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보존

로힝야족 “제발, 우릴 잊지 마세요” (한겨레, 3/20)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07 22:59
조회
503
**로힝야족 “제발, 우릴 잊지 마세요” (한겨레, 3/20)


미얀마(버마)와 방글라데시의 국경 지대에 무리지어 사는 로힝야족은 스스로를 ‘버림받은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이슬람교를 믿는 탓에 불교국가인 미얀마에서 박해받고, 난민인 탓에 이슬람국가인 방글라데시에서도 냉대받기 때문이다. 영국 <비비시(BBC)>는 최근 이들의 고단한 삶을 전하면서, “이들에게 더욱 괴로운 것은 자신들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현실”이라고 애도했다.


25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로힝야족은 대부분 미얀마 서부 아라칸주에 모여 산다. 수백년 전에 이곳을 왕래하던 아랍 상인들의 영향을 받아 이슬람교로 개종한 이들은 불교국가인 미얀마에서 그야말로 노예처럼 살아간다. 시민권이 없어 땅을 가질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결혼이나 여행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사소한 잘못으로 감옥에 끌려가 강제노역에 동원되기도 한다.

미얀마 정부는 이들이 영국의 식민지 개척시대에 방글라데시 남동부에서 넘어온 이주민이라며 같은 민족으로 치지 않는다. 로힝야족이 오랜 세월을 이곳에서 살았다지만, 그 뿌리가 다르다는 것이다. 대다수 미얀마 역사학자들도 “이들이 미얀마인이라는 역사적 증거가 없다”며 정부의 차별대우를 정당화한다. 미얀마 사회에서 로힝야족은 종교와 혈통주의로 쌓아올린 거대한 피라미드의 밑바닥을 이룬다.

로힝야족은 이런 박해를 피해 1962년과 78년, 91년 세 차례에 걸쳐 방글라데시로 집단이주를 감행했다. 91년의 대이주 땐 로힝야족의 3분의 1이 짐보따리를 쌌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방글라데시엔 2만여명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대부분 힘든 난민촌의 삶을 견디지 못해 다시 미얀마로 돌아갔다. 나머지는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타이, 말레이시아 등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에 있는 쿠투팔롱 난민촌은 고향을 떠난 로힝야족의 비참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가로와 세로가 각각 3m 정도인 작은 방에 무려 16명이 뒤엉켜 살고 있다. 한 젊은 엄마는 이곳의 삶을 이렇게 묘사했다. “여기는 모든 것이 부족하다. 음식은 식구들이 먹기에 충분하지 않다. 몸을 씻을 물도 넉넉하지 않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은 우리에게 친절하지 않다. 그들이 때릴까봐 감히 밖에 나가지도 못한다.”

이들은 방글라데시로 이주할 때 이슬람 형제들의 환영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먹고 살기 힘든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이들이 땅과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며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냈다. 난민촌에서 만난 한 남자의 얼굴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우리는 미얀마에서 당했던 것과 똑같이 이곳에서 당한다. 우리는 여기서 차이고 저기서 차이는 축구공 같은 신세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은근히 이들이 미얀마로 돌아가도록 압박한다. 이 때문에 미얀마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이들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크리스토퍼 리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은 “방글라데시 정부는 로힝야족이 미얀마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미얀마로 돌아간 로힝야족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조금도 모른다”고 말했다.

미얀마는 왜 로힝야족을 학대하는 것일까? 로힝야족은 미얀마 정부가 자신들을 멸종시키기 위한 책략을 쓰고 있다고 믿는다. 한 노인은 “가장 큰 이유는 우리를 없애기 위해서다. 사람들의 눈이 있어 우리를 다 죽일 순 없다. 박해는 우리를 서서히 사라지게 하는 방법일 뿐이다”고 주장한다. 미얀마 정부는 얼마 전부터 아라칸주에 불교도들을 대거 이주시키고 있다.

오갈 데 없는 로힝야족은 이슬람 테러주의의 유혹에 쉽게 빠져든다. ‘성전’을 수행해야 하는 이슬람 테러단체들에게 이들은 ‘타고난 전사의 공급처’다. <비비시>는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도 이들에게 눈독을 들였다고 전했다. 실제 아프가니스탄의 알카에다 비밀기지에서 로힝야족 젊은이들이 군사훈련을 받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