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시사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과 노동운동의 대안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1-04-25 23:36
조회
2099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과 노동운동의 대안


강수돌(노기연 부소장,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노사관계)


1. 들어가는 말


이 시간에도 좁아진 '지구촌'의 곳곳에는 파업의 물결이 마치 비오는 날 연못처럼 널리 번지고 있다. 한국의 1996년∼1997년 노개투 총파업 이외에도 프랑스, 벨기에를 비롯한 유럽 각국의 노동자들은 범유럽 연대 파업을 조직하기도 했고, 또 이태리, 스페인, 그리이스 등 세계 방방곡곡에서 파업과 저항이 벌어졌거나 진행 중이다. 옛 동유럽이나 소련에서도 마찬가지로 '시끄럽다'. 뿐만 아니라 미국, 나아가 온두라스나 콜롬비아 등 중남미 지역에 이르기까지 아메리카 대륙도 예외는 아니다.(주1) 도대체 좁은 지구촌이 왜 이렇게 한 시도 쉬지 않고 시끄러운 것일까? 한마디로, 이것은 신자유주의, 신보수주의에 대한 강력한 저항의 물결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지구촌의 노동자들은 신자유주의, 신보수주의적 공세에 직면하여 단순히 '적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저항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각 이슈별로 각 나라 사례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따지고 보면 신자유주의라는 물결은 보다 구체적으로 (1) 노동배제적 경영합리화(탈규제화 포함), (2) 국영부문이나 복지부문의 민영화(개방화 포함) 등으로 나타나고, 이것이 결국은 (3) 인종주의나 편협한 민족주의를 자초하고 (4) 마침내 민주주의와 삶의 질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들 측면에 대한 저항도 각 유형별로 나누어 살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현실 속에서는 여러 측면이 뒤섞여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끝으로는 과연 노동운동의 입장에서 진정한 대안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를 고민해 보고자 한다.


2. 저항 사례 1: 노동배제적 경영합리화에 대한 저항


저항의 첫 번째 유형은 아무래도 치열해지는 국제 경쟁의 물결 속에 가속화되는 노동배제적 경영합리화에 대한 노동자의 저항이다. 예컨대 다국적 기업인 프랑스의 르노 자동차 회사는 1997년 3월 2일, 회사의 적자를 보전하기 위하여 3천여 명을 고용하고 있는 벨기에의 빌보르드 조립공장을 3월 7일부터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기업의 입장에선 이 공장의 생산성이나 품질이 다른 곳보다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반발한 프랑스 본사와 벨기에 공장의 노동자들은 즉각적으로 파업에 돌입했다. 벨기에 공장의 폐쇄가 단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각국의 르노 노동자들 공동의 문제임을 인식한 노동자들은 범유럽적 저항을 조직했다. 마침내 7일에는 프랑스와 벨기에 뿐만 아니라, 스페인·포르투갈·슬로베니아 등지의 르노 공장 노동자들이 총단결하여 1시간 동안 일시 파업을 단행하기도 하였다. 루이 슈웨치르 르노 회장은 벨기에 공장 노동자들의 요구로 열린 긴급 회의에 나타나 "일부 노동자들이 본사 공장으로 전근될 수 있을 것이지만 공장 폐쇄 결정은 되돌릴 수 없다"고 잘라 말한 바 있기 때문에 노사간 싸움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1997년 2월 9일에는 에어 프랑스-유럽의 조종사와 항법사들이 24시간 동안 기습파업을 벌였다. 예전에 에어 엥떼르라 불렸던 에어 프랑스-유럽사를 국영 항공사인 에어 프랑스가 합병 인수하면서 이들의 노동조건이 악화될 것으로 전망되었다. 즉 이들의 월급이 1997년 4월부터 15%나 삭감되며, 크리스티앙 블랑 회장이 특별관리 방식을 도입하면서 구조조정 합리화가 가속화되어 수익성이 낮은 노선은 폐쇄되고(따라서 대규모의 정리해고 예상), 필요시에 다른 항공사에서 비행기를 임대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할 뿐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주던 사회보장 부문도 큰 폭으로 축소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동조건의 악화 문제 뿐만 아니라 블랑 회장의 독단적 의사결정 방식 또한 노동자들의 분노를 샀다. 즉 구조조정과 경영혁신을 회장이 직접 진두 지휘하면서 모든 과정에서 노조와는 어떠한 협상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노조는 '깡패들의 방식'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저항한 것이다.

