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보존

강제징용의 한 푸소서” 눈물 떨군 일본의 양심 (한겨레, 5/16)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13 23:36
조회
632
**“강제징용의 한 푸소서” 눈물 떨군 일본의 양심 (한겨레, 5/16)


지난 13일 일본 오키나와섬 중부 해안마을 요미탄. 장마 구름이 잠시 물러간 사이 바늘끝 같은 햇살이 살갗을 파고드는 더위 속에 100여명의 ‘오키나와인’들이 모였다.(1867년 일본에 강제합병당한 오키나와 사람들 대부분은 일본인이라고 불리기를 원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60여년 전 이 곳에 강제로 끌려와 다시는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조선인 징용자와 일본군위안부의 영혼을 위로하는‘한(恨)의 비(碑)’ 제막식이 엄숙하게 열리고 있었다.

비석을 세우기 위한 모임의 공동대표를 맡은 다이라 오사무(73·?6c작은 사진) 목사는 인사말에서 “오키나와 전쟁에서 사망한 20만여명과 그 전쟁에 투입돼 희생된 이름도 숫자도 알지 못하는 조선반도 출신 분들께 깊은 애도를 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비석과 함께 세워진 청동 조형물은 이들이 1999년 경상북도 영양군청 근처에 세운 것과 같은 것으로 총 개머리판을 휘두르는 일본군에게 끌려가는 남자와 슬픔에 젖은 여인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영양에 세워진 조형물은 오키나와 쪽을 향하고 있고, 요미탄 마을의 조형물은 한반도를 향하고 있다. 쌍둥이 조형물이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이다.

제막식 뒤에는 오키나와 전통춤으로서 한국의 씻김굿과 같은 ‘하쓰호’ 전문가 디카미네 히사에와 재일동포 2세인 조박씨의 <한오백년> 공연이 뒤따랐다. 징용 피해자로서 이 자리에 초청된 강인창(85)씨는 “한달 월급으로 당시 소 2마리 값인 100원을 준다는 말만 믿고 1944년 6월18일 오키나와행 배를 탔으나 일본 정부는 1450원에 이르는 내 월급을 한푼도 주지 않고 있다”며 “당시 경상북도에서 함께 온 3천여명의 조선인 가운데 1200여명이 죽었는데 대부분 유골도 수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가 있기까지 62명의 양식 있는 오카나와인들은 97년부터 꾸준히 ‘과거사 학습 모임’을 열었고, 본토 일본인을 포함해 700여명이 비석 건립 모금에 참여했다. 이 모임의 이름은 ‘뒨사구와 봉숭아꽃’이다. 뒨사구는 오키나와 말로 봉숭아꽃을 의미한다. 오키나와인들도 한국처럼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다이라 목사는 “우리 오키나와인들도 일본에 의한 피해자이지만 2차 대전 당시 조선인들에게는 가해자이기도 하다”며 “우리 오키나와인들을 용서해 달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역사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 등으로 일본을 향한 감정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오키나와인들이 이날 보여준 솔직함은 ‘구름’을 뚫고 나온 ‘한줄기 햇살’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