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구
이주노동자 건강권과 의료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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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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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0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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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건강권과의료지원_원고.hwp
이주노동자 건강권과 의료지원
김미선 (한국이주노동자건강협회 사무처장)
들어가는 말 - 인권으로서 건강권
건강권이란 생명·건강을 지키는 인간의 권리를 의미한다. 이전에는 건강권이란 하나의 선언적 권리일 뿐 실정법상의 권리는 아니라는 것이 많은 학자나 행정실무자들의 견해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연합 헌장을 비롯한 세계인권선언, 세계보건기구(WHO) 헌장, 국제인권규약 등 인권보장을 강조한 문서가 발표되면서부터 건강권을 인권의 하나로 인정하는 경향이 국제적으로 확산되었다.
대한민국 헌법만 보더라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10조)'. 또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보장· 사회복지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34조)라는 조문을 통해 국민의 건강권을 포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또한 헌법은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한국이 체결하거나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에 따라 지위와 인권이 보장되어야 함(6조)을 명시하고 있으며 근로기준법도 노동자의 국적, 신앙,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5조).
따라서 이러한 국제, 국내적 기준에 근거해볼 때 건강권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니며,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기본적 권리’로서 국민뿐 아니라 일반적인 국제법규에 따라 외국인에게도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는 이주노동자의 기본적 권리로서 건강권을 위협하는 요소들과 정부정책, 민간차원의 지원활동과 과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이주노동자 건강 위협 요소들과 의료수요
일반적으로 이주의 과정에서 이주자들의 건강은 악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거나 불법, 혹은 강제 이주자들일 경우 그 정도는 더 심해진다. 이주하려는 지역에 도착하면, 이주노동자들이나 난민들은 질 낮은 음식을 제공 받기 쉬운데, 이는 쉽게 영양실조로 이어진다. 또 새로운 생태환경을 접하게 되면서 이주자들은 새로운 질병의 위협에 노출되며, 전염병에 걸리기도 쉬워진다. 이주자들은 그 '지역사람' 혹은 시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공으로 제공되는 음식이나 다른 서비스들을 받지 못하기도 한다. 또한 열악한 생활환경이나 노동 조건 때문에 건강을 잃을 수도 있다. 즉, 보다 나은 조건을 찾아 ‘이주’를 선택한 이주노동자, 이주민들에게 ‘이주’ 자체가 이들의 기본 생존조건인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는 뜻이다.
한국 사회의 이주노동자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편견, 언어와 문화의 장벽, 3D업종의 단순 저임금 노동자로서의 육체적 고통, 피부색이 가지는 인종적인 편견 등과 함께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노동자가 아닌 연수생이라는 신분의 제약, 그도 아니면 소위 ‘불법체류자’, 즉 현행범이라는 사회적 낙인 등의 힘겨움에 단 하루도 편안히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즉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가 2000년 발간한 <외국인이주노동자 인권백서>의 첫머리에서 밝혔듯, 1980년대 후반부터 국내 노동현장에 들어와 일하기 시작한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우리 사회의 “이방인”으로서 겪는 어려움에서부터 저임금 노동자라는 사회적 지위 혹은 체류자격으로 인한 다종다양한 인권침해와 노동권 침해로 얼룩져왔던 것이다.
그러나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또 노동자로 자신의 한 몸에 의지해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가장 고달프고 힘든 순간은 바로 병이 들거나 산재를 당해 경제적인 면 뿐 아니라 심적, 정신적 고통을 당할 때이다.
2005년 10월 노동부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 반 동안 8,555명의 이주노동자가 산재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표1) 이 수치는 매일 7명의 이주노동자가 산재를 당했다는 것을 뜻한다.
<표 1> 외국인노동자 재해 현황 (단위: 명, %)
또 2005년 9월 노동부가 발표한 산업재해 발생현황을 보면 300인 미만 사업장에서 전체 재해자의 85.7%(53,166명), 전체 사망자의 78.0%(1,407명)가 각각 발생했고, 또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전체 재해자의 68.3%(42,335명), 전체 사망자의 54.3%(981명)가 각각 발생하였다. 업종별로 볼 때 재해자수는 제조업이 26,554명(43%)으로 가장 많고, 건설업이 11,158명(18%)으로 그 다음을 차지, 중소, 영세규모의 사업장과 제조업,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산재발생 빈도를 짐작하게 한다.
이러한 이주노동자 산재발생의 주요 원인을 2002년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에서 실시한 산재피해 이주노동자 실태조사는 첫째, 안전장치의 미비, 둘째, 안전교육 미흡, 셋째,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피로누적, 그리고 한국어교육미비 등으로 꼽았다. 즉, 안전한 노동과 안전장치 설치보다는 생산에만 급급하다보니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사고들을 고스란히 이주노동자의 건강이나 생명과 바꾸고 있다는 뜻이다.
노동현장에서의 산재와 더불어 이주노동자들의 질병은 단순히 가까운 의료기관을 찾아 진료받고 약을 먹거나 검사 혹은 수술 등의 의료적 처치를 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다. 평일에 병원을 찾기 위해 사장의 눈치를 보아야 하고,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을 때 의사전달이 제대로 안되어 뭐라도 잘못되는 것은 아닌가 혹 검사나 수술이라도 받게 되면 의료보험이 없어 그 많은 진료비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또 치료받고 쉬는 동안 생계는 어떻게 꾸려가야 하는지 등 총체적인 고민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은 지원단체를 찾아 자신들의 고충들을 호소해왔고 그 결과 지난 10여 년간의 이주노동자 지원활동 가운데 의료지원활동은 양적, 질적으로 증가했다. 여기서 나아가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의료공제회 조직과 이주노동자 전용병원 설립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이를 국제노동재단이 2003년 실시한 이주노동자들의 지원서비스 만족도를 통해 살펴본다면, 이주노동자는 지원단체를 통한 의료(85.2점), 법률상담(79.2점), 쉼터?피난처제공(78.4점) 등에 높은 만족도를 표시했다. 체류자격별로는 산업연수생들은 의료(81.7점)와 법률상담(80.7점) 등의 상담활동에, 미등록노동자는 의료(88.1점)와 산업재해(80.0점)의 상담활동에 크게 만족하고 있었으며, 미등록노동자가 산업연수생보다 의료와 산업재해에서 만족도를 높이 보이고 있는 것은 이들의 열악한 상황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표 2> 지원단체의 상담활동 내역과 그에 대한 이주노동자의 만족도
미등록노동자건 산업연수생이건 이들이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경험한 지원서비스 중에서 의료문제 해결에 높은 만족도를 보이는 것은 결국 이들이 제도나 정책적 개선을 통한 의료문제 해결보다 민간 지원활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그간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2. 이주노동자 의료정책
2004년 고용허가제 도입 이후 한국정부의 이주노동자 의료정책은 합법체류자에게는 건강보험 적용을 통한 ‘건강권’ 인정과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는 ‘응급의료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2006년 5월 26일 개최된 제1회 외국인정책위원회에서도 “교육?의료서비스 등 기본적 성격의 인권보장”을 외국인 정책 기본원칙으로 담고 있다.
1) 건강보험 가입과 적용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가운데 직종단체 연수생은 95년부터 해외투자기업연수생은 99년부터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사업주가 건강보험 가입을 등한시하거나, 연수생 본인이 보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거나 보험료 납부를 부담스럽게 여겨 가입을 기피하는 경우도 많다.
