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시사

죽어가는 아프리카, 진정한 해방을 찾아서(1)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0-09-06 23:18
조회
1417
죽어가는 아프리카, 진정한 해방을 찾아서(1)


아프리카 내전,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김석(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유럽의 식민주의자들이 아프리카에 왔을 때, 그들은 성경을 갖고 있었고, 우리는 땅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눈을 감고 기도하자고 말했고 우리가 눈을 다시 떴을 때, 우리는 성경을 갖고 있었고, 그들은 땅을 갖고 있었다." - 랜달 로빈슨

◆아프리카에 자욱한 내전의 불길

아프리카 대륙 국가들의 거의 1/3이 내전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분쟁에 휘말려 있다. 르완다에서 시에라리온까지, 앙골라에서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까지, 종족·종교·자원·토지 문제 등을 둘러싼 분쟁의 불길은 아프리카 전역에서 연기를 내뿜고 있다.
1994년 르완다에서 벌어진 투치족에 대한 후투족의 대학살은 언론에도 상당히 보도되어 큰 관심을 끈 바 있다. 당시 전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백만명 정도가 살해되었고, 서구의 무관심과 무대응이 지적되었다.
학살 이후 투치족 게릴라 조직인 르완다애국전선(FPR)이 권력을 획득했고, 이번에는 백만 이상의 후투족 난민들이 옛 자이르 동부로 밀려들어왔다. 이제 후투족 출신의 전 르완다 정부군과 후투 민병대가 이들을 인간방패로 내세우며 르완다의 FPR 정부와 대치하고 있다.
문제의 근원을 더듬기 위해서는, 이 지역 중앙아프리카의 식민 종주국인 벨기에의 제국주의 정책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벨기에는 고위급 통치계통에 의도적으로 투치족을 우대하였고, 후투족에는 억압적인 정책을 펼쳤다. 사실 그 이전에는 종족적 갈등이나 분규는 그다지 존재하지 않았었다. 이것이 분할 지배라는 제국주의 식민지 정책의 고전적인 실례로서 현재의 파국적 상황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벨기에의 소수 투치족 강화전략은 1950년대에 종막을 고했다. 후투족이 중심이 된 르완다민족연합(RNU)이 독립 투쟁을 전개한 것이다. 벨기에는 바후투해방운동당을 만들어내고 종족간의 분규를 격화시켰다. 1959년의 전쟁을 통해 후투족은 투치족을 몰아내고 1962년 르완다를 후투족의 공화국으로 선포했다.
비슷한 상황이 이웃 부룬디에서 연출되었다. 투치족의 부룬디 정부가 후투족을 탄압했으며, 부룬디는 1963년 르완다를 침공했다. 이러한 상황은 1990년대까지 계속되었고 1994년의 대학살에서 정점을 이루었던 것이다.

