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시사

세계화 프로젝트와 시민사회의 재편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1-09-30 23:46
조회
1424
세계화 프로젝트와 시민사회의 재편

조 대 엽(고려대 문과대 교수, 사회학)


지난 20년간 세계화의 특징은 이른바 글로벌 자본주의(global capitalism)로 불리운다. 자본의 움직임은 일국적 수준을 넘어 세계시장으로 확장될 것이라는 점은 자본의 본질상 이미 예측된 것이었다. 글로벌 자본주의는 무역을 중심으로 하는 상품의 전지구적 이동과,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초국적기업의 전지구적 이동에 더하여 금융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의 전지구적 이동을 특징으로 함으로써 전지구적 수준에서의 시장논리의 극단적 팽창을 의미하는 것이 되었다. 적어도 각 국가들은 '시장의 끊임없는 확장과 이를 통한 창조적 파괴를 강하게 신봉하면서 무역과 자본이동의 자유화, 탈규제, 민영화를 골자로 하는 신자유주의에 의한 강요된 조정(forced adjustment)'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박길성, 2000: 7).

글로벌 자본주의시대의 세계화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어 모든 국가들에게 미국식의 경제운영방식을 따르라는 한편, 미국이 국제기구를 통해 세계경제를 조정하는 것으로 요약된다(박길성, 2000: 11). 따라서 현재 전개되고 있는 세계화는 국제 금융시장의 주요 매니저들과 IMF나 세계은행 등 미국자본이 주도하는 몇몇 국제기구들이 만들어 가고 있으며, 각 국의 발전전략 역시 글로벌 자본주의의 이 같은 주요행위자들에 의해 결정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글로벌 자본주의가 갖는 이러한 특징을 감안한다면 최근의 세계화 경향은 글로벌 자본주의 사회구성체를 위한 '세계화 프로젝트'(global project)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세계화 현상을 이 같이 일종의 '프로젝트'로 보는 것은 무엇보다도 국제금융자본과 미국자본 중심의 주요 국제기구들이 세계화 드라이브의 행위주체로 그 어느 때보다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세계화는 각 국의 구조조정을 강요함으로써 시장과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를 신자유주의적 질서로 재편하고자하는 의도된 행위로서의 특징을 갖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계화 프로젝트의 현재적 결과는 시장의 팽창과 국가의 축소로 나타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시민사회는 어떤 동반적 변화가 있었는가? 시민사회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다른 무엇보다도 NGO의 팽창이라고 할 수 있다. "개별국가보다 더욱 강력한 구속력을 갖는 WTO와 개별국가보다 더 막강한 경제력을 가진 초국적기업, 그리고 개별국가보다 더욱 광범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진 NGO"(UNDP, 1999)가 세계화 시대의 새로운 주역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NGO는 이제 세계화의 핵심적인 축을 이루고 있다. 시장의 팽창과 국가의 축소 그리고 NGO의 팽창은 글로벌 자본주의의 세계화 프로젝트가 드러낸 동반적 효과였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무엇보다도 강조되어야 할 점은 NGO가 주도하는 시민사회의 변화는 글로벌 자본주의에 적합성을 가진 '순응적 시민사회'(civil society with globalization)로서의 특징을 가진다는 점이다. NGO질서의 구축은 글로벌 자본주의의 시장팽창을 보장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자본과 시장은 그 자체만으로는 무자비한 이윤의 증식과 가혹한 경쟁의 논리로 인해 사회의 죽음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NGO의 확대는 사회의 회생을 가능케 하면서 시장의 팽창을 보장하는 새로운 질서의 구축이라고 말할 수 있다. NGO질서의 구축은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사회의 존립과 세계시장주의의 팽창을 가능케 하고 있다. 첫째는 글로벌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일국적 단위에서 자본주의 축적의 정당화기능은 국가의 몫이었다. 이제 국가를 축소시킨 글로벌 자본주의의 정당성은 NGO에 의해 분점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통합과 합의의 구축은 국가역할로부터 NGO로 다원적 확산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논리로 볼 때 국가는 당연히 시장활동의 장애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가보다는 NGO가 국가경계를 넘어서는 특유의 자율적 소통에 기반하여 세계화의 프로젝트를 순항시키는데 유리한 것이다. 말하자면 NGO는 개별사회가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한 내적 합의를 가능케하는 중심적 역할을 하는 것과 아울러 세계사회의 소통구조를 확장하는데 기능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둘째로 NGO는 글로벌 자본주의에 적응적인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확충하는데 기여한다. 국제자본의 투자와 시장개입을 제약하는 다양한 규제의 제거는 국가축소를 통해 가능했으나 보다 원천적인 장애는 시민사회에 있다.