프랑스의 국철 노동자들도 1995년 가을에 나온 정부의 국영철도 구조조정 및 경영합리화와 관련하여 연속 3주간 파업을 벌였으며, 파리의 지하철, 버스 등 교통공단 노동자들도 공동으로 장기 파업을 벌여, 마침내 당국의 노동배제적 합리화를 근간으로 하는 구조조정 계획을 전면 철회시켰다. 그리고 1996년 6월 초에는 프랑스 텔레콤이나 전기, 가스, 국철 노동자와 르노 자동차사 노동자들이 교대로 시위나 파업 등 통일 행동을 전개하여 노동배제적 합리화 계획에 철퇴를 휘둘렀다.

독일의 고급 승용차 회사인 메르체데스 벤츠사를 비롯한 여러 자동차 공장에서도 이미 1996년 가을, 정부가 노동자들의 병가시에 임금을 20% 삭감하기로 하자 전국적인 파업을 조직하기도 했으며, 회사가 인건비를 줄여 생산입지를 보호한다는 미명 하에 지금까지 휴일이던 토요일 노동을 특별 잔업 수당 없이 도입하려 하고 휴식시간도 줄이려 하며, 신입 사원들의 임금도 깎으려는 등 반노동자적 조치를 취하려 하자 광범위한 저항을 조직하기도 했다.

이러한 신보수주의의 시발점이 영국의 대처와 미국의 레이건 시대라면, 영국과 미국의 노동자 저항은 그 자체로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영국 리버풀의 500여 부두노동자들은 1996년 봄부터 1997년까지 자그마치 1년 동안 파업을 조직해 왔다. 이들은 정리해고와 일용직으로 전락하는 것에 대해 전면적으로 항거한 것이다. 이들은 관료화된 산별노조인 운수노련의 냉담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영국 전역에서 연대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기도 했다.

