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시사

세계화에 직면한 신앙공동체와 사회운동: 콜로퀴움2000선언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0-07-07 23:17
조회
1390
세계화에 직면한 신앙공동체들과 사회운동들

<콜로퀴움2000 선언>



과연 일반대중들이 자신들의 입장에서 나름대로의 경제적인 삶을 관장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의 세계화와 신앙공동체들의 역할을 위한 대안을 위해서는 어떤 전략적 사안들이 수립될 수 있을까? 이러한 기본적 물음들이 콜로퀴움2000을 진행하는 모든 단계에서 시종 일관 제기됐다. 2000년 6월 9일부터 16일까지 독일의 호프가이스마 크리스챤 아카데미에서 개최된 콜로퀴움2000에는 세계의 여러 문명사회와 50여 개국으로부터 150명 이상의 사회 정치활동가, 신학자, 성직자, 경제학자, 환경전문학자들이 참여했다. 세계화에 직면한 신앙공동체들과 사회운동들이란 주제로 진행된 이번 모임은 교회단체들과 선교단체들 및 대표적인 로마카톨릭단체 Pax Christi International과 세계개혁교회연맹(WARC), 세계교회협의회(WCC)의 공동주관과 독일의 주요한 에큐메니컬단체들*에 의해 마련됐다. 이번 모임의 목적은 신앙공동체들과 사회운동들의 투쟁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하는 것이며, 지배적인 세계화 프로젝트에 대하여 대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데에 있다.

우리는 세계적인 에큐메니컬운동의 일환으로 1998년도의 WCC 하라레총회에서 표명된 비전을 공유함과 동시에 현 세계화의 구도에 도전하는 대응적 차원에서 인류의 일치와 지구의 총체적인 생명체의 전망에 대해 공유하고자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에큐메니컬운동에 있어서 경제학과 생태학 모두와 관련된 우리의 신학적 성찰을 심화시키기고, 우리의 비전을 보다 명확히 표명하기 위해서는 긴급한 도전적 상황에 직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인정하는 바이다.
우리의 모임은 기독교적 기본정신에 입각해있기 때문에, 성서적 신앙과 경제학 및 사회-정치적 분석을 연관시켜 성찰하는 작업을 가졌다. 우리는 사회운동에 종사하는 파트너들과 함께 전략적인 사안들과 취해야할 구체적인 조처들에 관해 논의했으며, 이들로부터 저항과 희망의 이야기들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공유한 가치들과 비전을 함께 탐구하면서 우리는 다른 전통의 신앙단체들(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대표들로부터 도전을 받기도 했다. 우리는 세계화에 대한 포괄적인 정의를 추구하기보다는, 현재의 세계경제제도에 대한 이해와 대안 모색 및 행동을 위한 전략들을 수립하고자 하는 데에 보다 큰 관심을 기울였다.



* 이번 모임을 준비한 독일의 주요 에큐메니컬단체는 다음과 같다: Ev. Akademien in Deutschland, Ev. Akademie Hofgeismar, Ev. Kirche von Kurhessen-Waldeck, Ev. Missionwerk Suedwesteutschland (EMS), Gossner Mission, Institu fur Theologie und Politik, Kath. Arbeitnehmerbewegung (KAB), Kairos Europa, Kirchlicher Dienst in der Arbeitswelt (KDA), Missio Muenchen, Missionszentral der Franziskaner, Netzwerk Afrika-Deutschland, Ordensleute fur den Frieden, Pax Christi, Pro Oekumene, Kath. Akademie Rabanus Maurus, Reformierter Bund, Suedwind e. V., Vereinte Ev. Mission (VEM), Amt fur Mission und Oekumene der Ev. Kirche in Hessen und Nassau.




