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시사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국제연대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0-06-12 23:16
조회
1627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국제연대
이창근(국제연대정책정보센타)
1999년 11월 30일 시애틀. 베트남 반전 시위 이후 미국에서 최대인력동원. 엄청난 파장.
2000년 4월 워싱톤. IMF, 세계은행에 반대하는 움직임.
이러한 세계화 반대투쟁의 쟁점은 무엇인가?
국제연대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계기는 다자간투자협정(MAI)반대 투쟁. MAI는 한미투자협정, 한일투자협정과 같은 맥락. 한미투자협정은 스크린쿼터 존폐논란으로 우리에게 알려지게 됨. 미국은 본격적인 협정에 앞서 한미투자협정 내에 있는 스크린쿼터 폐지 조항을 시행하려했던 것. MAI는 선진국 클럽인 OECD 안에서 95년부터 논란이 됐던 것. 97년 2월 캐나다의 사회활동가에 의해 MAI 협상초안이 인터넷상에 제시되면서 엄청난 반향이 일어남. 왜 세계적으로 이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가?
MAI는 첫째, 기존의 설비투자, 고용창출이라는 노동창출의 투자의 개념에서 주식시장, 투기자본을 정당화시키는 투자에로 무게중심을 옮김. MAI는 비영리부분, 교육, 보건의료 등 공공서비스 분야도 투자의 대상. 자유화, 개방화시기에 이런 분야들도 합법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것.
둘째, 과거의 투자보장협정은 외국인이 투자한 그 순간부터 보호, 즉 기업신설이나 인수합병(M&A) 시점부터 보호했으나 MAI는 투자계획단계부터 현지 정부가 터치할 수 없다는 것을 못박음. 국가마다 과잉생산부분이 있기 마련. 한국은 자동차 산업이 좋은 예. 생각이 있는 정부라면,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자동차에 투자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데. 이것이 불가능해지는 것. 아무리 투자라 하더라도 진입에 있어 그 국가의 고유한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데, 이제 그것이 없어짐. 국가의 권한이 축소.
셋째, 해외투자자들이 현지국가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기술이전 및 고용창출 등이 유리하게 유도되기 위해서는 이행의무가 지켜져야 함. 그러나 MAI는 이행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금지. 원래 해외투자자들에게 명시되어 있던 국내생산품 사용비율, 내국인 고용의무비율, 기술이전비율, 한국에서 얻은 수익중 몇%는 한국에 투자한다는 비율... 등이 없어지는 것. 예를 들어 스크린쿼터조항은 국내생산품 사용 조항에 해당. 한국의 극장들은 1년중 146일은 국내영화(국내생산품)을 상연해야 한다는 것.
넷째, 원래 국제협정은 국가 vs 국가의 관계. MAI는 투자기업 vs 국가라는 구조. GM이 대우를 인수할 경우, 한국이 GM에게 고용승계 등과 같은 이행의무를 부과한다면, GM은 더 큰 이익을 못 얻었다는 이유로, 예상이익에 미달된 부분을 한국정부에 손해배상 청구할 수 있다는 것. 거짓말 같지만 실제로 그 예가 있음.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MAI는 NAFTA의 확장이라고 이해할 수 있음). 미국의 에틸사가 생산하는 가솔린 첨가제 MMT가 인체에 해롭다는 이유로 캐나다 정부는 국내에서 MMT 생산을 금지시킴. 이에 대해 에틸사는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제소. 캐나다 정부는 3천만불을 손해배상하고 수입금지조치를 철회시킴.
이와 같은 황당한 협정이 이제 우리에게도 적용된다는 것. "드라큐라 전략"이라는 표현. 관에서 드라큐라를 끄집어내면, 그것이 얼마나 나쁜지 알 수 있듯이, 이와 같이 협정이 그렇다는 것. 97년 OECD는 MAI의 체결을 시도. 본격적으로는 98년 4월 31일 파리각료회의에서 체결하려고 했으나, MAI 반대 "국제행동의 날"을 통해 저지당함. 당시 전세계 565개 NGO가 인터넷상에 반대지지 성명. 프랑스는 '문화적 예외'를 내세워 MAI 반대 투쟁. 현상적으로는 프랑스에 의해 중단됐지만, 내용적으로는 광범위한 NGO들의 반대투쟁.
