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2005년 9월의 버마 상황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5-23 23:39
조회
626
9월의 버마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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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신(短信)

북 Arakan의 기근

북 Arakan 주의 몇몇 부락들은 최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미곡과 다른 필수품들의 가격들 때문에 기근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 Maungdaw와 Buthidaung 읍의 몇몇 부락의 주민들은 지방 Nasaka(국경수비대)와 군장교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불평을 하면서 기근의 희생자들에게 즉각적인 긴급지급을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무런 공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다. 군부와 Nasaka 장교들을 포함한 관계당국자들은 민간 무역업자들이 쌀이 충분하고 값이 싼, Arakan 주 남부지역에서 미곡을 구매하는 것을 허용하려 하지 않았다.

2004년 버마에는 외국자본의 투자가 증가하다.

최근 발간된 정부 통계에 따르면, 이 군사정권국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제재조치에도 불구하고, 2004년에는 버마 내의 외국투자액이 34%이상 증가하였다. 투자액은 2003년 9천 5백 34만 $에서 2004년 1억 3천 4백 9만 $로 증가했다고 <국가 기획 개발부>가 연간 보고서에서 발표하였다. 남한, 중국, 태국이 7개 석유와 가스 계약으로서 1억 천 2백 25만 $이 투자되었고, 나머지는 제조, 광업, 유통, 호텔부분에 투자되었다고 이 보고서는 보고하고 있다. 중국은 2004년에 석유, 가스, 광업, 제조업 부문에 6천 6백만 $이상을 투자하였다.

홍수로 인한 Karen족 망명자들의 격리수용

북부 태국, Mae Hong Son 도, 제 2 수용소의 Karen 족 망명자들은 9월 중순 Mae Saiang 강의 범람으로 격리 수용되었다. “홍수로 말미암아 학교가 폐쇄되고 강가에서 거주하던 가족들은 홍수를 피해 다른 곳으로 옮겼어요” 라고 그 수용소에서 온 부인이 말했다.일 주일 내내 거센 비가 끊임없이 내려, 수용소 안의 주택 5채는 강에 휩쓸려 가고 10채는 전파되었다. 길들이 파손되고 미려든 홍수 때문에 NGO 단체들도 망명자들을 돕기 위한 접근이 불가능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버마 사태에 주목하다.

아난은 뉴용에서 열린 ASEAN-UN 정상회담의 개회사에서 버마의 정치 상황과 열악한 인권 상황에 주목하였다. 아난은 군사정부의 외무부 장관 Nyan과 거기에 모인 ASEAN 대표들을 향하여 버마는 “정치적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나라들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유엔은 미얀마[버마]의 국민과, 그리고 아시아의 모든 나라의 국민들을 위한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한 길은 민주주의 원칙을 존중하고, 법의 지배를 지향하고, 인권을 보호하는 데에 있습니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한편, 9월 14일 UN 정상회의 첫날은 <안전보장이사회>가 버마문제를 거론하지 못함으로써, 인권 운동가들을 실망시킨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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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재변화를 위한 제재조치들은 재고되어야 한다

1997년 5월 미국은 버마 정부가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반체제인사들에 대한 광범위한 압제와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에 대한 대응으로서, 행정명령 13047을 공포하였다. 이 명령은 미국인들의 버마에의 새로운 투자를 금지하고, 외국인들이 버마에 새로운 투자를 하는 것에 대한 미국인들의 방조를 금지하는 것이었다. 2003년 5월 Depayin의 Daw Aung Suu Kyi의 자동차 행렬에 대한 공격이 있었고 그 이후 바로 그녀를 자택에 연금시킨 사건이 있은 후 그 해 7월, 부시 대통령은 버마 군부 지도자들에 대한 경제적 고삐를 죄려고 한 조치였다. 더 나아가 미국이 ‘버마의 자유와 민주주의 법 2003’를 도입한 것은 이 정권에 대한 미국 정부의 반대를 선언한 것이었다. 미 정부는 근본적으로 버마 지도자들의 재산을 동결하고, 여행을 규제하고, 버마로부터의 수입을 금지하였다.