문제의 분석

세계화(globalization)란 용어는 여러 현상들과 관련하여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에서 사용되고 있다. 한편으로 보면, 통신의 혁명은 국가들간의 거리를 좁혀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과학기술은 자본을 통한 지배를 특징으로 하는 경제제도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금융자본은 지구적 경제과정의 주된 행위자로서 산업자본을 대체했다. 이러한 현상은 금융의 불안전성 틀 내에서 가능해졌는데, 금융의 규제완화와 국내금융시장의 자유화, 국제적 거래를 위한 국가적 금융시장의 개방이 금융의 투기가 조성되도록 제도화된 것이다. 새로운 정보과학기술의 발전은 금융시장의 통합과정을 가속화시켰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해하는 세계화의 모습이다.
오늘날, 세계경제제도는 금융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원하던 원치 않던 간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우리 모두는 어떤 감독체제나 통제장치든지 이들 모두를 배제시키는, 이러한 경제제도를 창출시키는 역사적 전개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금융시장(Financial Market)은 각종의 모든 자본과 산업, 상업 등의 총체적 분야를 지배하고 있다. 은행과 그밖에 금융기관들과 마찬가지로 상호기금, 연금기금, 헤지펀드, 투자펀드 등은 이러한 활동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싫든 좋든 현재 우리는 남성 중심적인 자본주의경제를 지향하는 금융자본의 독재체제하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금융자본은 대개가 투기적이고 매우 모험적인 방식으로 활동한다. 이는 컴퓨터장치에 의해 움직이는 지구적 자본시장의 순회를 통해 활발히 움직이면서 국가적 경제를 전적으로 침식시킬 수 있으며, 종종 그렇게 작용한다. 매일같이 미화 1만6천5백억 달러의 돈(이는 가시적인 돈이며, 이의 5%미만이 생산을 위해 사용된다)이 전세계를 종횡무진하고 다닌다. 외환거래의 규모는 생산분야의 세계무역보다 60배 이상이나 큰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다.

시장경제의 세력 하에서 무기수출과 군비예산의 확대는 중요사항으로 취급되고 있다. 경제의 군사화와 핵무기 개발의 경쟁으로 인해 세계의 모든 국가들은 민주주의적 구조가 붕괴되기 쉬운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다. 이는 많은 국가들로 하여금 사회적 복지예산을 감축해가면서 국방예산을 증강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새로운 NATO개념 및 군사산업체의 건설은 규제되지 않은 금융자본과 매우 긴밀한 관계에 놓여있는 것이다.

지구적인 카지노열풍으로 바뀐 이 세계의 삶은 예측 불허한 결과를 낳고 있다. 개인과 사회적 계층 및 집단들과 국가들간의 사회적 관계는 금융의 이해관계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가족과 종교 및 문화적 가치체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특히 소외된 민중들 가운데, 여성과 어린이 등의 소외계층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화는 지역과 원주민의 고유문화(예를 들면, 인도의 달리, 치아파스의 원주민)를 파괴시킬 뿐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개인주의와 물질주의, 쾌락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퇴폐문화를 전파시키고 있다. 금융시장에 종속됨으로써, 세계화는 가차없이 이 세계를 단일체제로, 경계가 무너진 지구사회로 몰아넣고 있다. 국제적인 외채의 부담은 많은 국가들을 파탄에 빠지게 하고 있다. 특히 남반구의 경우, 금융자본은 인간의 삶을 위한 물질적 기반 자체를 파괴시키고 있다.



세계화가 준 경험들


세계화로 인한 피폐현상은 전반적인 남반구에서 여러 양상으로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의 부정적 경험들은 부유한 북반구사회에서도 생태학적 손상 및 사회적 분열의 현상으로 파급되어 나타나고 있다. 초국가적 기업들의 역할은 과소 평가될 수 없다고 보여진다. 이들은 주요한 생태적 파괴를 유발시키고 있으며 커다란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세계화는 인종차별주의와 외국인혐오증(xenophobia)을 조장하고 있다.

