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시사

'아시아적 가치': 신자유주의의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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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연
작성일
2000-10-13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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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적 가치': 신자유주의의 대안?


박 은 홍(한국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



1. 문제의 제기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가 쟁점이 되고 있다. '아시아적 가치'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아시아 고유의 문화에 걸맞는 정치, 경제제도를 정당화하고자 한다. 특히 '아시아적 가치'가 옹호하는 정치제도로서의 '아시아적 민주주의'(Asian-Style Democracy)를 둘러싼 논쟁은 이미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다. '아시아적 가치' 는 민주주의란 문화구속적, 역사구속적이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민주주의가 가능할 수 있으며, 따라서 서구식 민주주의를 세계 표준(global standard)이라고 주장하는 서구의 태도, 특히 미국의 입장은 패권적, 제국주의적 표현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시아적 가치'는 외양상 반서구, 반미, 반패권의 외향을 띄고 있다.
반면 '아시아적 가치' 반대론은 '아시아적 가치' 그 자체를 권위주의와 독재를 정당화하고자 하는 아시아 정부의 권력 이데올로기로 간주한다.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발상이 주로 국내 반정부세력의 저항으로 정정 불안을 겪고 있고 서구에 의해 '독재정부'로 낙인찍혀 있는 아시아 정부에 의해 주장되거나 지지되어 왔다는 점에서 '아시아적 가치'에는 국내에서의 정통성 부재의 문제를 반(反) 서방의 담론을 통해 은폐하고자 하는 권력의 정략적 성격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시아적 가치'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 아시아를 묘사했던 방식처럼 획일적이며 부정적으로 아시아를 묘사하는 아시아의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으로 폄하되기도 한다.
또다른 '아시아적 가치' 반대론은 '아시아적 가치'가 일부 아시아정부들 사이에서 동의를 얻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이는 어디까지나 가공된 개념임을 강조한다. '아시아'란 지리적 표현일 뿐이며, 아시아 자체가 매우 복잡한 문화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만큼 그들의 가치도 다양하며 여기에 서구가치까지 이미 침투해 들어와 있기 때문에 아시아내에서 공통적이면서 단일한 가치체계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아시아적 가치'는 1960년대∼80년대에 일본을 필두로 하여 동아시아신흥공업국들의 고속성장이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기 시작하면서 담론구조를 형성해내기 시작하였다. 압축성장의 신화를 낳았으면서도 적어도 다른 개도국들에 비해 '평등을 동반한 성장'에 성공한 것으로 비추어진 동아시아였기에 급기야는 서구에서조차 '동아시아 모델'과 아시아의 호랑이들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1990년대초에 들어와 '종이호랑이론'이 아시아 예찬론에 찬물을 끼얹기도 하였지만 적어도 1997년 동아시아 위기가 있기 전까지 '아시아적 방식'(Asian way)은 '동방불패'의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아시아적 가치'는 바로 고속성장에 성공한 동아시아 모델에 대한 문화주의적 해석의 결정판이라고 볼 수 있다(Kahn 1979, Vogel 1979, Hofheinz and Calder 1982). 이때의 '아시아적 가치'는 개인보다는 집단, 변화보다는 안정, 그리고 경쟁보다는 합의를 중시하는 공동체적 문화를 그 속성으로 한다. '권력교환없는 민주주의'(democracy without turnover)로서 후원-수혜(patron-client) 관계를 특징으로 하는 '아시아적 민주주의'도 공동체의 한 표현으로서 정당화된다. 아시아 가운데 자유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데 비교적 성공한 일본의 경우도 관료-자민당-기업 이들 3자간의 동맹으로 이루어지는 '온건한 권위주의'(Fukuyama 1995)로 보는 시각이 있을 정도로 아시아 사회에서 가산제(patrimonialism)의 생명력은 무시할 수 없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싱가포르의 전 수상 이광요나 말레이시아 수상 마하티르는 '아시아적 가치'를 서구의 규범보다 더 우월한 사회적 대안으로 주장하면서 서구 민주주의를 세계 표준으로 삼고 이를 비서구사회에 이식시키려고 하는 서구의 태도를 비난한다. '아시아적 가치'를 옹호하는 목소리는 1997년 동아시아 통화위기 와중에서 미국과 서방 금융자본에 대한 마하티르 수상의 공공연한 비난으로 보다 많은 관심을 끌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동아시아 위기의 원인을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와 '아시아적 가치'에서 찾고자 하는 서구의 목소리가 지배하는 와중에서 마하티르정부를 비롯하여 '아시아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옹호해온 싱가포르 정부 등은 금융세계화를 주도해온 신자유주의에 기민하게 대응함으로써 비교우위의 금융, 외환관리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이 논문은 1990년대 이후 아시아적 가치를 둘러싼 논쟁이 국제사회에 주목을 받게 되는 배경과 아시아적 가치의 이론적 맥락을 검토해보고 이 논의속에서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될만한 가치를 이끌어내 수 있을 것인지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2. 미국의 '인권외교'와 '아시아적 가치'

