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시사

지구화(Globalization)와 민족국가(Nation-state)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0-10-13 23:22
조회
2268
지구화(Globalization)와 민족국가(Nation-state)

이 해영(한신대, 정치학)



1. 머릿말

현시기 세계 정치경제의 지배적 경향은 '지구화'(Globalisierung)로 총괄된다. 이 지구화는 적어도 유럽사회를 중심으로 볼 때 이전의 시기와는 질적으로 뚜렸이 구분되는 다음과 같은 조건에서 진행되고 있다.

■ 냉전의 종결과 함께 이 기간중 이데올로기적 통합요소로 기능해온 반공주의는 그 기능을상실하였다.
■ 세계정치의 다극화(Multipolarisierung)와 세계시장의 삼각화(Triadisierung) 경향은 유럽에 있어 서유럽-미국간의 특수한 동맹적 이해관계를 의미하는 '아틀란틱 관계(atlantische Beziehungen)', 다시 말해 유럽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현저히 약화시켰다.
■ 세계경제관계의 지구화는 일국 케인즈주의(nationaler Keynesianismus)와 국제 자유무역의 포드주의적 호환성을 해체시켰다. '상황강제(Sachzwang)'로서 세계시장은 단순히 민족 국가의 주권만을 약화시킨 것이 아니라, 나아가 생산조직 ('토요타주의', '군살빼기 생산'), 노동관계 그리고 경제 및 사회정책 부문에도 개입하고 있다 ('생산입지 논쟁').
■ 자본주의 황금시대의 포드주의적 성장잠재력은 현 시점에서 보건대 일단 고갈된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포드주의의 위기'). 동시에 산업자본주의적 성장에서 부터 야기한 비용과 위험은 지역 정치에서 국제 체제에 이르기까지 전통적 정치형태와 모델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흔히 듣게 되는 신자유주의적 위기담론은 다름아닌 "TINA (There is no alternative)" - 즉 시장외에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이미 맑스/엥겔스는 150년전 이렇게 쓰고 있다. "부르주아지는 세계 시장의 개발을 통해서 모든 나라들의 생산과 소비를 범세계적인 것으로 탈바꿈시켰다. 반동배에게는 대단히 유감스럽게, 부르주아지는 공업의 발 밑에서 그 민족적 기반을 빼내가 버렸다. 오래 된 민족적 공업들은 파멸되었고, 또 나날이 파멸되어 가고 있다. 이 공업들은, 그 도입이 모든 문명 국가들의 사활문제가 되고 있는 새로운 공업들에 의해, 즉 더 이상 현지 원료를 가공하지 않고 아주 멀리 떨어진 지방의 원료를 가공하는, 그리고 그 제품이 자국 내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대륙들에서 동시에 소비되는 공업들에 의해 밀려나고 있다. 국산품에 의해 충족되었던 낡은 욕구들 대신에 새로운 욕구들이 등장하는데, 이 새로운 욕구들은 그 총족을 위하여 아주 멀리 떨어진 나라들 및 풍토들으 생산물들을 요구한다. 낡은 지방적 및 민족적 자급 자족과 고립대신에 민족들 상호간의 전면적 교류와 전면적 의존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는 물질적 생산에서나 정신적 생산에서나 마찬가지이다. 개별 민족들의 정신적 창작물은 공동 재산이 된다. 민족적 일면성과 제한성은 더욱더 불가능하게 되고, 많은 민족적, 지방적 문학들로부터 하나의 세계 문학이 형성된다.
부르주아지는 모든 생산 도구들의 급속한 개선과 한없이 편리해진 교통에 의하여 모든 민족들을, 가장 미개한 민족들까지도 문명속으로 끌어넣는다. 부르주아지의 상품의 싼 가격은, 부르주아지가 모든 만리 장성을 쏘아 무너뜨리고, 외국인에 대한 야만일들의 완고하기 그지없는 증오심을 굴복시키는 중포重砲이다. 부르주아지는 망하고 싶지 않거든 부르주아지의 생산양식을 채용하라고 강요한다...."(맑스/엥겔스, [공산주의당 선언], {저작선집1}, 404쪽)
긴 인용문을 글의 머리에 내거는 이유는 맑스/엥겔스 두사람의 '지구화' 테제가 갖는 그 기술記述상의 놀라운 시의성때문이다. 자본의 무정부적, 초국가적 운동은 그 자체로 자본의 고유한 법칙이다. 그렇게 본다면 현상으로서 지구화는 자본의 탄생에 그 기원을 두는 그 자체로 대단히 오래된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공산당 선언}으로 부터 150년이 지난 오늘 인류 공통의 긴급한 현안으로 다시금 '지구화'를 논한다 할 때, 그것은 마땅히 그에 걸맞는 이유가 있어서이고 또 지금의 지구화가 19세기 중반의 그것과 질적으로 구분되기 때문일 것이다.
1980년 말이후 논의되는 현단계 자본주의 발전의 주요 경향으로서 지구화는 우선 다음 의미에서 '새로운' 현상이다.
첫째, 1989년 현존 사회주의 붕괴된 이후,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 동아시아를 제외하고 - 지구상의 대부분 나라가 - 물론 형식적 의미에서 - 부르주아 민주주의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이 말은 달리 표현해 지구상의 대다수 주요 국가가 적어도 정치적으로 동질화되었다는 말이다.
둘째, 현시기의 지구화는 20세기 전반 제국주의 단계의 국제화와도 분명 구분된다. 후자의 그것이 압도적으로 민족국가적으로 조직화된 자본의 이해가 군사적 충돌에 이르기까지 극대 추구된 반면, 지금의 '지구화'는 우선 전지구적 규모에서의 비군사적 경제전쟁이라는 형태상의 특징을 갖고 있다. 나아가 제국주의적 국제화가 민족국가의 강화를 추구한 반면,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는 국가의 정치적 약화를 의도하고 있다.
