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보존

[아침햇발] 김인식스러움/이길우 (한겨레, 3/27)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07 23:01
조회
514
**[아침햇발] 김인식스러움/이길우 (한겨레, 3/27)

“감독 하는 게 뭐 어렵나. 선수 두 명만 잘 보듬으면 되지.” 세계적 야구 명장으로 떠오른 김인식 감독의 말이다. 무슨 의미일까?
야구 한 팀의 선수는 25명이다. 이 가운데 자신이 야구를 잘한다고 여기고, 실제로도 그런 선수가 반 정도다. 스스로 못한다고 느끼고 노력하는 선수가 반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어느 팀이든 그 사이에 두 명 가량이 있는데, 이들은 ‘나는 야구를 잘한다’고 생각하고 다른 선수들과 달리 불평불만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김 감독은 팀이 위기에 빠질 때면 이 두 명을 해결사로 ‘고용’한다. 가령, 경기 후반 역전 주자가 나가 있을 때 불만 선수 가운데 한 명을 대타로 기용한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그 선수가 한 건 하면 선수는 자신을 믿어준 감독에 감사하고 열심히 하는 선수 대열에 낀다.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손해만 보는 것은 아니다. 선수가 팀을 위기에서 건져내는 구실을 맡겨준 데 대해 감독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은 물론, 팀에 충성심을 나타내며 더 잘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지난 2003년 김 감독이 두산 감독이던 시절 자유계약선수(FA) 자격 요건을 눈앞에 둔 정수근 선수가 손가락 부상을 당했다. 깁스를 할 정도로 출전이 어려웠으나, 몇 경기만 더 나가면 자격을 얻을 수 있게 되자 김 감독은 정수근을 대주자로 기용하는 ‘묘수’를 써서 그를 살렸다. 그는 이듬해 롯데로 이적하며 무려 40억6천만원이나 챙겼다.

기업체뿐 아니라 전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김 감독의 리더십은 아주 편안하고 재미있다. 선수들에게 일일이 잘못을 지적하거나 짜증을 내지 않는다. 한 선수는 일년 내내 김 감독이 화를 내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말도 적은데다 눌변이다. 그렇다고 아예 말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은 아니다. 짧지만 말을 해야 할 때는 반드시 하고, 심지어 웃겨야 할 때는 단숨에 주변 사람들을 휘어잡는 개그맨 수준의 위트를 보여주기도 한다.

지난해 지휘봉을 잡은 뒤 예상을 깨고, 한화 이글스가 상위권에 진입하자 식사 자리에서 물었다.

“팀이 잘나가는 이유가 뭐죠?” 순간 김 감독은 고개를 옆으로 틀고, 한 손으로 수줍은 듯 얼굴을 가린 뒤 고개를 까닥거리며 “음 음, 어 어”라고 뜸을 들이다 “선~수”라고 말해 자리를 뒤집어놓았다. 당시 인기 개그코너(안어벙)의 한 대목을 패러디한 것이다. 말이 없으나, 말을 해야 될 때는 그게 작전지시든 기자회견이든 노는 자리든 확실한 카리스마를 느끼게 전달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뉴욕 양키스 조 토레 감독의 리더십이 화제에 오른 적이 있다. 그는 개성파들의 총집합소인 양키스 선수들을 완벽하게 조련해 월드시리즈 3연속 제패 등 최고 리더십을 보여줬다. 그의 리더십 가운데 하나가 김 감독의 ‘두 명의 선수’ 예와 닮아 있다. 그에게 ‘두 명’은 한물간 불평불만투성이인 노장 선수들에 대한 격려와 배려다. “너 절대 트레이드 안 시켜, 열심히 해 봐.” 해당 선수를 불러 속삭이듯 전하는 이 한마디가 고참 선수를 훈련에 내모는 동력이 되고, 그 영향이 전체 선수들에게 이어진다는 것이다.

신인왕을 차지한 27살의 한창나이에 어깨부상으로 은퇴한 뒤 배고픈 고교 감독을 거쳐 여러 프로구단 사령탑에 올랐으나 뇌경색으로 쓰러졌던 김 감독. 몹시 힘들었겠지만 그의 다채로운 과거 경험들이 오늘 저처럼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바뀌었을 것으로 보인다.

‘김인식스러운’ 정치 지도자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