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보존

[세계의창] 교육, 그리고 국가주의 망령 (한겨레, 3/23)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07 23:00
조회
399
**[세계의창] 교육, 그리고 국가주의 망령 (한겨레, 3/23)

일본에서는 이번 정기국회에 교육기본법 개정안이 상정될 가능성이 있다. 교육기본법은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와 평화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법률로 여겨져 왔다. 일제의 교육을 지배한 것은 ‘충군애국’ 사상을 강조한 ‘교육칙어’였다. ‘메이지 천황’이 내놓은 칙어이므로 법률 이상의 권위를 갖고, 일본인뿐 아니라 식민지 국민들에게도 전시에 ‘천황’과 일본을 위해 목숨을 바치도록 명령한 것이었다. 패전 뒤 교육칙어를 부정하고 개인의 존엄에 바탕해 평화로운 나라와 사회를 만드는 사람의 육성을 이념으로 내걸고 제정된 게 교육기본법이다. 국가주의 교육의 부활을 막으려고 행정의 부당한 교육 지배를 금지한 것도 이 법이다.
일본 헌법의 민주·평화 이상을 구현해 ‘교육의 헌법’이라고도 불리는 이 법은 바로 그 때문에 보수세력의 표적이 됐다. 전쟁과 군대 보유를 금지한 헌법 9조의 개정을 추진하는 세력은 교육기본법에 애국심을 교육목표로 명기할 것을 요구한다. 재작년 자민·민주당 의원들이 발족시킨 ‘교육기본법 개정촉진위원회’ 설립총회에서는 개정 목적을 “나라를 위해 생명을 버려도 되는 일본인을 기르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새 헌법 초안을 내놓은 자민당은 거기에 걸맞게 애국심 교육을 위한 교육기본법 개정에 착수하려는 것이다.

며칠 전 후쿠시마현 서부의 아이즈반게마치를 찾았다. 인구 1만 남짓의 이 마을에서 40년 전 1년 동안 산 적이 있다. 이번 방문은 1944년 제작된 <적이 몇 만이라도>라는 영화의 상영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44년은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의 패색이 짙던 무렵이다. 이 영화는 이 마을을 무대로 한 일본군 위문 영화다. 영화는 러-일 전쟁의 일본해 해전 장면부터 시작한다. 주인공인 아이즈반게마치 초등학교 교장 사토 겐타로는 제자를 사랑하고, 엄하면서도 부드러운 인품의 호인이다. 그는 일본해 해전 때 전함 미카사의 함상에서 입은 ‘명예로운 부상’을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는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 해군의 소년 항공병이 되는 것만한 기쁨이 없다. 그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희망과 투지를 불어넣으려 해군으로부터 비행기를 한 대를 불하받아 교정에 두기 위해 진력한다는 게 영화의 줄거리다.

그의 노력이 열매를 맺어 학교에 해군 비행기가 도착한 날 전교생과 주민, 내빈이 참석한 축하회가 열린다. 그 때 일본군의 전과를 전하는 대본영 발표 뉴스가 흘러나온다. 그런데 그 뉴스에는 사토 교장의 아들이 적의 함대에 타격을 주고 전사했다는 소식이 들어 있다. 사토 교장은 학생들에게 해군 항공대에 대한 동경을 가르치려 비행기를 학교에 들여오지만, 그 동경의 끝은 바로 전사인 것이다.

사토 교장 아들의 ‘명예로운 전사’ 소식을 듣고 내빈인 해군 군인은 학생들에게 말한다. “우리가 갈 길은 단 하나. 영령이 가신 길을 계속 가는 것뿐입니다.” 학생들은 일제히 일장기를 휘두르고, 교정 전체는 명예로운 전사와 영령을 칭송하는 환호로 뒤덮인다. 파시즘의 광경 그 자체다. 사토 교장도 눈물을 글썽이며 그 갈채를 받아들인다.

“나라를 위해 생명을 버려도 되는 일본인을 기르는” 교육은 아이들을 ‘영령이 가신 길’, 곧 야스쿠니신사로 향한 길로 이끄는 교육이다. 40년 전 그 교정에 있던 내가 그보다 20년 더 전에 있었다면 일장기를 휘둘렀던 아이들 가운데 한 명이 돼 있었을 것이다. 애국심 교육을 지향하는 교육기본법 개정의 위험성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 영화였다.

다카하시 데쓰야/도쿄대 교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