냉전이 끝나면서 미국은 아시아에 대한 새로운 정책을 구사하기 시작하였다. 양극체제하에서 아시아국가들은 '빨갱이'와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되고 베트남, 중국, 북한과 같은 '빨갱이' 국가들은 봉쇄대상이 되었다. 반면 '빨갱이'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국가들은 정치제제와 상관없이 무한정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동구의 이념을 무력화시키는데 성공한 미 외교정책의 주요 목표는 민주주의의 영역을 확장하고 인권을 신장시키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들은 냉전 시기에도 강조되었지만 권력정치에 의해 희석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일부 아시아정부들은 인권에 대한 미국의 보편주의적 주장을 미국의 군사력 우위를 토대로 한 이데올로기적 공세로, 그리고 미국의 지배를 다지려는 정치적 공세로 인식하였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시각에서 보자면, 탈냉전 이후 미국의 패권지향적 시각은 프란시스 후쿠야마와 사무엘 헌팅톤의 저작으로 정리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공산주의가 붕괴되자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을 선언하고 나섰다. 그의 주장은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만한 대전환의 시기는 더 이상 오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의 주장은 사상과 이념을 둘러싼 국제적 갈등은 온건한 자유민주주의를 이념적 수단으로 하여 평정될 것이라는 의미였다.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헌팅톤은 공산주의의 붕괴를 계기로 국제적 갈등은 이데올로기가 아닌 문화와 문명을 둘러싸고 전개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중동과 파키스탄에 대한 중국의 무기거래에 착안하여 서구문명에 대항하는 유교문명과 이슬람문명간의 동맹에 대한 반격을 선동적인 수준에서 제기하고 나섰다. 그는 "이슬람은 피묻은 경계선을 가지고 있다."라는 문구를 인용하면서 이슬람과 전투성간에 상관관계가 높음을 정당화하고 이에 대한 봉쇄의 절박함을 제기하였다(헌팅톤 1996, 350-351). 헌팅톤의 기본 입장은 미국이 그 어떤 나라보다 많은 영향을 미치는 세계와 달리 미국이 일등적 지위를 구가하지 않는 세계는 더 많은 폭력과 무질서 그리고 더 적은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이 존재하는 세계가 될 것이라는 데에 있다. 그는 국제적으로 미국이 일등적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미국의 복지와 안보에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자유, 민주주의, 개방경제 그리고 국제질서에 핵심적 일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무엘 헌팅톤의 주장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에 의해서도 지지된다(브레진스키 1997, 52-53).
흥미로운 것은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과 헌팅톤의 '문명의 충돌'이 대립되는 듯하지만, 사실상 이들의 이론은 상호보완적이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후쿠야마 역시 종교나 민족주의가 결정적인 지적 대안일 수는 없지만 자유주의 패러다임의 대신해서 이들 가치가 존속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한다. 반면 헌팅톤은 서구에 반대하는 비서구의 패러다임들이 동맹을 이루어 서구 패러다임에 저항하거나 우위를 누리려는 시도에 결연히 맞설 것을 주장한다. 결국 후쿠야마가 서구의 세속적 자유주의의 규범만이 유일하게 존중될만한 사회이론이라고 주장하였다면, 헌팅톤의 '문명의 충돌'은 '역사의 종언'이 제기한 서구 자유주의 지상론의 가정을 토대로 서구와 규범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 세력과의 대결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주장은 냉전의 종언이라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면서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을 정치학적으로, 과거의 냉전을 문화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는 셈이다(강정인 2000, 502). 그리고 이를 반영하듯 미 행정부는 서구적 가치와 그것의 지배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방도로 인권 개념을 쟁점화시켰던 것이다.