셋째, 첨단의 통신 및 교통수단은 콜럼부스나 로빈슨 크루소를 우화롤 만들정도로 지리, 공간적 의미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더이상 지표상에 공백은 존재하지 않고, 적어도 원칙적으로 누구든지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상대방과 '접속'할 수가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시공 압축'(D.Harvey)은 동시에 지구 전체가 하나의 시장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global sourcing, global pricing, global costing'이 가능해 졌다는 말이다.
넷째, 지구화된 세계경제는 마이크로 전자통신 과학기술혁명을 기초로, 탈국경화된 자본운동을 핵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무너진 이후 이루어진 통화시장, 자본시장, 금융시장의 '정치적' 개방은 세계 전역에 걸친 자본의 놀라운 이동성을 창출해내었다. 이 이동성은 포스트 포드주의(postfordism)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자본이동성은 상품 및 서비스의 자유화와 맞물려있는데, 최근의 가트합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일국적 및 지역적 차원에서의 보호장벽 조치들도 이 시장개방을 억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세계경제의 지역화 경향, 상호경쟁하는 경제블록들 (미국, 유럽, 일본의 '삼각Triade')의 형성 즉 경제의 블록화는 자본의 지구화의 가장 기본적인 추동력이라 할 수 있다.
다섯째, 지구화의 주역은 초민족국가적으로 활동하는 초국적기업(TNCs)이다. 현재 약 2만의 초국적 기업이 있고 이들은 약 10만의 자회사를 국외에 두고 있다. 그들은 기술혁신의 중추이며상품생산과 서비스의 국제화를 지난 20년간 추동한 것도 그들이다. 이들이 세계경제를 '재사유화(reprevatization)'하였고, 세계경제를 파편화된 민족국가의 통제로 부터 벗어나게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도 과장은 아니다.
여섯째, 지구화는 다른 무엇보다도 시장의 그리고 경쟁의 지구화이다. 경제와 관련된 모든 요소들은 계산가능한 하나의 공통분모 즉 비용으로 환원된다. 맹목적 경쟁법칙앞에 다른 모든 가치들은 단지 부수적인 장식물로 전락한다. "불평등의 생산 - 이것이 초국가화 과정의 사회적 핵심이다. 전지구적인 파편화는 '올바른 경제정책'으로 극복할 수 있는 어떤 우발적인 세계경제 산물이 아니다. 지구적인 생산과정, 서비스과정, 상거래과정, 금융과정은 그 과정으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의 산산히 조각난 운명을 마주하고 있다. 세계경제에서 인간들, 기업들, 국가들이 질적으로 다른 출발조건에서 서로 경쟁한다 함은 그 세계경제의 본질중 하나이다. 경쟁자들이 승자와 패자, 포함된 자와 배제된 자, 혜택받는 자와 불이익받는 자로 나뉘는 것은 불가피하다. 효율적이냐 아니냐라는 시험에서는 이윤과 권력이라는 척도 외에 다른 어떠한 사회적 가치도 용납되지 않는다."
일곱째, 현단계의 지구화는 실물경제로부터 자립화되고, 민족국가의 통제로부터 벗어난 금융자본의 헤게모니하에서 전개되는 것이다. 이는 1973년 브레튼우즈체계 즉 국제통화체계의 붕괴이후 지구화되어온 국제 금융자본은 국가의 규제가 아니라, 시장을 통한 경제활동을 명백히 선호한다. 지구화와 관련해 제기되는 금융자본은 산업자본과 은행자본의 융합이라는 레닌 내지 힐퍼딩적 의미에서의 금융자본이 아니다. 금융자본의 국제화는 한편으로 제조업에 기초한 축적전략이 한계에 한계에 봉착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국제금융시장의 지구화는 어떤 경제적 강제(Sachzwang)이라기 보다, "화폐자산소유자에게 유리하고, 안정된 일자리와 합당한 임금에 생계를 걸고 있는 자에게 불리한, 통화의 탈규제와 시장개방을 위한 하나의 정치적 프로젝트"이다. 따라서 그것은 기본적으로 반노동적인 정치적 성격을 내장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현단계의 세계경제는 전후 자본주이 황금시대의 실물자본-노동의 동맹이 실물자본과 이로 부터 분리된 국제 금융자본의 반노동 동맹으로 이행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글에서 현단계 세계경제의 지배적 운동경향으로서 지구화는 특히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대안이자 정치적 선택으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지구화는 어떤 필연적인 그래서 불가피한 외적 강제(Sachzwang)는 아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적 정치프로젝트의 결과이자 그것의 구성요소일 뿐이라는 점이 충분히 강조되어야 한다,
지구화는 다른 무엇보다도 근대 민족국가의 존재근거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의미한다. 또 그런 한에 있어서 지구화는 80년대 이래 사회과학적 그가운데 특히 정치학적 담론의 가장 중요한 대상이었다. 역사적 볼 때 대략 서구의 17세기에 특정 공간 곧 영토에 대한 배타적 지배라는 주권개념에 바탕해서 형성되기 시작한 근대국가는 그 공적 기능에 있어서 행정국가(Verwaltungsstaat)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해서는 조세국가(Steuerstaat)로, 그리고 프랑스대혁명이후 19세기 전반에 걸쳐 민족국가로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민족국가 자체에 내장된 모순구조는 20세기에 들어와 - 적어도 유럽사회에서 - 그것은 사회국가 혹은 복지국가로 그 형태가 변모되었다. 그러나 경제의 지구화는 그러한 사회국가적 합의를 가능케 했던 기본적인 계급타협의 틀에 중대한 타격을 가져다 주었다. 그렇다면 이제 민족국가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본 연구는 그러므로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하나의 답변을 모색해가는 과정에 자신의 의미를 찾고 있다.

