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보존

프랑스인 주베르가 조선에 와서 충격받은 이유는 (한겨레, 4/7)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07 23:10
조회
520
**프랑스인 주베르가 조선에 와서 충격받은 이유는 (한겨레, 4/7)

<조선 최고의 명저들>
신병주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1만5000원

잠깐독서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록에 인색한 민족이라고들 자탄한다. ‘음주가무’를 즐기는 데 비해 차분히 일상이나 일생, 또는 지식이나 경험을 정리해서 남기는 데 유난히 게으른 편이라는 얘기다. 특히 현대 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서양문화의 저력과 비교할 때 나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 책을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반박할 논리가 생긴다. 원래부터 그런 게 아니라, 요즘 한국 사람들이 인터넷과 휴대폰에 묶여 책이건 신문이건 활자 기피증에 초고속으로 감염된 탓이라고 말이다.

우선 ‘조선 최고의 명저들’ 14권의 면면이 궁금하다. <경국대전>, <난중일기>, <홍길동전>, <열하일기>, <한중록>, <조선왕조실록> 등은 새삼 설명이 필요없어 보인다. 세계로 열린 최초의 문화백과사전 <지봉유설>, 실학파 별들이 노닌 거대한 호수 <성호사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장대한 인문지리서 <택리지>, 국왕의 숨결까지 담아낸 비서들의 일지 <승정원일기>, 생생한 조선왕실 행사기록 <의궤> 등도 낯이 익다. 아마도 중·고교 시절 국사 시험에 단골로 등장하던, 저자 또는 시대와 책 이름 짝짓기 훈련 덕분인 듯 하다.

그런가하면 세종 때 집현전 학자 신숙주가 왕명으로 일본을 직접 답사한 뒤 기록했다는 <해동제국기>나 성종대의 학자 최부의 일행 43명이 제주도에서 풍랑을 만나 중국의 강남까지 떠밀려 간 뒤 항주~양주~천진~북경~요동~압록강 등을 거쳐 148일만에 전원 무사히 귀국한 여정을 담은 <표해록>은 생소하다. 240년 전 영조가 직접 명하여 청계천 준설공사를 한 토목공사 기록인 <준천사실> <준천계첩>도 이채롭다.

그런데 누가 감히 ‘명저’를 골랐는지 궁금해진다. 저자는 옛 문헌과 기록들을 가장 가까이서 연구할 수 있는 서울대 규장각의 학예연구사로서 한국방송의 <역사추리> <역사스페셜> <불멸의 이순신> 등의 자문을 맡아 우리 역사의 대중화에 남다른 공력을 쏟아왔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이름만 알 뿐 원전이나 내용을 본 적 없는 고서들을 알기 쉽게 읽어주어, 자연스럽게 조선 500년사를 이해시킨다 .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책 머리말의 첫 줄이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의 일원인 주베르가 “아무리 가난한 집에도 책이 있다”며 조선 사람의 책 읽기와 글쓰기 문화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