이 ‘2003 법’의 직접적인 결과는 버마 기업들이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3천5백만 $ 어치의 직물 수입주문서들이 휴지조각이 된 것이었다. 버마의 의류공장들 대부분이 개인 기업들의 소유이고 그렇기 때문에 군사 정부에게는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고는 하지만, 버마내의 기업들의 성격상 공식적 경제의 면에서 볼 때 사기업과 군사정부 간에는 명확한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경제계에는 족벌체계와 정실체계가 만연되어 있다. 그러므로 군사정부와의 동업관계나 보호관계나 지원관계가 힘을 발휘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제재조치들이 기대하는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했는가를 생각해 볼 때 그것들이 효력을 발휘했는지는 심히 회의적이다. 미국이 제재조치들을 사용한 이래, 어떠한 의미있고 포괄적인 민주주위 체재에로의 움직임들이 있었는가? 대답은 아무것도 없다이다. 2003년 말에 다시 제시된 Khin Nyunt 총리의 “민주주의로의 안내서” 등과 같은 소위 창의적이라고 하는 조치들은 시민의 직접선거에 의한 정부수립이나, 버마의 소수 종족들의 미래에 관한 것과 같은 핵심쟁점에 관한 진정한 논의가 되었는지에 대한 긍정적인 답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더 나아가 2004년 10월 Khin Nyunt총리의 파면을 버마 권력 내부 구조 안의 강경세력, 고립주의 분자들의 권력 강화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의 제재의 효과를 들어다 볼 때, 그것들이 일방적인 것이었다 점이 강조되고 있다. 사실 미국만이 “강압 제재”라고 할 수 있는 제재다운 제재를 해왔다. EU가 채택했던 제재조치는 분명히 제한적인 성격을 지녔다. 1996년과 1998년에 무기 수출 금지와 정부관리들과 그의 가족들과 보안담당 관리들에 대한 비자 발급 금지조치가 취해졌었다. 그러나 투자에 대한 제재조치는 2004년 9월에야 이루어졌다. 이런 조치들은 프랑스, 독일, 호주 정부들의 반대로 말미암아 협상과정에서 굉장히 희석되었다. 그러므로 이 제재조치들의 실제적인 귀결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투자제재조치들은 미국이 소유한 몇몇 기업들에게 대한 EU 기업들의 투자가 금지되었지만, EU 기업들이나 시민들의 투자유치에 대한 금지는 도입되지 않았다. 또한 버마로부터의 상품과 서비스의 수입을 중단하라는 제재도 가해지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군사정부에 가장 이익이 될 만한 부문들 예컨대, 석유, 목재, 가스 등은 제재 품목들에서 누락되어 있다. 브루셀에 있는 <버마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유럽 사무국> 소장인 Haen Yawnghwre는 이렇게 말한다. “실제 그런 제재조치들은 아무런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단지 우리의 상황을 좋지 않다는 것을 입증해 줄 뿐이지요.” 이빨 빠진 호랑이 같은 이런 조치들은 예컨대 군사정부가 원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이 정부의 실질적 수입원이 되고 있는 버마 투자기업의 하나인 프랑스 거대 기업 TOTAL 같은 기업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을 따름이다. 미국의 제재조치들의 일차 물결이 일기 직전, 그리고 미국이 미얀마 석유 가스 회사(MOGE)를 소유하기 직전인 1993년에 이 사업의 주식들을 구입한바 있는 TOTAL의 동업자인 미국의 기업 UNOCAL은 Yadana 석유관 사업을 맡았다. 이 석유관 건설에는 실질적으로 강제 노동이 동원되었다. 군사정부는 2002년 이래 이 사업으로부터 2억 내지 4억 $를 벌어들였다고 보고되고 있다. 버마정부가 걷어드리는 국세의 총액이 1억 1천 만 $임을 감안하면, 이 액수는 버마 정권의 총 수입에 얼마만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지 알 것이다. 2004 EU 제재조치들의 성격이 둔화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것들은 EU가 지금까지 외치고 있는 바, 군사정부에게 인권과 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데에는 아주 무용한 것이 되고 말았다.