MAI는 최근의 세계화 반대투쟁의 굉장히 중요한 계기가 된 첫 번째 사례.
두 번째는 제3세계 외채탕감운동. "Jubilee2000 캠페인". 외채문제는 아프리카, 남미국가에서는 굉장히 심각. 외채로 인해 공공부문에 투자 불가능. 돈을 적게 쓰고 남는 부분으로 빚 갚는 엄청난 긴축정책. 97년 영국에서 열린 G7회의. 99년 6월 쾰른에서 열린 G7회의에는 전세계 민중들이 인간사슬을 만들어 외채탕감에 대한 중요성을 널리 인식시킴. 일단 과다채무빈국 외채탕감안이 통과됨(이것을 수용할 것인가의 논란이 있으나 나름대로 성과를 냄).
국제연대 중요하긴 한데, 과연 효과가 있겠느냐는 막연한 인식에서 위의 두가지 사례는 국제연대가 구체적으로 현실화되고 가시적인 성과를 낸 계기가 됨. 이것은 세계화 이데올로기화라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됨.
99년 11월 30일 WTO에 대항한 시애틀. 인터넷상에 모라토리엄 text가 떠돌아다님. WTO는 95년 1월 1일 공식출범. 부의 분배. 고용창출을 표방했으나 결과는 고용파괴, 부는 소수의 초국적기업에게 돌아감. 민중들은 지금보다 더 많은 세계화, 개방화에 반대한다는 것. 지금까지 WTO체제가 인류사회에 어떤 영향, 결과를 초래했는지 점검하고 일단 유보하자는 것(모라토리엄). WTO, 뉴라운드 출범반대를 하면서 80개국 1300여 단체가 서명. 시민사회, 노동단체가 점검하고 평가하자는 것. 선평가 후협상. 진보강좌4
* 이 내용은 6월 1일 가졌던 진보강좌4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이창근(국제연대정책정보센타)
1999년 11월 30일 시애틀. 베트남 반전 시위 이후 미국에서 최대인력동원. 엄청난 파장.
2000년 4월 워싱톤. IMF, 세계은행에 반대하는 움직임.
이러한 세계화 반대투쟁의 쟁점은 무엇인가?
국제연대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계기는 다자간투자협정(MAI)반대 투쟁. MAI는 한미투자협정, 한일투자협정과 같은 맥락. 한미투자협정은 스크린쿼터 존폐논란으로 우리에게 알려지게 됨. 미국은 본격적인 협정에 앞서 한미투자협정 내에 있는 스크린쿼터 폐지 조항을 시행하려했던 것. MAI는 선진국 클럽인 OECD 안에서 95년부터 논란이 됐던 것. 97년 2월 캐나다의 사회활동가에 의해 MAI 협상초안이 인터넷상에 제시되면서 엄청난 반향이 일어남. 왜 세계적으로 이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가?
MAI는 첫째, 기존의 설비투자, 고용창출이라는 노동창출의 투자의 개념에서 주식시장, 투기자본을 정당화시키는 투자에로 무게중심을 옮김. MAI는 비영리부분, 교육, 보건의료 등 공공서비스 분야도 투자의 대상. 자유화, 개방화시기에 이런 분야들도 합법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것.
둘째, 과거의 투자보장협정은 외국인이 투자한 그 순간부터 보호, 즉 기업신설이나 인수합병(M&A) 시점부터 보호했으나 MAI는 투자계획단계부터 현지 정부가 터치할 수 없다는 것을 못박음. 국가마다 과잉생산부분이 있기 마련. 한국은 자동차 산업이 좋은 예. 생각이 있는 정부라면,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자동차에 투자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데. 이것이 불가능해지는 것. 아무리 투자라 하더라도 진입에 있어 그 국가의 고유한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데, 이제 그것이 없어짐. 국가의 권한이 축소.