이에 정부는 2004년 8월 17일 고용허가제 시행 이후 합법체류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건강보험 적용을 의무화하고 있는데 2006년 1월 1일 부로 모든 사업장에 근무하는 외국인과 재외국민을 건강보험 직장가입자로 당연적용되도록 하여 국민과 동일한 혜택을 받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건강보험 직장가입의 경우 소재지가 일정하지 않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건설업, 가사서비스업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건강보험 가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 경우 직장가입이 아닌 지역보험 가입자격은 되나 이 또한 비용문제 때문에 민간단체에서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에 의존하는 형편이다.
따라서 정부에서 기존 산업연수생을 비롯한 이주노동자에 대한 건강보험적용을 임의적용에서 당연적용으로 변환하면서 이에 대한 구체적인 시행방안 즉 외국인고용 사업장의 건강보험 미가입의 경우 처벌지침(혹은 규제) 등이 마련되지 않고서는 건강보험 의무화는 말로만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2) 외국인근로자 건강관리지침
보건복지부는 외국인근로자(불법체류자)들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2000년 8월 <외국인근로자(불법체류자) 건강관리지침>을 마련하여 16개 시?도를 통하여 전국 242개 보건소에 시달한 바 있으며 이 지침에 따라 각 일선 보건소에서는 지역 내 실태파악을 거쳐 외국인근로자에 대한 무료검진 및 진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나, 미등록노동자에 대한 단속과 추방이 지속되는 현 시점에서 이 지침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지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3)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응급상태에 있는 환자에게 적기에 응급조치를 취하기 위해 제정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 지난 2000년 7월 개정되어 이주노동자에게도 적용되고 있다. 이는 의료비가 준비 안된 응급환자가 본인부담금을 납부할 수 없는 경우 국가가 대신 의료기관에 납부하고 본인에게 추후 상환하도록 하여 당장 지불능력이 없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제도이다. 기존에 법률의 명문 규정없이 외국인에게 적용하지 않던 것을 행정해석을 변경함으로 이주노동자는 물론 일선 병원의 부담을 덜어주게 되었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청구하여 의료비를 받는 기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여전히 활용을 꺼리는 것으로 보인다.
4) 외국인근로자 등 소외계층 무료진료사업
2005년부터 보건복지부가 시행하는 소외계층 무료진료사업은 입원 및 수술비 등 본인부담이 큰 항목 위주로 1회당 500만원 범위 내에서 의료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사업 지원대상은 2005년 외국인근로자에 한정하던 것을 2006년 6월 현재 외국인근로자 및 그 자녀와 국적취득 전 여성 결혼이민자 및 그 자녀로 확대하였다.
이주노동자 지원대상 선정방법으로 ① 여권, 외국인등록증, 여행자증을 확인하여 신원 확인, ② 국내 체류기간 90일 경과 여부 확인, 질병의 국내 발병 여부 확인, ③ 전?현직 근로 여부 확인 ④ 건강보험, 의료급여, 산재보험 적용대상 여부 확인 등의 절차를 거치고 있다.
시행기관은 첫해인 2005년 적십자병원과 지방공사 의료원 40여개에서 2006년 현재 58개 의료기관에서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에서는 제도에 대한 악용사례가 있다고 판단, 이주노동자들의 보험가입 여부와 국내에서 실제 일하고 있는 지 등 위에서 본 바와 같은 확인절차를 강화하고 있어 당장 지원이 급한 환자들의 경우 역시 민간 의료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더욱이 이 사업의 지속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재정확보가 필수인데 이에 대한 전망과 더불어 실질적인 지원책이 될 수 있도록 기존 민간단체들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5)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안
2006년 1월 발행한 국가인권위원회의 2007-2011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안은 이주노동자와 관련 “정부는 급증하는 이주노동자의 기본권을 증진하기 위해 고용허가제 시행, 영주권 제도 도입, 초·중등교육법시행령 개정 등 외국인과 관련된 법과 제도를 개선해 왔으나, 이주노동자 특히 미등록이주노동자 본인과 그 가족의 기본적 권리가 여전히 상당히 제한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이주노동자의 국적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이미 가입한 국제규약의 규정을 이주노동자에게 적용해야 하고, ILO의 사회보장에서내외국인균등처우에관한협약(제118호)과 사회보장권리의 보전을 위한 국제체제 확립에 관한협약(제157호)을 비준해야 한다”는 것이 인권위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인권위는 우선 이주노동자와 관련된 법과 제도를 개선하여 이주노동자의 인권침해를 예방하고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이동 제한규정 완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단속하는 공무원에 대한 인권교육 강화 △미등록이주노동자가 체불임금과 기타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공무원통보의무제도 개선과 함께 “이주노동자에 대한 적절한 안전교육 시행과 안전장비 구비로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산업재해를 당한 이주노동자가 산재보험 및 보호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정부정책에 대한 홍보 강화” 등을 권고했다.
이밖에도 이주노동자 가족의 양육권, 건강권, 교육권, 문화권 등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주노동자 자녀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그들의 출생등록 권리를 보장하는 조치 시행 △국민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의료혜택 강화 방안 마련 △이주노동자의 취학연령 자녀를 적극적으로 학교 입학 유도 등을 권고했다.
또한 이주 여성에 대한 폭력을 예방하고 모성보호를 증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이주 여성이 해외취업 형태로 국내 유흥업소에 공급되는 경로를 차단하고 사기성 국제결혼 중개업체 활동 금지 △이주 여성 노동자의 모성보호 관련법을 실제로 적용하도록 근로감독을 강화하고, 충분한 휴식·영양공급, 육아지원, 전용쉼터 개소 등으로 이주 여성 노동자의 모성 보호 등을 권고했다.
3. 민간 이주노동자 의료지원활동 - 건강협회를 중심으로
이상 간략히 살펴본 대로 정부의 이주노동자 의료정책은 합법체류자격이 있는 이주노동자에게는 건강보험을 비롯한 기본적 사회보장을, 미등록 상태의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응급의료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양의 의료서비스가 민간차원에서 제공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우선 지난 10여 년간 합법체류자격을 가진 연수생을 제외한 미등록노동자가 전체 외국인력의 80% 까지 달했던 것을 본다면 의료보험에서 제외되는 이들의 의료문제 해결은 각 지역의 무료진료소, 의, 병원의 할인 그리고 모금을 통한 의료비 지원 등 민간차원에서 전담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난 2002년 본회에서 개최한 이주노동자 진료네트워크 구성을 위한 워크숍 (2002년 9월 28일 연세대보건대학원 강당)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대부분의 이주노동자 무료진료를 행하는 곳은 외국인 밀집지역 내 상담소와 교회, 성당, 사찰 등 종교기관, 보건소, 의, 병원 등 의료기관이 함께 협력하여 진행하고 있었다. 무료진료 횟수는 매주, 격주 혹은 월 1회 정도 의료진이나 의료설비 정도에 따라 단순한 내과, 외과 진료를 위주로 하는 곳에서부터 전 과목을 진료하는 준 종합병원의 양태로 실시하는 데까지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를 위한 무료진료소에서 진행한 기초 검진, 진료와 처치로 그동안 이주노동자들이 잘 알지 못했다 병을 키워 낭패를 보는 사례들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이 고가의 정밀검사나 수술 등이 필요할 때 지원할 수 있는 협력체계가 문제였다. 이러한 이유로 기초검진, 진료부터 2,3차 의료기관 연계와 실제 이들이 의료비 문제로 제대로 진료를 받지 못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각 지역 상담소와 의료진들의 협력으로 1999년 이주노동자 의료공제회가 설립(현 한국이주노동자 건강협회)되어 활동해오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월 6,000원씩 낸 회비를 모아 필요한 이들의 치료비에 지원하고 있는 의료공제회에 가입되어 있는 이주노동자 수는 2005년 말 현재 총 103개국 17,000여 명이고, 협력 의료기관은 전국 808곳이며 함께 지부로 참여하는 상담소는 36개에 이른다.