국제구제금융(IMF)과 세계은행 등의 강력한 금융기구들은 지난 25년간 제3세계의 국가들로 하여금 파탄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채무의 짐을 부과해왔다. 이는 정부들로 하여금 구조조정프로그램들(SAPs)을 통해 각기 정치적 경제적 구조들을 재조정하도록 강요해왔던 것이다. 채무로 치러야 할 대가는 정부들이 가난한 자를 위해 소요하는 경비와 비교해 볼 때, 턱없이 높은 수준이다. 한편에서는 호구지책으로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자신들의 땅에서 강제로 쫓겨나고 있으며; 교육과 건강 및 사회복지예산은 심각한 수준으로 삭감되고 있고; 환경적 침해가 횡행하고 있으며; 수자원과 산림 등의 주요기관들과 국가적 자원들이 전반적으로 민영화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방위비용과 사치스런 수입상품의 수입이 증가하고 있으며; 수백만 명이 쫓겨나 집 없는 자로 전락했으며; 가난과 실업이 기록적인 수준으로 증가했으며; 전통적인 농업양식이 국민들을 먹여 살렸던 생존방식의 작황에서 수출과 외화벌이를 위한 거대한 투기적 방식으로 전환됐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어린이의 노동과 성적 남용, 여성의 매춘행위와 매춘관광 등은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상의 세계화가 가져온 부정적 결과들은 아시아에서부터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남반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식민지지배와 착취의 세월 500년이 지난 후에 보여주고 있는 아프리카의 특유한 현상이 이번 콜로퀴움에서 주목됐다. 오늘날 아프리카는 모든 면에 있어서 전반적으로 식민지의 종반기 시절보다 더 가난한 상태에 놓여있다. 금융자본의 이중적 부과현상과 외채의 멍에로 인해, 아프리카는 보다 더 빈약해졌으며 정치적으로 취약해진 결과, 자국의 국민들을 세계화의 영향으로부터 보호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인도의 경우, 외채로 인해 정부가 국제금융기구들에게 지급해야 할 경비는 하루에 이자만 미화 2천만달러에 달한다. 브라질은 2000년 한 해에만 지불해야 할 채무의 이자가 미화 640억 달러를 넘는다. 브라질은 이미 지난 10년간 2000억 달러 이상을 갚았지만, 여전히 2400억 달러의 채무가 남아있는 상황이다.* 제3세계의 정부들은 채무국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굶주린 백성들의 빵마저도 각출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는 바로 제3세계의 국가들과 북반구의 여러 지역들을 이러한 양상으로 파멸시켜온 이 제도에 대한 신학적 전제와 윤리적 정당성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게 한다.


* 유엔개발프로그램(UNDP)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10억2백만의 인구가 하루에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1년에 300억 달러만 있으면 이들의 기본적인 필요가 채워질 수 있다고 보여지는데, 반면에 일본인들은 한해에 350억 달러를 레크레이션 게임의 경비로 지출하고 있으며, 유럽인들은 한해에 담배로 소비하는 돈이 500억 달러이며, 알콜 음료로는 1억 5백만 달러를 소비하고 있다. 전세계가 마약으로 소비하는 비용은 4억 달러이며, 무기를 위해서는 7천8백억 달러를, 그리고 선전광고를 위해서는 4천3백5십억 달러를 사용하고 있다.



신학적 통찰


우리는 이러한 심각한 상황 가운데 나아갈 방침을 추구하면서 성경을 읽고 우리들의 신앙에 관한 이야기들을 듣고 있다. 민중과 창조세계의 울부짖음이 우리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고백하게 한다:
지배적인 경제제도의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져야 할 시기이다. 경제적 불의와 생태적 파괴현상에 관한 점진적인 인식과 교육, 그리고 고백의 과정이 이루어져야 할 시기이다. 자유시장경제 이데올로기는 이 사회의 모든 분야와 인류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심지어는 우리의 몸과 깊숙한 욕망까지도 점유하여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는 만인에게 복된 삶을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의 삶을 파괴시키고 있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자본은 우상이요, 거짓 신이 되어버렸다. 이는 바로 존재의 유일한 방식이라고 주장하면서 무조건적인 복종과 희생을 강요한다. 이는 정치적 통제와 사회적 정의를 목적으로 하는 정부의 중재 및 사회운동들을 비난한다.

우리는 성경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접한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근원이다(디모데전서 6:10). 예수는 말씀하신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마태복음 6:24).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물을 수밖에 없다: 과연 우리의 신은 누구인가?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복된 삶이란 어떤 것인가?
우리는 믿는다: 지구는 하나님의 것이며 그 안에 내재한 모든 것이, 이 세상과 그 안에 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다.(시편 24:1). 생명의 가족으로 일컫는 오이코스(oikos)는 경제(oikonomia)와 생태(oikologia)에 대한 우리의 이해이자, 에큐메니컬운동(oikumene)의 모델이요, 비전이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만인과 모든 창조물에게 풍요로운 삶을 부여하신다(요한복음 10:10). 우리는 경제의 신-자유주의 모델에 대한 대안이 없다는 주장을 거부한다. 우리는 오이코스oikos(가정)의 이미지로부터 방안을 간구한다: 만물의 삶을 가능케 하며 평등과 포용 및 정의와 연대의 원칙이 적용되는 경제를, 인류와 더불어 창조를 돌볼 수 있는 경제를 말이다. 이는 바로 가난한 여성에게 타당한 정책인가에 따라서 가늠될 수 있다. 바로 이 oikonomia는 지역경제의 대안을 위하여 그리고 삶의 증진을 가져오도록 책임질 수 있는 국제적인 체제마련을 위하여 투쟁하는 대중들의 삶 가운데서 현실화되어질 수 있다.

