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시사

과거사 정리법에 관하여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5-06-14 21:53
조회
1440
국민적 화해 어떻게 가능한가?
김 경남(목사,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

우여곡절 끝에 2005년 5월 3일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법>(이하 <과거사 정리법>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모든 국민은 모두가 이 법이 왜곡되거나 은폐된 과거사의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하여 진정한 ‘국민적 화해를 위해’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국회는 남아공의<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통한 과거사 청산이 “보복없는 과거청산”의 모델로 삼았다고 보도되고 있다.
남아공의 모델을 우리나라 상황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남아공 정부와 국민이 보여준 과거사 청산의 노력을 살펴보고, 우리의 <과거사 정리법>이 “진실과 화해를 통해 국민적 통합”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데 충분한 것인지 그리고 “국민적 화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의 지혜를 얻자.

남아공의 '진실과 화해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이하 TRC)는 1994년 민주정권이 수립된 후 앞서의 백인정권하에서 자행된 각종 인종차별 행위 등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설치된 정치권으로부터 독립된 기구로서. 96년 4월부터 98년 7월까지 청문회를 개최, 모두 2만1천명에 달하는 피해자의 증언을 청취하는 등 진상 규명 작업을 벌여 이 중 1만8천 건을 인권위반으로 판정했다.
TRC는 지난 98년 10월 3천5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1차 보고서를 발간한 뒤 2002년 공식 해체됐으며, 최종 보고서는 2003년 3월에야 완성됐고 정부는 이에 따라 피해자들에게 1인당 3만랜드(약600만원)를 보상금으로 지급했다.
이 위원회는 산하에 ▲인권위반위원회 ▲보상.재활위원회 ▲사면위원회 등 3개 위원회를 두고 활동했다.
TRC는 가해자의 경우에도 상부의 명령과 지시에 따른 불가피한 성격이 있는 경우 등엔 당사자에게 민.형사상 사면결정을 내릴 수 있었기 때문에 가해자 입장에 있던 인사들도 진상을 공개하는데 적극 참여하여 객관적인 조사를 할 수 있었다.
TRC는 모두 7천112건의 사면신청을 받아 1천160건을 승인했다.
TRC가 성공할 수 있는 것었던 것은 피해자의 가해자에 대한 보복을 위한 과거사 조사가 아니라 진상규명을 통해 피해자에게는 명예를 회복하고 가해자에게는 참회를 통한 화해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이다.
흑인 강경파들 중에는 가해자들의 진정한 사과표명이 부족하고 진상고백만으로 민.형사상 책임을 면해주는 사면권을 남발했다고 비판하는 한편 일부 백인들은 피해자 측의 자의적인 주장에만 의존하는 마녀 사냥식 조사가 이뤄지고 있고 비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TRC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남아공은 흑·백간의 갈등을 비롯, 사회 전반에 걸친 국가분열 또는 내란발생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난 94년 이후 흑인 정권 10년 동안 정치·사회적으로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고 경제 발전도 어느 정도 이루어가고 있다는 과거청산의 성공적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남아공의 <국민통합과 화해촉진법>(The Promotion of National Unity and Reconciliation Bill)과 비교할 때 우리의 <과거사 정리법>에는 다음과 두 가지 중대한 사항이 미진하고 이 법이 부적한 점을 공유하고 있어 과연 남아공의 경우처럼 우리 법이 과거청산의 성공적인 결실을 얻어 낼 수 있을지 우려가 된다.

