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시사

대담 - 신자유주의라는 야만을 넘어서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0-10-02 23:19
조회
943
대담 - 신자유주의라는 야만을 넘어서

A. 캘리니코스/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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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ex Callinicos: 오늘날 자본주의는 통제할 수 없이 질주하는 기차입니다. 자본주의의 파괴적 행동을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맑스주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효과적으로 조직하여 사회주의를 실천해나가야 합니다.

1950년 짐바브웨 출생. 영국으로 이주하여 옥스포드대에서 박사학위 받음. 현재 요크대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중앙위원으로 활동. 주요 저서로 『맑스의 혁명적 사상』 『포스트모더니즘 비판』 『뜨로즈끼주의』 『사회이론』 등이 있음.

- 정성진: 세계경제위기에 큰 책임이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신자유주의는 수세에 몰리고 있습니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민중투쟁이 고양되고 유럽에서 사회민주당이 득세하는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경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주요 논문으로 「세계경제위기와 맑스주의 공황론」 「1848년 '공산주의당 선언'의 현재성」 「뜨로쯔끼의 생애와 사상」, 저서로 『한국경제에서의 마르크스비율의 분석』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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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세계경제의 미래: 대공황인가? 호황인가?

켈리니코스- 내가 그 논문을 탈고했던 시기는 1998년 10월이었는데, 당시는 정말 심각한 금융공황이 주요 자본주의 경제를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조차 대공황의 가능성에 대해 논의한 것이지요. 하지만 나는 그 논문에서 향후 세계경제의 전망을 몇가지 나열했는데, 1930년대 같은 대공황은 그중 하나의 씨나리오였을 뿐이며, 자본주의 국가의 정책도 결정적인 변수라고 했습니다. 결국 미국의 연방준비은행과 다른 주요 자본주의 국가의 중앙은행이 공조하여 금리를 인하하고 LTCM 같은 헤지펀드 파산의 충격을 최소화했습니다. 주요 자본주의 국가, 중앙은행의 공조 개입이 오늘의 세계경제를 일시적으로 안정시켰습니다.

정성진- 세계대공황 임박론과는 달리, 많은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이른바 미국의 '신경제' 패러다임을 근거로 21세기 세계경제는 세계화·정보화를 바탕으로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샤이크(A. Shaikh)를 비롯한 일부 맑스주의 이론가들도 1968∼73년 이후 시작된 세계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 장기불황은 1980년대말경 끝났으며 오늘 세계자본주의는 장기상승 추세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지난 1997∼98년 아시아 경제위기는 이미 1980년대말 시작된 세계자본주의의 장기상승 국면의 한 에피소드로 간주합니다.

켈리니코스- 이른바 '신경제' 패러다임은 호황기의 현상, 특히 투기적 주식시장 붐의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1920년대말 미국에 이와 똑같은 이야기, 즉 경기순환은 사라졌고 모두가 주식시장에서 부자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 유행했지요. 1960년대 호황기에도 비슷한 주장이 유행했습니다. 요즘 이야기되는 '신경제' 패러다임 역시 최근 미국의 단기간의 투기적 성장을 특권화한 주장으로, '신경제' 패러다임이 주장하는 생산성 상승 명제는 맑스주의자 브레너(R. Brenner)뿐만 아니라 주류경제학자 크루그만(P. Krugman)에 의해 논박되었습니다. 샤이크는 내가 존경하는 매우 진지한 맑스주의 경제학자지만, 나는 '불황이 이미 30년간 계속되었으므로 이제 새로운 장기호황이 올 차례'라는 식의 장기파동론은 지지하지 않습니다. 실증적으로 볼 때도 장기불황이 1980년대말 끝났다는 어떤 증거도 없습니다.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인 일본의 경제는 여전히 불황에 빠져 있고, 유럽대륙 특히 독일도 1990년대 내내 불황 속에 있었습니다. 미국은 최근 3년 동안 빠른 성장을 보였지만, 의미있는 이윤율의 회복이 이루어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정성진- 샤이크는 바로 그 이윤율이 1980년대 중반 이후 상승세로 반전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켈리니코스- 글쎄요. 1990년대 미국의 생산성 성장은 여전히 완만하며, 최근의 호황은 월스트리트의 주가상승에 기인한 자산효과(wealth effect)여서, 즉 중산층의 소비지출이 자극한 것이어서, 그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성진- 세계경제의 전망과 관련하여 월러스틴(I. Wallerstein)의 세계체제론에 대한 선생의 생각을 알고 싶습니다. 월러스틴은 얼마 전 『창작과비평』에 실린 대담(1999년 봄호)에서 현재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체제이행기에 처해 있는데, 미국 패권의 쇠퇴가 계속될 것이며, 1997∼98년 동아시아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향후 10년 내 동아시아 특히 일본과 중국이 경제적으로 강력하게 떠오를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아시아 금융위기 후 유행한 동아시아 경제성장모델 붕괴론과 미국 패권의 재확립론을 비판했습니다.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의 문제

