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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 정씨와 유영철 사건의 교훈 (한겨레, 4/28)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12 23:28
조회
750
**연쇄살인범 정씨와 유영철 사건의 교훈 (한겨레, 4/28)

지난 2004년 7월 21명의 무고한 시민들을 살해한 유영철 사건이 일어난 뒤 2년도 안 돼 또다시 정아무개(37)씨가 5명을 무참히 죽이고 14명에게 중상을 입힌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정씨에게선 날마다 2~3건씩의 추가 범행이 확인되고 있어 피해자는 더 늘 가능성도 있다.
과연 유영철과 정아무개(37)씨의 사건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왜 경찰은 2년이 넘도록 정씨를 붙잡지 못했는지, 뚜렷한 범행 동기도 없는 이런 연쇄 살인 사건의 예방대책은 없는지 살펴봤다.

◇ 연쇄 살인범 정씨와 유영철

먼저 두 살인범의 공통점을 보자. 지난 22일 경찰에 붙잡혀 3일 사이에 무려 13건의 범행을 자백한 정아무개(37)씨. 정씨는 새벽에 주로 여성에게 접근하거나, 문이 열린 집에 들어가 무차별적으로 흉기와 둔기를 휘둘렀다. 2004년 7월 온국민을 경악에 빠뜨렸던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과 꼭 빼닮은 대목이다. 도구는 ‘칼과 망치’였고 대상이 주로 여성이었던 점도 비슷하다.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자신의 범행 동기로 내세운 부분도 다르지 않다. 여성을 주된 ‘목표’로 삼은 것에 대해, 유영철은 “이혼한 뒤에 여성에 대해 극도로 혐오감을 느껴,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으나, 정씨는 이 부분에 대해 아직 구체적 진술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6일까지 정씨의 범행으로 확인된 13건에서 숨진 5명은 모두 20대 여성들이다. 다친 사람 14명 가운데 남자는 2명뿐이다.

이웅혁 경찰대 행정학과(범죄심리학 전공) 교수는 “유영철과 마찬가지로 정씨도 성공 확률이 가장 높은 대상을 고른 것으로 보인다”며 “범죄 계획을 세울 때 여성과 노약자를 선택하는 것은 그들에게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인 셈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조중근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정씨와 유영철 모두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들”이라며 “타인과 어떤 공감도 이루지 못하므로, 당연히 피해자들이 느끼는 고통에 무감각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유영철과 정씨의 차이점도 존재한다. 유영철은 사체를 훼손하면서 음악을 틀어놓는다든가, 범행을 마친 뒤 시를 쓰기도 했다. 또한, 철학 서적에서 사회주의 관련 책들, <상실의 시대> 같은 소설과, <체 게바라 자서전>까지 섭렵할 정도로 독서를 즐긴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정씨는 공상과학소설 정도에 탐닉한 것으로 지금까지 조사 결과 드러났다.

독서의 스타일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것에 대해 조중근 전문의는 “유영철은 대단히 지적인 ‘스타일’의 사람이지만, 정씨는 인격적으로 불안한 측면이 상대적으로 더 강해보인다”고 설명했다. 유영철이 범행 후에도 자리를 곧바로 떠나지 않고 사체를 훼손하는 등 자기만의 ‘의식’을 치르는 여유를 보였던 것에 견줘 정씨는 범행 뒤에 증거를 없애기 위해 이불에 불을 지르고 황급히 현장에서 달아난 것에서도 둘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 정씨의 범행 스타일

25일까지 확인된 정씨의 범행은, 2004년 1월30일 구로3동을 시작으로 지난달 22일 신길6동에서 붙잡히기까지 2년2개월 동안 모두 13건이다. 뒤집어보면 경찰이 정씨를 붙잡는 데 2년여나 시간을 허비한 셈이다. 여기엔 크게 두 가지 원인을 짚어볼 수 있다.