기독교인, 이슬람교인, 유대교인, 힌두교인, 불교인, 그리고 토착종교의 원주민들은 복된 삶(good life)과 경제에 관한 주요 원칙들을 공유한다. 이들 원칙들은 다음과 같다: 생명중심사상, 자연존중, 가난한 자에 대한 옹호와 정의추구가 공유정신과 예언자적 활동, 간소한 삶으로 채워진 충족개념, 그리고 삶의 주체는 대중들이라는 인식을 통하여 실현돼야 한다는 것이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이 가난한 자의 편이라는 전통을 형성했다. 이슬람교는 연약한 자가 땅을 물려받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힌두교에서는 정의와 사랑(bhatki), 헌신과 관용을 주장한다.

우리는 다양한 우리의 전략적 대안들에 입각하여 공통된 성찰과 행동양식을 지속적으로 분별하고자 한다: 예언자적 비평과 부와 권세에 대한 정당한 순응, 불공평한 구조에 대한 저항과 대안적 삶 세우기.
이와 동시에 우리는 각자의 교회와 공동체 내에서 야기되는 반목과 좌절 및 유혹의 현상들을 인정하며, 우리들 스스로가 역사적으로나 현재에 있어서 경제제도와 무관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는다. 우리 자신들 또한 해방과 회개와 갱생의 삶이 필요한 존재들이다.

무제한의 축적과 성장을 추구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항하여, 그리고 번영의 신학에 대항하여, 우리는 은총의 신학(theology of grace)을 주장한다. 우리는 자신들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와 은총으로 사는 존재이다. 우리는 경쟁 이데올로기에 대항하여, 안일을 추구하며 개인주의와 차별화를 낳고 있는 문화에 대항하여, 자신을 내어놓는(self-giving) 사랑의 신학을 주장한다. 이렇게 될 때에만 만물의 풍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축복받은 존재임과 동시에 제한된 존재이다. 우리는 창조의 일부이지 하나님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개인의 자산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사회적 정의와 자연의 보존을 이룰 수 있는 민주적인 정치제도들 및 운동들을 필요로 한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감동 감화시키고 능력을 부여함으로 oikos의 비전을 이루는 삶을 살도록, 이를 지향하는 행동을 취하도록 인도하신다! 이 세계의 여러 곳에서, 또한 지구적 차원에서 대중들은 대안과 전략들의 다양성을 개발하고 있으며 실행하고 있다. 남반구의 변두리지역에 사는 여성들은 대안적인 신용체계를 마련한다. 북반구의 청년들은 국제금융제도에 대한 정치적 규제를 위해 활동한다. 우리는 희망찬 역사의 전개를 위한 수많은 이야기들을 전해 듣고 있다. 인제 우리 모두가 이 세계의 시장영역을 대신하여 대안적인 정치적 체제와 경제적 모델을 채워나갑시다. 우리의 노래와 춤, 우리의 기도와 비전, 그리고 희망찬 우리의 시로써 말입니다!


전략적 사안들


콜로퀴움2000은 우리의 신앙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실천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10개의 분과그룹을 형성했다. 그리고 경제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차원; 생산, 활동, 실업; 가난과 소외; 과학, 첨단기술과 관련된 생태학; 세계화에서 문화와 대중매체가 갖는 역할; 지역경제의 대안들; 세계화에 대한 종교상호간의 관점들에 관한 전략적 이슈들을 논의했다. 이의 보고와 결과물들은 앞으로 문헌으로 정리될 것이다.

