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보존

왕의 남자와 스크린 쿼터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07 23:01
조회
594
왕의 남자와 스크린 쿼터

스크린 쿼터의 축소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면 정부의 약속이 어떻게 파기되고 정당화되는지 일목요연하게 드러난다.  
먼저 재경부 차관 등 관료들이 간간이 스크린 쿼터의 축소를 시사하는 애드벌룬을 띄우고 그 때마다 문화관광부는 양보는 없을 것이며 이는 대통령의 뜻이기도 하다고 강조한다. 때마침 한국영화는 관객 점유율 70%라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뒤이어 장안의 화제작인 <왕의 남자>를 관람함으로써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과시한다.  

    스크린 쿼터 축소 발표, 절반인 73일로

드디어 구정을 코앞에 둔 절묘한 시점에서 정부는 한미 FTA협정을 위해 오는 7월 1일부터 스크린 쿼터를 종전의 146일에서 73일로 반으로 줄인다고 발표한다. 문화관광부는 한국영화의 연간 상영일수를 106일까지 유지하려고 했지만 미국이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물러선 것이라고 변명하면서 앞으로 영화산업 육성을 위해 4천억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한다.  
뒤통수를 맞은 영화인들은 대통령의 공약과 유네스코 문화다양성협정, 미국과 캐나다 간의 FTA 협정에서도 문화 부문은 제외시켰다는 사례 등을 상기시키며 항의를 해보지만, 정부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다.  

이번에 인터넷 매체에서 영화인들의 주장을 보도해주었지만 네티즌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댓글의 상당수는 재경부 관리들의 주장을 그대로 흉내 내어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 영화계가 양보해야 한다며 영화인들의 집단이기주의를 성토하고 있다. 항의 집회에 왔던 영화배우들이 외제차를 타고 사라지더라는 폭로성 비난과 더불어 유명 배우나 감독들은 몇 억씩 챙기는데 시나리오 작가나 스탭들은 찬밥 신세인 영화판의 양극화 현상을 비난하면서 스크린 쿼터 축소는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한국영화가 잘 나가고 있는데 스크린 쿼터 타령만 하는 것은 지나친 엄살이 아니냐고 다그치는 사람도 있다.  

    한국영화 컸다지만, 헐리웃영화에 버텨낼 수 있는가?

구정 연휴 동안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왕의 남자>를 관람했다고 한다. 이제 1천만 관객 돌파는 시간문제인 듯하다. 이 영화를 보고 젊은층이 남사당과 줄광대 등 전통 연희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소식도 반갑다.  
그러나 한국영화가 경쟁력도 갖추고 수준도 높아졌으니 스크린 쿼터가 축소되더라도 얼마든지 헐리웃영화에 맞서 버텨내리라고 본다면, 그것이야말로 한미 FTA협정이 타결되면 우리 경제가 대미 경쟁력이 높아져 엄청난 수출증가가 뒤따를 것이라는 기대만큼이나 허황된 꿈일 것이다.  
주한미상공회의소 의장의 논리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한국의 경제학자들과 관료, 신문들의 이런 주장을 듣다보면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로 몇 십조 원의 대박을 맞을 것이라는 허풍을 다시 듣는 것 같아 기분이 언짢다. 그렇다면 왜 일본이나 중국, 싱가포르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과 FTA를 체결하려고 안달하지 않는 것일까?  
 
글쓴이 / 정지창
· 영남대학교 독문과 교수
· 전 민예총대구지회장
· 저서: <서사극 마당극 민족극> 등

출처:<다산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