2. 자본주의적 지구화와 고전적 민족국가

그렇다면 경제의 지구화는 개별민족국가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먼저 민족국가의 정치적 차원에 대해 살펴보자. 지구화된 전통적으로 국민경제의 주권영역에 속하던 개별국가의 금리결정권에 심각한 상실을 초래하였다. 다시 말해 국제금융부문의 지구화는 각국의 실질금리의 평준화를 강요하였고 이는 다시 다음의 결과를 가져왔다. 1) 케인즈주의의 종말: 전통적인 케인즈주의적 완전고용정책은 금리인하를 통하여, 단순히 이자소득을 노린 금융투자가 아니라 이윤과 일자리를 가져다 줄 그러한 실질투자를 증가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 기초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개별국가는 금리를 국제수준보다 인상함으로써 통화량을 조절, 물가인상을 억제할 수 있을 지 몰라도, 만일 국제수준보다 인하할 경우 기대하는 실질투자의 증대보다, 자본의 해외유출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개별국가가 만일 완전고용정책을 추진한다면 그것은 재정적자폭의 증가를 감내해야할 재정정책을 통해서이며, 이때 통화정책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재정정책은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2) 실질투자의 증대는 더이상 국제수준과 비교한 금리인하를 통해서가 아니라, 국제수준보다 높은 예상이윤을 보장해 줌으로써 가능하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생산비용의 최소화가 담보되어야 한다. 이때 가장 문제가 되는 비용이 곧 인건비이다. 결국 이는 사회적 생산물의 분배에 있어 국가와 노동자가 자본에 대해 열세에 있게됨을 의미하고, 또한 만일 투자가 부족할 경우에는 성장율을 낮추어서 즉 실업을 증대시킴으로써 이를 보전하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황금시대'였던 전후시기와 냉전시대에 형성된 민족국가와 자본주의 경제간의 관계는 20세기 말에 구조적인 변동을 겪고 있다. 이미 언급한 지구화 과정은 그 변동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의 전후질서는 '잠든 자유주의(embedded liberalism)'라 부를 수 있었다. 양차 세계대전의 중간시기, 특히 1929년의 세계경제공황 이후 시기에 겪은 세계경제질서 붕괴의 경험은 - 미국이 주도한 - 결론을 이끌어냈다. "잠든 자유주의"란 계급타협을 의미하였다. "세계 경제적 통합과정의 역동성에 대한 영토국가의 경제, 재정 그리고 통화정책적 주권의 우위에 대한 승인에 기초한 국제적 자유화와 개별국가적 규제의 동시성"을 제도화한 (브레튼우즈, IMF 등) 타협이었다. 다른 말로 한다면 '국내에선 케인즈, 국외에선 아담 스미스(Keynes at home, Adam Smith abroad)'라고 할 수 있다. 세계경제의 전후질서, 즉 자본주의 중심부들 상호관계의 규제라는 황금시대는 바로 이 전제조건 위에서 이뤄진 것이다.
현재 세계경제위기의 진행과 결과로 인해, 그리고 신보수 내지 신자유주의적인 정부들의 등장과 지구화과정으로 인해 바로 이 '구'질서가 70년대 이래 점차 해체되고 있으며 또한 그 구질서로의 복귀가 경제적, 정치적으로 거의 불가능해졌다. '낡은' 민족국가들에 대한 '카지노 자본주의'의 영향을 {파이낸샬 타임즈 Financial Times} 지는 이렇게 요약한다. "이러한 일은 전례가 없는 것이다. 정부가 금융에 대한 통제권을 탈환할 수 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 자본거래에 대한 통제와 조정 권한을 재정착시킬려는 앞으로의 모든 시도들은 실패할 것이다.... 높은 세금에 기반했던 미국과 유럽의 복지 제도들은 지불 불능상태에 빠진다. 부자들에 대한 과세는 가능한 대안이 아니며, 부자들은 더이상 앉아서 과세당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이 변화가 낳은 중요한 결과중의 하나가 이미 시사했듯이 (케인즈주의적인) 사회국가 혹은 복지국가의 위기이다. 즉 경제행위자들이 가진 놀라운 유동성으로 인해 정치 체계가 가진 개입가능성은 약화되고, 결국 이는 국가의 공공 기능에 대한 위협으로 귀결된다. 생산 입지를 유지하는 문제가 정치적 우선순위를 차지하게 되면서 복지정책적인 목표설정은 차후로 밀려난다. 미시경제상의 기술혁신과 거시경제상의 안정성 (물가 상승억제)에만 몰두하는 정치는 노동자와 사용자간 이해관계의 조정이라는 전통적인 임무를 포기해 버렸다. 실업자와 사회 불평등의 극복은 경쟁력이라는 상위목표에 종속된다. 이 새로운 목표설정을 국내정치에서 정당화시키기 위해 정치인들은 국내경제상의 재분배에 대해 대외 경제적 국제경쟁력을 유지할 필요성에 호소한다. 그 결과 세계경제는 점차 그 국내사회적 기초를 상실하고, 국가라는 정치 공동체의 사회적 이해 관계와 모순되면서 그 공동체는 거세지는 세계시장으로부터의 경쟁압력과 증폭되는 사회분열에 노출된다.
신자유주의 공세와 '지구적 자본주의'의 등장은 개별 사회의 계급구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즉 "빈부의 간극은 더욱 확대되고, 양극단사이 바닥에는 균열이 나타난다 ... 모든 직업집단과 농민, 금속노동자, 이혼모 등 하층주민은 서서히 침몰하고 있고, 하위 사무직과 심지어 학자들 같은 다른 집단조차도 추락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친다. 최부유층을 제외하고 이러한 불투명한 상황에 직면해 오직 하나의 집단만이 분명한 성공전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산층의 전통적 가치관에 대한 배신 그리고 이윤우선 사고와 소비욕구에 대한 무조건적 헌신이 이 전략에 속한다." 경험적 연구에 따르면 신자유주의 원조 미국의 80년대 계급구조 프로필은 중간계급의 해체경향으로 요약된다. "최상위 소득계층 20%가 국부의 절반을 통제한다. 오직 이들에게서만만 지난 20년간 가계소득의 실질증가가 있었을 뿐이다. 중간층은 1970년 전인구의 65%에서 ... 1985년 58%로 감소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통계수치 조차도 두드러지게 단기간내에 일어났던 심각한 변화의 파편적이고 불완전한 인상만을 가져다 줄 뿐이다. 임시직의 증가와 마찬가지로 고등교육을 받는 사람도 포함되어 있는 실업자수의 계속적 증가가 더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임시직의 수는 1980년 이래 배가되었고 가용 일자리의 1/4에 달하고 있다. 바로 이 임시고용의 증가야 말로, 1950-1980년 사이 22%에서 45%로 증가된 노후 보장 취업자수가 1986년 42.5%로 감소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 마찬가지로 이것이 노조조합원 수의 감소와 노조영향력의 계속적 감소에 대한 원인이다. 이러한 변화는 다시 산업부문에서의 일자리감소와 정보, 써비스부문에 기초하는 경제로의 전환을 반영하고 있다." 첨단업종을 중심으로한 산업구조의 변화는 노동시장의 구조변동을 초래하였고, 그 결과 전통적인 노동자와 신·구 중간층의 의미를 현저히 퇴색시켰다.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이로 인한 불완전고용의 증가는 중간층의 해체와 동요를 수반한다. 신자유주의 공세는 나아가 장기실업자와 노동관계의 제반 법적 보호장치에서 배제된 사회집단을 중심으로 '하층계급'(underclass)의 형성을 초래하였고, 그리고 노동시장 유연화의 파생물인 이 집단은 그러나 오히려 외국인에 대한 테러에서 나타나듯이 신우익의 정치적, 사회적 동원기반으로 기능한다. 이런 점에서 '사회문제의 우익적 정치화'는 미국과 서유럽 일반에서 관찰되는 정치현상 가운데 하나라 하겠다.
지구화로 결과된 사회적 구조변동은 전통적 사회적 연대망을 파괴하면서, 민주주의의 시민사회적 기반을 잠식한다. 노동시장 조건의 열악화로 인해 기형화된 개인의 전기(傳記)와 사회적 연대의 해체에 직면해 선택 가능한 '집단적' 대항운동 가운데 하나가 역설적이게도 '개별화(Individuralisierung)'이다. '개인'으로의 해체와 고립은 사적 부의 무한 축적이라는 목표를 일체의 사회적, 윤리적 제재로부터 해방시켰고, 간혹 그 수단만이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 그 결과는 사회적 법죄의 폭증으로 나타난다. 개별화는 나아가 "새로운 권위주의와 그리고 인종, 민족, 민속, 종교등 새로운 자기동일성에 대한 추구와 연결된다. 이 권위주의는 자유시장에 반대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지구화, 개별화 그리고 사유화 경향에 대해서도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을 보완하고 완성할 뿐이다." 결국 이로 인해 지구화는 민주주의와 문명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된다는 것이다.


