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시사

(일)닛산의 우토로문제 책임을 묻는 기자회견문과 공개질의서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5-07-29 21:54
조회
1405
일제 군비행장 건설에 조선인을 동원하고 60여년 동안 그들을 방치한 일본국제항공공업의 후신인 닛산자동차가 한국에 현지 법인인 <닛산 코리아>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한국에의 자동차 판매에 돌입하고 2005년 7월 28일 닛산 인피니티 그랜드 출범식을 가졌다.
닛산 자동차는 주민들과의 상의없이 비밀리에 토지를 전매하여 지금의 '우토로토지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한국우토로국제대책회의>(상임대표: 박연철 변호사)와 <일본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대표: 다가와 아키코>는 이 날 오전 10시 30분 닛산 인피니티 강남전시장 앞에서 "닛산의 역사적 /기업적 책임을 묻는 기자 회견"을 갖고 공개질의서를 전달하였다. 이하는 기자회견문과 공개질의서이다.-운영자


● 기자회견문 ●

닛산의 전후보상 책임과 기업 윤리를 묻는다

한국의 우토로국제대책회의?일본의 우토로를지키는모임,
일제 군비행장 건설에 조선인을 동원하고 방치한 군수기업 일본국제항공공업의 후신이자,
주민과 상의 없는 일방적인 토지전매로 우토로 토지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
닛산의 역사적?기업적 책임을 묻는 기자회견

■ 일시 : 2005년 7월 28일 (목) 오전 10시 30분 (인피니티 그랜드 런칭식)
■ 장소 : 닛산 인피니티 강남전시장 앞
■ 주최 : 우토로국제대책회의, 우토로를지키는모임


1. 우토로국제대책회의와 우토로를지키는모임은 강제철거에 맞서 싸우는 일본 내 조선인 마을 ‘우토로’가 전후 보상은커녕 최소한의 생존권인 거주권조차 거부당한 사실에 대해 일본정부의 역사적, 인도적 차원의 책임을 추궁함과 동시에 이에 가담하여 조선인을 군비행장과 관련 시설 건설에 동원, 가혹한 노동에 종사하게 하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어떠한 보상도 없이 방치해 옴은 물론 주민과 상의 없이 토지를 전매, 우토로 주민의 삶의 터전을 빼앗아버린 일본 군수 기업 일본국제항공공업과 그 후신인 닛산의 역사적, 인도적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2. 우토로 조선인 마을은 1940년 일제가 오사카와 교토의 방패막이 될 교토군비행장 건설 즉, 군비행장 활주로와 비행기, 조종사 양성소 건설을 결정하고 이를 추진하는 일본국제항공공업과 더불어 낮은 임금과 강인한 노동력의 조선인을 동원, 조선인 노동자의 집단합숙소로 함바가 세워지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조선인 노동자들은 밤낮없이 노동에 시달리며 사람이 살지 않는 자갈투성이 땅을 일구어 함바를 짓고 1988년까지 우물을 파서 살아왔으나, 전쟁 수행에 앞장섰던 일본국제항공공업과 그 후신인 닛산은 우토로 조선인에 대한 책임과 배려는커녕 화재 방지와 위생을 위한 상수도 설치조차 동의해주지 않는 등 철저히 우토로를 방치해왔고, 오히려 일본 정부의 산업부흥정책과 한국전쟁 특수에 힘입어 전쟁 책임은커녕 비행기 생산 기업에서 자동차 생산 기업으로 승승장구 발전하여 오늘에 와서는 한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닛산 자동차가 직수입 판매되게 이르렀다.

3. 더구나 닛산은 1987년 우토로 토지를 실제 수십 년간 살아온 주민들과 적절한 논의와 협의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팔아버리고 혼란에 빠진 주민들의 수차례의 대화 요청에도 끝까지 응하지 않는,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기본적 윤리와 사회적 책임이 심각하게 결여된 행태를 자행하였다. ‘우토로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살 사람만 있으면 누구에게 팔든 좋다고 생각했다’는 닛산의 당시 토지매매 담당자의 증언은 닛산의 몰역사적이고 비인권적인 태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닛산의 일방적 토지 전매와 주민과의 대화 거부가 오늘날 우토로 재일동포들이 겪는 고통의 구체적인 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4. 우토로국제대책회의와 우토로를지키는모임은 한일간의 역사 및 외교문제, 유엔과 국제사회에서 거주권 및 인종차별의 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우토로 문제의 해결은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일본 정부 및 관련 기업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직시와 반성, 사과와 보상 등 성의있는 대처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닛산이 지금이라도 전쟁, 침략이라는 역사적 범죄에 가해자로 참여했고 이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점에 대하여 사과하고, 이후에도 그 피해자의 인격과 생존권을 철저히 무시한 사실에 대하여 기업으로서의 도의적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한다.

5. 우리는 닛산이 과거 일제 수탈의 첨병이었음을 기억하며 평화와 보편적 정의를 옹호하는 양심적인 모든 국내외 시민들과의 연대를 통해, 닛산의 역사적 인도적 책임을 추궁, 촉구함과 동시에 앞으로의 행보를 예의주시할 것이다.

