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보존

[발언대] 대화와 타협도 환경운동이다/신창현 (한겨레, 3/20)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07 22:59
조회
395
**[발언대] 대화와 타협도 환경운동이다/신창현 (한겨레, 3/20)

지난 16일 대법원이 새만금 사업에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새만금 문제는 2000년 8월 찬반양론이 팽팽한 민관 공동조사 결과가 나온 후 대통령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위원회에서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할 좋은 기회가 있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당시 정부가 제시한 절충안은 일단 방조제를 막되 만경강의 수질이 환경기준을 달성할 때까지 시화호처럼 수문을 개방하여 해수를 유통하고, 상대적으로 수질이 양호한 동진강 유역부터 간척을 시작한다는 내용이었다. 농림부는 방조제 완공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환경단체는 해수유통으로 수질오염과 해양오염 방지라는 목표를 이룬다는 타협안이었다.

방조제를 막게 되면 어느 정도 개펄의 유실은 불가피하지만, 해수유통이라는 물꼬를 터놓게 되면 이후 새만금호의 수질이나 방조제 바깥 해양의 오염 정도에 따라 시화호처럼 영구 개방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 협상에서 전부 아니면 전무인 결과는 없다. 환경단체가 절반은 양보하며 절반의 성공을 거둘 수 있는 대안을 거부하고 대화의 장에서 철수해 버린 것이 오늘날 환경운동의 위기를 가져온 단초가 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혹시 환경단체들이 동강댐에서 거둔 승리에 도취하여 새만금 문제를 너무 가볍게 본 것은 아닐까? 그러나 동강댐 백지화는 전 국민을 동강댐의 아름다움에 반하게 한 환경단체와 언론의 노력도 있었지만, 이면에는 동강댐 상류의 개발을 위해 상수원 다목적댐의 건설을 반대한 강원도 의회와 도지사, 선거를 앞둔 여당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개발(수자원공사, 건설교통부)과 환경(환경단체, 환경부)의 싸움에서 또다른 개발(강원도, 여당)이 환경에 힘을 실어줬기 때문에 대통령의 백지화 선언이 가능했던 것이다.

새만금은 어떤가.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게 하는 운동도 부족했고, 새만금 사업이 지역발전의 희망이라고 믿고 있는 전북 주민들과 연대하는 노력도 부족했다. 여론조사에서는 환경이 중요하다는 응답이 항상 80% 이상이지만 실제로 ‘개발’과 ‘환경’이 부딪치면 정부는 다수의 여론을 따르게 돼 있다. 그런데 환경단체들은 다수 여론의 지지를 확대하려는 노력보다는, 대통령과 담판을 지으려고 하거나 삼보일배 등의 순교자적 운동, 언론플레이 운동에 주력했다. 이런 상황에서 ‘방조제 완공 후 해수유통’ 및 ‘선 동진강 후 만경강 개발’이라는 대안은 그 동안 환경단체들이 기울인 노력에 비해 상당히 진전된 타협안이었는데 환경단체들은 이것을 거부해 버렸다.

동강댐 백지화 이후 환경단체들이 너무 자만했던 건 아닐까? 환경단체들이 반대하면 아무 것도 못한다는 권위의식에 젖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대중들을 의식화, 조직화, 무장화하는 운동보다 삼보일배나 단식농성 등의 운동방식을 더 선호한 것은 아닐까? 환경운동의 대중화, 지방화보다 언론 중심의 운동방식 탓에, 전국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개발정책들 앞에서 무력감과 좌절감만 느끼는 위기가 온 것은 아닌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새만금 문제에서 배워야 할 교훈의 하나는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과학적 판단도 사회적 합의기준이 없으면 어느 한쪽의 이해관계에 봉사하는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과학적인 사실조사 결과는 단지 참고사항으로 활용하고,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사회적 판단기준을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가 대화와 타협으로 합의하는 이해관계자 참여형 의사결정 절차가 중요하다. 진정한 참여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신창현/환경분쟁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