이렇듯 탈냉전과 함께 미 외교정책의 강조점이 민주주의와 인권으로 이동되면서 '빨갱이'냐 아니냐를 가리는 단순한 구분법은 유효성이 떨어지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정당 활동을 금지하고 평화적인 시위자들을 구금하고 '민주주의의'의 원리를 신봉하는 인사들을 가해하였다는 이유로 미얀마에 대한 투자를 미 국무성이 금지하고 나선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인권외교를 천명하고 나선 미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하던 1993년 태국에 모인 아시아국가들이 서명한 '방콕선언'은 전세계에서의 자유민주주의의 증진을 선언하고 나선 클린턴 행정부에 대한 '아시아적 가치' 진영의 공식적인 반격이었다. 제네바 국제인권대회에 앞서 모인 아시아 회원국들은 이 선언을 통해 인권은 문화, 역사, 경제발전 수준 등에 제약을 받는 까닭으로, 서방은 자신의 견해를 다른 나라에 강요할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이어 1996년 마하티르 총리는 유럽 정상들에게 "아시아적 가치는 보편의 가치이며 유럽의 가치는 유럽의 가치다."라는 선언을 하였다. 같은 해 그는 도쿄에서 열린 포럼에서 미·일 안보조약이 상정하는 공동의 적의 정체가 무엇인지 밝히라고 요구하면서 미·일 안보조약의 필요성에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했고, 말레이시아는 동맹국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1997년 1월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싱가포르의 고척동 수상도 "싱가포르인들은 서구형 민주주의와 자유를 거부한다"는 선언을 하고 나왔다.
문제는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단언한 프란시스 후쿠야마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이를테면 중국,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과 같은 아시아국들내에서도 정부기구(GO) 수준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아시아의 문화에 잘 맞지 않고 근대화를 방해한다고 보는 시각이 건재하고 있었다. 싱가포르의 키소 마부바니 역시 "러시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민주주의는 변화에 방해물이 될 수 있으며, 심지어 빠른 경제발전을 가로막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민주주의는 서구형 문명화 과정에서 나온 독특한 개념이기 때문에 아시아 사회가 이와 유사한 민주적 제도를 모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민주적 원리'를 강조하는 미 외교정책의 잣대가 갖고 있는 문제점도 지적한다. 우선 미 외교정책은 개별 국가들의 정치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사회, 경제적 변수들을 단순화하거나 무시한다는 것이다. 미얀마의 경우 국내정치에 미친 식민지적, 전제군주적 요인들과 함께 급박한 경제적 상황의 돌파와 질서확립을 위해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권위주의정부의 필요성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3년 이웃 캄보디아에서 유엔과도정부(UNTAC)에 의해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린 뒤 어느 정도의 질서를 찾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시점에서 미얀마는 민주주의를 보다 신중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1997년 야당 정치인의 피폭 사건이 있은 이후 캄보디아의 민주주의가 파국적 양상을 띠고 있는 것도 자유민주주의가 많은 사회경제적 문제를 안고 있는 아시아 개도국들에게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로버트 핀크니는 체제유형과 관련된 가장 잘못된 발상은 자유민주주의만으로 사회,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가정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극도로 취약한 미얀마 경제상황에서 미국은 많은 이들이 안정된 민주적 제도의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사회경제적 안정을 오히려 침해하고 있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나라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민주주의 그 자체만을 제도화하려는 것의 문제점은 이미 러시아, 동구에서도 드러났다고 본다. 그리고 자유 민주주의의 미덕을 홍보하는 미국의 레토릭에 대한 불신은 아시아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 개도국에 걸쳐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 브랜드의 민주주의를 수출하려는 미국의 의도에 아시아국가들이 저항하거나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컨대 후쿠야마 등과 같이 미국의 직접적 영향력이 없었다면 필리핀의 민주화가 가능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보는 서구적 시각이 있다면, 미얀마에 대한 미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동남아국가들이 미얀마를 아세안에 가입시키기로 한 것은 서구적 가치를 보편적 가치로 주장하는 미국에 대한 아시아의 반감을 의미했다.