3. 지구화와 민족 국가: 민족국가의 위기인가, 재편인가?

민족국가는 - 특히 유럽을 준거로 해서 볼 때 - 주권의 상당부분과 그리고 특히 경제영역 즉 금융 및 통화영역에서 가졌던 지금까지의 조절력의 상당부분을 상실하였다. 바로 이 점이 민족국가의 지위와 기능에 대한 논쟁의 핵심이다. 여기에는 민족국가의 주권이 침식되어 간다는 입장과, 자본주의적 지구화의 결과 민족국가의 역할이 오히려 재편되고 있을 뿐이라는 다른 입장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 아울러 L. Weiss는 지구화와 민족국가의 관계에 대한 기존의 논의를 다음 4가지의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1) 강한 지구화론: 국가권력의 침식(erosion) 2) 강한 지구화론: 국가권력의 불변 3) 약한 지구화 (강한 국제화)론: 국가권력의 축소 4) 약한 지구화 (강한 국제화)론: 국가권력의 순응능력(adapt-ability)과 분화. 그렇다면 이하 이 문제와 관련된 대표적인 주요 논자들의 논지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3.1. E. J. Hobsbawm: 근대주권국가 시대의 종말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구조변화는 기존의 민족국가의 기능과 형태에 심각한 변화를 야기하였다. 익히 알려진 사회사가 E. 홉스봄은 이와 관련해 근대 이후 2세기에 걸쳐 진행된 근대 주권국가 시대의 종결이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그에 따르면 현재 변화중인 그러한 근대 국가는 첫째, 특정 공간 즉 영토에 대한 배타적 독점권 둘째, 이 영토에 대한 주권 행사 셋째, 영토내에서 법과 강제력의 독점 넷째, 영토내 자국 시민에 대한 민족국가의 - 봉건제하 지방 영주를 통한 간접지배와는 구분되는 - '직접 지배' 다섯째, 자국민에 대한 표준화 내지 동질화 (예컨대 법앞의 형식적 평등) 여섯째,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인민주권론에 입각한 선거를 통한 지배 정당화라는 특성을 갖고 있는, 그런 의미에서 역사적으로 특수한 형태의 정치조직이다.
홉스봄에 따르면 그러나 지상에 존재하는 200개 정도의 국가 가운데 지구인구의 약 3/4정도를 포괄하는 인구 5천만 이상의 약 25개 국가를 대상으로 할 때, 이상과 같은 의미의 근대국가는 지구화 경향과 함께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 이러한 근대국가의 지위변동은 홉스봄에 의하면 3가지 방향에서 일어나고 있다. 첫째, 초민족국가적 경제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국민경제에 대한 민족국가의 역할이 제한되고 있다. 전후 서구자본주의를 지배해 온 사민주의적, 케인즈주의적 국가의 위기원인은 임금, 고용, 복지지출등에 대한 국가의 결정권력이 국제경쟁 격화로 인해 축소된 데에 있다. 둘째, 근대 국가의 권한은 EU나 IMF등과 같은 지역적 혹은 지구적 제도망의 형성과 함께 약화된다. 셋째, 기술혁명과 정보통신수단의 발전과 함께 국경의 의미는 퇴색될 수 밖에 없다 (Ibid., 272). 결국 지구화로 말미암아 근대의 중심적 정치단위(political entity)의 위기가 초래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3.2. D. Held et. al.: "강한" 지구화론과 민족국가의 위기

이들에게 지구화란 무엇보다 어떤 하나의 단선적인 "최종상태"가 아니라, "사회변동의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들은 지구화문제에는 다음과 같은 다차원적 맥락에서 접근되어야 함을 특히 강조한다. 첫째, 지리적 확장 즉 얼마나 많은 국가가 여기에 포함되는 가 둘째, 단순히 경제활동을 넘어 사회적 관계 전반에 관철되는 자본 및 상품흐름의 응축 셋째, 이 자본 및 상품흐름의 응축이 국가적, 지역적 행위자에 미치는 결과 넷째, 대륙간 거래와 이것의 조종을 위한 제도를 지원하기위한 네트워크와 인프라가 창출되는 규모등.
이들은 이러한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수츨, 국제자본시장 그리고 다국적 기업에 대한 3가지 경험적 지표를 통해 1. 세계총생산에서 세계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으로서 수출율이 전례없는 규모에 도달했을 뿐만 아니라, 개별국가의 경제와 지구적 시장사이의 밀접한 연관을 만들어 내었고, 2. 개별국가의 투자자산과 금융조건이 지구적 금융시장에 종속되어 있으며, 3. 다국적 기업의 활동에 의해 지구적 경쟁 및 생산구조가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기초해 이들은 Hirst/Thompson과 같은 지구화회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국민경제의 경계가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지만 지구적 시장과 다국적 기업의 급격한 권력증가가 무시되어서는 안됨을 지적한다.
마찬가지로 자본의 이동성증대와 지구적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각국의 개별국가는 자국 산업과 통화시장에의 개입가능성이 감소되었다고 본다. 특히 Held는 지구화의 결과 제기되는 민족국가의 위상과 관련 아래와 같이 주장하고 있다.
첫째, 전지구적 상호연관성의 증대와 함께 개별국가의 정부가 이용할 수 있는 정책수단과 그
결과의 효과가 두드러지게 쇠퇴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일정한 영토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이 감소하는 데서 비롯된다.
둘째, 국가는 다국적기업과 다국적 상호행위의 팽창으로 인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정책적 옵션이 더욱 감소하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국경을 넘어온 사자본의 유입은 해당국가의 인플레억제정책, 환율정책을 위협할 수 있다.
셋째, 고도로 상호 연관된 전지구적 질서속에서 다수의 전통적인 국가활동의 영역 - 예컨대 방위, 경제정책, 통신, 행정 및 법체계등 - 에서의 활동조차도 국제협력없이는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넷째, 따라서 국가는 예컨대 EU에서 보듯이 다른 국가와의 정치적 통합수준을 제고하거나, 상호연관에 따른 불안정 효과를 억지하기 위해서는 IMF나 GATT와 같은 국제기구와 협력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다.
다섯째, 이 모든 결과는 전지구적 governance에 기반한 제도, 조직 그리고 레짐의 광범위한 증가이다. 이러한 전지구적 governance의 시스템은 국가권력을 재규정한다.
그러나 D. Held 역시 지구화로 인한 고전적 민족국가의 지위가 쇠퇴한다는 것이 민족국가의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만일 전지구적 시스템이 심각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면, 그것은 민족국가 시대의 종말이라기 보다, 헤게모니 국가의 시대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가장 올바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전지구적 질서는 개별 민족국가 수준의 통제를 벗어나 있기 때문에, 전략적 우선순위를 "국제시민사회의 핵심그룹, 에이젼시, 단체와 조직"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3.3. Paul Hirst/Grahame Thompson: 지구화회의론과 민족국가 역할론

