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보존

[기고] 갯생명의 아우슈비츠 ‘새만금’ (경향, 6/11)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28 23:42
조회
684
**[기고] 갯생명의 아우슈비츠 ‘새만금’ (경향, 6/11)
〈백용해/ 녹색연합 연안보전위원장〉

갯벌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지구 환경과 인간의 삶에 많은 이득을 가져오는 공간이다. 갯벌의 다양한 생물들을 먹거리로 이용하는 독특한 음식문화를 가진 우리나라는 지구상에서 갯벌이 주는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는 나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갯벌의 진정한 가치를 파악하기도 전에 정치적 판단과 기업의 개발논리에 밀려 매립과 간척이 이루어져 왔다. 우리 사회의 환경문제 중 가장 큰 화두를 던졌던 새만금 간척사업도 같은 맥락이다.

갯벌은 매립보다 보존이 훨씬 높은 경제적 가치가 있음에도 단지 농지조성이라는 당초 목적을 고집하는 정부와 이를 법리의 제한적 틀 속에서 판단한 사법부로 인하여 우리는 후손에게 오염과 훼손으로 얼룩진 자연을 물려주게 되었다. 값싼 경제논리로 풍요로운 갯벌을 포기하자던 그 사람들은 새만금사업이 국가와 지역사회에 엄청난 이익을 가져올 것처럼 주장했다.

그러나 이미 개발세력들의 후면에는 농지로서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고 농지보다 상업용지로의 이용을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 4월 새만금 방조제의 마지막 물막이 공사가 끝난 후인 5월말 새만금은 세계대전 다큐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참혹한 죽음의 현장인 ‘아우슈비츠’였다. 메말라 버린 웅덩이에는 많은 게와 고둥들이 모여 하얗게 말랐으며 물기가 남아있는 수변부에는 세상을 원망하듯 주먹만한 입을 벌린 채 백합이 죽어 있었다. 갯벌 표면 작은 구멍의 주인인 갯지렁이는 몸마디가 녹아 토막난 채 죽어갔다. 예상했던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곳에서 확인된 수많은 죽음들은 보는 이의 가슴을 저미게 했다.

부안읍에서 격포 가는 30번 국도변에는 새만금을 지키려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지킴이들이 서있는 해창 장승갯벌이 있다. 마을입구나 산모퉁이에 서 있어야 할 장승들이 갯벌에 발을 묻은 이유는 바로 민족의 혼을 담아 새만금 갯벌을 지켜달라는 지역 어민들의 간절한 소원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장승들의 발등에는 갯생명의 풍요로움은 사라지고 갯질경이와 해홍나물이 돋아나 풀밭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는 갯벌이 사라지면서 육상화가 진행되는 초기에 나타나는 염생식물로 이미 이곳은 갯벌이 아님을 증명해 주고 있다.

해창갯벌을 등지고 해안도로를 돌아 도착한 계화도의 갯벌은 그 비참함이 극에 달했다. 우리나라 백합의 주생산지였기에 그 어느 갯마을에 비해 풍요롭고 활기에 넘쳤던 계화도의 살금갯벌. 이 갯벌은 이제 카우보이 모자를 눌러쓴 외국 영화배우가 멀리서 말을 타고 나타날 것 같은 분위기의 사막으로 변했다. 황량한 그곳에 주인 잃은 갯그물과 죽어가는 갯생명들만이 이곳이 갯벌이었음을 보여주었다.

무수히 많은 생명들을 앗아가는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 사람들은 지금 “국가와 민족을 위해 훌륭한 일을 했다”는 착각에 빠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결정에 의해 황금의 땅인 갯벌이 사막으로 변했음을 통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