즉 대부분의 시민사회 특히 제 3세계의 시민사회는 전통적 가족주의와 연고주의에 바탕한 사적 신뢰의 구조가 지배함으로써 합리적 시장질서의 구축에 근본적인 장애로 작동한다. 민주사회와 시장경제가 효율적으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개인주의에 바탕한 상호신뢰의 약속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레스터 설러먼, 2000). 콜만이나 퍼트남에게서 강조된 바 있듯이 사회적 자본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시민사회에 공히 핵심적 요소로 작동하는 것이다(Coleman, 1990; Putnam, 1993). 특히 퍼트남은 사회적 자본이 공동의 이익을 위한 협력과 참여를 만들어냄으로써 민주주의를 심화시킨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지만 공적 신뢰로 형성된 사회적 자본은 계약을 유지시키고 시장경제질서를 가능케 하는데도 직접적인 중요성을 가지는 것이다. NGO는 사적 신뢰의 고리를 끊고 공적 신뢰에 바탕한 시민적 규칙에의 복종을 강조한다. 적어도 공정한 경쟁의 룰을 따르는 것은 시장질서의 기본적인 전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NGO의 팽창을 통해 만들어지는 시민적 덕목들은 현재의 글로벌 자본주의를 선도하는 미국식 글로벌 스탠다드의 시민사회 내적 구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점에서 NGO중심의 시민사회 질서는 '사회운동의 시민사회 내적 제도화' 경향과 함께 하며 그것은 곧 글로벌 자본주의에 순응적 시민사회로의 재편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최근에 강조되는 NGO를 주요 축으로 하는 '가버넌스' 및 '글로벌 가버넌스'의 전망은 이러한 순응적 질서재편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자율성과 자발성, 자치와 공익의 기치를 통해 우리 시대에 폭발적인 관심을 갖게 된 NGO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중심세력들이 추구하는 세계화프로젝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자기한계를 분명히 가지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구조적 제약 속에서도 NGO는 '반세계화'의 네트워크를 가짐으로써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운동을 형성하고 있다. 반세계화 운동의 지구적 네트워크를 '반세계화의 세계화'로 규정해 볼 수 있다면 이러한 연대활동은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NGO의 의의와 존립가치를 크게 높여주는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자본주의의 '순응적 시민사회'로 구축된 구조적 제약 속에서의 연대는 역시 자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운동들은 글로벌 자본주의와 분리된 영역에서 시도되는 전면적 도전의 의미를 갖기보다는 순응적 시민사회의 질서 속에서의 '참여적 저항'의 성격을 갖는다. 이러한 수준에서 분석적으로 설정되는 시민사회를 글로벌 자본주의에의 순응적 질서의 제한 속에서 작동하는 '적응적 도전'의 의미를 강조하여 '역응적(逆應的) 시민사회'(civil society with/against globalization)로 개념화할 수 있다.

한국의 사회운동부문은 1990년대 이래로 이른바 시민운동이 확대되어 왔으며, 이러한 시민운동은 다양한 시민운동단체들에 의해 주도되는 특징을 보여 왔다. 시민사회단체들은 환경, 인권, 여성 혹은 이른바 종합적 시민단체 등 과거에 비해 다양성을 보여왔지만 무엇보다도 이념적 평준화와 시민사회 내적 제도화를 통해 안정적인 활동을 지향하는 '시장형'적 특성의 전문운동 조직으로 크게 변화되었다. 아울러 시민단체들은 국내적으로 사회 각 부문의 개혁을 지지해 왔고 반개혁적 요소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러한 개혁의 내용들은 다양한 측면의 글로벌 스탠다드와 친화성을 보여주고 있다. 시민단체의 이러한 특성은 적어도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한 순응적 시민사회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시민단체들은 역응적 측면도 확대해 왔는데 '아셈 2000 민간포럼'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와같이 시민운동부문이 가지는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한 순응적 시민사회의 요소와 역응적 시민사회의 공존은 NGO 및 시민운동부문이 가지는 자율이 구조적 제약을 벗어나지 못하는 절반의 자율이자 수동적 자율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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