Hirst/Thompson은 수많은 지구화관련 논의가운데 지구화론을 반박하고 그 대안으로 국제화 개념을 제안하는 그런 점에서 하나의 정형을 이룬다. 우선 이들의 중심논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경제활동은 경제 지구화모델에서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게 여전히 국민경제에 맞추어져 있다. 둘째, 화폐 및 상품의 국제적 거래량의 증대는 전지국적 경제 활동의 결과가 아니라 불변의 국민경제의 상호유착의 증대를 표현하는 것이다. 셋째, 현재의 전지구적 무역량은 고전적인 금본위제시기인 1887년-1914년과 비교될 만하며, 오히려 그 수준을 밑돌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국제무역량의 증가는 30년대 대공황기와 2차대전후의 수준 정도에 불과하다. 넷째, 국제경제활동의 증가의 대부분은 뚜렷이 구분되고 더욱 폐쇄적인 경제블록의 형성에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은 지구화라기 보다, 지역화(regionalization)라고 보아야 마땅하다.
이른바 '강한' 지구화론에 대한 강력한 비판과 문제제기라고 볼 수 있는 이들의 입장은 민족국가의 위상과 관련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들은 시장이 대신할 수 없는 민족국가의 3대 핵심기능을 말하고 있다. 첫째, 만일 국가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기를 원한다면 국가는 '분배동맹(distributional coalition)'을 체결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경쟁력있는 제품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 국민소득과 예산의 배분에 대한 핵심 경제행위자와 이들을 대변하는 이익집단의 동의를 확보해야만 한다. 이와 같은 분배동맹의 주요 구성요소로는 소비와 투자의 균형, 사회기간시설에 대한 구가투자 재원 확보를 위한 과세수준, 산업생산을 위한 훈련과 서비스, 임금협상의 규제틀등을 들 수 있다. 둘째, 이러한 분배동맹의 기능은 국가가 사회적 합의의 조화(orchestration)라는 기능을 담당할 때 가능하다. 다시 말해 이러한 동맹은 주요한 이해당사자가 국가의 경제목표에 대한 상호 협상에 익숙한 협력적 정치문화에서 비로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국가는 국가, 지역, 지방 정부사이에서 자신의 자원을 배분하고 그것을 조절하는 활동에서 균형자(balancer)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국가는 예를 들어 그나라에서 가장 부유한 주에 속하는 독일의 바덴-뷰템부르크주, 바이에른주나 이태리의 에밀리아-로마냐주에 대한 연방정부의 성공적인 조정자 사례처럼 지방정부에 대한 균형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만 한다. 결국 이 핵심영역에서 민족국가는 여전히 자신의 역할을 유지할 것이라는 것이 이 들의 관점이다.

3.4. B. Jessop의 '슘페테리언 업적국가(schumpeterian workfare-state)론

밥 제섭은 맑스주의 국가이론의 전통에서 '민족국가의 미래'에 특히 '정치체제(political regime)'의 3가지 일반적 발전추세(trends)속에서 이론화하고자 시도한다. 여기서 정치체제란 이른바 '아틀란틱 포드주의(atlantic fordism)'의 구성요소로서 '케인즈주의적 일국 복지국가'를 의미하는 것이다. 제섭에 따르면 이러한 정치체제의 3가지 발전추세 가운데 첫째는 국가 - 정확히 말해 국가성(Staatlichkeit) -의 '탈민족화(Entnationalisierung)'이다. 이는 경험적으로 EU, NAFTA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민족국가의 법적 주권을 초국가적(supranational) 심급으로 이양시키는 경향을 가리킨다. 둘째로 '정치체제의 탈국가화(Entstaatlichung)'를 들 수 있다. 이는 기존의 민족국가가 담당해 온 사회적, 경제적 역할수행과 정치적 헤게모니를 확보하기 위해, 공식적 국가기구보다는 다양한 파트너쉽의 형태 - 정부간(gouvernemental), 의사정부적(paragouvernemental) 그리고 비정부간 조직등의 - 를 강조하는 데로 이동하는 추세를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제섭은 기존의 정부(government)가 아닌, 즉 '비정부적 통제체제(governance)'개념에 각별히 주목하고 있다. 셋째, '민족국가의 국제화'를 들고 있다. 이는 각국의 정부의 사회적 경제적 개입의 방향이 국민경제의 균형적 조절에서 국제경쟁력으로 변화되는 추세를 가리킨다. 제섭은 여기서 유럽의 전후 민족국가에서 케인주주의적 일국복지국가의 '슘페터주의적 업적(workfare)국가로의 전환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이론적 결론에 기초하면서 제섭은 민족국가의 미래와 관련된 4가지 시나리오를 제출한다.
첫째, 민족국가가 일정한 불연속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요한 행위차원에서 존속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여기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사회화가 일국 수준을 넘어서는 정도에 따라 국가의 탈민족화를 전망할 수 가 있다.
둘째 전망은 자본관계 자체가 지구화되는 정도에 따라 일반적인 생산조건을 - 예컨대 국제통화체계, 국제법등 - 조직화하게 될 그러한 세계국가 도래의 필연성에서 도출되는 국가의 탈민족화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제섭에 따르면 이러한 관점은 지구적-지역적-국지적(local) 각 차원의 복합적인 변증법과 그것이 구조경쟁력에 대해 갖는 함의를 무시하고, 나아가 준민족적(subnational) 국가와 국가의 초국경적 재구조화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를 간과한다는 점에서 일면적이고 또 경제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영토에 따라 조직된 민족국가 혹은 정부간(inter-gouvernemental) 제도(Arrangements)의 희생을 댓가로 특정한 기능을 갖춘 비정부적인 '국제체제(international regime)'의 확장이라는 전망을 들 수 있다. 즉 비정부적 국제체제의 확장이 국가를 불필요하게 만들 것이라는 이러한 관점에 대해 제섭은 국가는 바로 이러한 국제체제의 발전때문에, 계속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며, 이는 국가는 다수의 '비정부적 통제체제(governance)'에 있어 하나의 핵심행위자이며, 국제조직간 관계의 조직화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정치의 탈민족국가화-재민족국가화', 즉 한편으로 정치의 탈국가화와 다른 한편으로 -극우 포퓨리즘과 동구권의 민족분쟁에서 처럼 - 정치의 재민족화의 불균등성에 관련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 신제도주의적 - 전망이 민족국가의 구조재편과 방향재정립간의 복합적인 변증법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옳지만, 현단계 경제의 재조직화가 갖는 역설과 딜레마 그리고 모순의 질을 올바로 평가하지 못한다고 비판된다.
결국 제섭은 위 첫번째 전망의 관점에서 앞서 언급한 슘페터주의적 업적국가를 통한 이전의 케인즈주의 복지국가의 대체라는 이론적 결론에서 이 새로운 체제가 이전의 민족국가와 비교해 그 폭과 깊이에 있어 일층 진전된 초영토적 활동을 포괄하게 될 것이라고 결론 내린다. 즉 "초민족국가적 체제가 계급적으로 분열된 지역 블록 혹은 세계체제상의 사회적 응집성의 문제를 조절할 능력을 획득할 때까지, 민족국가는 자본주의 국가유형의 지구적 혹은 체계적(systemisch) 기능을 실행하기 위해 여전히 존속될 것이다".

