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주님의 기도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5-23 21:31
조회
986
(2005년 10월 16일) 창조주일 일곱째 주일)

설교제목:주님의 기도
성경본문:마태복음 6:9-15
찬송:482, 258
교독:교독문 42번 (마태복음 5장)

<본문 주해>주님의 기도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11장 2-4절)에 기록되어 있다. 이 중 오늘의 본문 마태복음 6장 9절-15절의 기도는 초대교회에서부터 성례전에 사용되었다.
유대인들은 길고 장황하고 열정적이고 유창한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신 것으로 생각하였다. 예수님은 외식하는 기도를 하지 말고(6장 5절), 중언부언하지 말고(6장 7절), 은밀하게 기도하라고 하시면서(6장 6절) 기도의 모범을 가르쳐 주셨다(6장 9절 전반절) 그것이 9절 15절의 주님의 기도이다.
1)주님의 기도는 영적인 기도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어떤 사람들이나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2)주님의 기도는 사회적 측면을 지닌다. 일용할 양식은 모든 생물이 살기 위해 꼭 필요한 물질을 상징하며 용서는 인간에게 꼭 필요한 관계를 상징한다.
3)주님의 기도는 영적인 면과 사회적인 것이 결합되어 있다. 모든 것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가 땅에 임하신다는 것-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것은 인간의 선택 사항이 아니다. 주님의 복음의 중심 계획이시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은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일 때문에 하늘에서 기뻐하시리라.(누가복음 15장 7절). 가장 어려운 때에 “가장 작은 자, 잃어 버린 자(눅 15:11-32), 가장 나중 된 자(마 20;16)”를 돌보는 것이 복음이다. 다시 세우고 다시 회복시키는 일은 은혜 채널이요 변화의 중개자인 하나님의 경륜에 동참하고자 하는 인간이 해야 할 일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마태 6:9)라고 기도할 때, 우리 속에 그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 "만물을 지으신 자는 하나님이시라"(히브리서 3장 4절)의 말씀에 따라 주님 기도는 만물을 구원의 대상으로 삼는다. 교회는 하나님의 동역자로서(고린도전서: 3장 9절)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에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히브리서 3장 2절).

하나님은 관계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과 세상의 관계는 내년 브라질에서 열리는 WCC(세계교회협의회) 제9차 총회의 주제,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이 세상을 바꾸신다”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이 세상은 씨저(세상의 권력)들이 주인장 노릇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재하시는 곳이다.

주님의 기도에 나오는 하나님 나라는 인간이 살아 갈 윤리적이고 영적인 규범들을 가르쳐 주고 있다.
1)“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6장 9절)라는 말씀 속에서 예수는 이미 “너희”라는 말씀 속에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과 정의의 공동체를 상정하셨다. 사랑과 정의의 공동체의 일원인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2)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6장 9절)라고 기도하는 자는 그 어느 누구도 사랑을 주고받고 상처를 치유받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가족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3)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옵시고...”(마태 6장 11절), 이 기도 속에서 예수님은 계급과 빈부와 모든 선입견의 울타리를 뛰어 넘고 계신다. 우리가 누구이든, 어느 계급에 속해 있든, 부자이든 가난하든, 남자이든 여자이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그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생명을 영유할 “일용한 양식”을 주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사례>사실 일용할 양식은 소외의 원인이다. 세계의 20%의 사람이 세계 자원의 80%를 소비한다. 일용한 양식은 인간의 존엄과 인간의 생존의 상징이다.
성례전에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빵과 포도주-땅이 주는 과실과 인간의 노동-를 그 분에게 바친다. 성령은 이 세상이 하나님께 제물과 찬양을 드리기를 바란다. 또한 이 세상은 성령 안에 있는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왕국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땅의 현실은 어떠한가? 시장의 윤리는 어떠한가? 자유시장에는 연민과 동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소비적 가치관에 사로잡힐 경우 우리는 수많은 유혹에 사로잡히게 된다.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다. 시장의 힘은 폭력적이고, 착취적이며, 속임수에 능하며, 경쟁적이다. 우리는 이 위기의 시대를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

우리 기독교인들의 삶은 개인주의와 사회적 이기주의와 싸우도록 하는 십자가의 신비를 끊임없이 체험하는 삶이라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6장 11절)라는 기도 안에서, 우리는 부의 평등한 분배를 바라는 성령의 신음소리를 듣는다. 나에게 있어서의 일용한 양식은 물질의 문제이지만 내 이웃을 위한 일용한 양식은 영적인 문제이다. 사도 바울이 가르치고 있는 바처럼, “화목하게 하는 말씀”과 “화목하게 하는 직분”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의”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고린도후서 5장 18절-21절).
주님의 기도는 연민과 동정의 기도이다. 주님의 기도는 우리 모두가 어떻게 행할 것인가를 지시하는 행동안(action plan)인 것이다. (Rev. Dr. M.J 조셉: 인도 방갈로 에큐메니칼 크리스챤 센타 원장의 글 “주님의 기도 속에 나타난 기독교인들의 비젼”에서)

<결론> 주님의 기도를 암송하는 것은 신조나 계명을 외우는 것이 아니고 성령 안에서 살겠다는 고백을 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종교적 거룩이 아니라 영적인 거룩이다. 우리가 예배에서 얼마나 많이 주님의 기도를 암송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계 안에서 우리의 관계가 얼마나 인간다운 관계인가가 중요하다.
세계 도처에서 자연의 재앙이나 인간이 자초한 재앙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신음하는 것이 테레비전에 연일 방영되고 있다. 가족절도라는 말이 생겨났다. 일용한 양식이 없어서, 어머니가 딸이,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도둑질하는 세상이 되었다(2005년 10월 19일 오전 7시 40분 SBS 방영). 기독교인들인 우리들은 종교나 인종이나 국적이나 피부색의 차이를 초월하여 일용한 양식이 요구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난 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연민과 동정과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 주님의 기도의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