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보존

질긴 악순환-다산이야기에서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12 23:26
조회
421
질긴 악순환

오랫동안 손대지 않은 책들을 정리하던 중에 일석 이희승 선생과의 인터뷰 기사가 우연찮게 눈에 띄었다. 반갑게 읽었다. 대학 때의 스승이셨던 어른이어서 감회가 남달랐다. 1984년 가을, 마침 미수(米壽)를 맞은 선생님을 동숭동댁으로 찾아 쓴 것이었는데 매우 짧았다. 타계하시기 5년 전이다. 근황보다는 그 시절의 선생님 생각을 주로 묻고 있다. 자연히 신문 쪽으로도 화제가 번졌다.“세 가지를 구독하는데 판에 박은 듯이 똑같아요. 취재기자는 다를 텐데 어떤 땐 사진까지 같더라구. 웬만큼들 화석화된 탓인지 분간할 수 없어요. 또 다른 일도 많을 텐데 큰 사건이 나면 그걸로만 채운단 말야. 이해할 수 없어요.” 당시의 KAL 007기 폭파사건을 두고는, “소비에트가 언젠가는 망할 것 같다”고 했다. “그놈들 하는 짓을 보면 제정러시아와 다를 것이 없다”시면서. 평생을 깨끗하게, 60년대 초반의 2년 동안은 동아일보 사장으로도 계셨던 분의 현실 진단이 그때 그랬다.

뉴스와 양적 집중 포장과 쏠림현상 여전

좋이 2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이 그리고 훌쩍 흘렀다. 군사정권의 ‘보도지침’ 치하에서 붕어빵을 찍어내듯 똑같던 지면 꾸리기에 대해서는 길게 짚을 겨를이 없다. 일단 접을지언정, 큰 사건이 날 때마다 그걸로 지면을 메우는 습성이 지금은 다시 어떤가.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는 비판이 높다. 지면이 넓어진 만큼 요란하다. 한층 광역화된 방송의 실시간대 영향력에, 당시에는 있지도 않았던 네티즌의 연대를 또 들 수 있다. 이렇게 다변화된 매체들이 이 시대의 체열을 순식간에 더욱 높이기도 하고 식히기도 한다.

단숨에 산 영웅을 만들기도 하고 하루아침에 죽은 목숨으로 내치기도 한다. 사건이나 어젠더의 꼭지만 떼다 마는 가벼움을 경계하고, 속보(續報)와 심층보도에 충실해야할 신문은 경우에 따라 그럴 수도 있다. 의당한 일이지만, 정녕 지켜야할 균형과 한계는 언제나 있다. 줏대없이 양으로 경쟁하고, 뒷갈망도 못하면서 우선 쓰고 말하는 일시적 대량 전달의 폐단은 결국 독자의 상실감으로 처질 게 뻔하다.

한데도 뉴스의 양적 집중 포장과 쏠림이 아직 심하다. 필요 이상으로 자주 지면에 등장하는 ‘관련기사’도 예컨대 그렇다. 독자에게 뉴스와 정보의 과식(過食)을 버릇들이는 흠이 없지 않다. 1면에 내 건 ‘간판’의 뒤를 받쳐주는 계속기사가 아니라 별도의 큰 상을 따로 차리러 든다. 앞면에서 이미 쓴 내용을 거듭거듭 되뇐다. 정보도 영양가도 따로 없는 늘여빼기가 자사의 정치 취향과 관련되면 더구나 따분하다. 20년 전에 걱정했던 ‘냄비 기질’은 30년 전에도 있었고 50년 전에도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요새는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민심을 서로 부풀리는 경향이 농후하다. 언론에만 전적으로 ‘주범’의 혐의를 씌우는 것은 물론 옳지 않다. 다만 생각한다. 타고난 선동성 기질이랄지 유혹을 어쩌지 못해 역설적 재미를 본 부분도 없지 않은 까닭에, 앞으로는 그걸 서서히 잠재우는 역할을 기대할만 하다고.

요새는 온·오프라인까지 민심을 서로 부풀려

입 가진 사람마다 이런 일과성 바람의 타파를 외친다. 열에 아홉은 커녕 열이면 열 모두가 고쳐야할 고질로 꼽는 판이라, 입에 올리기 새삼스럽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조차도 속으로는 딴 주머니를 찰 공산이 크다. 내버려 두면 저절로 식기 마련이라는 타성에 익숙하기 때문에,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는 푼수로 냉소를 뿌리기 쉽다. 질긴 악순환이다. 누구는 민족성과 곧바로 결부시키기도 한다. 너무 많이 나간 억하심정이겠지만 말이다. 일석 선생의 어떤 수필에도 나온다. 국회의사당 근처를 지나다가 ‘민족성개주(改鑄)연맹’이라는 플래카드를 보고 소름이 죽 끼치는 한편, 움트는 자각이 반갑더라고 썼다. 1961년에 발표한 글이다. 그 단체의 주장에는 ‘냄비기질’도 포함돼 있었는지 어땠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아주 없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건너짚은들 어떠리 싶다. 황우석 교수의 성공과 몰락을 보았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모국의 관심이, 토리노동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한국계 입양 청년을 오히려 쓸쓸하게 주저앉힌 일과도 상관이 있다. 방한을 일단 취소하고 조용히 어머니를 찾겠다는 그의 마음이 곧 우리 마음 아니겠는가.
 
글쓴이 / 최일남· 소설가· 前 동아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 작품: <흐르는 북> <서울사람들> <누님의 겨울> <석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