우선, 정씨는 자신의 범행이 발각되지 않도록 현장에 거의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 여러 켤레의 운동화를 바꿔 신고 자신의 주거지인 인천 부평구에서 1시간 이상 거리인 서울 서남부 지역을 대상으로 택했다. 부유층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으면서도, 막상 강남지역을 ‘겨냥’하지 않은 것은 CCTV가 많이 설치돼 있다는 점을 이미 알았기 때문이었다. 부자를 경멸하면서도 부자의 ‘부’를 빼앗는 방법 대신, 자신의 억눌린 감정을 가까운 서민들에게 폭발시킨 셈이다.

범행 도구도 2004년엔 모두 철물점에서 사들인 흉기를 사용했으며, 종류도 최소한 3가지를 바꿔가며 쓴 것으로 드러났다. 2005년부터는 파이프렌치나 쇠망치를 이용해 그 전 해의 사건과 완전히 다른 수법을 보였다. 나아가, 길거리에서 새벽에 마주치는 여성들을 공격하던 수법에서 벗어나, 주택가를 배회하다 문이 열린 집으로 들어가 무차별적으로 둔기를 휘두르는 등 범죄 수법도 바꿔가며 썼다. 경찰 조사에서, 정씨는 “경찰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웅혁 교수는 “연쇄살인범 같은 사람들은 반복되는 범죄를 통해 범죄수법이 ‘학습’되고 ‘진화’되는 경향을 강하게 보인다”며 “이런 이유로 그들은 경찰 수사망을 피해다니며 자신의 존재감과 권위를 과시하는 심리적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 경찰은 그동안 뭐했나?

경찰의 허술한 공조수사도 피해자를 늘게 만든 원인 가운데 하나다. 경찰은 지난 24일 언론에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날 저녁까지도 관악·동작·영등포경찰서 어느 곳도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의 수사전담반과 이 사건에 대해 공조할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달 27일 관악구 봉천동 ‘세자매 피습 사건’이 일어난 이래 한달여 수사전담반을 꾸렸던 관악경찰서 쪽은 “영등포에서 범인이 검거됐다는 연락을 받기 전까지 이 사건이 연쇄살인범의 소행이라고 생각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동작경찰서 관계자는 “지난해 이곳에 와 수사전담반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다”며 “다른 직원들도 대부분 다른 부서로 옮겨졌다”고 말했다.

또한, 서울지방경찰청 강력계에 24일 저녁 ‘수사전담반’ 구성 여부나 활동에 대해 문의한 결과 “관련 서류를 정리해야 한다”며 “아직 수사전담반 기록을 찾지 못해 알려줄 수 없다”고 할 정도였다. 정씨가 순순히 자신의 범행 사실을 경찰에 털어놓지 않았다면,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은 미궁에 빠질 수도 있었다.

◇ 해법과 예방은 어떻게

“흉기를 시민들 사이에 던져놓은 꼴이다.” 김상균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잘라 말했다. “법무부에서 교정사업을 수십년 동안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도 본궤도에 올랐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범죄 예방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지금 이 순간에도 ‘연쇄살인의 싹’이 자라고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국회에서도 아직 범죄예방의 관점에서 사회정책 관련 법안을 마련하려는 본격적인 움직임은 없는 상태다. 의원연구단체 ‘복지사회포럼’을 이끌고 있는 열린우리당 장복심 의원실 쪽은 “아직 관련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는 게 사실“이라며 “5월 지방선거 이후에 범죄인 예방 차원에서 사회 소외계층을 지원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회 사회복지위원회 소속인 현애자 의원(민주노동당) 쪽도 “쪽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나 노숙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법률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그러나, 아직 범죄인 예방 차원에서 접근한 법률안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김상균 교수는 “우리나라는 범죄 예방의 첫 관문이라 할 교정사업조차 걸음마 단계에 머물고 있는 수준”이라며 “통합적인 법률과 사회정책을 서둘러 마련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흉기’를 시민들 가운데 던지는 일을 계속 반복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