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약속의 땅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5-23 21:30
조회
1260
(2005년 9월 25일 창조절 넷째주일)

<설교제목>약속의 땅
<성경말씀> 마태복음 6장 19절-34절
출애굽기 3장 7절-8절
<교독> 교독문 43(마태복음 6장)
<찬송> 278, 369

<주석> 애굽의 압제에서 신음하는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은(출 3;7) 하늘에서 내려 오셔서(3:8) 구원의 행동을 개시하셨다. “그들을 애굽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겠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애굽을 떠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러나 험난한 광야의 생활을 거쳐 막상 도착한 그 약속의 땅은 “젖과 꿀“로 상징되는 ‘풍요의 땅’이 아니었다. 양의 젖이나 벌통의 꿀이 풍부하여 먹고 마시고도 남아 넘쳐흐르는 땅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약속의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존을 위해 매순간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이민족들과 수많은 전쟁을 치러야만 했던 척박하고 황량한 땅이었다.(삿 1장)
“젖과 꿀”이 물질적 풍요를 의미한다면 이스라엘이 정착한 팔레스타인의 지리적 특성과는 먼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의 본래적 의미는 이스라엘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특별히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신앙적 관계’에서 파악하여야 할 것이다.
젖은 ‘어미’가 ‘새끼’에게 전달하는 ‘생명의 양식’이다. 또한 무방비적인 새끼를 향한 본능적인 사랑이다. 젖을 먹이는 어머니의 모습은 사랑으로 풍요하고, 젖을 빠는 새끼의 모습은 화이다. 젖으로 말미암아 잇대어진 어미와 새끼의 사랑과 평화로운 관계는 바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이다.
한 방울의 ‘꿀’을 모으기 위해 수많은 벌들이 하나같이 협동하여 이 꽃 저 꽃을 날아다니며 수고한다. 그러나 그 꿀은 어느 한 개체의 소유로 주장되지 않으며, 어느 한 개체가 독점적 소유권을 주장하지도 않는다. 꿀은 공동체 정신의 과정이요 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사랑과 협동과 평화의 공동체에로의 약속이다.(이상 KNCC 간 <교회와 세계> 2005년 가을호 ,86-87쪽, 유경동 글‘기독교의 경제윤리: 희망은 있는가?’ 중에서 발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현세적 축복, 물질적인 축복, 개인주의적 축복으로 믿는다면, 역사적 지리적 현장과도 맞지 않으며, 성경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고 있는 하나님의 의도와도 모순이 된다.
그러나 현대 기독교인들 중, 현세적 축복, 물질적 축복이 믿음의 많고 적음의 기준이라고 믿고 있다.
세계는 한국이 두 가지의 기적을 이룬 나라라고 한다. 가장 빨리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 가장 빨리 교회 성장을 이룬 나라.

<예화>
1) 2004년 현재 한국의 경제는 세계 11위이다.(내일 신문, 2005년 8월 9일 자).
세계 11번째로 축복 받는 나라이다.
2) 1960년 총인구비 기독교인은 4.6%, 6십7만 명(1981년 기사연간 <기독교 사정>,)
2004년 총인구비 기독교인 21.4%, 1천 3백만명 (한국갤럽 2004년,<타임 매거진> 2005년 7월)
경제 성장, 양적 성장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는 축복이라면 우리나라는 약속의 땅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통계도 있다.
<예화>
3) 한국의 자살인구 수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에 4위이며 지난 10년 전보다 2.4배가 늘었다.(상기 <교회와 세계> 78쪽, 참조 지난 10년 동안의 인구증가율은 0.9%-연합통신 간 <2004년 연감>)
* 60억 재산가 할머니가 재산을 둘러 싼 자녀들의 분쟁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하였다.
4) OECD 국가들 가운데 두 번째로 가장 소득이 불균형한 나라이다.(경향신문 2005년 8월 9일)
*우리나라의 주택보급률이 102.2%이지만 무주택자가 45%이다.
*총인구의 1%가 총사유지 51,5%를 소유하고 있다.
*상위 10%계층의 소득은 하위 10% 계층의 소득의 15.28배 (내일신문 2005년 8월 3일)
5) 정부는 우리나라의 빈곤층 인구가 700만 명이 넘었다고 발표했다(경향 2005 년 8월 26일)
그런 신앙에 따라 이런 예화를 보고 있노라면 한국백성은 결코 축복받은 백성이 아니다.


마태복음 6장 19절-34절은 재물과 이 세상적인 염려에 관한 예수님의 교훈을 전하고 있다. 좀이나 동록(銅綠)이 해하고 도적이 도적질하지 하는 땅 위에 쌓아 두지 말고 그것들이 해하지 않는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셨다(19-20절). 하나님과 재물은 같이 섬길 수 없다(24절).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입을 것, 먹을 것, 세상의 축복도 이에 더하시리라 약속하신다( 25-34절).

<결론>
마태복음의 이 말씀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현세적 축복, 물질적 축복의 여하로 판단된다는 믿음은 잘못되었다는 말씀이다.
앞서 인용한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1997년부터 2004년까지 7년 동안 750만 명이 개신교를 떠나갔다고 한다.
개신교에 대한 사회 호감도는 12.3%며 개신교를 싫어하는 6가지 중에 사회 봉사와 이웃사랑 부족, 사리사욕과 지나친 물질주의가 들어 있다.
혹시나 한국의 개신교회가 ‘젖과 꿀’을 물질적 축복으로 간주하여, 못사는 사람은 벌 받아 못 살고, 잘 사는 사람은 복 받아 잘 산다고 가르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