3.5. J. Hirsch: '국민적 경쟁국가(nationaler Wettbewerbstaat)'론

J. Hirsch에 따르면 2차대전 이후 서구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해 온 테일러주의적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국가의 발전 그리고 성장과 완전고용을 목표로 하는 국가개입에 의해 특징지워지는 포드주의적 사회모델은 현재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그 위기의 결정적 원인은 테일러주의적 대량생산체계의 제한된 생산성이 점적인 이윤율저하를 가져왔다는 데에 있다. 그 결과 자본의 가치증식과정은 포드주의적 자본주의를 특징짓는 코포라티즘적-복지국가적 조절방식과 심각한 갈등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자본의 이윤증대가 대중의 소득증대와 병존할 수 있었던 시대는 종결되었고 민족국가와 민주주의의 결합구조도 의문시된다.
이러한 위기로부터의 출로는 신자유주의적 유연화와 탈규제에서 발견된다. 국제자본으로서는 기존의 민족국가의 통제범위를 넘어서 최고의 이윤을 보장해주는 곳에 투자할 수 있게 되었고, 동시에 전지구적 규모에서 경쟁을 격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그러나 민족국가는 그 자체로 무의미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단지 기능과 형태상의 변화 즉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에서 '국민적 경쟁국가로 전환된 것일 뿐이다. 이런 국가의 "기능논리는 약간 과장해서 말한다면 모든 사회분야들을 동원해 사회가 오직 지구적 경쟁력이라는 목표로 향해 매진하게 하는 것인데, 지구적 경쟁력의 기초는 바로 국제적으로 더욱 유연해지고 있는 자본을 위한 '생산입지'의 이윤성이다. 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인구 전체를 '경제전쟁'에 동원하는 일이다. 이 전쟁에서는 민족 자체가 자본주의적 기업으로 파악될 때 승리할 가능성이 커진다. 즉 위계적인 구조를 갖추고, 하나의 경제목표를 지향하며, 단일한 이윤중앙부에 소속되어, 매끈하고 효율적으로 기능하며, 권위주의적으로 지휘되고, 핵심 종업원층과 주변 종업원층, 제한된 공동결정권, 충직한 기술 혁신팀, 생산성팀, 품질관리팀 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경쟁격화와 자본의 유연성 증대로 말미암아 모든 국가의 최대과제는 자본에게 최대한의 가치증식조건을 보장해주는 것이고 이것이 이른바 '생산입지정책'이다,
민족국가와 국제 정치체제의 변화에 직면해 히르쉬는 민주주의문제가 새롭게 제기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지구화와 함께 포드주의적 자본주의에서 그 정점에 도달한 민족국가와 민주주의의 결합구조가 붕괴되기 시작한다. '인민'과 '정부'의 조응 즉 상대적으로 통일된 인민과 민주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통제가능한 정부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이제 환상에 불과하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로서 민족국가를 넘어서는 세계정부 같은 그 어떤 정치제도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는 여전히 민주적 자결권이 최소한 맹아적이나마 전개될 수 있고, 전지구적으로 지배하는 경제메카니즘에 대항할 수 있는 여전히 의미있는 지형이다. 그렇지만 국가라는 정치형태는 대내외적으로 배제, 차별 그리고 폭력과 분리되지 않는다. 이러한 딜레마는 히르쉬에 따르면 민주적 정치과정을 내용적, 절차적으로 국가적인 제도시스템에서 일국적 및 국제적 차원으로 대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해결가능하다.
모두가 패자가 될 일뿐인 경쟁국가의 무한 경쟁에서 자유, 복지,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등과 같은 가치는 전지구적으로 쟁취되어야 한다. 여기서 히르쉬는 있을 수 있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비정부조직(NGO)과 그것으로 구성되는 '국제적 시민사회'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렇게 주장한다. "일국적 및 국제적 차원에서 국가구조에 대항하는 자율적 자치조직과 협력의 원칙이야말로 현대 민주정치의 결정적 단초이다. 이를 통해서만이 인권을 국가주의적 제약으로부터 점진적으로 분리해 내고, 즉 민족국가와 '시민'의 역사적 연관을 완화할 가능성이 열린다. 문화적 차이와 지역적, 사회적 특수성의 보장과 보호는 민족국가적 지배관계를 설사 철폐할 수 없다 하더라도, 제한하고 상대화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4. 대안은 있는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대한 대안은 다수의 논자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논의되어 왔다. 일단 그 가운데 이글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전략 논의를 1) R. Cox 의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론', 2) 사회민주주의적 지구화낙관론 3) '남(南)'의 시각 4) 맑스주의적 좌파를 포함하는 '신사회계약(new social contract)론'으로 나누어 살펴보겠다.