켈리니코스- 나는 월러스틴의 작업을 존경하며, 그의 세계경제 개념은 특히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월러스틴의 접근을 '신스미스주의적 맑스주의'(Neo-Smithian Marxism)라고 규정한 브레너의 비판이 여전히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월러스틴은 자본주의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자본주의의 근본적 특징인 임금노동과 자본의 경쟁적 축적을 희석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세계경제 개념을 기원전 3000년까지 소급한 프랭크(A.G. Frank)에 와서 더 강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데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어떤 중심에서 다른 중심으로의 패권이동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구조적 특징과 문제점입니다. 중심과 주변의 이동을 극단적으로 강조할 경우, 아리기(G. Arrighi)의 최근 저작 『장기 20세기』(The Long Twentieth Century)에서 보듯이, 자본주의의 중심이 베네찌아에서 제노바로, 다시 네덜란드로, 그 다음 영국, 미국으로 이동했으며 장차 일본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일종의 역사철학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경기순환의 한 국면에서 발생한 현상을 특권화해서는 안됩니다. 자본주의는 원래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체제인데, 그 경기순환은 세계체제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보다 더 강력할 수 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1980년대에는 미국경제 쇠퇴론과 미국을 제치고 아시아가 세계경제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고, 최근에는 그 반대의 현상이 유행하는 것은 이같은 경기순환의 세계적 불균등성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경제에 대한 쇠퇴론이나 낙관론 모두 옳지 않습니다. 미국경제가 상대적으로 회복된 것은 사실이고, 이는 부분적으로는 성공적인 경쟁적 구조조정, 마이크로쏘프트나 인텔 같은 경쟁적 산업의 출현에 힘입은 것이었지만, 주로 그 주요 경쟁국들이 지난 15년 전에 비해 약화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아시아가 미국을 제치고 세계경제의 새로운 중심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단기적 시각의 접근법입니다. 일본이나 중국이 미국을 대체하려면 현재의 심각한 구조적 위기와 불황을 타개해야 하는데, 이는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럴 경우 동아시아에 우려와 긴장이 조성될 것입니다. 세계경제 전망의 시간 단위가 문제입니다. 예컨대 다음 50년, 100년 동안에는 어떤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50년, 100년이란 장기에서는 문제의 근원인 자본주의 자체가 제거되기를 희망합니다.

정성진- 선생은 유럽연합에 대해서도 많은 글을 썼습니다. 올해 초 도입된 유로화(貨)는 그런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일부 진보진영은 유럽연합이 신자유주의적인 영미식 자본주의 대신 그것보다는 개혁적인 독일형 자본주의가 확산되고 또 유럽대륙 규모의 거대한 노동자계급이 형성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유럽연합: 유럽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원인과 결과

켈리니코스- 많은 사람들은 유럽연합이 국민국가를 넘어 초국가적 협동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보지만, 유럽연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협력하면서도 적대적인 프랑스와 독일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유럽연합은 프랑스와 독일의 이해관계가 타협하여 나온 것입니다. 프랑스가 유로화의 도입을 추진했던 것은 유로화가 마르크화를 비롯한 모든 유럽통화를 대체하고 독일 중앙은행 분데스방크(Bundes Bank)를 비롯한 모든 유럽 나라들의 중앙은행을 유럽중앙은행(ECB)으로 대체함으로써 독일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자신들의 영향력을 증대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독일은 유럽연합이라는 틀을 이용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나찌즘 같은 독일제국주의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지 않게 하는 방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럽연합의 성립과정은 자본가들의 갈등과 부분적 협력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이지요. 유럽연합은 유럽 노동자계급에게 어떠한 이득도 가져다주지 않을 것입니다. 즉 유로화를 도입한 나라들은 공공지출을 삭감해야 하고 금리정책을 유럽중앙은행에 맡겨야 하는데, 이는 독일형 이해당사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가 성취한 것들에 대한 체계적인 신자유주의적 공격 과정입니다. 1990년대 유럽경제가 불황에 빠진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도 유로화를 도입하기 위해 요구된 조건들, 즉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입니다. 오히려 유럽 차원에서 노동자계급은 유럽연합이 추진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저항 과정에서, 다시 말해서 투쟁을 통해 아래로부터 형성될 것입니다. 최근 국경을 넘어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노동자투쟁의 연대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얼마 전 프랑스와 벨기에 노동자투쟁의 연대는 매우 인상적인 것이었습니다.

