뿐 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사회주의적 정치와 유통한다 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사파티스타와 같은 농민운동이 자신들의 정치적 전망과 새로운 사회-경제적 대안을 연결지을 수 있는 전망을 확보함과 아울러 근 80년간 개량화되고 제도혁명당과의 코포라티즘적 노-정 유착구조 하에서 안존해온 노동운동 및 여타의 사회운동에 그러한 씨앗을 뿌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말로 사회운동의 노동자 운동의 유일 선차성, 관념적 전위성을 과감히 기각하는 것을 의도함과 동시에 노동자운동이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그 운동이 그러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도 여타의 사회운동에 대한 우위를 주장하고 강변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다기한 사회운동은 사회주의적 운동이라는 보편성의 전망속에서 유통되어야 하며, 나는 그 첫삽을 농민운동이 할 수도 아니면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이 뜰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사회주의에 대한 갱신된 사고, 구체적으로는 신자유체제하에서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필수적으로 동반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주장이 지니는 함의는 사파티스타 운동에 대한 다양한 분석, 특히 해리 클리버 등으로 대표되는 자율주의적 입장과의 논쟁을 함축한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보기에 사파티스타 운동의 강점으로 보이는 것이 이 글에서는 약점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사파티스타 운동에 대한 필자의 분석의 일차적 관심사는 이 운동이 지니는 일반적 함의를 일별함으로써 그것이 한국의 사회운동에 던지는 대안적 메시지를 명확히 하는데 있다. 따라서 사파티스타 운동을 다룬 대부분의 좌파적 입장의 글들이 보여주듯 대부분 찬양 일변도나 아니면 그 운동을 이국적(exotic) 풍취에 젖는 접근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두번째의 문제제기를 받을 수 있는 정치적 형식에 관한 물음으로서 그것은 바로 '정치적' 연대(solidarity)이다. 어느 운동이 다른 운동을 지도한다거나 하위조직으로 종속시킬 수 있는 발상에서 벗어나 운동의 힘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식은 연대를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 정치적 목표로 확정하는 것이다. 물론 무엇을 가지고 연대할 것이냐의 문제는 있다. 사파티스타의 경우라면 그것은 '반(反) 신자유주의'이다. 반신자유주의라는 대의에 공감하는 사회운동들간의 관계는 등권의 수평적 연대를 형성할 일이며, 그러한 관계속에서 정치적 우위는 오직 실력을 통해서, 그리고 그러한 실력의 민주주의적 유통을 통해서만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전 세계적인 관심을 갖게 한 가장 주요한 이유를 대부분의 분석자들이 무엇보다 이들이 "가장 지방적인 이슈"로 "가장 전지구적인 대응과 운동", 즉 국제적 연대를 조직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찾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요컨대, 사파티스타 운동은 인간이 아닌 별종의 유(類)나 아니면 외계인이 펼치는 운동이 아니다. 따라서 그들의 당하는 고통과 대안은 그 공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공명할 수 있을때만이 진정한 대안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다 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 글에서는 그동안 분석이 많이 돼온 사파티스타의 인터넷 활용 등과 같은 주제는 제외할 것이다.

2.. 반신자유주의 농민봉기로서의 사파티스타 운동

"북미자유무역협정의 발효는 멕시코 농민 및 치아파스 원주민에게는 사망진단서와 같다"(마르코스)

1) 내부 식민지 치아파스
멕시코의 전체 32개주 가운데에서 가장 가난한 주 중의 하나이다. 정부의 공식통계에 의하면 8,100만 인구가운데 2,500만명이 절대빈곤의 상태에 있으며 치아빠스 전체 인구(약 320만)의 84.68%가 이러한 조건 속에 살고 있다. 전체인구의 30.12%가 문맹이며, 62%가 초등교육을 끝내지 못하고 있다. 치유가 가능한 질병으로 지난 10년간 사망한 원주민은 15만명 이상이 된다. 이 인구의 대부분은 이번 봉기가 일어난 5개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멕시코의 연간 일인당 국민소득은 4,000달러 수준이다. 그런데 멕시코시의 평균소득은 8,000불인데 반해 치아빠스 주의 경우는 1,000불에도 거의 미치지 못한다.