의료공제회가 활동을 개시한 이래 무료진료, 진료비감면, 진료비 50% 지원 등으로 의료혜택을 받은 이주노동자는 연인원 7만여 명에 이른다. 1999년 의료공제회 설립 이후 2005년 말까지 의료비 지원사업(외래진료를 제외한 가입 3개월 지난 회원의 수술, 입원, 응급, 출산 및 CT, MRI 검사비 50%지원)으로 지출된 의료비 총액은 1,817건 8억 7천 여 만원에 이른다. 그동안 이주노동자에게 직접 지원된 의료비, 무료진료소 약품구입비, 순회검진비 및 예방을 위한 교육과 자료 발간 등 모든 사업비는 의료비 전액은 회원회비에서 또 나머지는 정부기관의 민간단체 지원사업(행정자치부)을 통해 진행하고 있으나 순수 민간차원의 재정지원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한국여성재단) 등이 여전히 큰 몫을 차지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절실하다.
1) 최근 이주노동자 의료실태 - 응급사례 증가
2003년 말부터 시작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과 추방정책은 그동안 의료공제회원으로 가입해있던 많은 회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들이 단속을 피해 숨거나 출국을 하여 회비납부가 눈에 띄게 줄어든 반면, 기존의 무료진료소를 이용하거나 순회검진을 통한 질병의 조기발견과 치료연계의 기회를 놓쳐 오히려 이들의 질병발병 양상은 응급, 고액치료 사례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단속과 추방이 지속된 2004년과 2005년 의료공제회 협력의료기관을 이용하여 보험수가 적용과 진료비 50%를 지원받은 의료비 직접지원 건수는 총 614건 3억 5천 8백 여 만원이었다. 이 가운데 273건이 총 진료비 100만원 이상 500만원 미만인 사례들이며 총 진료비 5백만원 이상의 사례도 50건에 이른다. 고액의 치료비 가운데는 4천 3백여만원의 진료비가 발생한 환자도 있었다. 또한 응급환자에 대한 지원도 147건에 이른다. (표 3) 이들은 그동안 의료지원체계에 대해 모르고 있었거나 평소 별 필요를 느끼지 못해 가입 후 한동안 의료공제회원 활동을 정지한 상태이거나 혹은 국내 입국 후 얼마 되지 않아 병을 앓게 된 사례들이다. 이들이 다행히 의료공제회 협력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게 되면 일반수가를 보험수가로 낮춰주는 일차 할인을 받을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는 대부분 일반수가 적용으로 이들의 의료비는 병원의 협력 유무에 따라 천차만별의 차이를 보이게 된다.
<표 3> 건강협회 의료지원 현황 (2004-2005년)
2) 최근 이주노동자 의료실태 - 출산과 신생아질환 증가
건강협회 의료지원 현황에서 매년 특징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 여성이주노동자들의 임신, 출산 사례이다. 그동안 지출된 직접의료비 지원현황을 보면, 2000년 전체 의료지원 113건 중 28건의 임신, 출산 지원(24%)이 2001년도엔 279건 중 88건(31%)으로, 2002년에는 332건 중 124건(37%), 2003년에는 404건중 154건(38%)으로 점차 늘어나 2004년에는 296건 중 148건으로 그 해 전체 의료비직접지원의 절반이 임신, 출산 지원이었다. (표 4)
<표 4> 건강협회 여성이주노동자 출산 및 여성질환 의료비 지원 현황
그러나 이들의 가정형성과 자녀 출산 과정은 설레임, 기대와 축복보다는 임신을 하는 그 순간부터 고통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즉 한국 여성들은 2001년 11월 1일부터 산전후휴가 기간이 확대되어 출산휴가가 60일에서 90일로 늘어났고, 임신을 할 경우 연장근로를 금지하고, 야간?휴일 근로를 제한하여 여성노동자들의 건강을 보호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외국인 여성들은 이러한 기준을 요구할 수 없는 처지이다. 출산휴가까지 내다볼 필요도 없이 임신 사실을 숨기고 일하다 유산이나 조산의 경험을 하기도 하고 대부분 임신하면 일자리를 잃게 되므로 임신중절수술을 받기도 한다. 설령 임신중절수술을 한다 해도 충분한 휴식 없이 바로 일에 복귀하여 여성들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지속되는 단속과 추방에 따른 심리적 압박은 합법체류가 없는 여성들의 임신, 출산에도 영향을 미쳐 최근 조산, 유산 사례들이 늘며 신생아들에 대한 응급치료 지원요청이 증가하고 있다. 단속이 지속된 2004년과 2005년 신생아 치료 지원은 총 35건에 3천 1백 40여 만 원이 지원되었다. (표 5)
<표 5> 건강협회 신생아 치료지원 현황 (2004-2005)
미숙아의 경우 인큐베이터 이용시 불어나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고 기형아, 장애아의 경우 대책없이 본국으로 보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미 대부분의 이주노동자 가정에서는 자녀출산시 양육비 부담으로 인해 아이를 자국으로 돌려보내는 경우가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에서 탁아방, 어린이집을 운영하고는 있으나 숫적으로 부족하고 또 재정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최근에는 국내에서 태어나는 이주가정의 자녀들뿐 아니라 부모와 함께 한국에 오는 아동, 청소년이 늘고 있으나 이들 부모들의 체류자격으로 인해 자녀들 또한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우리 회에서 실시하고 있는 이주아동, 청소년 건강검진을 통해 나타난 바에 의하면 대부분의 아동, 청소년들이 연령별 필수 예방접종을 확인하기 어려웠고 또 과거 병력 등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정보를 수집하기 어려웠다. 이에 국내에서 체류하고 있는 이주가정의 아동, 청소년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방접종, 건강검진 등을 필수적으로 시행하고 이후 치료가 필요한 이들에 대해서는 부모의 체류자격, 자녀들의 체류자격에 관계없이 응급의료지원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4. 이주노동자 건강권 보호를 위한 과제
그동안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여러 문제들이 새로운 법과 제도를 통해 해결되어야 하고 이들의 의료문제 또한 제도적 틀 내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 지원단체들의 합의였다. 따라서 의료문제 역시 이러한 제도와 실상간의 간극을 메꾸기 위한 보완적 활동에서 이루어져왔다. 새로운 제도의 도입, 시행과 함께 그동안 의료문제에서 소외되어 있던 이주노동자들에게 건강보험 가입이나 응급의료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과거보다 진일보한 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기본적 인권으로서 건강권 보호를 위해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많다.