정성진- 신자유주의는, 1997∼98년 세계경제위기의 폭발에 큰 책임이 있다는 데 사람들의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수세에 몰리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민중투쟁이 고양되고 유럽 각국에서 사회민주당이 재집권하는 것을 신자유주의의 퇴조를 보여주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득세했던 국면에서는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되던 케인즈주의·국가주의가 다시 각광을 받고, 이른바 '국가수복'(reclaiming the state)이 진보진영의 '새로운 통념'으로 정착되고 있습니다. 또한 윌 후톤(Will Hutton)의 '이해당사자 자본주의'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자본주의 이외의 대안 부재'의 세계에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경쟁할 수 있는 21세기 진보진영의 대안으로 간주되기도 합니다. 선생은 이처럼 1997∼98년 이후 세계 진보진영, 특히 한국의 진보진영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좌파 케인즈주의의 자본통제론,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론'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본통제론,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론 비판

켈리니코스- 확실히 케인즈주의로 방향 선회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국제금융투기꾼 쏘로스(G. Soros)조차 금융시장이 비합리적이라고 말합니다. 케인즈는 금융시장이 뇌동(herd), 공황, 행복증세 등이 지배하는 일종의 도박판으로서 투자를 조직하는 방식으로 매우 비합리적인데, 이를 제대로 통제한다면 만사 오케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맑스는 금융시장의 비합리성을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모순, 특히 이윤율의 저하 경향이라는 더 큰 맥락에서 고찰했습니다. 그리고 후톤은 1995년 출판된 『우리의 국가』(The State We're In)에서 독일과 일본을 이해당사자 자본주의의 두 사례로 들었지만, 알다시피 일본은 현재 최악의 불황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독일에서 이해당사자 자본주의, 즉 조절되고 상대적으로 복지우호적인 자본주의는 대기업으로부터 체계적인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론이 좌파 사이에 유행하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정성진- 하지만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론이 최근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지난 아시아 경제위기와 세계대공황의 위험 사태에서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켈리니코스- 신자유주의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지 않고, 그에 대한 반동으로 지난 수년 동안 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집권한 것은 사실이지만,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이 실제로 거부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 내부에서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지지 입장과 반대 입장이 대립하고 있는데, 이는 최근 사회민주당이 집권한 독일의 경우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독일 재무장관이었던 라퐁텐(Lafontaine)은 케인즈주의 경제정책을 강력하게 옹호했지만, 슈뢰더(Schr der) 총리는 그를 해임하고 영국 블레어(Blair) 총리의 '제3의 길', 즉 신자유주의를 지지했습니다. 프랑스 사회당의 조스뺑(Jospin) 총리도 말로는 블레어의 '제3의 길'을 비판하지만, 실제로는 지난 우익정권들보다 훨씬 많은 민영화를 단행했습니다. 그리고 블레어는 주지하듯이 신자유주의의 애호자입니다. 요컨대 최근 수년 동안 신자유주의에 대한 정치적 반동은 있었지만, 실제에서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거부되고 있지 않습니다. 케인즈주의적 자본통제 정책의 하나인 토빈세는 세계적 규모에서 금융투기에 대해 과세하자는 것으로 아주 훌륭한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토빈세를 실제로 도입하려면 세계적 규모에서 자본의 활동을 제약하기 위한 정치세력의 엄청난 동원, 다시 말해서 노동자계급 세력의 대규모 동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노동자계급 운동이 토빈세를 부과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면, 아예 자본주의 자체도 제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성진- 방금 블레어의 '제3의 길'을 언급하셨는데,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도 영국의 토니 블레어와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 등이 주장하는 '제3의 길'의 추종자로 자처하면서 이른바 '민주적 시장경제론'을 전개합니다. 또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든스의 『제3의 길』(The Third Way)은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쎌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최근 논문에서 『제3의 길』은 기든스의 책 중 '최악'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제3의 길'에 대한 선생의 비판의 이론적 핵심은 무엇입니까?