2) 봉기의 일차적 원인은 생존권의 박탈이다:

-1988년 정부는 라깐돈 우림에 대한 새로운 보호법령을 공포하고, 인디오 원주민들은 전통적으로 해 오던 '제초-화전' 방식을 통한 토지 경작과 목축 활동을 할 수 없게 하였다. 이에 우림 지역에 늦게 정주한 원주민들은 생계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고, 그들의 좌절감은 극에 달했다. 대규모 제재소가 자행하고 있는 우림의 파괴에 대한 책임은 밀쳐두고, 생계유지를 위해 화전 경작을 일삼는 인디오 원주민들이 우림파괴의 원흉인 것처럼 몰아 부쳤다.

-농업발전 모델 연구에서 멕시코 사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멕시코 농업은 1910년 혁명의 유산을 간직하고 있고 프러시아型의 발전도 아니고 아메리카形도 아닌 독특한 '멕시코의 길'(via mexicana)을 걸어 왔다. 다시 말해서 멕시코 혁명을 통해 경자유전의 원칙이라는 부르주아 농민혁명의 과제를 완수하려 했던 것이다. 특히, 1930년대 까르데나스 대통령은 1917년 헌법의 제27조에 의거하여 그 동안 미미했던 농지개혁을 대대적으로 실행하여 에히도 공동체를 창출하여 최근까지 근근이 이어온 농본주의적 포퓰리즘의 토대를 세웠다. 그는 전통적인 토지(공동소유제도)를 인정하면서 1900만 헥타의 농지를 분배하였다.

치아파스의 봉기와도 관련을 가지는 농업부문의 자유화 조치는 이러한 헌법 27조를 무력화시킨 것이다.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아오던 집단농장성격의 에히도(ejido)에 민간자본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혀 놓았다. 살리나스 정권(1988-94)은 1980년대의 개혁과 개방 속도를 완전히 벗어나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개혁 정책을 추진한다. 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핵심은 경제의 모든 기능과 작동을 시장 메카니즘에 맡기는 데 있다. 그 수단이 대외적으로는 개방이고, 대내적으로는 재정수지 균형, 민영화, 그리고 규제완화 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살리나스 행정부는 이러한 시장개혁과 대외지향적 발전전략을 국제협정으로 공고화하기 위하여 '북미자유무역협정'까지 체결하였다.
이러한 개혁과 개방 기조가 농업부문에 적용되어 나타난 첫째가 바로 헌법 제27조 개정을 통한 에히도를 민영화하겠다는 조치이고, 둘째가 북미자유무역협정을 통해 농산물 교역을 15년내 완전히 개방하겠다는 대외적 약속이다. 이러한 변화의 바람은 1990년대 초에 이르러 가시화된 멕시코의 농업위기의 신단계 국면에서 주어졌다. 1982년 멕시코의 농업생산은 일인당 가치기준으로 1981년도에 대비하여 18.5%나 줄어 들었고, 축산업은 14.1%, 임업은 17.1%나 줄었다. 그 결과 농산물 수입도 급상승하여 1982년에 18억 달러 규모가 1982년에는 61억 달러 수준으로 육박하여 무역수지 적자폭은 더욱 커졌다.
살리나스 행정부은 에히도의 '비생산성'을 제거하기 위해 이를 민영화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를 위해서 헌법 제27조를 개정하고 앞으로 이 부문에 내외 자본의 투자유치와 기업농 육성을 본격화하겠다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정부는 에히도 개혁조치와 함께 북미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에 들어갔고 여기서 미국과의 농산물 교역의 50%에 해당하는 제품에 대한 관세를 즉시 철폐시키기로 하였다. 나머지 품목에 대한 관세는 15년 내 점진적으로 철폐하기로하고, 멕시코의 옥수수·콩·감자의 자유화는 미국의 원예 농산물 자유화와 연계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개혁조치는 주곡을 경작하는 농민에게는 농업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파산하여 굶어 죽으라는 얘기와도 같다. 마치 전면적인 시장개방 이후 쌀을 생산하는 한국의 대다수의 농민들에게서와 같이. 우선 주곡 생산의 차원에서 미국, 캐나다의 여건과 비교해 보자. 옥수수의 경우 멕시코에서 핵타르 당 생산량이 1.7톤이라면, 미국은 7톤, 캐나다는 6.2톤이다. 멕시코에서 1톤을 생산하는데 사용된 노동일이 17.8일이라면 미국에서는 1.2시간 밖에 되지않는다. 콩의 경우도 멕시코의 경우 헥타르 당 생산량이 0.5톤이라면 미국의 경우는 1.7톤으로 3배 이상이다. 1톤을 생산하는데 소요되는 노동일 역시 멕시코의 50.6일에 비해 미국의 경우는 반나절로 비교할 가치조차 없다.. 그러니 아무리 저임금 노동력이라고 해도 경쟁력이 생길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곡은 아무 말없이 수입해서 먹고 살 수밖에 없다.