◆다이아몬드와 석유를 둘러싼 전쟁

아프리카 대호수지역의 이런 분쟁은 콩고민주공화국(DRC, 옛 자이르)의 내전 격화와 함께 새로운 양상을 띤다. 1997년 르완다와, 우간다, 앙골라, 부룬디, 에리트레아 등의 지원을 받아 옛 자이르의 모부투 세세 세코 정권을 무너뜨린 로랑 카빌라 정권이 부패하고 무능한 독재 정권으로 비판받으면서, 콩고민주공화국의 내전은 국제전으로 전개되어간다. 전 정부군과 투치족으로 이루어진 바야물렝게 반군은 콩고(DRC)내 후투 난민에 대한 처리에 불만을 품은 르완다와 부룬디, 우간다 등의 지원을 받으며 영토의 1/3의 정도를 장악한 것이다.
반면 앙골라, 나미비아, 짐바브웨 등의 지원을 받는 카빌라 정부는 르완다 등을 물과 광물자원에 대한 감춰진 속셈 때문에 개입하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나 사실 이 전쟁에 개입하고 있는 양쪽 모두에게 광물자원에 대한 이해가 작용하고 있다. 짐바브웨의 경우 군사지원을 제공하고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광물채굴권을 넘겨받았던 것이다. 엄청난 양의 광물자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암투는 앙골라와 시에라리온에서도 마찬가지로 격렬한 분쟁을 야기시키고 있다. 앙골라에서는 반군 세력인 UNITA(앙골라의 완전독립을 위한 민족동맹)가 대부분의 다이아몬드 산지를 장악하고 있으며, 여기서 채굴되는 다이아몬드 원석들은 초국적 다이아몬드 기업인 드 비어스를 비롯 슈타인메츠, 오데르브레히트 등의 서구 회사들에 음성적으로 거래되고 있다. 이들과 함께 샌드라인이나 아웃컴 같은 용병회사가 개입하는 것은 물론이다.
특히 드 비어스와 그 자회사인 CSO의 경우 매년 5억 2천만 달러에 달하는 앙골라산 다이아몬드 원석을 구매하고 있으며, 그 대부분은 UNITA가 장악한 지역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이 돈은 그대로 UNITA의 무기 구입대금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정권을 잡고 있는 MPLA(앙골라 인민해방운동)측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석유 판매수입을 무기 구매에 지출하고 있는 것이다. 다이아몬드 산지를 장악하기 위한 양측의 충돌은 30여 차례에 걸친 중재 시도를 무산시키며 1989년 이래 50만 이상의 사망자를 내고 있다. 그야말로 앙골라는 석유를 철철 흘리며, 다이아몬드로 가득 찬 거대한 시체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위 국제 사회의 관심은 미미하여 1998년에야 불법적인 다이아몬드 거래에 대한 UN 차원의 경제 봉쇄가 내려졌을 뿐이다.
시에라리온의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다이아몬드 산지를 장악하고 있는 반군과 무능하고 부패했다고 비난받는 정부, 그리고 외세의 개입. 전형적인 '아프리카적' 구도이다.
석유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나이지리아의 내전적 상황 역시 심각하다. 니제르 델타 지역의 석유 채굴에 개입하고 있는 모빌, 셰브론, 엘프 등의 초국적 석유회사들이 나이지리아 정부군과 함께 환경과 생활 터전의 파괴에 항의하는 원주민들의 투쟁을 탄압하고 있는 것이다. 셰브론 마크가 선명하게 찍힌 헬기에 탄 정부군이 마을을 불태우고 군중들에 발포하는 장면도 곧잘 목격된다. 프랑스계 엘프의 경우 석유채굴권을 따내기 위해 콩고의 반군을 지원하기도 했다.

◆아프리카 분쟁은 서구 제국주의의 대리전

다이아몬드나 석유 등 부의 원천으로서 엄청난 자원을 가진 아프리카 국가들이 세계 최빈국의 대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이런 자원을 둘러싼 끊임없는 분쟁에 시달리는 것은 이 문제가 아프리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최근 영국의 [선데이 타임즈]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독립 이후의 상황은 이제 대다수 아프리카 국가들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잃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전형적인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시각이다.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것처럼 보이는 아프리카의 상황 이면에는, 지난 식민통치기 이래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가 얽혀있음이 간과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아프리카가 근대화의 과제가 아직 성취되지 못한 곳이라는 설명은, 발전주의적 환원론이라는 비판과 함께 문제의 근원을 아프리카인들에게로 돌려버릴 위험이 있다. 아프리카는 근대화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근대화된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종속적 하위 구조에 편입되어 있는 것이다.
"구 식민지들의 독립은 선진 열강의 구미를 맞추는 데도 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더 적은 비용으로 더 큰 이윤을 뽑아낼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독립은 그들이 좀 더 싼 비용으로 우리를 착취할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신식민지가 되었다. 세계은행과 IMF의 정책과 부과조건은 개발을 위한 것이 아니라 채무를 갚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었을 뿐이다. 이제 우리는 부도덕한 채무와 신식민주의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할 새로운 해방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 줄리어스 니에레레

◆아프리카 해방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무신론자였던 조지 버나드 쇼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기독교 정신이 실패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시도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니에레레는 사회주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회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주의가 실패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시도된 적도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프리카의 진정한 해방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아프리카의 해방운동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제대로 시도된 적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오랜 투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했던 아프리카 해방운동의 빛나는 전통을 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대다수 아프리카인에게 해방은 아직 오지 않았으며, 진정한 해방은 여전히 앞으로 달성되어야할 진행형의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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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아프리카, 진정한 해방을 찾아서(2)

다국적 제약기업이 제3세계를 병들게 한다

이덕희(민중의료연합 회원)