4.1. R. Cox 의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론'

R 콕스는 잘 알려진 그의 저서 {생산, 권력, 세계질서}(1987)라는 저서에서 지구화의 결과를 "국가의 국제화"에서 찾으면서 그것이 국내적으로는 2차대전 이후 노동과 복지국가간의 타협구조를 국제적으로는 국가이익과 전지구적 질서를 매개하는 타협구조를 해체시켰음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의 글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사실상 전지구적 경제에 대한 그 어떤 명시적인 정치 도, 권위구조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독되어야 될 무엇, 불어로 성운(星雲, nebuleuse) 또는 '정부없는 통제체제 (governance without goverment)'개념에 의해 기술될 수 있는 무엇은 존재한다. 전지구적 경제의 공식적인 보호자들간에 초민족국가적인 합의과정이 존재한다. ... 이러한 정책에 대한 영향력의 집중이 개별국가의 정부에 미치는 충격을 국가의 국제화라고 부를 수 있다. 그것의 공통적인 모습은 국가의 경제적 관행과 정책을 전지구적 경제의 요구에 맞도록 조정하는 에이젼시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외부의 교란으로부터 국내 복지를 방어하기 위한 요새로 행동해왔던 국가는 전지구적 경제에서 각국 경제로의 전감대(transmission belt)가 되었다."
콕스는 전지구적 경제에 조응하는 국가형태를 '초자유주의적 국가 (hyperliberal state)'라 부르고, 이것을 자신이 말하는 '국가자본주의' 모델에 대응시킨다. "국가자본주의적 형태는 한편으로 경쟁에 있어 효율적인 세계시장지향적 부문과 다른 한편으로 보호받는 복지부문의 이원주의를 포함하고 있다. 전자의 성공이 후자의 자원을 제공해야만 한다. 후자에 함축된 연대감이 전자에 추진력과 정당성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자본주의는 1970년대의 경제 및 재정위기에 의해 갈등에 처하게 되고, 초자유주의적 정책에 의해, 그 세자리즘적 양극화에 의해 동결되어 버린 축적과 정당성을 화해시킬 수단을 제안하다." 콕스의 이러한 국가자본주의적 접근은 말하자면 세계시장을 "발전의 최종적 규정자(determinant)"로 승인하고 여기에서의 경쟁력제고와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그러한 국가의 역할을 도출하기 위한 전략이다. 여기서 국가는 첫째,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강화를 위해 국가보조금이나 특히 지식산업에 대한 기술혁신지원을 위해 개입해야만 하며 둘째, 경쟁에서 밀려난 부문에 대한 적극적 지원을 위해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콕스는 또한 이러한 국가자본주의의 "가장 급진적 형태"는 "세계시장경쟁에서의 자본주의적 성공에 의해 유지되는 내부 사회주의"의 지향을 갖는다고 한다. 곧 "자본주의발전에 의존적인 사회주의"이다. 그는 이것이 신자유주의뿐만 아니라 예를 들어 칠레의 아옌데정권과 같은 방어적이며 의사 아우타르키적 사회주의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4.2. 사회민주주의적 지구화낙관론

L. Panitch가 '진보적 경쟁력전략(progressive competitiveness strategy)'라 불렀던 콕스의 다분히 절충주의적인 대안과 더불어 사회민주주의적, 보다 정확히 표현해 신사회민주주의적 현대화전략 또는 '사회자유주의적(sozial-liberal)' 대안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또 다른 정치적 옵션을 표현하고 있다. 현재 서구 사회민주주의의 다수파의 지지를 받고 있는 지구화낙관론은 지구화가 단순히 멈출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활용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보호주의는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적절치 못한 대응으로 분류되고,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사회민주주의의 접속가능성에 주목한다. 사회자유주의적 입장은 민족국가의 정책에 대한 평가에서 신자유주의와는 분명 구분되는 전략이다.
이러한 사민주의적 지구화낙관론에 따르자면 국제화된 경제구조속에서, 특히 경제인프라에 대한 산업정책과 사회정책을 통한 개별 국가의 경제 개입으로 국민경제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현대화된' 경제 및 사회정책의 최적의 담장자가 사회민주주의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들 사민주의 현대화론자에게 국가간의 경쟁을 저지할 수 있는 메카니즘이 바로 '국제협력'이다. 이 국제협력은 말하자면 먼저 보호무역주의, 시장기능을 왜곡시킬 지도 모를 초민족국가적 통합 그리고 탈규제에 대한 대안이 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에게 시장확대와 탈규제의 매체가되는 국제협력을 통해 신사민주의자들은 참여 국가가 무한경쟁을 포기하고 개별국가에게 사회 및 산업정책을 통한 고도의 복지수준을 갖춘 국제경쟁력을 창출해 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사회민주주의 현대화노선에 입각해 독일의 전재무장관 O. 라퐁텐은 기존 유럽의 보수정권하에서 추진되어온 '생산입지경쟁'을 "민족국가에 대한 실물경제적 평가절하 경주"라 평가하면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이 노선이 덤핑경쟁과 기업의 국제경쟁을 방해하였고, 최적의 자원배원을 저해하며 전체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생태적 기초를 파괴하였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국제화된 경제와 여전히 민족국가적 사고에 머물러 있는 정치와의 모순속에서 요구되는 '새로운 사고'는 무엇인가? "우리는 경제의 국제화에 새로운 정치적 해답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새로운 정치적 해답이 국제협력이다." 즉 국제협력을 통해 지구화된 시장에 정치적인 규제틀을 결합하자는 것이 주장의 요지이다. 이것이야말로 지구화로 인한 문제들을 극복할 방안이 되는 것이다. 계속해서 라퐁텐은 국제협력이 집중해야할 정책내용으로 다음을 제시하고 있다. 1. 환율안정, 2. 금리인하 3. 재정적자감축 4. EU국가간 공동의 최소세율도입과 같은 조세정책 5. 공동의 기술정책 6. 국제 사회헌장 7. 전지구적 환경파괴에 대한 공세.

4.3. 제3세계의 시각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지구화의 충격은 '남'의 국가에서 그 강도를 달리한다. 특히 UNDP통계에 따르면 1960년대비 1993년 북과 남의 일인당 국민소득 격차는 $5,700에서 $ 15,400으로 3배가까이 되고, 아프리카 20개국의 경우 일인당 국민소득은 20년전보다 낮은 수준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지구화는 '빈곤의 세계화'를 수반한다. 그렇다면 여기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남'은 지구화과정과 관련 최소한 2가지 일을 할 수가 있다. 첫째 계속되는 지구화과정에로의 통합 속도를 늦추는 일, 둘째 자신의 지역공동체에 기반한 생산과 마케팅을 강화하고 다국적기업의 수중에서 벗어나 자기 지역의 자원을 통제하는 일". 아프리카의 경우 해당 국가가 지구적 자본으로부터 자국 이해를 방어하기에는 여전히 허약하고, 이른바 NGO 역시 자본주도하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를 방어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그러므로 보통사람들을 조직화 해내는 일이 관건적인 과제로 제기된다.
마찬가지로 S. Amin 역시 남의 시선으로 지구화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위기관리의 수단으로 제시된 자본주의적 지구화는 그 자체로 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없다. 역으로 지구화에 대한 '거부'도 적절한 대응이 되지는 못한다. ... 내가 정의한 것과 같은 '분리(delinking)'는 이러한 몽상적이며 부정적인 거부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지구화의 조건을 변경시킬 수 있는 적극적인 개입에 의해 가능하다. 나로서 지구화는 아우타르키나 문화주의적 대응을 통해 지울 수 있는 현대사의 사실이 아니라 긍정적인 사실, 역사에서의 진보이다." 나아가 "[대안이 없다라는 - 인용자 ] 그러한 오만과 기만은 다른 유형의 지구화 즉 약자가 강자에게 일방적으로 조종되는 것을 진정으로 양자적인 구조적 조정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투쟁의 객관적 필연성을 배제한다." 아민은 자본주의적 지구화에 대한 저항의 주체로 "민주적 틀속에서 활동하는 민족적, 인민적 동맹"의 중요성을 지적하면서, 새로운 사회주의로 향하는 과정에서 거쳐야할 단계로 "인민적, 민족적 구성, 지역화, 분리와 다중심 세계의 건설"을 언급하고 있다.