제3의 길: 신자유주의의 길

켈리니코스- 언뜻 보기에 '제3의 길'은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제3의 길'은 매력적이지 못한 두 가지 선택에 대한 대안으로 제출되었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기든스가 국가사회주의라고 부르는 스딸린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이고, 둘째는 신자유주의입니다. 그러나 기든스와 블레어는 국가사회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동시에 거부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신자유주의를 수용하고 있습니다. 단지 좌익적 수사학으로 분장했을 뿐이지요.

정성진- '제3의 길'은 본질적으로 신자유주의 프로젝트라는 말씀인데, '제3의 길'이 세계화라는 새로운 조건에 적응한 신판 케인즈주의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켈리니코스- 하지만 블레어정부의 경제정책을 보십시오. 블레어정부의 브라운(G. Brown) 재무장관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영국 중앙은행을 정부에서 독립시키고 독자적으로 금리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입니다. 또한 블레어정부는 영국의 공공지출을 지난 1960년대 이래 가장 낮은 수준으로 삭감했으며, 가난한 사람과 실업자를 위한 복지지출 역시 대폭 삭감했습니다. 여기에 케인즈주의적 요소가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기든스는 신자유주의에 세계화 운운하는 이론적 외양을 덧씌웠을 뿐입니다. 그는 『제3의 길』에서 세계화를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고 그저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경향이라고 묘사하고, 세계화 담론에 대해 그동안 제기된 비판들을 무시합니다. 그가 그 책에서 토빈세를 지지하고 '유엔경제안전보장이사회'의 설치 등 케인즈주의적 정책들을 주창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기든스는 권력과 지배에 대한 연구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토빈세를 국제금융자본에 실제로 부과할 수 있을지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둘째, 기든스의 담론은 이처럼 취약하지만 블레어의 정책보다는 진보적이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실제로는 블레어의 나팔수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기든스는 『제3의 길』에서 근대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적 없는 국가'라고 묘사하면서, 국가간 적대관계가 소멸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은 지난 10년 동안 소련을 대신할 새로운 적을 계속 찾아왔습니다. 싸담 후쎄인과 밀로셰비치 등을 '새로운 히틀러'라고 규탄해왔고, 최근에는 중국이 미국의 국가이익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담론을 새로 개발하고 있는데도 기든스처럼 현대국가를 '적 없는 국가' 운운하는 것은 정말 최악의 이데올로기적 말장난입니다.

정성진- 한데 선생은 이해당사자 자본주의, 케인즈주의, '제3의 길'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아까 언급한 세계경제위기를 다룬 논문에서 사회주의의 '행동강령'에 국유화·토빈세 같은 좌파 케인즈주의자들의 정책대안을 대부분 포함시켰습니다. 이는 논리적으로 모순이 아닌가요?


좌파 케인즈주의정책을 가능하게 하는 것들

켈리니코스- 글쎄요. 우선 토빈세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토빈세 자체는 나쁜 생각이 아닙니다. 문제는 방금 전에 언급했듯이 토빈세를 정치적으로 실제로 어떻게 도입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케인즈는 투자의 사회화를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그것의 실행은 사회혁명 없이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오늘 케인즈주의자들도 여러가지 개량적 정책들을 주장하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길 정치적 의지, 정치전략이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예컨대 라퐁텐이 금리인하, 부자들에 대한 중과세 등을 주장해서 독일 자본가들이 슈뢰더 총리에게 압력을 가해 그를 해임하려 했을 때, 그는 독일 노동자들에게 "파업을 해서라도 내가 재무장관으로 계속 집무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하지 않았습니다.

정성진- 토빈세 같은 좌파 케인즈주의 정책은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실행될 수 없으며, 그 실행은 자본주의의 타도를 필요로 한다는 말씀인가요?

켈리니코스- 좌파 케인즈주의 정책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들은 장기적으로 보면 물론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제거하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또 단기적으로도 좌파 케인즈주의 정책은 자본주의적 수익성의 논리를 위협하지 않고서는 실행될 수 없습니다.

정성진- 하지만 스웨덴이나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의 경험은 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그러한 정책을 도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요? 좌파 케인즈주의 정책은 단지 정책대안이 아니라 전후 황금시대 자본주의의 현실적 구성요소였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켈리니코스- 글쎄요. 그 문제는 우리를 다시 영구군비경제의 문제로 되돌아가게 합니다. 왜냐하면 스웨덴 자본주의가 상대적으로 발전된 복지국가를 용인할 수 있었던 까닭은 전후시기 자본주의의 호황이라는 조건, 즉 영구군비경제에 근거한 높은 이윤율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케인즈주의적 자본주의 경제를 존립할 수 있게 했던 것은 유효수요 관리정책이 아니라 영구군비경제 메커니즘이었습니다.