1) 위원회 구성의 문제
남아공의 TRC는 대통령과 내각의 상의 하에 임명된 11명 이상 17명 이하의 위원들로 구성되었다. 또한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는 그 사건에 대해 가장 잘 아는 피해자나 참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고 위원 17인 전원이 반정부 인사였으며, 조사관도 공개 채용을 할 때 시국당사자들을 우선시 하거나 민주화 인권운동의 전력을 중요시했다..
반면 우리 법은 “15인의 위원 가운데 국회가 8인, 대통령이 4인, 대법원장이 3인을 지명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화해나 국민통합 보다는 정파적 투쟁이나 국민적 불화를 결과할 것이 불 보듯이 뻔하다.
뿐만 아니라 위원들의 그 자격도 “10년 이상 근무한 대학교수, 판사, 검사, 변호사, 3급 이상 공무원, 그리고 역시 경력 10년 이상의 성직자나 사료관련 연구가”(제 2장 2장 제 4조)로 규정한 것은 혹시나 피해자나 희생자가 섞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 속에 일부러 자격을 제한해 놓은 것처럼 오해받기 십상이다.

2) 보상/배상에 대하여
TRC는 보상/배상에 관하여 매우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였다.
남아공의 <국민 통합과 화해 촉진법>은 위원회 조치 중 “희생자들의 배상 문제에 관해 마련해야 할 정책이나 희생자들의 인간적, 국민적 존엄성을 회복시키기 위해 취해야 할” 조치를 강조하였다 희생자들에 대한 배상이 없는 사면은 폭력 희생자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며. 희생자들의 명예와 존엄성을 회복하고 효과적인 배상책을 마련하지 않고서는 가해자들에 대한 용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들의 인식인 것이다.
이런 인식 하에 이 위원회 산하에 ‘희생자 배상 및 보상 소위원회’를 설치하고 희생자의 생사나 행방을 확인하여 국민에게 알리고 희생자가 당한 폭력에 대해 직접 진술할 기회를 제공하며 희생자에 대한 배상책을 건의함 으로써 인간의 존엄성과 국민의 존엄성을 회복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대통령이 적절한 방식으로 법무부장관 및 경제부 장관과 더불어 ‘진실과 화해 위원회 운영기금’을 건립하도록 했다. 이 기금은 대통령이 정한 배상책에 따라 희생자에게 지불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법은 어떠한가? 제36조(피해 및 명예 회복) 및 제 36조(희생자를 위한 특별사면·복권의 건의) 조항은 있지만, TRC처럼 보상/배상에 관한 명문 규정이나 이를 위한 대책이 명기되어 있지 않다.

3) “대기업이나 공직 등 구조적·조직적 차별 문제를 효과적으로 밝히지 못했다”는 TRC의 반성과 유사하게 우리 법에도 경제계와 공직사회의 정경유착이나 비민주적 비리나 관행이 ‘조사범위’에 포함되지 못하고 있 다.
4) ‘2년의 활동 기간이 조사를 충분히 하기에는 너무 짧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가해자들의 비협조로 활동에도 어려움이 많았다’는 TRC의 고충은 우리가 겪을 고충일 것이다.

진정한 화해는 솔직한 죄책 고백과 그에 따른 흔쾌한 용서에 의해 가능하다.
죄책고백이 용서만을 강요하는 것은 가해자로서 획득한 부와 권력과 힘에 의해, 피해자로서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처지로 전락한 약자에 대해 굴종만을 요구하는 또 다른 가해적 행위이다.
솔직한 회개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지 않는 것은 보복이요 역전된 가해행위이다.
모든 국민이 흔쾌히 동의할 수 있는 화해를 위해서는 피해자를 포함한 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철저한 진실 규명과 죄책고백, 그리고 피해자가 흔쾌히 용서할 수 있을 납득할 만한 여건 조성이 요청된다.

“위원회의 힘은 법이 아니라 도덕에 있다. 우리의 목표는 개개인에 대한 사법적 단죄가 아니며.......이런 범죄 사실조차 전혀 모르고 있는 대다수 중산층의 마음속에 있는 무관심을 일깨우고, 죄의식을 이끌어내는 것”이라는 페루 ‘진실과 화해 위원회 레르너 위원장의 말이 우리의 조급성을 완화시켜 주었으면 한다.
또한 “화해는 끝이 없고 비싼 대가를 치루며 흔히 고통스러운 과정이다....희생과 고통이 따르지 않는 화해는 가치가 없다.”는 TRC의 충고를 깊이 간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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