특히 중국을 포함한 아세안의 정치 지도자들은 자유민주주의가 이 지역의 문화나 역사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자면 자유민주주의는 아나키적 속성을 지니며 사회질서가 붕괴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증후는 서구의 사회병리 현상으로서 이를 피하기 위한 방도는 개인적 자유보다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아시아적 가치'를 수용하고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부의 존재이유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특히 중국 주석 장쩌민도 1995년 유엔 연설에서 국가주권의 신성함을 거론하면서 어떠한 나라도 다른 나라의 내정에 건섭하거나 자신의 의사를 타국에 강요할 수 없음을 거론하였다. 그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을 겨냥하여 일부 강대국들이 종종 '자유', '민주주의', '인권' 등을 빌미로 약소국들의 내정에 간섭함으로써 이들 국가내의 사회적 신뢰를 훼손해왔으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세계가 평화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주요한 요인들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장쩌민의 주장은 일부 아시아 정부들에게도 공감을 얻었다.
헌팅톤은 외국 문명에 특정 문화나 이데올로기가 받아드려지려면 물질적 성공과 그 영향력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Huntington 1991). 때문에 사실상 <문명의 충돌>에서의 문화결정론적 시각은 그의 근대화론과도 문화의 동태성을 주장하던 그의 기존 주장과 배치되고 있는 모순을 안고 있다. 그가 기존의 논리와 의 모순을 피하려면 개도국에서의 자유민주주의의 제도화를 위해 장기적 안목에서 '인권외교'가 아닌 '원조외교'를 미 행정부에 권고해야 한다. 자유 민주주의가 비서구사회에 받아드려지려면 공리주의적 목표를 달성해야하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한 필요 조건으로서의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의 목적이 아닌 수단적 가치일뿐이다. 이를테면 싱가포르 수상 고척동은 싱가포르 정치체제의 유용성을 그것의 효과성, 공정성, 복지 증진력에서 찾았다. 이들은 구 소련과 동구의 공산주의형 민주주의가 실패한 원인은 그것이 숭고한 이념을 결여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재화 생산에 실패하였기 때문이었음을 환기시킨다.
그러나 동아시아를 겨냥한 미국의 '인권외교'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계기로 세계 표준의 정치모델로 급부상하였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동아시아의 저항이 신자유주의를 견제하는 전선을 유일하게 치고 있었다면 1997년 아시아 시장의 몰락으로 미국의 자유시장 자본주의, 신자유주의가 세계 표준의 경제모델로 정당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3. 자유민주주의와 '아시아적 가치'

아시아에 내재하는 일관된 가치구조를 부정하는 서구의 논평자들은 억압적 정부로부터 모든 사람들을 해방시킬 수 있는 보편적 열망으로서의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한다. 인류 보편사의 지향을 자유 민주주의로 정의내린 후쿠야마의 명제는 이를 대표한다. <역사의 종언>에서 후쿠야마는 소련과 전세계 권위주의 정부의 붕괴현상이 자유 민주주의만이 지역과 문화를 초월하는 유일한 이념임을 보여준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결정론적 역사관에 대한 아시아의 대응 역시 만만치 않다.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수상은 "아시아는 비견할 수 없는 역사적 웅장함을 만들어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가치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경우 우리는 또다시 유럽의 지배를 받는 일이 없을 것이다."라는 말로 자유민주주의 지상주의에 반격을 가한다.
피트 맹에 따르자면 서구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아시아의 반대는 동일한 서구의 반(反)자유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시아 지도자들은 아시아적 가치가 그들을 서구사회를 병들게 만든 여러 사회적 병리와 부패로부터 그들을 보호하였고 빠른 경제발전을 이루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서구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반대가 서구 문명 그 자체에 대한 공격이 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서구 그 내부에 반(反) 자유주의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서구에 대한 아시아의 반대를 민주적 가치에 대한 침해로 보아서도 안된다. '아시아적 가치'를 옹호하는 논의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려는 노력일 뿐이기 때문이다.