4.4. '신사회계약 (new social contract)론'

지구화는 2차대전이후부터 8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서구자본주의 사회를 규정해 온 계급타협의 구조를 동요시켰고 이로서 현대 민주주의의 정당성자원에 심각한 위협으로 되고 있다. 사회적 불평등과 자본의 파괴력에 대한 억지력의 중심으로 기능해 온 민족국가의 주권은 안팎으로 심하게 부식되고 있으며, 사회적 해체와 파편화 과정에 속수무책인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인식은 그간 서구사회를 받쳐온 낡은 "사회계약"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고, 이러한 서구 사회 자체에 대한 계약론적 문제화는 "신사회계약"에 대한 지극히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논의를 촉발시켰다. 다시 말해 국가, 자본, 노동간에 새로운 관계설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양한 사회내 이해집단을 수취인으로 호명하면서 전개된 신사회계약론이 대상으로 하는 문제영역은 아래와 같다. 1. 사회적, 경제적 발전논리의 유형, 즉 지금까지의 자본주의적 성장유형은 포괄적인 사고전환과 축적의 재편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2. 민족국가의 무기력과 관련해 민족국가차원의 정치의 기능과 영역에 대한 것으로 여기에는 국제경제관계를 규제할 새로운 레짐의 형성을 위한 협정도 포함된다. 3. 신경영에 따른 노동력방출과 물질적 생산을 위한 사회적 조건의 정치적 형성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로 사적으로 생산된 부에서 국가가 차지하는 몫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 이어서 A. 리피에츠는 '대타협'과 미래의 대안적 발전모델의 구성요소로 1. 새로운 임금협정, 2. 복지국가에서 복지공동체로의 발전 3. 새로운 세계질서 4. 지역차원의 발전대안을 제시한다. 결국 신사회계약에 대한 요구는 총체적 난국에 직면한 선진자본주의 사회의 새로운 판짜기 작업의 필요성에 대한 지적에 다름아니다. 시공적 임계점에 접근한 경제의 논리와 주변으로 내몰린 사회간의 대회전으로 21세기는 또 한번의 대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의 구성원칙에 대한 재협상과정에서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를 대신해 새로운 '민주적 지구화'가 관철될 수 있을 지 여부는 지구화의 '패자'들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조직해 내는 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5. 맺는 말

우리가 신자유주의를 우려하는 가장 큰 이유가운데 하나는, 그것의 정치적 결과와 관련해서이다. 오래전 독일의 정치학자 F. 노이만이 지적한 것처럼 "경제적 자유주의는 어떤 정치 이론과도 결혼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는 자신의 이윤동기가 충족되기만 한다면, 그 정치적 형태에 대해 본질적으로 무관심하다. 그런 점에서 장기간에 걸친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의 결과,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탈민주주의적(postdemokratisch) 자유주의"의 출현가능성에 대한 G. 써본의 경고는 매우 설득력있게 들린다. 만일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헤게모니는 이제 탈민주화된 즉 민주주의없는 자유주의로서, 삶의 모든 부면을 무한 경쟁의 졍글로 끌어 들여 약육강식과 불평등을 강제하는 거대한 억압기제만을 의미할 뿐이다. 이 우려는 이미 현실로 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4인가구 기준 월소득 85만8천원 미만 빈곤선에 못미치는 노동자가구가 97년 3.0%에서, 98년 6.8% 그리고 99년 1/4분기 6.9%로 2배이상 급증하고 있다. 더군다나 이 보고서는 조사대상에서 제외된 장기실직자등 실업자가구를 포함할 경우 빈곤층의 비중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또한 99년 "1분기의 경우 상위 20% 소득계층의 평균소득이 전분기보다 9.2%증가한 반면, 하위 20% 소득계층은 3.3% 감소" 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된 이래, 사회적 불평등이 현저하게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알려진 것처럼 '국민의 정부'는 - 이름에 걸맞지 않게- 전국적인 기반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 지역에 한정된 정권의 기반을 전국적으로 확장하기 위한 방도는, 타 지역의 보수정치인 몇몇과의 합종연횡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사회적 기초를 공고히 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러나 그간의 경험은 이와는 정반대로, 국민의 정부가 오히려 정권의 사회적 기반을 와해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하나의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시나리오를 상정해 보자. 점차 협소해 진 사회적 기반위에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지역적 기반을 강화, 이를 보전하는 방법외에는 없다. 이는 보수적 지역주의가 오히려 강화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됨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 정부가 국내외 초국적 자본의 압력에 대해, '필터' 기능을 포기하고, 오히려 현지 '전감대'로서 여기에 단순 순치되는 노선을 선택할 때, 아래로부터의 저항과 항의는 거의 필연적이다. 이 경우 정권의 사회적 기반은 고사하고, 그 지역적 기반마저 잠식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결국 정권 자체에 대한 회의와 나아가 정당성 위기로 연결될 것이다. 정당성 위기상황에서 정치권력이 선호하는 옵션은 대개 억압적 수단이었다. 이는 한국 신생 민주주의의 사실상의 좌절을 의미한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반대하는 투쟁에 있어 국가 자체는 - 비록 종속적 경쟁국가라는 그 현재적 형태에도 불구하고 - 여전히 유효하고 의미있는 지형이다. 그렇다고 할 때, 민중/(진보적) 시민부문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어떤 최고점에 달했을 때, 우리가 국민의 정부에 현재로서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는 '마하티르±α'일것으로 보인다. 그 이상은 무망하리라 전망된다. 그렇지만 만일 우리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좀 더 새로운 대안을 원한다면, 그것은 적어도 과거의 중상주의적 발전국가와는 다른 새로운 국가형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오직 그 때만이, 아래로부터의 사회운동이 현존하는 자본주의 국가권력을 오히려 강화해 주고,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이 이미 지구적으로 기능하는 국내의 독점재벌을 도와주는 어처구니 없는 역설을 피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한 전략적 준거점이 바로 정치, 생산, 투자의 - 사유화가 아닌 - '사회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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