1) 그 첫 번째 문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문제이다. 이들은 정부의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계속 불법체류 상태로 남아있고 그에 따라 온갖 의료보험을 비롯한 사회보장에서 당연 제외될 것이다. 더욱이 정부의 강력한 단속과 강제추방 방침으로 이들은 더욱 벼랑에 내몰릴 처지이다. 몇해 전 지병인 심장병을 갖고도 강제추방을 피해 남양주의 가구공단내 컨테이너에 숨어있다 심장마비로 사망한 방글라데시 자카리아씨 사건이나 러시아인 미하일씨 사례는(아래 사례 참고) 이러한 극단의 사례중 일부이다. 따라서 불법체류자 단속에 밀려 생명을 잃는 일이 없도록 질병이 있거나 치료가 필요한 이들에게는 추방조치 유예와 최소한의 치료권을 보장해야 할 것이다.
(사례)
미등록 이주노동자 미하일 씨는 2005년 5월 초 의식이 없는 상태로 천안소재의 충무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병원에 오기 전 4일 동안 감기를 앓았지만 단속이 두려워 병원을 찾지 않고 있다가 결국 상태가 악화되어 후송된 상태다. 응급실에 도착한 이후에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치료를 못하고 방치되어 있다가 뒤늦게 치료를 시작했지만 이미 뇌경색이 한참 진행된 후였다. 이미 치료시기를 놓쳐 2~3일 생명을 연장할 수는 있지만 회복은 불가능하다는 병원측 설명을 듣고 난 천안외국인노동자센터 실무자는 5월 6일 아버지를 초청하여 아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볼 수 있게 하였다. 최근 정부의 무리한 단속과 강제출국 조치가 결국 한 젊은이의 생명을 앗은 바나 진배없어 제2, 제3의 미하일이 나오지 않기 만을 바라고 있다.
2) 두 번째로 문제가 되는 것은 합법체류 자격을 가졌어도 노동관계법 적용을 받지 못하거나 의료보험 가입자격이 안되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이들이다. 즉 현재 가정부, 간병인 등 가사사용인으로 취업한 이들에게는 노동관계법이 적용되지 않고 고용주가 가사사용인을 피보험자로 하여 노동부장관이 인정하는 상해보험에 가입해서 노동자의 사망, 부상 등에 대해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건강협회 의료지원 현황에서 보듯이 여성이주노동자들의 임신, 출산, 그리고 여성질환의 증가추세를 놓고 볼 때 가사영역에서 일하는 이들이 대부분 여성인 경우 이들에 대한 보호가 사망, 부상 등에만 해당될 경우 일반 질환에 대한 본인부담이 늘어나 결국은 민간차원의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3) 세 번째로 의료보험 적용을 받는다 해도 이주노동자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느냐의 여부이다. 건강보험공단의 ‘외국인 건강보험 가입 현황’에 따르면 정부가 올해부터 고용허가를 받아 합법적으로 국내사업장에 취업한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도 국내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건강보험에 의무가입토록 하면서, 외국인 건보 직장가입자 수는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즉 2006년 1월에 12만5,900명으로 전월대비 9.3% 증가했으며, 2월과 3월에는 각각 13만900명(4%), 13만5,000명(3.4%)으로 늘었다.
그러나 기존 합법체류 자격을 가졌으나 의료접근성이나 보장성의 문제로 실제 의료 이용율이 낮은 연수생의 경우에 비추어 실제 이용의 문제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연수생들은 의료보험에 가입되어있다고 해도 언어소통의 문제, 오랜 시간 근무해야 하는 노동조건 등으로 실제 의료기관을 이용할만한 상황에 놓여있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본인 수입의 대부분의 송금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처지상 의료비지출 상황이 발생해도 실제 본인부담금에 대한 부담으로 의료기관 이용을 꺼리는 사례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2006년 2월 국제의료발전재단의 외국인 노동자 건강실태조사 결과를 통해 보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조사에 의하면 외국인 노동자의 12.8%는 아파도 의료기관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이 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하는 이유로는 진료비 부담이 36.1%로 가장 많았고, 병원 갈 시간이 없다는 응답도 30.5%로 높게 나타났다.
즉 건강보험 가입율은 큰 폭으로 증가했어도 실제 필요할 때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접근성이나 보장성의 문제는 여전히 의문사항으로 남아 있다.
4) 마지막으로 보다 넓은 차원에서 이주노동자, 난민, 다문화가정 등에 대한 정신상담 등 사회적 적응을 위한 총체적 의료, 복지서비스의 내용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동안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의료서비스가 주로 검진과 치료가 주를 이루었다면 앞으로는 이들이 타국의 낯선 환경에 처하게 되면서 발생하게 되는 심리적, 신체적 변화 등 보다 근본적인 상담과 치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 와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대부분은 자국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돈을 벌기 위해 이주를 한다. 일을 하려는 욕구, 가족을 더 안정적으로 부양하려는 욕구 등이 생면부지의 한국 땅을 찾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주는 그 자체로 이들이 직면하게 되는 가장 큰 스트레스이다. 언어, 문화, 새로운 작업환경 어느 것 하나 낯설지 않은 것이 없다. 게다가 이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적 시선과 언행은 이들의 고통을 가중시킨다. 실제 지난 십여년간 한국사회에서 힘들게 살아온 이주노동자들 가운데 알콜중독, 정신질환 등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이에 대한 적절한 지원체계가 없는 것이 지원단체들에게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정신질환 증상이 나타나도 이를 위해 병의원을 찾고 치료해야한다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잠재적 환자군이 존재하는 것이다.
국제보건의료발전재단의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이러한 상황을 가늠하게 한다. 이주노동자의 일반정신건강 (General Health Questionnaire) 평균점수는 13.56 수준으로 한국의 전남 순천 주암댐 수몰지구주민의 평균점수 10.91수준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일에 대한 자신감 부족과 그로인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수준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정부차원의 종합적인 외국인정책을 만드는 마당에 이주노동자 의료지원은 육체의 질병 치료, 예방뿐 아니라 정신보건까지 아우르는 총체적인 지원활동 방안이 마련되야 할 것이다.
나가는 말
세계보건기구 헌장은 건강을 “완전한 육체적, 정신적 및 사회적 복리의 상태이고, 단순히 질병 또는 병약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 도달할 수 있는 최고수준의 건강을 향유한다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나아가 이를 “인종, 종교, 정치적 신념과, 경제적 또는 사회적 조건의 차별 없이 만인이 가지는 기본적 권리의 하나”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건강권은 내, 외국인의 구별이나 합법, 불법의 체류자격을 초월하여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로 다시금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이주노동자들도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가 아닌 완전한 육체적, 정신적 및 사회적 복리의 상태를 누리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정책적 개선과 인권에 기초한 실천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참고자료>
국가인권위원회, <국내거주 이주노동자 인권실태조사>, 2002.
국제보건의료발전재단, <외국인노동자 건강실태조사>, 2005.
법무부, 노동부, <외국국적동포 취업가이드북>, 2002.
외국인노동자 의료공제회, <외국인노동자 의료백서>, 2001.
외국인노동자 의료공제회, <외국인노동자 진료네트워크 구성을 위한 워크숍> 자료집, 2002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 인권백서>, 2000.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외국인이주노동자 인권백서>, 2001.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우리들의 산재왕국, 실태와 개선방안>, 2002.