살리나스 행정부의 농업정책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이 바로 치아빠스의 에히도 성원들이다. 1990년 통계에 따르면 10명 중 9명이 옥수수를 생산하고 있고 그 옥수수의 95%가 바로 천수답에서 생산된다는 열악한 현실을 감안할때 북미자유무역협정이 어째서 사망진단서인가를 이해할 수 있다.
정부와 ECLA가 조사한 서베이에 따르면 치아빠스의 사회부문이 생산하는 옥수수는 약 23%가 자가소비에, 67%는 시장으로 나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북미자유무역협정에 가입한 연후에 발생하는 옥수수 가격 하락은 바로 치아빠스 농가의 소득의 감소로 연결될 것이고, 아울러 이는 필시 생존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라는 일차적인 생물학적 문제로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요컨대, 사파티스트가 봉기를 일으킨 직접적 계기는 신자유주의적 사회-경제질서의 수립을 통해 생존권 위기에 내몰린 치아파스 원주민들의 분노와 저항을 반영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점은 궁극적으로 치아파스 원주민들에게 닥친 사태가 멕시코 대다수 농민들의 위기와 함께 나아가 노동자들 대다수의 삶의 위기로 현실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멕시코인의 50%는 적어도 어떤 형태로든지 신자유주의 모델의 희생자로 '치아빠스인'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제의 원인과 그 해결책이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는 농업문제를 부르주아 자유주의 혁명의 과제를 통해서는 이제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데 있다. 왜냐하면 위기의 원인 제공자가 그러한 부르주아 혁명의 성과를 통해 발생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그 자체의 발전의 귀결 또는 모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어째서 마르코스와 사파티스타의 공식문건이 현재의 농민문제를 소소유자를 확정하는 식의 토지개혁의 관점이 아닌 해고를 통해 생존권을 박탈당한 실업자 문제라는 자본주의의 첨예한 문제와 동일시하고 그것을 거듭 강조하는 가를 이해할 수 있다(Marcos 1998).

3) 사태의 해결책은 과거로의 복귀가 아니라 사회의 재구성에 있다

사파티스타가 봉기를 통해 제시하려 했던 정치적 울림의 근저에는 농민-원주민 문제의 형식을 띰에도 그것이 결코 그들만의 힘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과거를 단순히 회복하는 것이 사태해결의 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깔려 있다.
1994년 1월 2일 일요일 EZLN가 발표한 라깐돈 '선전포고문'에 표현된 사빠띠스따의 기본적 요구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민주주의의 수립을 위한 정치적, 법적 변혁
2) 인디오 원주민의 자율성 보장
3) 공유지의 민영화를 허용하는 헌법개정의 취소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은 현정부를 대치하고 자유롭고 민주적인 선거가 있을때까지 임시정부를 구성하기 위하여 각 정당의 연합을 형성하기를 모색한다. 그들은 일, 땅, 음식, 건강, 교육, 독립, 자유, 민주주의, 정의와 평화를 요구한다.

언뜻 보기에는 급진적이지도 별로 혁명적이지 않은 정치적 요구일 수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사회-경제질서로의 전환이 불가역성의 법칙성을 띠고 폭력적으로 강제될때 그것을 변화시키려는 조그마한 노력도 이제 사회주의를 새롭게 정의하는 투쟁과 연계될 수 밖에 없음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사파티스타의 투쟁이 단순히 원주민-농민으로 구성된 즉자적인 그리고 부정적인 반신자유의적 봉기를 넘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긍정적인 현실 대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 역시 생산, 곧 빵의 문제, 권력의 문제, 자율과 소통을 통해 모색되는 다른 사회운동과의 연대의 문제를 긴급히 사고하며 그 정치적 해결책을 적극 모색해야 하는 기존 사회운동의 고민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운동이 소멸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마르코스가 멕시코의 주요 일간지의 하나인 <라 호르나다>와 인터뷰에서 언급한 일단의 내용은 그러한 고민의 편린을 들어내는 것이다.