◆보건의료분야에 신자유주의를 도입한다는 것

의사 파업을 둘러싼 소위 의료정책 전문가들의 농담 중에는 '이번 사태로 얻은 수확의 하나가 바로 우리나라 의사들이 보건의료문제에 최초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이라는 안타까운 말이 있다. 이번 사태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둘러싼 정권과 소자본가의 격돌이 민중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던 한편, 전문적인 내용을 갈고 닦는 것만으로는 이 사회가 요구하는 바를 제대로 포착할 수 없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김영삼 정부 이래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신약개발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은 중·고등학생들에게조차 '인류의 고통을 덜어줄 신약' 개발의 꿈을 심어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자본규모나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기존의 다국적 제약기업과 같은 연구결과를 기대하는 게 무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오히려 그 동안의 후보물질 개발이 경이로운 현상이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물론 앞으로 우리나라의 제약기업이 신약후보물질을 개발하는 일이 많아진다고 하더라도, 전세계적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는 다국적 제약기업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는 없다.
반면 세계 의약품시장 10위에 들 정도로 의약품 소비는 늘어가면서, 이를 통한 이윤유출은 우리 국민의 질병구조가 점차 서구화됨에 따라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가지 더 지적해야 할 점이 있다. 신약개발이라는 과학적 명제가, 이미 현실 세계에서는 다국적 제약기업과 이를 후원하는 정치권력의 공조로 인해 제3세계 국가의 민중에게 경제적 부담을 안겨주고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는 정치적 명제로 전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소개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이야기는 보건의료분야의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민중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전세계에서 HIV(Human Immuno-difficiency Virus) 감염자수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나라이다. 최소한 성인의 16%, 임산부의 20%가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며 심지어 군인의 45%가 감염자라고 한다. AIDS를 비롯한 모든 질병은 유전적, 생물학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사회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민중들이 그동안 겪어왔던 많은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다. AIDS는 인종문제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주는데, HIV에 감염된 후 AIDS 발병으로 사망에 이르는 사람은 대부분 흑인이라는 점이다.
인종차별정책으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은 건강문제에도 뿌리깊게 남아있다. 한편으로는 죽음에 이르는 AIDS와 그 바이러스에 감염된 국민의 건강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계급적 차이를 줄이기 위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보건부는 그 동안 서구처럼 치료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보건의료전달체계를 지역사회에 기초를 둔 일차의료중심체계로 전환하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공공의료정책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된 것은 바로 재원부족이었다. 다국적 제약회사가 생산하여 판매하는 의약품에 지불하는 막대한 돈이 주요인이었던 것이다.
만델라 정부의 보건정책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구래의 정책과 제도를 깨뜨리고 민중의 이해를 실현해 나가는 데 있어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저항과 세계은행이 파견한 자문위원들의 신자유주의적 '조언'이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유한 백인은 이미 대부분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는 반면 흑인은 민간보험을 구입할 경제적 능력이 없었던 것도 큰 문제였다.

◆아프리카를 둘러싼 다국적 제약기업들의 횡포

1999년 만델라 정부의 보건부장관은 공개적으로, 예산부족 때문에 HIV 양성반응을 보이는 임산부에게 '지도부딘'을 투여하지 못해 연간 3만명의 목숨을 잃고 있다고 밝혔다. AZT가 감염전파를 막는 데 과연 효과적인가 하는 논쟁이 오고갔지만, 사실 논쟁의 밑바닥에 깔린 것은 재원조달 문제였다.
지도부딘은 미국의 한 정부연구기관(NIH)가 개발하고 글락소웰컴이 생산하여 판매하고 있는 AZT의 상품명이다. 남아프리카에서 지도부딘을 한달간 투여하는 데 드는 돈은 당시 약 240 달러였는데, 똑같은 성분의 인도산 제품은 48달러에 불과했다. 글락소웰컴은 만델라 정부가 실시하는 시범사업에 쓸 지도부딘에 대해서만큼은 원래 약값의 70-85%를 깎아주겠다고 제안했지만, 만델라 정부는 이를 거부하는 대신 <의약품과 관련물질 관리를 위한 개정법>안을 내놓았다. 이 법은 의사가 처방한 다국적 기업의 약(Original)을 약사가 다른 회사가 제조한 약(Copy)으로 대체할 수 있게 허용하고, 약가결정위원회를 구성하며, 다량의 약을 구입할 때 제약회사가 제공하는 보너스와 리베이트를 금하는 등의 조항을 포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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