한국국제노동재단, <이주노동자 실태 및 지원서비스 수요조사>, 2003.
이주노동자 건강권과 의료지원
김미선 (한국이주노동자건강협회 사무처장)
들어가는 말 - 인권으로서 건강권
건강권이란 생명·건강을 지키는 인간의 권리를 의미한다. 이전에는 건강권이란 하나의 선언적 권리일 뿐 실정법상의 권리는 아니라는 것이 많은 학자나 행정실무자들의 견해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연합 헌장을 비롯한 세계인권선언, 세계보건기구(WHO) 헌장, 국제인권규약 등 인권보장을 강조한 문서가 발표되면서부터 건강권을 인권의 하나로 인정하는 경향이 국제적으로 확산되었다.
대한민국 헌법만 보더라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10조)'. 또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보장· 사회복지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34조)라는 조문을 통해 국민의 건강권을 포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또한 헌법은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한국이 체결하거나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에 따라 지위와 인권이 보장되어야 함(6조)을 명시하고 있으며 근로기준법도 노동자의 국적, 신앙,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5조).
따라서 이러한 국제, 국내적 기준에 근거해볼 때 건강권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니며,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기본적 권리’로서 국민뿐 아니라 일반적인 국제법규에 따라 외국인에게도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는 이주노동자의 기본적 권리로서 건강권을 위협하는 요소들과 정부정책, 민간차원의 지원활동과 과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이주노동자 건강 위협 요소들과 의료수요
일반적으로 이주의 과정에서 이주자들의 건강은 악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거나 불법, 혹은 강제 이주자들일 경우 그 정도는 더 심해진다. 이주하려는 지역에 도착하면, 이주노동자들이나 난민들은 질 낮은 음식을 제공 받기 쉬운데, 이는 쉽게 영양실조로 이어진다. 또 새로운 생태환경을 접하게 되면서 이주자들은 새로운 질병의 위협에 노출되며, 전염병에 걸리기도 쉬워진다. 이주자들은 그 '지역사람' 혹은 시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공으로 제공되는 음식이나 다른 서비스들을 받지 못하기도 한다. 또한 열악한 생활환경이나 노동 조건 때문에 건강을 잃을 수도 있다. 즉, 보다 나은 조건을 찾아 ‘이주’를 선택한 이주노동자, 이주민들에게 ‘이주’ 자체가 이들의 기본 생존조건인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는 뜻이다.
한국 사회의 이주노동자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편견, 언어와 문화의 장벽, 3D업종의 단순 저임금 노동자로서의 육체적 고통, 피부색이 가지는 인종적인 편견 등과 함께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노동자가 아닌 연수생이라는 신분의 제약, 그도 아니면 소위 ‘불법체류자’, 즉 현행범이라는 사회적 낙인 등의 힘겨움에 단 하루도 편안히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즉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가 2000년 발간한 <외국인이주노동자 인권백서>의 첫머리에서 밝혔듯, 1980년대 후반부터 국내 노동현장에 들어와 일하기 시작한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우리 사회의 “이방인”으로서 겪는 어려움에서부터 저임금 노동자라는 사회적 지위 혹은 체류자격으로 인한 다종다양한 인권침해와 노동권 침해로 얼룩져왔던 것이다.
그러나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또 노동자로 자신의 한 몸에 의지해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가장 고달프고 힘든 순간은 바로 병이 들거나 산재를 당해 경제적인 면 뿐 아니라 심적, 정신적 고통을 당할 때이다.
2005년 10월 노동부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 반 동안 8,555명의 이주노동자가 산재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표1) 이 수치는 매일 7명의 이주노동자가 산재를 당했다는 것을 뜻한다.
<표 1> 외국인노동자 재해 현황 (단위: 명, %)
또 2005년 9월 노동부가 발표한 산업재해 발생현황을 보면 300인 미만 사업장에서 전체 재해자의 85.7%(53,166명), 전체 사망자의 78.0%(1,407명)가 각각 발생했고, 또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전체 재해자의 68.3%(42,335명), 전체 사망자의 54.3%(981명)가 각각 발생하였다. 업종별로 볼 때 재해자수는 제조업이 26,554명(43%)으로 가장 많고, 건설업이 11,158명(18%)으로 그 다음을 차지, 중소, 영세규모의 사업장과 제조업,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산재발생 빈도를 짐작하게 한다.
이러한 이주노동자 산재발생의 주요 원인을 2002년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에서 실시한 산재피해 이주노동자 실태조사는 첫째, 안전장치의 미비, 둘째, 안전교육 미흡, 셋째,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피로누적, 그리고 한국어교육미비 등으로 꼽았다. 즉, 안전한 노동과 안전장치 설치보다는 생산에만 급급하다보니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사고들을 고스란히 이주노동자의 건강이나 생명과 바꾸고 있다는 뜻이다.
노동현장에서의 산재와 더불어 이주노동자들의 질병은 단순히 가까운 의료기관을 찾아 진료받고 약을 먹거나 검사 혹은 수술 등의 의료적 처치를 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다. 평일에 병원을 찾기 위해 사장의 눈치를 보아야 하고,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을 때 의사전달이 제대로 안되어 뭐라도 잘못되는 것은 아닌가 혹 검사나 수술이라도 받게 되면 의료보험이 없어 그 많은 진료비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또 치료받고 쉬는 동안 생계는 어떻게 꾸려가야 하는지 등 총체적인 고민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은 지원단체를 찾아 자신들의 고충들을 호소해왔고 그 결과 지난 10여 년간의 이주노동자 지원활동 가운데 의료지원활동은 양적, 질적으로 증가했다. 여기서 나아가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의료공제회 조직과 이주노동자 전용병원 설립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이를 국제노동재단이 2003년 실시한 이주노동자들의 지원서비스 만족도를 통해 살펴본다면, 이주노동자는 지원단체를 통한 의료(85.2점), 법률상담(79.2점), 쉼터?피난처제공(78.4점) 등에 높은 만족도를 표시했다. 체류자격별로는 산업연수생들은 의료(81.7점)와 법률상담(80.7점) 등의 상담활동에, 미등록노동자는 의료(88.1점)와 산업재해(80.0점)의 상담활동에 크게 만족하고 있었으며, 미등록노동자가 산업연수생보다 의료와 산업재해에서 만족도를 높이 보이고 있는 것은 이들의 열악한 상황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표 2> 지원단체의 상담활동 내역과 그에 대한 이주노동자의 만족도
미등록노동자건 산업연수생이건 이들이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경험한 지원서비스 중에서 의료문제 해결에 높은 만족도를 보이는 것은 결국 이들이 제도나 정책적 개선을 통한 의료문제 해결보다 민간 지원활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그간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2. 이주노동자 의료정책
2004년 고용허가제 도입 이후 한국정부의 이주노동자 의료정책은 합법체류자에게는 건강보험 적용을 통한 ‘건강권’ 인정과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는 ‘응급의료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2006년 5월 26일 개최된 제1회 외국인정책위원회에서도 “교육?의료서비스 등 기본적 성격의 인권보장”을 외국인 정책 기본원칙으로 담고 있다.
1) 건강보험 가입과 적용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가운데 직종단체 연수생은 95년부터 해외투자기업연수생은 99년부터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사업주가 건강보험 가입을 등한시하거나, 연수생 본인이 보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거나 보험료 납부를 부담스럽게 여겨 가입을 기피하는 경우도 많다.
