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저 사람은 지금 어떨까?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8-08 21:44
조회
988
저 사람은 지금 어떨까?
마태복음 11: 2~5


사람이 갖고 싶은 것을 다 가지면 정말로 행복해질까요? 조건부와 한시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채로, 가진 것 때문에 행복할 수 있다고 해도 그런 소유를 통해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은 또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요?
차를 사면? 집을 사면? 출세를 하면? 인정을 받으면?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행복감을 지속시켜 줄 수 있을까요? 콕 찍어서는 답하기는 쉽지 않지만,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그렇게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진정으로 행복감을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자족하는 마음, 좋게 보는 마음, 그런 것들이 있어야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자족, 감사의 마음이 없어서 모든 것을 좋게 볼 수 없다면 그런 사람은 이미 지옥을 사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들이 소유나 떡만으로는 살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소유와 양식은 행복한 삶을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 조건은 아닙니다.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통해서만 행복해지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충분 조건이 있어야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지만, 행복의 절대조건 혹은 충분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자족, 감사하는 마음이 충만하면 행복할 것이지만, 부자라도 마음이 허전하면 불행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신 이유도 우리가 육신의 만족만으로는 행복해 질 수 없음을 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 그런 진리를 가르쳐주신 우리의 하나님께서도 정말로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중요한 것은 충만한 마음인 것을 더욱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에 대해서 어떻게 해서 완벽하게 알 수 있을까요? 나도 나의 필요를 모를 때가 있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해서 나를 완벽하게 알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이 무엇일까?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분이라서 안다는 것은 너무나 싱겁고, 또 나를 만드셔서 아신다는 것은 너무나 공식적인 답이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이 나를 아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그 방법을 알면 나도 좀더 쉽게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될 테요…. 그 분이 나를 안다는 것은 그 분이 나 되어보는 것, 즉 항상 내 입장에서 깨어 있어야 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깨어있는 분입니다. ‘지금 저 사람은 어떨까?’의 눈으로 나에게 항상 깨어 있는 분이 하나님이다.”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 저 사람은 어떨까?” 그런데 하나님이 나에게 깨어 있다는 것은 나의 진정한 필요에 하나님이 반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참된 필요에 깨어 있지 못하고 내 이웃의 필요에 깨어 있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나와 우리의 참된 필요에 반응할 준비까지 이미 끝난 상태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지금 저 사람은 어떨까?” 라는 눈으로 사람을 보시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필요를 “항상 그리고 온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필요를 채워 줄 준비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만 그것이 가능한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그분이 하시는 일을 나도 하면서 살겠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도 그분이 하시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나도 “지금 저 사람은 어떨까”에 깨어있기만 하면 하나님처럼 그 사람의 필요를 알 수 있고 또한 채워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사랑 받고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할 마음만 갖추어지면, “지금 저 사람은 어떨까?”에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런 눈으로 우리를 보시기 때문에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이렇게 다가올 수 있을 것입니다.
“눈먼 사람은 지금 어떨까?”에 깨어 있어보면 눈먼 사람에게는 눈뜸이 가장 필요함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눈먼 사람이 눈을 뜨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앉은뱅이에게는 일어나 걷는 것이 가장 필요합니다. 한샌씨 병자에게는 깨끗해지는 것이 가장 필요합니다. 죽은 자에게는 살아나는 것이 가장 필요합니다. 청각장애인에게는 듣게 되는 것이 가장 필요합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인 우리에게도 눈뜸이 가장 필요합니다. 믿음을 실천하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는 믿음의 앉은뱅이인 우리에게도 일어섬이 분명 필요합니다. 욕망에 오염되어 감사를 잃어버린 마음의 한샌씨 병자인 우리에게도 깨끗함이 필요합니다. 영혼이 죽어 있어서 하늘 나라를 잃어버린 우리에게도 거듭남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인 우리에게도 사실대로 듣는 보청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들의 필요를 아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지금 우리들은 어떨까?”에 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들은 남편과 아내에게조차도 깨어 있지 못합니다. 자녀에게도, 교회와 교우들에게도 그렇지 못합니다. 어찌 보면 관심조차 없는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돌아서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바라보시는 이유는 나를 사랑하시는 까닭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이유는 “너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하라는 것들은 결코 어렵지 않은 것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려운 것을 하라고 하실 분이 아니니까요.
마음에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일단 사랑에 관심을 쏟기 시작하면 이 일은 정말 쉽습니다.
“지금 저 사람은 어떨까?” 자, 이 말씀에 한번 깨어있어 봅시다.
이렇게 깨어 있는 자에게 축복이 임합니다. 사랑의 축복이 임합니다.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이 생기게 되고 그래서 결국 사랑 받는 자가 됩니다. 가정에, 직장에, 교회에, 사회에 사랑이 없다고요. 아닙니다.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기술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지요. 이제 그 방법 중의 최고를 만났습니다. “지금 저 사람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