피트 맹에 따르자면, 서구 자유민주주의가 유럽과 북미의 독특한 역사적 산물이긴 하지만 아시아 일각에서 민주주의는 본래적으로 서구적이며, 문화적으로 아시아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역사는 문명화와 함께 외국의 영향력과 문화에 동화되어온 것이 근대화의 과정이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1860년대∼70년대에 걸쳐 중국에서는 동치중흥이 있었고 일본에서는 명치유신이 있었다. 양대 개혁운동을 통해 양국은 서구의 문물을 토착 문화에 빨리 흡수시켜 나갔다. 모택동 역시 이와 유사하게 서구 맑시즘을 동양사회에 적용시키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서구 문명의 산물 중의 하나인 맑시즘이 모택동에게 매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실용적이며 합리적인 측면 때문이었다. 모택동 역시 국제적 맑시즘은 각국의 상황에 맞고 민족주의적 형태를 띨 때만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다시말해 그 역시 다른 아시아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서구 사상이 합리적이고 유용성이 있는 한 기꺼이 이를 문화적,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여 수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아시아의 민주화 역시 민주주의가 효과적인 정치 시스템일 수 있으며, 다양한 아시아 사회에 맞도록 변용될 수 있을만큼 유연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때 성취될 수 있다(Peet Meng 2000, 6).
피트 맹은 자유민주주의와 '아시아적 가치' 양자를 아우를 수 있는 중간지대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민주주의란 가치중립적 의미에서 정치 지도자를 선택하는 절차이다. 데이비드 앱터의 표현을 빌리자면 민주주의란 '확정되지 않은 목표물'이다. 때문에 민주주의는 특정 사회, 혹은 특정 부류의 대중이 어떠한 가치구조를 만족스러워하는지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정치적 틀을 제공할 뿐이다. 그는 이러한 결정이 서구나 동양에 의해 미리 결정될 수는 없고, 각국의 독특한 역사적, 사회적, 경제적 조건을 고려한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이지도, 비자유주의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이들의 논리에 따르자면, '유교 민주주의'나 '이슬람 민주주의'를 형용모순으로 보는 사무엘 헌팅톤의 주장은 기각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절차적 민주주의의 반대자들은 언론, 결사의 자유 등과 같은 자유주의적 조건이 없이는 민주주의가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트 맹은 민주화 그 자체만으로 인권 존중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보다 극단적인 경우 민주적 선거는 비자유주의적 결과를 낳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 민주주의만이 민주주의의 유일한 형태라고 주장하는 서구 지도자들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며 특히 자유주의의 역사 특수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현대 민주주의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시아의 인권 지수에 대한 개선 요구를 보다 많은 민주화에 대한 요구와 혼동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이제 논쟁의 핵심은 정부가 선출직으로 구성되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있지 않다고 본다. 사실상 대부분의 국가들 사이에는 선거를 통해 국가를 구성할 수 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싱가포르의 유엔대사 빌라하리 카우시칸 역시 선거 민주주의가 현재로서는 보편화되었음을 인정한다. 오늘날 극히 소수의 정부만이 신정(神政), 프로레타리아트의 의사, 그리고 여타의 '민주적 원리' 등에 의존하여 그들의 통치를 정당화하고자 하기 때문에, 그리고 대부분의 아시아국가들에서도 선거민주주의가 수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아세안국가들이 캄보디아에서 유엔과도정부의 관리하에 선거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것을 지지한 것도 이를 웅변해준다. 그렇지만 일부 아시아국가들의 경우 언론의 자유 등과 같은 서구형 자유민주주의의 조건들은 아시아에 걸맞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을 민주주의에 대한 거부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자유주의에 대한 거부라는 것이다(Peet Meng 2000, 4).