이에 정부는 2004년 8월 17일 고용허가제 시행 이후 합법체류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건강보험 적용을 의무화하고 있는데 2006년 1월 1일 부로 모든 사업장에 근무하는 외국인과 재외국민을 건강보험 직장가입자로 당연적용되도록 하여 국민과 동일한 혜택을 받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건강보험 직장가입의 경우 소재지가 일정하지 않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건설업, 가사서비스업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건강보험 가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 경우 직장가입이 아닌 지역보험 가입자격은 되나 이 또한 비용문제 때문에 민간단체에서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에 의존하는 형편이다.
따라서 정부에서 기존 산업연수생을 비롯한 이주노동자에 대한 건강보험적용을 임의적용에서 당연적용으로 변환하면서 이에 대한 구체적인 시행방안 즉 외국인고용 사업장의 건강보험 미가입의 경우 처벌지침(혹은 규제) 등이 마련되지 않고서는 건강보험 의무화는 말로만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2) 외국인근로자 건강관리지침
보건복지부는 외국인근로자(불법체류자)들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2000년 8월 <외국인근로자(불법체류자) 건강관리지침>을 마련하여 16개 시?도를 통하여 전국 242개 보건소에 시달한 바 있으며 이 지침에 따라 각 일선 보건소에서는 지역 내 실태파악을 거쳐 외국인근로자에 대한 무료검진 및 진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나, 미등록노동자에 대한 단속과 추방이 지속되는 현 시점에서 이 지침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지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3)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응급상태에 있는 환자에게 적기에 응급조치를 취하기 위해 제정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 지난 2000년 7월 개정되어 이주노동자에게도 적용되고 있다. 이는 의료비가 준비 안된 응급환자가 본인부담금을 납부할 수 없는 경우 국가가 대신 의료기관에 납부하고 본인에게 추후 상환하도록 하여 당장 지불능력이 없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제도이다. 기존에 법률의 명문 규정없이 외국인에게 적용하지 않던 것을 행정해석을 변경함으로 이주노동자는 물론 일선 병원의 부담을 덜어주게 되었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청구하여 의료비를 받는 기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여전히 활용을 꺼리는 것으로 보인다.
4) 외국인근로자 등 소외계층 무료진료사업
2005년부터 보건복지부가 시행하는 소외계층 무료진료사업은 입원 및 수술비 등 본인부담이 큰 항목 위주로 1회당 500만원 범위 내에서 의료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사업 지원대상은 2005년 외국인근로자에 한정하던 것을 2006년 6월 현재 외국인근로자 및 그 자녀와 국적취득 전 여성 결혼이민자 및 그 자녀로 확대하였다.
이주노동자 지원대상 선정방법으로 ① 여권, 외국인등록증, 여행자증을 확인하여 신원 확인, ② 국내 체류기간 90일 경과 여부 확인, 질병의 국내 발병 여부 확인, ③ 전?현직 근로 여부 확인 ④ 건강보험, 의료급여, 산재보험 적용대상 여부 확인 등의 절차를 거치고 있다.
시행기관은 첫해인 2005년 적십자병원과 지방공사 의료원 40여개에서 2006년 현재 58개 의료기관에서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에서는 제도에 대한 악용사례가 있다고 판단, 이주노동자들의 보험가입 여부와 국내에서 실제 일하고 있는 지 등 위에서 본 바와 같은 확인절차를 강화하고 있어 당장 지원이 급한 환자들의 경우 역시 민간 의료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더욱이 이 사업의 지속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재정확보가 필수인데 이에 대한 전망과 더불어 실질적인 지원책이 될 수 있도록 기존 민간단체들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5)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안
2006년 1월 발행한 국가인권위원회의 2007-2011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안은 이주노동자와 관련 “정부는 급증하는 이주노동자의 기본권을 증진하기 위해 고용허가제 시행, 영주권 제도 도입, 초·중등교육법시행령 개정 등 외국인과 관련된 법과 제도를 개선해 왔으나, 이주노동자 특히 미등록이주노동자 본인과 그 가족의 기본적 권리가 여전히 상당히 제한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이주노동자의 국적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이미 가입한 국제규약의 규정을 이주노동자에게 적용해야 하고, ILO의 사회보장에서내외국인균등처우에관한협약(제118호)과 사회보장권리의 보전을 위한 국제체제 확립에 관한협약(제157호)을 비준해야 한다”는 것이 인권위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인권위는 우선 이주노동자와 관련된 법과 제도를 개선하여 이주노동자의 인권침해를 예방하고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이동 제한규정 완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단속하는 공무원에 대한 인권교육 강화 △미등록이주노동자가 체불임금과 기타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공무원통보의무제도 개선과 함께 “이주노동자에 대한 적절한 안전교육 시행과 안전장비 구비로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산업재해를 당한 이주노동자가 산재보험 및 보호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정부정책에 대한 홍보 강화” 등을 권고했다.
이밖에도 이주노동자 가족의 양육권, 건강권, 교육권, 문화권 등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주노동자 자녀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그들의 출생등록 권리를 보장하는 조치 시행 △국민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의료혜택 강화 방안 마련 △이주노동자의 취학연령 자녀를 적극적으로 학교 입학 유도 등을 권고했다.
또한 이주 여성에 대한 폭력을 예방하고 모성보호를 증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이주 여성이 해외취업 형태로 국내 유흥업소에 공급되는 경로를 차단하고 사기성 국제결혼 중개업체 활동 금지 △이주 여성 노동자의 모성보호 관련법을 실제로 적용하도록 근로감독을 강화하고, 충분한 휴식·영양공급, 육아지원, 전용쉼터 개소 등으로 이주 여성 노동자의 모성 보호 등을 권고했다.
3. 민간 이주노동자 의료지원활동 - 건강협회를 중심으로
이상 간략히 살펴본 대로 정부의 이주노동자 의료정책은 합법체류자격이 있는 이주노동자에게는 건강보험을 비롯한 기본적 사회보장을, 미등록 상태의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응급의료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양의 의료서비스가 민간차원에서 제공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우선 지난 10여 년간 합법체류자격을 가진 연수생을 제외한 미등록노동자가 전체 외국인력의 80% 까지 달했던 것을 본다면 의료보험에서 제외되는 이들의 의료문제 해결은 각 지역의 무료진료소, 의, 병원의 할인 그리고 모금을 통한 의료비 지원 등 민간차원에서 전담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난 2002년 본회에서 개최한 이주노동자 진료네트워크 구성을 위한 워크숍 (2002년 9월 28일 연세대보건대학원 강당)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대부분의 이주노동자 무료진료를 행하는 곳은 외국인 밀집지역 내 상담소와 교회, 성당, 사찰 등 종교기관, 보건소, 의, 병원 등 의료기관이 함께 협력하여 진행하고 있었다. 무료진료 횟수는 매주, 격주 혹은 월 1회 정도 의료진이나 의료설비 정도에 따라 단순한 내과, 외과 진료를 위주로 하는 곳에서부터 전 과목을 진료하는 준 종합병원의 양태로 실시하는 데까지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를 위한 무료진료소에서 진행한 기초 검진, 진료와 처치로 그동안 이주노동자들이 잘 알지 못했다 병을 키워 낭패를 보는 사례들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이 고가의 정밀검사나 수술 등이 필요할 때 지원할 수 있는 협력체계가 문제였다. 이러한 이유로 기초검진, 진료부터 2,3차 의료기관 연계와 실제 이들이 의료비 문제로 제대로 진료를 받지 못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각 지역 상담소와 의료진들의 협력으로 1999년 이주노동자 의료공제회가 설립(현 한국이주노동자 건강협회)되어 활동해오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월 6,000원씩 낸 회비를 모아 필요한 이들의 치료비에 지원하고 있는 의료공제회에 가입되어 있는 이주노동자 수는 2005년 말 현재 총 103개국 17,000여 명이고, 협력 의료기관은 전국 808곳이며 함께 지부로 참여하는 상담소는 36개에 이른다.