셋째, 해외투자자들이 현지국가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기술이전 및 고용창출 등이 유리하게 유도되기 위해서는 이행의무가 지켜져야 함. 그러나 MAI는 이행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금지. 원래 해외투자자들에게 명시되어 있던 국내생산품 사용비율, 내국인 고용의무비율, 기술이전비율, 한국에서 얻은 수익중 몇%는 한국에 투자한다는 비율... 등이 없어지는 것. 예를 들어 스크린쿼터조항은 국내생산품 사용 조항에 해당. 한국의 극장들은 1년중 146일은 국내영화(국내생산품)을 상연해야 한다는 것.
넷째, 원래 국제협정은 국가 vs 국가의 관계. MAI는 투자기업 vs 국가라는 구조. GM이 대우를 인수할 경우, 한국이 GM에게 고용승계 등과 같은 이행의무를 부과한다면, GM은 더 큰 이익을 못 얻었다는 이유로, 예상이익에 미달된 부분을 한국정부에 손해배상 청구할 수 있다는 것. 거짓말 같지만 실제로 그 예가 있음.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MAI는 NAFTA의 확장이라고 이해할 수 있음). 미국의 에틸사가 생산하는 가솔린 첨가제 MMT가 인체에 해롭다는 이유로 캐나다 정부는 국내에서 MMT 생산을 금지시킴. 이에 대해 에틸사는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제소. 캐나다 정부는 3천만불을 손해배상하고 수입금지조치를 철회시킴.
이와 같은 황당한 협정이 이제 우리에게도 적용된다는 것. "드라큐라 전략"이라는 표현. 관에서 드라큐라를 끄집어내면, 그것이 얼마나 나쁜지 알 수 있듯이, 이와 같이 협정이 그렇다는 것. 97년 OECD는 MAI의 체결을 시도. 본격적으로는 98년 4월 31일 파리각료회의에서 체결하려고 했으나, MAI 반대 "국제행동의 날"을 통해 저지당함. 당시 전세계 565개 NGO가 인터넷상에 반대지지 성명. 프랑스는 '문화적 예외'를 내세워 MAI 반대 투쟁. 현상적으로는 프랑스에 의해 중단됐지만, 내용적으로는 광범위한 NGO들의 반대투쟁.
MAI는 최근의 세계화 반대투쟁의 굉장히 중요한 계기가 된 첫 번째 사례.
두 번째는 제3세계 외채탕감운동. "Jubilee2000 캠페인". 외채문제는 아프리카, 남미국가에서는 굉장히 심각. 외채로 인해 공공부문에 투자 불가능. 돈을 적게 쓰고 남는 부분으로 빚 갚는 엄청난 긴축정책. 97년 영국에서 열린 G7회의. 99년 6월 쾰른에서 열린 G7회의에는 전세계 민중들이 인간사슬을 만들어 외채탕감에 대한 중요성을 널리 인식시킴. 일단 과다채무빈국 외채탕감안이 통과됨(이것을 수용할 것인가의 논란이 있으나 나름대로 성과를 냄).
국제연대 중요하긴 한데, 과연 효과가 있겠느냐는 막연한 인식에서 위의 두가지 사례는 국제연대가 구체적으로 현실화되고 가시적인 성과를 낸 계기가 됨. 이것은 세계화 이데올로기화라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됨.
99년 11월 30일 WTO에 대항한 시애틀. 인터넷상에 모라토리엄 text가 떠돌아다님. WTO는 95년 1월 1일 공식출범. 부의 분배. 고용창출을 표방했으나 결과는 고용파괴, 부는 소수의 초국적기업에게 돌아감. 민중들은 지금보다 더 많은 세계화, 개방화에 반대한다는 것. 지금까지 WTO체제가 인류사회에 어떤 영향, 결과를 초래했는지 점검하고 일단 유보하자는 것(모라토리엄). WTO, 뉴라운드 출범반대를 하면서 80개국 1300여 단체가 서명. 시민사회, 노동단체가 점검하고 평가하자는 것. 선평가 후협상. 진보강좌4
* 이 내용은 6월 1일 가졌던 진보강좌4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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