"토지의 문제는 생산성이지, 팽창이나 소유가 아니다. 심지어 농장 또는 대농장의 몰수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이 국가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토지의 문제란 생산성의 문제이다. 농지의 분배와 소유의 정당화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엄청난 투자가, 토지가 생산할 수 있게끔 하부구조를 구축하는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농지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들의 운동은 미국 정부와 미국 국민의 이익에 반대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인식하여야 한다. 우리들의 프로젝트는 생활이 바뀌느냐 아니면 가난으로 죽느냐 하는 아주 단순한 것이다. 우리들은 권력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백악관을 점령하러 가지 않을 것이며 백인들과 끝장내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정부형태에 따라 평화롭게 살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

"나프타는 인디오 원주민의 삶을 고려하는 어떤 형태의 보완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원주민들은 얼마가지 않아 소멸될 것이다. 커피 농작물을 훔쳐가는 늑대 한 마리와도 경쟁할 수 없는 우리들이 어떻게 미국이나 캐나다 농민들과 경쟁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총 한 방 쏘지 않고 우리들을 파괴할 것이다. 신국제질서에 편입되는 가장 작은 자들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무런 대책없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 수는 없는 것이다."

"사빠띠스따들은 권력을 추구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어떠한 자리도, 심지어 어떤 주지사, 대사, 대통령 자리도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정당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인디오로서 인디오 원주민이 직접 정치할 수있는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들의 이상은 부족간에 지역간에 공동으로 정치하기를 원한다"(이성형 1998, 131에서 재인용).