의료공제회가 활동을 개시한 이래 무료진료, 진료비감면, 진료비 50% 지원 등으로 의료혜택을 받은 이주노동자는 연인원 7만여 명에 이른다. 1999년 의료공제회 설립 이후 2005년 말까지 의료비 지원사업(외래진료를 제외한 가입 3개월 지난 회원의 수술, 입원, 응급, 출산 및 CT, MRI 검사비 50%지원)으로 지출된 의료비 총액은 1,817건 8억 7천 여 만원에 이른다. 그동안 이주노동자에게 직접 지원된 의료비, 무료진료소 약품구입비, 순회검진비 및 예방을 위한 교육과 자료 발간 등 모든 사업비는 의료비 전액은 회원회비에서 또 나머지는 정부기관의 민간단체 지원사업(행정자치부)을 통해 진행하고 있으나 순수 민간차원의 재정지원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한국여성재단) 등이 여전히 큰 몫을 차지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절실하다.
1) 최근 이주노동자 의료실태 - 응급사례 증가
2003년 말부터 시작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과 추방정책은 그동안 의료공제회원으로 가입해있던 많은 회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들이 단속을 피해 숨거나 출국을 하여 회비납부가 눈에 띄게 줄어든 반면, 기존의 무료진료소를 이용하거나 순회검진을 통한 질병의 조기발견과 치료연계의 기회를 놓쳐 오히려 이들의 질병발병 양상은 응급, 고액치료 사례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단속과 추방이 지속된 2004년과 2005년 의료공제회 협력의료기관을 이용하여 보험수가 적용과 진료비 50%를 지원받은 의료비 직접지원 건수는 총 614건 3억 5천 8백 여 만원이었다. 이 가운데 273건이 총 진료비 100만원 이상 500만원 미만인 사례들이며 총 진료비 5백만원 이상의 사례도 50건에 이른다. 고액의 치료비 가운데는 4천 3백여만원의 진료비가 발생한 환자도 있었다. 또한 응급환자에 대한 지원도 147건에 이른다. (표 3) 이들은 그동안 의료지원체계에 대해 모르고 있었거나 평소 별 필요를 느끼지 못해 가입 후 한동안 의료공제회원 활동을 정지한 상태이거나 혹은 국내 입국 후 얼마 되지 않아 병을 앓게 된 사례들이다. 이들이 다행히 의료공제회 협력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게 되면 일반수가를 보험수가로 낮춰주는 일차 할인을 받을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는 대부분 일반수가 적용으로 이들의 의료비는 병원의 협력 유무에 따라 천차만별의 차이를 보이게 된다.
<표 3> 건강협회 의료지원 현황 (2004-2005년)
2) 최근 이주노동자 의료실태 - 출산과 신생아질환 증가
건강협회 의료지원 현황에서 매년 특징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 여성이주노동자들의 임신, 출산 사례이다. 그동안 지출된 직접의료비 지원현황을 보면, 2000년 전체 의료지원 113건 중 28건의 임신, 출산 지원(24%)이 2001년도엔 279건 중 88건(31%)으로, 2002년에는 332건 중 124건(37%), 2003년에는 404건중 154건(38%)으로 점차 늘어나 2004년에는 296건 중 148건으로 그 해 전체 의료비직접지원의 절반이 임신, 출산 지원이었다. (표 4)
<표 4> 건강협회 여성이주노동자 출산 및 여성질환 의료비 지원 현황
그러나 이들의 가정형성과 자녀 출산 과정은 설레임, 기대와 축복보다는 임신을 하는 그 순간부터 고통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즉 한국 여성들은 2001년 11월 1일부터 산전후휴가 기간이 확대되어 출산휴가가 60일에서 90일로 늘어났고, 임신을 할 경우 연장근로를 금지하고, 야간?휴일 근로를 제한하여 여성노동자들의 건강을 보호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외국인 여성들은 이러한 기준을 요구할 수 없는 처지이다. 출산휴가까지 내다볼 필요도 없이 임신 사실을 숨기고 일하다 유산이나 조산의 경험을 하기도 하고 대부분 임신하면 일자리를 잃게 되므로 임신중절수술을 받기도 한다. 설령 임신중절수술을 한다 해도 충분한 휴식 없이 바로 일에 복귀하여 여성들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지속되는 단속과 추방에 따른 심리적 압박은 합법체류가 없는 여성들의 임신, 출산에도 영향을 미쳐 최근 조산, 유산 사례들이 늘며 신생아들에 대한 응급치료 지원요청이 증가하고 있다. 단속이 지속된 2004년과 2005년 신생아 치료 지원은 총 35건에 3천 1백 40여 만 원이 지원되었다. (표 5)
<표 5> 건강협회 신생아 치료지원 현황 (2004-2005)
미숙아의 경우 인큐베이터 이용시 불어나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고 기형아, 장애아의 경우 대책없이 본국으로 보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미 대부분의 이주노동자 가정에서는 자녀출산시 양육비 부담으로 인해 아이를 자국으로 돌려보내는 경우가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에서 탁아방, 어린이집을 운영하고는 있으나 숫적으로 부족하고 또 재정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최근에는 국내에서 태어나는 이주가정의 자녀들뿐 아니라 부모와 함께 한국에 오는 아동, 청소년이 늘고 있으나 이들 부모들의 체류자격으로 인해 자녀들 또한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우리 회에서 실시하고 있는 이주아동, 청소년 건강검진을 통해 나타난 바에 의하면 대부분의 아동, 청소년들이 연령별 필수 예방접종을 확인하기 어려웠고 또 과거 병력 등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정보를 수집하기 어려웠다. 이에 국내에서 체류하고 있는 이주가정의 아동, 청소년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방접종, 건강검진 등을 필수적으로 시행하고 이후 치료가 필요한 이들에 대해서는 부모의 체류자격, 자녀들의 체류자격에 관계없이 응급의료지원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4. 이주노동자 건강권 보호를 위한 과제
그동안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여러 문제들이 새로운 법과 제도를 통해 해결되어야 하고 이들의 의료문제 또한 제도적 틀 내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 지원단체들의 합의였다. 따라서 의료문제 역시 이러한 제도와 실상간의 간극을 메꾸기 위한 보완적 활동에서 이루어져왔다. 새로운 제도의 도입, 시행과 함께 그동안 의료문제에서 소외되어 있던 이주노동자들에게 건강보험 가입이나 응급의료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과거보다 진일보한 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기본적 인권으로서 건강권 보호를 위해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많다.