우리는 한 이슈만이 아닌 여러 논의과정에서, 우리가 수립해야 할 전략적 방향과 관련하여 문제제기에 부닥쳤다. 경제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강력한 주장을 수없이 들어야만 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경제가 십 수년동안 진행된 결과, 주요한 가난의 문제, 생태계의 파괴, 불평등, 실업, 민주주의적 참여의 결여 등에 관한 문제는 해결된 것이 아니라 남반구와 북반구세계 모두에 있어서 이와 반대되는 현상으로 더욱 악화된 양상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났다. 이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지역적인 대안경제로서 출발해야 한다. 이미 북반구와 남반구세계에서는, 도시와 시골지역에서는 대안적인 지역경제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네트워크에 대한 실례들이 정착돼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성들의 대안적인 생태적 경제적 이해에 대해서는 공감될 수 있는 여지가 크다고 하겠다.

또 한편으로 아프리카를 비롯한 남반구의 도처에서 제기된 분석에 따르면, 모두를 위한 최소한의 삶의 조건을 보증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경제적 성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모순은 해결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은 반드시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북반구 엘리트층의 최상생활기준과 권력의 집중화현상을 보면, 구조적인 변화를 위한 급진적인 시도가 요구된다. 다른 한편으로 남반구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절대적 빈곤상황은 제도 내에서의 가능성들을 이용할 수 있는 즉각적인 변화를 요구하는데, 이는 공동의 선을 추구하기 위한 국가의 강화된 역할에 달려있다고 보여진다. 양쪽이 요구하는 변화의 형태는 국가적인 차원과 지구적인 차원에서의 구체적인 노력과 장기간에 걸친 지대한 노력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이는 바로 우리들로 하여금 시민사회의 틀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할 것과 전략적인 연대를 이룰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신앙공동체로서의 부르심을 통해 변화를 위한 출발점은 바로 우리의 주변에서 찾아야한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경제적 정의를 수립하기 위한 지속적인 실천행위는 바닥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든 국제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든지 간에 투쟁의 대열에 서 있는 지역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할 것이며, 이를 강화시켜야 할 것이다. 이는 바로 아시아에서 개최된 세계화의 결과에 대한 방콕심포지엄(1999년 11월)에서 표명됐던 주요확신들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의 대응


우리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 우리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이를 찬양하도록 부르심 받았다. 현재의 세계적 상황은 우리의 이러한 소명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다.
◎ 우리는 사람이 돈보다 우선하며 생명이 이윤창출보다 우선한다는 명백한 사실을 주장한다. 돈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며, 목적이 될 수는 없다.
◎ 땅과 노동 및 창조의 풍요는 인간의 필요를 채워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풍요하다. 이는 억압의 수단이 될 수 없으며 힘있는 자와 부자의 도구로 전락될 수 없다.
◎ 우리는 교회에서 예언자적 소수의 증언이며, 희망과 연대의 정신(spirit)이다.
◎ 우리는 가난의 고통에 대해 우리의 관심을 호소하고 있는 남반구의 억눌린 자와 가난한 자들의 목소리이며, 이들의 존엄성과 주권을 회복할 수 있는 주도세력 그 자체임을 밝힌다.
◎ 우리는 정의를 추구하기 위하여 그리고 이 세상의 시민사회를 위하여 사회운동과 노조활동, 에큐메니컬운동, 그밖에 운동들의 투쟁을 전개한다.
◎ 우리는 Jubilee의 비전과 외채청산을 위한 투쟁을, 특히 외채와 세계화의 상호연관성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는 세계희년운동(Jubilee global movement)이 보여주는 남반구의 외침을 주장한다.
◎ 우리는 힘있는 자의 유익과 소수 부자들의 탐욕을 쫓기보다는 책임감을 갖고 윤리적으로, 공동의 선과 지역의 필요에 부응할 수 있는 방침대로 모든 활동이 전개되는, 사회적 규율을 따르는 시장을 주장한다.
◎ 우리는 인류가 각기 자신들의 경제적 삶을 감당할 수 있는 세계를, 특히 가난한 자가 대접받는 삶을, 이들 스스로가 해방된 삶의 주체로서 새롭게 부각되는 사회를 주장한다.
◎ 우리는 하나의 세계를, 이와 동시에 여러 문화와 종교, 제도들과 더불어 (문화적이고 생태학적인 다양성이 존중되는) 다양한 세계를 주장한다.
◎ 우리는 합법적으로 노동과 경제를 위한 국가적 세계적 규제장치의 조건창출을 위해, 노조와 사회운동 및 새로운 집단들을 결집시킴으로 국가와 지역 및 세계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공동의 선을 지원할 수 있는, 사회적 주체의 재구성을 향한 움직임을 주장한다.
◎ 우리는 회개와 고백 및 우리의 한계에 대한 인식과 공유된 삶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주장한다.