피트 맹에 따르자면 자유주의란 광범위한 의미에서 개인의 이해가 대규모 사회집단의 요구와 충돌하게 될 때 이를 보호해주어야 한다는 신념체계를 가르킨다. 따라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매우 밀접하면서도 두 개의 독립적인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때 자유주의는 유일신 종교에 해당하는 기독교와 유대교의 산물이며, 서구 문화의 형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정리한다. 현세에 있어서의 지위와 무관하게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을 승인한 자연법에 대한 기독교적 신념이 바로 개인의 생명, 자유 등과 같은 행복추구권에 대한 보장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양사회에는 자유주의하에서 개인의 우위성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이와 유사한 지적, 종교적 전통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슬람과 유교에는 공동체에 대한 개인의 의무를 매우 강조하였는데 이는 가부장주의로 이어졌기 때문에 자유주의를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서구의 의사는 아시아 국가들에게 별반 의미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서구적 경험에서 연유한 민주주의에 대한 정당화는 아시아에 강제로 이식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피트 맹은 이러한 판단이 아시아 문화의 독특하고 일관된 측면을 보여주는 것인지는 불명료하다고 주장한다. 어떻든 개인의 판단을 신뢰하지 않는 사회는 자유 민주주의의 이상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유의해야할 점은 서구의 지적 전통 가운데에서도 자유주의의 확대를 경계하는 논의도 있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토크빌은 미국에서의 개인주의의 성장과 그에 따른 바림직스럽지 못한 결과를 우려하였다는 것이다. 토크빌이 보수주의적 맥락에서 자유주의의 확대를 경계하였다면 맑시즘은 자유주의에 대한 급진적 비판에 해당하였다. 이는 '1달러 1표'의 민주주의를 포장하고 있는 '1인 1표'의 형식적 민주주의의 급진적 대안을 의미한다. 또한 그것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경제적 민주주의로의 이행전략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경제적 이유뿐만 아니라 정치적 이유에서도 민주주의는 그 존재이유가 허용된다. 이를테면 인민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정치적 공동체에 대한 충정을 제고하기 위해 필요한 것 민주주의라고 주장한 예도 있듯이, 민주주의의 부재는 권력에 대한 사회의 이반을 이끌면서 약한 국민국가를 수반하게 될 것이다. 또한 민주주의는 정치지도자를 교체하고 공공정책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정기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정치적 폭력을 최소화하고 안정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다(Peet Meng 2000, 7).
이때 민주주의를 비민주주의와 구분하기 위해서 일정한 기준이 필요하다. 후쿠야마는 정부가 보통, 평등 선거의 원칙을 지키면서 인민들에게 정기적으로, 비밀투표하에 복수정당이 참여한 선거를 통해 정부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연할 경우 이를 민주주의라고 보았다. 다시말해 민주주의가 평화적인 권력교체를 위해 필요하다면 주기적이면서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는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복수정당제를 전제로 하는 선거의 질적 조건은 선택과 관련된 것이다. 물론 일당제가 정책을 집행하는 데 효과적이며 정통성에 대한 심각한 도전을 받지 않고 인민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인민들의 불만을 앞서 해결해내는 싱가포르의 인민행동당 정부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커다란 불만이 없는 한, 그리고 견실한 지배구조(good governance)가 유지되는 한 인민들이 정치지도부를 교체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인민행동당이 부패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정통성을 상실하게 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효한 선택이 가능하지 않는다면, 평화로운 권력교체는 가능할 수 없게 되고 민주주의는 전복될 것이다. 그렇지만 자크 아딸리가 지적한 바와 같이, 서방과 서방의 지도자임을 자처하는 미국 역시 시장민주주의로서의 자유민주주의 결점을 인식하지 못하게 될 경우 서구문명은 해체되고 종국에는 파멸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Attali 1997). 이는 '잘못된 이분법'(Kausikan 1997, 26)의 펼연적 결과일 것이다.
여하간 '아시아적 가치'와 자유민주주의의 중간지대를 발견하고자 하는 논의들은 아시아가 어떠한 민주주의를 취한다고 하더라도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은 갖추어야 할 것으로 본다. 이를테면 보통선거권이 보장된 가운데 치뤄지는 공정, 자유선거가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자유주의적 가치가 아시아 사회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자유주의적 가치가 이 지역 모든 사회에 급속도로 확대되기를 바래서도 안된다고 피력한다. 다시말해, 에머슨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분명한 상은 없지만, 서로 다른 사회가 개인의 권리와 사회질서 이 양자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에 대한 견해를 서로 달리 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시아적 가치와 서구적 가치를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자유민주주의 이외에도 보다 질서를 강조하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 보다 덜 자유주의적인 민주주의 등 다양한 민주주의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실제로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또한 무엇을 제공하는지를 명확히 하고 이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한 아시아에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전망은 결코 비관적이지 않다. 동양과 서양 사회 내부에서도 각각 의견을 달리하는 주장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자유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아시아인이 있다면, 서구사회의 개인주의를 비판하는 서구인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간지대를 발견하고자 하는 노력은 자유민주주의 역시 자본의 영향력이 과대대표되는 과두정치에 다름 아니며, 따라서 서구 자유민주주의가 보호하는 시장은 노동에게 감옥이라는 찰스 린드블롬의 지적에 보다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은 잘못된 결론이며 자유민주주의를 뛰어넘는 더 많은 역사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Kausikan 1997, 29).