2005년 7월 28일
한국우토로국제대책회의(공동대표: 김경남 목사, 나경원 의원, 박연철 변호사,
이광철 의원, 전종훈 신부, 진관 스님)
일본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대표: 다가와 아키코)





● 별첨 - 닛산관련 우토로 연혁 ●

1937. 5. (주)일본항공공업 설립 (본사 오사카)
1939. 11. (주)국제공업 설립 (본사 도쿄)
1940. 1. 교토비행장용지가 좌산촌(佐山村)을 중심으로 하는 구역으로 결정
1940. 4. 국제공업교토공장 및 부속비행장 기공식
1940. 6. 우토로의 토지가 매수됨
다음해 (주)일본국제항공공업 명의로 등기
1941. 7. 일본국제항공공업 설립 (양사가 합병. 본사 도쿄. 공장, 교토부
구세군 오오쿠보무라, 가나가와현 히라츠카시. 종업원 3000명)
1941. 8. 교토부가 우토로 토지를 매수
1941. 12. 영미양국과 개전
1943년경 우토로에 한바(건설현장에서 만들어지는)가 만들어짐
1944. 1. 일본국제항공공업을 군수회사로 지정
1945. 7. 오오쿠보공장을 미군이 폭격
재폭격에 의해 공장 생산활동 정지
1945. 8. 일본패전, 조선 해방.
비행장건설 중지. 1300여명의 조선인 노동자와 가족이 방치됨
1945. 9. 미점령군, 일본국제항공공업을 접수
우토로 한바는 주민의 반대로 접수하지 못함
우토로에 조선인학교가 자주적으로 건립됨
(귀국에 대비해 자국의 언어와 역사를 배우기 위해)
1945. 12. 일본국제항공공업 츠다신고 사장 A급전범 용의로 연행
1946. 2. 일본국제항공공업, (주)일국공업으로 사명 변경 (사장 데라다 미치히코)
1946. 5. GHQ, 츠다를 무죄석방
1946. 9. 일국공업이 차체 제조 개시
1949. 4. (주)신일국공업 설립
1949. 12경 일본정부의 탄압에 의해 우토로 조선인학교 폐쇄됨
1950. 6. 한국전쟁 개시. 전쟁특수에 의해 일본 산업 부흥
1951. 5. 주민이 우지시에 생활곤궁의 규제를 호소함
1951. 6. 신일국공업이 닛산자동차와 자본제휴
1952. 3. 경찰부대가 2회에 걸쳐 우토로를 강제 조사
1952. 10. 우지시에 외국인등록법 반대 항의
1953. 7. 우지시에 생활보호를 적용하도록 진정
1953. 9. 태풍13호로 침수, 큰 피해
1953. 12. 교토부에 조선인의 월년(越年)자금을 진정
1955. 2. 생활보호법 위반으로 경찰이 우토로를 강제 조사
1956. 10. 미군 오오쿠보 캠프, 일본에 반환됨
1957. 2. 육군자위대 오오쿠보 주둔부대가 발족
1958. 9. 우지시가 실업대책사업을 개시
1961. 10. 서우지중학교에서 조선귀국 학생의 송별회
1962. 1. 닛산차체공기(工機)로 사명 변경
1962. 7. 닛산차체공기가 청산 회사인 일국공업을 합병
1970. 2. 주민들, 닛산차체공기에 ‘요청’서를 발송
1971. 6. 현재의 (주)닛산차체가 성립
1979. 10. 우지시에 수도, 소화전, 도로포장을 요망
1984. 11. 닛산차체가 히라야마 마스오에게 우토로 토지 양도를 제안
1985. 3. 우토로에 화재(4채가 전소)
1987. 3. 닛산차체가 우토로 토지를 매각
1989. 2. ‘건물수거토지명도’ 소송제기. 원고 (유)서일본식산
1989. 3. 교토지법에서 첫 공판. ‘우토로를지키는모임’ 결성

















● 공개질의서 ●

대책회의와 지키는모임은 다음과 같이 공개질의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는 바, 이에 대한 닛산측의 성의있는 답변을 촉구한다.

1. 전쟁이 끝난 직후, 우토로 조선인 마을과 주민들에 대해 어떠한 방침을 세우고 시행하였는가?

2. 1987년 토지매매 계약을 체결하는 시점까지 약 40여 년간 우토로 조선인 마을과 주민들에 대해 어떠한 방침을 세우고 시행하였는가?

3. 1987년 토지매매 계약 당시 3억 엔이라는 금액은 어떻게 산정된 것인가?

4. 1987년 토지매매 계약 과정에서 훗날 주민들에게 큰 혼란과 불안을 가져다줄 것이 예견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왜 주민과 충분한 상의와 협의를 하지 않았는가?

5. 강제철거 위기에 있는 우토로가 한일 외교문제뿐 아니라 유엔에서도 심각한 인권 유린과 국제법 위반으로 지적받고 있는 현 상황에서 닛산은 우토로 문제에 대해 어떠한 입장과 대책을 갖고 있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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