우리의 반대


◎ 우리는 세계의 경제제도가 모든 인류의 기본적 욕구에 대한 충족과 하나님의 창조물에 대한 양육을 지향하기보다는 소수집단의 이윤을 낳기 위한 방침으로 부가 축적돼야 한다는 논리를 반대한다.
◎ 우리는 물질적 소유로서 삶의 목적을 규정짓는 자본의 우상과 소비주의의 새로운 종교를 반대한다.
◎ 우리는 정치적 집단의 동의와 함께 교육, 건강, 주택, 은퇴프로그램과 그밖의 사회복지제도를 위한 예산을 급격히 감축시킴으로써 구조조정의 명목으로 가난한 나라들에게 부과된 남반구의 현실로 북반구가 특혜를 누리게 되는 상황을 반대한다.
◎ 우리는 이주노동자들과 난민들을 위한 문을 개방하지 않고, 동등권을 부여하지 않는 사회를 반대한다.
◎ 우리는 물신(Mammon)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반대한다. 이는 바로 부자는 더욱 부해지고 빈자는 더욱 가난해지질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낳고 있으며, 국가적 통제를 넘어선 초국가적 실세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이다.
◎ 우리는 한정된 물질적 창조의 세계에서 자본주의의 끝없는 경제적 팽창의 논리에 기초한 생태학적 무책임을 반대한다.
◎ 우리는 선진산업국들의 차별적인 생산양식과 무역정책들을 반대한다. 이는 생태학적 및 건강상의 이유로 금지된 자국의 상품들에 대하여 국제적인 소비주의를 조장시킨다.
◎ 우리는 실업의 확산을 가져오며, 노동의 질을 악화시키고, 노동과 사회적인 정책의 규율이 전무한 자본주의의 경제제도를 반대한다.
◎ 우리는 국제기업들과 금융투자가들에 대한 적절한 규제조치가 전무하며, 지역의 정부들이 세계경제질서의 꼭두각시로 전락한 상황을 반대한다.
◎ 우리는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종교가 수용되는 유혹을 거부한다.
◎ 우리는 이윤창출이나 돈의 사용이 문제가 될 경우 (교회에서조차) 이중적 잣대기준으로 대응하는 위선적 행위에 대해 반대한다. 오늘날 우리의 지구마을에서는 자아 비판적인 처신이 더없이 요구되는 현실이다!



우리의 다짐은 다음과 같다:


정치적 행동

1. 우리는 풀뿌리의 민주주의적 참여와 경제의 규제를 마련하기 위한 국가적 국제적 제도들을 강화시키기 위해, 그리고 사회적 개발분야를 지원하기 위해 (예, 세계적인 최소한의 임금체계 및 노동의 기준), 정치적 영역에서 활동할 것을 다짐한다. 지구적인 경제활동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적인 국제 법제도가 필요하다 (예, 국제 지급불능 법). 우리는 국제 금융거래 세금제도인 토빈세(Tobin tax)의 이행을 촉구한다.
2. 우리는 여성과 청년을 경제의 중심부에 세울 것을 다짐한다. 우리는 여성들이 공정한 임금과 사회적인 보장체제로써 고용될 수 있는 기회가 확장되며, 경제를 돌보는 이로서의 공로가 인정되기를 촉구한다. 또한 성 인식을 위한 세금제도와 여성들의 기금을 위한 토빈세의 정당성을 제안한다.
3. 우리는 신자유주의와 지구적인 남성 중심적 자본주의를 종교적으로 집착하는 근본주의자의 정체를 폭로한다. 모든 삶을 지원하고, 유지시키며, 정의와 동등한 수단이 적용될 수 있는 경제를 우리는 촉구하는 바이다.