4. 결 론

'아시아적 가치' 담론은 '주변부로부터의 오솔길'(pathways from the periphery)을 빠져나오는데 성공한 아시아 신흥공업국가들의 '경이적인' 경제적 업적을 배경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그동안 동아시아에서 가능할 수 있었던 '압축성장'의 요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검토가 이루어진 바 있다. 이들 연구작업은 크게 국내적 요인을 중시하는 시각과 국외적 요인을 중시하는 시각으로 분류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국내적 시각으로는 '아시아적 가치'라는 문화에 부응한 발전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논의를, 국외적 시각으로는 냉전하에서 반공블록의 안정화 차원에서 미국이 제공한 '자비로운 혜택'을 강조하는 논의를 각각 들 수 있다.
이들 양 시각을 절충해서 보자면 '아시아적 가치'는 탈냉전이라는 새로운 국제환경하에서 미국으로부터의 '자비로운 혜택'의 공급이 중단됨과 동시에 그 수혜자로서 성장을 과시할 수 있었던 일부 동아시아 개도국에 의해 제기된 반(反) 서방 이데올로기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구화(globalization)를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의 지배를, 경제적으로는 시장중심의 영미형 자본주의의 지배를 추동하는 전환의 물결로 보자면, '아시아적 가치'는 미국 중심의 패러다임에 도전하는 반(反) 패권의 이념이다. 이때 주목할 것은 '아시아적 가치'가 미국의 '인권외교', 그리고 '역사의 종언'을 토대로 하는 '문명의 충돌'의 도발을 계기로 부상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시아적 가치'는 팍스 아메리카나 패러다임에 대한 아시아 개도국의 반발이자 도전이다. 무엇보다도 미국과 신자유주의의 공리주의적 시각에 맞설 수 있는 개도국이 이들 동아시아 신흥공업국가들을 제외하고 거의 찾아보기가 든 현실을 고려할 때 '아시아적 가치'의 의미를 쉽사리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아시아적 가치'의 공리주의는 공리주의로서의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아시아적 가치'는 노동과 사회에 대한 통제를 성장과 발전의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업적에 의한 정당화'(performance legitimation)가 권력의 안보 기능을 맡고 있었던 것이다. '아시아적 가치'를 개발독재의 이데올로기일뿐이라고 비난하는 역내(域內) 반정부세력과 국제사회의 시각이 일정하게 설득력을 갖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지구화와 함께 '부르주아민주주의'의 보수화 경향이 지적되고 있는 국내시간속에서, 그리고 개도국에 대한 팍스 아메리카나와 금융자본의 압박이 심화되고 있는 세계시간속에서, '아시아적 가치' 내부에 강대국과 자본 중심의 지구화를 경계하고 이를 견제하는 대항 헤게모니의 측면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대항 헤게모니로서의 '아시아적 가치' 역시 궁지에 몰리고 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계기로 미국의 정치모델로서의 자유민주주의가 세계 표준의 위용을 과시하게 되었다면, 1997년 아시아 시장의 결빙을 계기로 미국의 경제모델로서의 자유방임적 자본주의가 또다시 '동아시아 모델'을 궁지로 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팍스 아메리카나는 정치, 경제를 위시한 모든 영역에서 확고한 지위를 다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적 가치'가 신자유주의의 대안일수는 없다. 이슬람권에서 발견되는 종교근본주의나 유교권에서 발견되는 권위주의적 민족주의가 '시장의 독재'를 대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싱가포르의 '아시아식 민주주의'는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와 거리를 둔 '아시아적 가치'를 제도화하는데 성공하였지만 이들의 실험은 다민족사회의 도시국가라는 특수성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때문에 '아시아적 가치'가 제기한 공리주의의 리얼리즘을 간과하지 않으면서도 수하르토 정부 붕괴 이후의 인도네시아가 보여주듯이 부르주아민주주의로서의 자유민주주의가 수반하는 상대적 개혁성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보다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자본의 투자특권과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는 시장의 폐해를 확대강화해온 지구화의 대안을 조직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현재의 국제사회속에 어떤 정부기구(GO)도 이념적,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구화를 '카지노자본주의'와 '정실자본주의'의 화학적 반응의 제도화로 해석하자면, 이를 전복할 수 있는 '대안의 조직화'는 정부기구(GO)가 아닌 개혁적, 진보적 비정부기구(NGO)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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