정성진- 저도 전후 호황이 케인즈주의 경제정책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복지국가·자본통제 같은 케인즈주의 정책이 자본주의체제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지요.

켈리니코스- 그렇습니다. 영국에서도 1940년대말부터 1979년까지 일정한 자본통제가 시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케인즈주의 정책은 자본주의가 국가자본주의 방식으로 조직되어 높은 정도로 국가의 경제통제가 이루어졌던 시기에는 일반적으로 실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통합된 자본주의는 케인즈주의 정책의 도입에 저항할 것입니다. 케인즈주의 정책의 도입을 위해 노동자계급의 동원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물론 말레이시아 마하티르(Mahatir) 수상은 노동자계급의 동원 없이 자본통제를 도입했지만, 이는 말레이시아의 특수한 조건을 반영한 것입니다.

정성진- 현재 한국의 김대중정부는 노동시장의 유연화, 기업과 금융의 구조조정 및 재벌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진보진영은 노동시장의 유연화,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반대하면서도 재벌개혁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재벌해체론의 허와 실

켈리니코스- 재벌해체를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작지만 더 효율적이고 더 경쟁력있는 기업의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의 의미는 노동자 착취가 더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하는데, 왜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자에 대해 더 효율적 착취를 불러올 재벌해체를 요구해야 합니까?

정성진- 그러나 한국의 재벌해체론자들은 1997∼98년 한국의 IMF위기의 주된 책임을 재벌에 묻고, 재벌해체는 자본의 힘을 약화시키고 대중의 힘을 강화할 것이기 때문에, 진보적 의의를 갖는다고 주장합니다.

켈리니코스- 나도 재벌이 이른바 IMF위기에 주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재벌이 과잉투자를 하도록 돈을 대주고 위기가 발생하자 일거에 돈을 빼나갔던 서방의 국제금융자본도 IMF위기에 책임이 있습니다. 주요한 문제는 자본주의가 한국의 역사에서 취했던 특정한 제도적 형태, 즉 재벌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그 자체에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1차대전 이전 '스탠더드 석유트러스트'의 해체, 20년전 ITT사의 해체 같은 반독점 조치들은 독점적 대기업 체제의 재편만을 낳았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기업 인수·합병은 오늘 서구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대기업은 자본주의의 내재적 경향입니다. 오늘 재벌이 해체되어도, 내일 다른 대기업이 생겨날 것입니다.

정성진- 그렇긴 하지만 일부 재벌해체론자들은 재벌해체가 반독점 민주변혁에 기여한다고 주장합니다.

켈리니코스- 반독점 민주변혁론은 스딸린주의 2단계 혁명론의 일종으로, 한국의 진보진영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공산당들도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나 변혁의 첫 단계인 민주변혁 단계에서 추악하고 부패한 자본주의를 제거하고 좋은 자본주의, 진보적 자본주의를 세우자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반독점은 단지 독점의 재편으로 귀결될 것이며, 단기적으로도 외국자본의 지배와 국제적 경쟁의 증대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재벌해체에 따른 독점가격 인하 등의 긍정적 효과는 기업파산으로 인한 실업자 증대 같은 부정적 효과에 의해 상쇄될 것입니다. 물론 나는 재벌에 반대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에서 자본주의가 취하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지, 재벌이 유별나게 사악한 자본가들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정성진- 지금 반독점 민주변혁론, 즉 스딸린주의 2단계 혁명론을 비판했는데, 하지만 선생은 자본주의가 예컨대 경쟁자본주의 단계에서 독점자본주의 단계, 국가자본주의 단계로 발전해왔다고 보는 자본주의 발전단계론은 수용합니다. 선생의 자본주의 발전단계론은 스딸린주의 국가독점자본주의 단계론과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켈리니코스- 자본주의 발전단계론은 스딸린주의 2단계 혁명론과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스딸린주의 독점자본주의 단계론은 거대 독점자본이 국가를 지배하고 대중을 빈곤하게 한다는 주장인데, 이는 도구주의적 국가관에 근거한 것이며 2단계 혁명론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잘못되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발전단계론은 자본주의 경제의 역사에 역사유물론을 적용한 것이며, 2단계 혁명론의 부정인 영속혁명론은 자본주의 발전의 제국주의 단계에서는 민주주의적 요구와 사회주의적 요구가 융합된다는 정치이론입니다.

(중략)

- 이 대담은 대표적 뜨로쯔끼주의자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소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정성진 교수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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