3. 사파티스타 운동에 대한 잠정적 평가: 한국의 사회운동에 던져주는 함의를 중심으로

1) 지금까지 제3세계 농민운동을 바라보는 관점은 이른바 민족민주혁명의 관점이 압도적이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도시의 노동자 계급, 민족부르주아지, 농민이 동맹하여 1차 변혁을 완수함으로써 지주제 등 봉건제의 유제를 없애고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라 토지를 재분배하는데 그 주안점이 있었다. 이것을 계기로 노동자-빈농의 연합을 통해 사회주의 혁명으로 전화-발전한다는 게 핵심적 논리였다. 그러나 제3세계 대부분 나라들의 경험이나 멕시코 혁명의 경함에서 드러났듯이 농민들에게 토지를 중심으로 소유권을 확정시켜준 토지혁명은 농민과 농촌사회를 지배계급의 강력한 사회적 토대로 자리매김 하게 해 주었다. 요컨대, 민족민주혁명이 제기한 농촌혁명의 과제를 여하히 잘 수행하면 할수록 그 나라는 자본주의 국제정치경제질서에 그만큼 깊숙히 편입해 들어갔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월러슈타인이 말하는 이른바 '초청에 의한 상승'이다 대표적인 나라가 형태는 다소 다르지만 아마도 한국과 멕시코가 아닌가 싶다. 전후의 민족민주혁명은 당시의 자본주의 질서를 반영하는 것이며, 그 내용은 근대화의 서로 다른 경로, 그 형식은 정치노선으로서 일국혁명과 민족해방의 결합이었다. 이는 일국 내의 계급투쟁이 그 만큼 중요했다는 얘기이며, 각국의 계급투쟁의 지형에 따라 농촌혁명의 모습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2) '초청에 의한 상승'으로부터 '초청에 의한 몰락'으로: 1980년대 이후 지구화와 신자유주의, 여기서 연원한 사회주의체제의 몰락은 전 세계적 계급투쟁의 형식과 내용을 일변시켰다. 제3세계의 농민부문 역시 심대한 변화를 강요받는다. 지구적 형태의 거대독점자본의 무차별적 공세는 각국의 경제주권을 무장해제 시키고 있다. 전후 냉전과 케인지안적 국제정치경제질서 하에서 제3세계의 농업부문, 특히 미국과 긴밀한 정치-군사적 이해관계에 있던 남한이나 멕시코와 같은 나라의 농업부문은 보조금이나 이중가격제 등의 실행으로 상당정도 보호받아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GATT로 대표되는 국제무역질서 역시 제3세계 농업부문의 비관세장벽 및 개방예외 조항 등의 구조적 장애를 묵인해 줌으로써 제3세계의 농업부문은 국제경제의 여파보다는 주로 국내 정치-사회적 변수들에 의해 규정되어 왔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에게 보다 많은 주의와 관심을 요하는 것은 전후부터 1980년까지 농민반란이 많은가가 아니라 어째서 이토록 적었는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3) 신자유주의와 지구화-부자들의 국제연대: 지구적 형태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과거와 같이 여전히 착취의 온존과 불균등 발전을 내재한다. 하지만 그 대치선을 달리한다. 부국과 빈국의 규정은 새로운 정의를 필요로 한다. 이제 선진자본주의국가의 시민들 모두가 일류 시민이 아니며, 부유한 자본종족들은 거추장스러운 민족국가적 외피를 떨쳐버리고 이웃 나라의 자본종족들과 지구적 연대를 가시화한다. 지구적인 부자들의 연대체가 공세를 강화함에 따라 이에 저항하는 노동대중 역시 필연적으로 지구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사파티스타의 봉기에서도 잘 드러났듯이 멕시코 농민들의 삶을 피폐화 시키는 세력은 미국의 대 농업자본을 필두로 한 국내 과두지배세력과의 동맹체이다. 한국의 경우 이와 다루지 않다. 한국 농촌 내에 지주와 소작빈농의 계급투쟁이 존재하는가. 아니 그것이 절실한 문제인가. 한국의 농민운동이 새롭게 촉발되는 계기란 정확히 이처럼 지구적 자본주의 세력과의 조우를 통해서 발생하고 있지 않은가. 이를 우리는 불균등 발전의 온존과 투쟁의 균등화 경향으로 정식화할 수 있다.
4) 소유권적 개인주의와 발전론적 근대화 노선을 뛰어넘는 국제적 민중연대·사회주의 운동으로서의 사파티스타 농민운동: 투쟁지리학의 변화로부터 농민운동은 운동 및 주체의 성격에 새로운 정의를 요구받는다. 과거와 같은 일국적 민족민주혁명 노선에 의한 농민의 규정은 더 이상 작동할 수 없으며, 따라서 고립노선은 자멸이다. 고립을 택할 수 없다는 것을 지구적 자본운동이 가르쳐 준다는 것은 그야말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농민운동을 통해 농민의 규정성을 뛰어 넘는 정치적 실천은 오직 빈자들의 지구적 연대를 강화하는 작업을 통해, 농민이 아닌 보편적인 프롤레타리아 근로대중의 일환으로서 노동자 및 여타의 사회운동과의 민중연대를 가시화하는 길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노선은 현실의 발전경향과도 일치한다. 미국등 거대 농업자본의 개방이 본격화될 경우 한국에서 과연 농업종족은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러한 조건에서 몇 마지기, 몇 필의 땅뛔기 소유를 확정해준 토지소유권은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단 말인가. 거대 지구적 농업자본에 맞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한국의 농민은 얼마나 될까. 결국 신자유주의적 시장개방의정서는 한국과 같은 나라들에서 농업종족의 생존권을 박탈하여 그 흔적도 없는 역사적 화석으로 만들겠다는 각서에 다름 아니다.
5)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운동의 교훈은 바로 이러한 일변된, 자본중심으로 재편된 지구적 사회-경제질서라는 엄혹한 조건을 뚫고 나온 거의 최초의 농민운동이라는 사실에 있다. 그것은 농민운동이되 과거와 같은 식의 농민운동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일국내의 정치운동이되 국제적 연대를 가시화 했으며, 생존권의 위기와 생산터전의 박탈로부터 출발했으되 그것을 넘어선 새로운 사회구성의 전략을 작동시켰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인간의 존엄성, 자치와 민주주의, 사회정의, 해방과 노동에 대한 요구가 그것이다. 이러한 문제로부터 그 어떤 진보적 사회운동이 자유로울 수 있단 말인가. 사파티스타의 이러한 요구는 바로 생산과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그 어떤 사회적 해방과 자유의 문제도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있으며, 동시에 생산과 생존의 문제가 인간의 자유와 해방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는 어찌보면 자명한, 그러나 유일하게 실현 가능한 사회주의 정치의 명제의 올바름을 진지하게 사고하고 이에 대한 실천을 조직할 것을 고민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점에서 지대한 의의를 갖는다 하겠다. 이러한 문제제기를 한줌의 치아파스 원주민이 했건 농민이 했건 노동자가 했건, 도시빈민이 했건, 아니면 이 밖에 그 누가 했건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일까. 문제의 해답은 이미 지구적으로 결정되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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