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보존

혼혈, 음지에서 양지로…정책 뒷받침 숙제남겨 (한겨레, 4/13)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07 23:14
조회
563
**혼혈, 음지에서 양지로…정책 뒷받침 숙제남겨 (한겨레, 4/13)

하인스 워드가 9박10일의 방한 일정을 모두 마치고 12일 미국으로 돌아간다. 그는 11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 방문을 통해 모국과 한국인을 얼마나 사랑하게 됐는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며 “대한민국 구성원으로 안아주고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심어준 국민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워드는 또 “혼혈인 차별 폐지를 중요한 사명으로 삼을 것”이라며 펄벅재단과 함께 한국에 혼혈인 재단 설립을 추진하기 위해 5월 말께 다시 찾아오겠다고 밝혔다. 5월엔 아내와 아들도 동행할 예정이다.

워드의 혁명=워드는 “한국은 매우 아름다운 나라이지만 어두운 면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더 나은 사회로 가도록 인종차별 관행을 바꾸기를 바란다는 충고도 덧붙였다. 그는 자신에게 쏟아진 성원과 사랑이 한국의 다른 혼혈인들에게도 똑같이 보내지길 바란다는 희망을 말했다.

한국 정부는 워드가 방한한 열흘새 ‘혼혈인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에 나섰고, 법무부는 ‘외국인의 날’ 지정을, 교육부는 단일민족 대신 다인종·다문화를 수용하는 새 교과 내용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박화서 명지대 교수(이민학)는 “혼혈인인 하인스 워드가 역경을 딛고 성공한 사람으로 나타나 우리에게 순혈주의와 차별에 관한 논의의 장을 열어줬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복권=혼혈인 어머니의 재활을 20년 동안 도와 온 두레방의 유영님 원장은 “유교문화 등 때문에 혼혈인의 엄마들이야말로 안길 사회나 돌아갈 가족이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는 혼혈인보다 그들의 어머니를 먼저 외면했다. 그러나 워드는 한국이 ‘박탈한’ 어머니의 시민권을 회복시켰다.

워드는 “더 큰 꿈을 찾아 낯선 땅으로 나선 어머니의 노고를 알리기 위해 예전부터 한국에 올 계획이었다”며 “어머니가 바로 나의 엠브이피”라고 말했다. 한국에 사는 혼혈인인 오죠디(43)씨는 “꿋꿋하게 한국에서 혼혈인을 키워낸 엄마들도 워드의 엄마와 같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워드의 빈자리=그가 다녀간 자리엔 다시 국내 혼혈인들만 남았다. 워드는 지난 4일 “어렸을 땐 한국인으로 태어난 사실이 부끄러웠으나 지금은 자랑스럽다”고 말했지만, 한국에 사는 혼혈인들은 아직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혼혈인들은 이런 사회의 관심이 일회적이지 않을까 염려한다.

한편에서는 미국에서 성공한 ‘영웅’을 인연으로 해서만 인종차별 문제가 제기되는 천박함을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욱이 그는 한국 사회가 두 겹의 차별을 가했던 ‘흑인계 혼혈인’이었다. 이제는 아시아계 이주 노동자들과 한국인 사이의 ‘코시안’이 혼혈인 중에서도 가장 차별받는 존재들이다. 한국 사회는 그를 보면서 혼혈인 차별과 유색인 차별이란 이중 차별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김통원 성균관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차별은 혈연·지연·학연의 패거리 문화처럼 합리성이 없는 의사결정 구조에서 비롯됐다”며 “워드의 방한이 좀더 합리적이고 열린 사회로 나아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인택 전종휘 조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