이상의 보도를 볼 때, 최근 부과된 제재조치들도 무용함이 입증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조치들의 결과가 군사정부의 장군들로 하여금 어떤 요구에 굴복하게 할 만큼 그렇게 충분히 가혹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입증될 뿐이다. 1991년 태국정부가 최초로 채택하였던 “건설적인 개입자세” 가 이 사실을 잘 입증해주고 있다. 1997년 버마를 ASEAN의 일원으로 받아드림으로써 인정된 이 정책은 이제까지 부랑자 국가로 취급받아 온 버마에 대한 외국 투자의 괄목할 만한 증가에 큰 기여를 해 온 것이다. 버마가 1988년 “개방 경제”로 바뀐 이래, 약 70억 $의 투자가 ASEAN 국가들로부터 이루어졌다.

그 결과 버마 군부 지도자들은 서양 주도의 수출금지 조치를 별로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2003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런던주재 버마 대사 Kyaw Win 박사는 이 점을 아주 분명히 밝혔다. “ 인도, 중국, 태국등과의 무역이 순조로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미국과 유럽의 경제 제재 조치들에 대해 걱정하지 않습니다.” 경제 수치들은 이 말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버마의 주변국들과의 무역을 급속히 증가해 왔다. 2001년 중국과의 쌍무무역액수는 공식적으로 6천 5백만 $로 추정되고 있다. 비공식 경제가 크기 때문에, 이 숫자는 단지 추산일 뿐이다. 1991년-92년의 인도와의 국경무역액은 3억 2천 324만 $에 이르며, 2003-2004년 태국과의 거래는 10억 9천 만 $에 이른다. 외국투자액도 급증해 왔다. 버마 민족 기획부는 2003-2004년에 교역량이 34% 증가했다고 발표하였다. 남한, 중국, 태국 모두가 특히 석유, 가스, 제조업 부문에서의 중요한 기여국이 되어 왔다.

위에서 언급된 아시아 주변 국가들은 버마의 풍부한 자연 자원의 착취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어떤 의미로는 오랜 동안 고립되어 온 이 국가에게 영향력을 부여해 주고 있다. 이 사실은 버마의 장군들에게 미국의 압력, 그리고 그보다는 덜하지만 EU의 압력에 저항할 수 있는 지렛대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인도와 중국에 있어서는 버마는 양국의 측면에서 볼 때 전략상 중요한 나라인 것이다. 베이징은 오랜 동안 랭군에게 확실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1988년 이래 두 나라는 1백 6십만 $어치의 무기를 공급해 주었고, 버마의 하부구조 형성에 중요한 공헌국들이 되어 왔다.

이런 연결들은 군사적 그리고 금전적 의미에서 인도와 지대한 관련이 있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중국의 영향 하에 있는 버마국은 인도에게 파키스탄과의 관계에서 불이익을 줄 수 있다. 이 점을 염두에 둔 인도는 버마와의 관계에서 민주주의적 가치를 신봉하는 이전의 정책을 포기하고 있다. 인도는 자국의 하부구조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데에 깊은 관심을 보여 왔으며, 또한 버마와의 중요한 무역거래를 발전시켜 왔다. 이 사실은 군사정부에게 합법성과 힘을 더해주고 있다. 더 나아가 이 사실은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의 제재조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제재조치들에 대한 현존하는 경험적인 연구들의 결과를 통하여 보면 모든 사람들은 그 조치들이 표적이 되고 있는 국가에게 아주 사소한 사례들의 경우에만 양보로 끝났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최근 버마에서 미국과 EU가 취한 조치들이 이 사소한 사례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본질적인 면에서 볼 때 민주주의에 입각한 거래들이 버마의 인근 국가들의 의제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지 않음은 분명하다. 그 국가들의 지정학적인 경쟁의식과 그들에게 굴종하고 있는 한 나라를 경제적으로 약탈하고자하는 욕망이 그들에게는 궁극적으로는 버마 민중들의 끊임없는 고난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단지 자기 이웃국가에 대한 도덕적 입장을 취할 경우 잃은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이런 관점을 약화시키는 데에 주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제재조치들 그 자체는 이 일들을 할 수 없다. 어떤 제재조치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버마 내에 영구적인 변화를 가져 올 압력을 가하기 위한 보다 넓은 국제적 캠페인의 하나로서 취해져야만 한다. (M. Mcateer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