교육


1. 우리는 신앙과 신학 및 비평적 사회과학과 환경과학의 논의구조를 위한 포럼을 창출하고자 한다.
2. 우리는 세계화의 희생자들과 함께 활동하며; 대안적인 지역경제들을 활성화시키고 지원하는; 공동체들에게 도움이 되는 자체교육을 대중들에게 권장하여 자신들의 고유한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삶의 주체가 되며, 연대의 정신을 창출하는 주체가 될 참여연구와 교육을 실시하고자 한다.
3. 우리는 모든 세대를 위하여, 각기 다른 직업상의 역할에 따른 경제학습과 사회적 안녕이 권장될 수 있도록 (예배자료, 어린이와 성인을 위한 교육, 종교지도자들을 위한 교육 등의) 신앙적 자원들을 보다 더 개발하고자 한다.


종교운동과 사회운동

1. 우리는 우리의 종교운동과 사회운동들이 경제적 세계화의 문제를 이를 뿐 아니라 경제개발의 삶을 향상시키도록 이바지한 점에 대하여 비판적인 평가작업을 실시하고자 한다.
2. 우리는 책임적인 투자의 확대, 대안적인 금융제도의 지원, 비상업적이고 인간개발의 지원을 위한 자산의 유용을 위해 신앙공동체들의 경제적 자원들에 대한 사용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우리는 종교단체들의 예산 5%가 삶의 증진을 가져오는 경제적 개발(생산, 분배, 소비)을 위한 명목으로 할당될 것을 권장한다.
3. 우리는 지방과 지역 및 국제적 차원에서, 경제적 세계화의 대안을 출현시키기 위한 공통된 역할의 수단으로서, 여러 종교의 행동들을 강력하게 강화시키고자 한다.
4. 우리는 교회들이 다음과 같은 행동들을 취해줄 것을 요청하는 바이다:
◎ 세계화된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운동과 진보정당 및 비판적인 소비운동과 그밖에 신앙운동들과 함께 실업자, 집 없는 자, 소외된 자의 단체들과 협력하여 자본주의의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폭력에 대항하여 삶의 증진을 가져올 수 있는 대안들을 모색하기 위해 지역의 에큐메니컬 협력센터를 출범시킨다.
◎ 우리의 지역에서 WCC와 WARC, Pax Christi International, 그밖에 단체들이 지지하는 경제적 정의와 신앙을 위한 지구적 연대를 건설하기 위하여 진행되는 움직임의 참여를 활성화시킨다.
◎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대안을 위해 저변으로부터의 합의적인 의사결정과정을 수립할 것. 초국가적 금융자본과 국제금융기구들로 하여금 민주적 사회적 생태학적으로 책임질 수 있게 하며, 토빈세를 집중적으로 적용시키며, 탈세를 방지하고, 지역공동체들의 통화제도 시도를 권장한다.
◎ (투기와 탈세를 조장하는) 상업적인 은행들과 초국적기업들(TNC)에 투자한 교회들의 돈을 회수하고 첫 단계의 조처로서 이 돈을 대안적인 은행들과 책임질 수 있는 윤리적 기금들에 재-투자한다.
◎ 도시와 산업지대의 선교(URM), 정의, 평화, 창조작업의 보존을 강화시킴으로써 경제적 불의와 폭력 및 생태학적 파괴 등을 극복할 수 있도록 국제적인 에큐메니컬 진행들과 프로그램들에 온전히 참여한다.


네트워크

우리는 국가적, 지역적, 세계적인 모임들과 통신매체를 통한 우리의 동맹과 네트워크를 더욱 발전시켜나갈 것이다. 우리는 국제적 협력을 지원하며 정의를 수립하기 위해 초지역적인 대중매체기금을 창설하고자 한다.




다함께 노래하며 찬미하자: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살도록,
손에 손을 맞잡고 함께 나가도록 부르신다.

변화가 무르익을 시기가 다가왔다,
그때는 지금이다. 함께 나아가자.

아무도 혼자서는 나아갈 수 없다. 그러니 와서 함께 가자.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이 대열에 합류하자, 어서 와!
당신의 도움과 관심이 소중하다, 어서 와!

(브라질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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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00년 6월 21일, 웹사이트 www.econ-theo.org에 올라온 콜로퀴움2000에 관한 최종판이며, 9월부터는 인쇄된 문헌(영어, 독일어)을 받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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