1) 그 첫 번째 문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문제이다. 이들은 정부의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계속 불법체류 상태로 남아있고 그에 따라 온갖 의료보험을 비롯한 사회보장에서 당연 제외될 것이다. 더욱이 정부의 강력한 단속과 강제추방 방침으로 이들은 더욱 벼랑에 내몰릴 처지이다. 몇해 전 지병인 심장병을 갖고도 강제추방을 피해 남양주의 가구공단내 컨테이너에 숨어있다 심장마비로 사망한 방글라데시 자카리아씨 사건이나 러시아인 미하일씨 사례는(아래 사례 참고) 이러한 극단의 사례중 일부이다. 따라서 불법체류자 단속에 밀려 생명을 잃는 일이 없도록 질병이 있거나 치료가 필요한 이들에게는 추방조치 유예와 최소한의 치료권을 보장해야 할 것이다.
(사례)
미등록 이주노동자 미하일 씨는 2005년 5월 초 의식이 없는 상태로 천안소재의 충무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병원에 오기 전 4일 동안 감기를 앓았지만 단속이 두려워 병원을 찾지 않고 있다가 결국 상태가 악화되어 후송된 상태다. 응급실에 도착한 이후에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치료를 못하고 방치되어 있다가 뒤늦게 치료를 시작했지만 이미 뇌경색이 한참 진행된 후였다. 이미 치료시기를 놓쳐 2~3일 생명을 연장할 수는 있지만 회복은 불가능하다는 병원측 설명을 듣고 난 천안외국인노동자센터 실무자는 5월 6일 아버지를 초청하여 아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볼 수 있게 하였다. 최근 정부의 무리한 단속과 강제출국 조치가 결국 한 젊은이의 생명을 앗은 바나 진배없어 제2, 제3의 미하일이 나오지 않기 만을 바라고 있다.
2) 두 번째로 문제가 되는 것은 합법체류 자격을 가졌어도 노동관계법 적용을 받지 못하거나 의료보험 가입자격이 안되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이들이다. 즉 현재 가정부, 간병인 등 가사사용인으로 취업한 이들에게는 노동관계법이 적용되지 않고 고용주가 가사사용인을 피보험자로 하여 노동부장관이 인정하는 상해보험에 가입해서 노동자의 사망, 부상 등에 대해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건강협회 의료지원 현황에서 보듯이 여성이주노동자들의 임신, 출산, 그리고 여성질환의 증가추세를 놓고 볼 때 가사영역에서 일하는 이들이 대부분 여성인 경우 이들에 대한 보호가 사망, 부상 등에만 해당될 경우 일반 질환에 대한 본인부담이 늘어나 결국은 민간차원의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3) 세 번째로 의료보험 적용을 받는다 해도 이주노동자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느냐의 여부이다. 건강보험공단의 ‘외국인 건강보험 가입 현황’에 따르면 정부가 올해부터 고용허가를 받아 합법적으로 국내사업장에 취업한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도 국내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건강보험에 의무가입토록 하면서, 외국인 건보 직장가입자 수는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즉 2006년 1월에 12만5,900명으로 전월대비 9.3% 증가했으며, 2월과 3월에는 각각 13만900명(4%), 13만5,000명(3.4%)으로 늘었다.
그러나 기존 합법체류 자격을 가졌으나 의료접근성이나 보장성의 문제로 실제 의료 이용율이 낮은 연수생의 경우에 비추어 실제 이용의 문제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연수생들은 의료보험에 가입되어있다고 해도 언어소통의 문제, 오랜 시간 근무해야 하는 노동조건 등으로 실제 의료기관을 이용할만한 상황에 놓여있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본인 수입의 대부분의 송금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처지상 의료비지출 상황이 발생해도 실제 본인부담금에 대한 부담으로 의료기관 이용을 꺼리는 사례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2006년 2월 국제의료발전재단의 외국인 노동자 건강실태조사 결과를 통해 보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조사에 의하면 외국인 노동자의 12.8%는 아파도 의료기관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이 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하는 이유로는 진료비 부담이 36.1%로 가장 많았고, 병원 갈 시간이 없다는 응답도 30.5%로 높게 나타났다.
즉 건강보험 가입율은 큰 폭으로 증가했어도 실제 필요할 때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접근성이나 보장성의 문제는 여전히 의문사항으로 남아 있다.
4) 마지막으로 보다 넓은 차원에서 이주노동자, 난민, 다문화가정 등에 대한 정신상담 등 사회적 적응을 위한 총체적 의료, 복지서비스의 내용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동안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의료서비스가 주로 검진과 치료가 주를 이루었다면 앞으로는 이들이 타국의 낯선 환경에 처하게 되면서 발생하게 되는 심리적, 신체적 변화 등 보다 근본적인 상담과 치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 와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대부분은 자국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돈을 벌기 위해 이주를 한다. 일을 하려는 욕구, 가족을 더 안정적으로 부양하려는 욕구 등이 생면부지의 한국 땅을 찾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주는 그 자체로 이들이 직면하게 되는 가장 큰 스트레스이다. 언어, 문화, 새로운 작업환경 어느 것 하나 낯설지 않은 것이 없다. 게다가 이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적 시선과 언행은 이들의 고통을 가중시킨다. 실제 지난 십여년간 한국사회에서 힘들게 살아온 이주노동자들 가운데 알콜중독, 정신질환 등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이에 대한 적절한 지원체계가 없는 것이 지원단체들에게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정신질환 증상이 나타나도 이를 위해 병의원을 찾고 치료해야한다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잠재적 환자군이 존재하는 것이다.
국제보건의료발전재단의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이러한 상황을 가늠하게 한다. 이주노동자의 일반정신건강 (General Health Questionnaire) 평균점수는 13.56 수준으로 한국의 전남 순천 주암댐 수몰지구주민의 평균점수 10.91수준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일에 대한 자신감 부족과 그로인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수준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정부차원의 종합적인 외국인정책을 만드는 마당에 이주노동자 의료지원은 육체의 질병 치료, 예방뿐 아니라 정신보건까지 아우르는 총체적인 지원활동 방안이 마련되야 할 것이다.
나가는 말
세계보건기구 헌장은 건강을 “완전한 육체적, 정신적 및 사회적 복리의 상태이고, 단순히 질병 또는 병약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 도달할 수 있는 최고수준의 건강을 향유한다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나아가 이를 “인종, 종교, 정치적 신념과, 경제적 또는 사회적 조건의 차별 없이 만인이 가지는 기본적 권리의 하나”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건강권은 내, 외국인의 구별이나 합법, 불법의 체류자격을 초월하여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로 다시금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이주노동자들도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가 아닌 완전한 육체적, 정신적 및 사회적 복리의 상태를 누리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정책적 개선과 인권에 기초한 실천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참고자료>
국가인권위원회, <국내거주 이주노동자 인권실태조사>, 2002.
국제보건의료발전재단, <외국인노동자 건강실태조사>, 2005.
법무부, 노동부, <외국국적동포 취업가이드북>, 2002.
외국인노동자 의료공제회, <외국인노동자 의료백서>, 2001.
외국인노동자 의료공제회, <외국인노동자 진료네트워크 구성을 위한 워크숍> 자료집, 2002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 인권백서>, 2000.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외국인이주노동자 인권백서>, 2001.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우리들의 산재왕국, 실태와 개선방안>, 2002.
한국국제노동재단, <이주노동자 실태 및 지원서비스 수요조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