특히 1997년 8월 3일부터 미국에서는 팀스터(운수노동자) 노조 산하의 UPS(United Parcel Service) 노동자 185,000명이 전국 206개 지부에서 15일간 대대적인 파업을 벌여 온 세상의 이목을 끌었는데, 그 핵심은 증대하는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대한 전면 저항이었다.(주2) 한마디로 하청이나 시간제 등 비정규직의 확대에 저항하고 대신 정규직을 늘여 실질적인 고용창출과 노동조건 향상을 획득함으로써 보기 드문 '승리'로 끝이 났다.(주3) 요컨대 UPS파업은 미국을 중심으로 강화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유연화 공세를 정면으로 돌파했다고 평가되는 것이다. 물론 이번 파업은 미국과 캐나다의 운수노동자 140만명과 퇴직자 40만을 조직하고 있는 '국제팀스터조합(IBT)'이 주도한 것이긴 하나, 강력한 동력을 끌어낸 데는 1976년에 결성된 '팀스터민주노동자회(TDU)'가 큰 역할을 하였다. 이 조직은 부르조아 언론에 의해 무시되기도 했지만 지난 20년간 관료적 조합의 민주화와 아래로부터 솟아오르는 노동자의 힘과 권력을 위해 착실한 활동을 계속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이번 파업에서도 IBT 지도부와 유기적인 협동 속에서 대중적 단협투쟁을 조직적으로 전개하여 파업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반 조합원들이 20년 이상 기업의 독재 아래 신음해오다 과감하게 'No!'(절대 안돼!)라 외치며 결사적으로 떨쳐 일어날 수 있었던 점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일상적 노동조건의 저하나 단체교섭의 결렬로 인한 파업이 온 세상에서 널리 확산되고 있다. 예컨대 이태리에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금속노조가 1997년 1월 15일, 2년 단위의 임금협상이 결렬되자 산하 40개사 노조, 170만 조합원이 파업에 돌입했다. 남미의 콜롬비아에서도 80만 명의 공무원들이 2월 9일, 노조 대표와 정부 사이의 임금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전국적 파업을 벌였다. 인도 봄베이에서는 국영 봄베이 전력 및 운송사 노동자 5만 명이 1월 말에 임금 인상 등 노동조건 개선을 위하여 3일간의 파업에 돌입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프랑스 서부 모르비앙에선 의류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이 폭언과 성희롱을 일삼는 관리자에 저항하며 1월 9일부터 4주일 동안 파업을 벌여 결국에는 승리했다. 그 관리자는 아프리카의 모로코 공장에서 기술주임으로 일하면서 노동자들을 함부로 대하던 습관을 그대로 유지했던 것이다. 총 110명 중 77%인 85명의 여성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비록 직장을 잃을지라도 인간적 모욕을 참고 넘길 수는 없다'는 심정으로 단호히 파업을 결의했던 것이다. 마침내 기술 주임은 해고되었고, 파업 기간 동안의 임금도 지급하며 파업 노동자에게 절대로 불이익을 입히지 않는다는 협정도 체결되었다. 러시아에서도 교사들 6만 7천 명이 1997년 2월 17일부터 임금체불(무려 12억 5천만 달러에 이름)에 항의하는 무기한 파업을 시작했다. 이 파업 첫 날에는 6천 5백개의 직업학교·유치원·고등학교 교직원들 27만 명이 동참했다. 이 때문에 학교 행정은 물론 교육이 거의 마비되었다. 러시아에서는 1996년 연말에도 40만 명의 광부들이 몇 달 동안의 임금체불을 더 이상 참지 못해 전국적인 파업을 벌이기도 하였다. 미국에서도 아메리칸 에어라인 측이 소형 항공기 취항 노선에서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5년째 기본급을 동결함과 동시에 저임금 조종사를 고용하려고 하자 1997년 2월 16일 0시부터 파업에 돌입하려고 하였다. 이에 클린턴 대통령이 긴급중재권을 발동하여 60일간의 강제 냉각기를 갖도록 하여 파업의 불씨를 잠재우고자 '제 3자 개입'을 하였다. 조종사들은 지난 1993년 이후 기본급이 전혀 인상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4년간 11%씩 임금인상이 이뤄져야 하며, 고용 보장은 물론 주식 배분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필리핀에서도 1997년 2월 8일, 정부가 부가가치세 인상·석유값 인상 허용·경찰권 확대 등 반민주적 조치를 단행하자 수도는 물론 여러 지방 도시들에서 노동자·공무원·시민·학생·성직자들이 대규모 저항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도 1997년 5월부터 180만명 규모의 남아공노조협의회(COSATU) 주도로 주 40시간 노동제와 6개월 출산휴가(최소 4개월 유급)·아동노동 반대·미조직노동자들의 권익 향상 등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3. 저항 사례 2: 민영화나 복지 축소에 대한 저항


두 번째는 국영 기업을 민영화하거나 사회 복지 지출을 줄여 재정 적자를 줄이려고 하는 정부의 시도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이다. 특히 유럽에서는 유럽연합 건설과 단일통화 도입이라는 맥락에서 과감하게 재정 적자를 축소하려는 정책이 강요되고 있다. 이 와중에 민영화나 복지 감축의 새로운 공격이 가속화되어, 결국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자초하고 있다. 예컨대 이태리 정부가 국영 철도 사업 재편 계획을 발표하자 철도노조(FS)는 1997년 2월 9일, 24시간 파업에 돌입하여 모든 철도 교통을 마비시켰다. 이 파업은 2월 초에 중도좌파인 로마노 프로디 총리(1996년 4월 총선으로 탄생했다가 1997년 10월 초에 사임함)가 현 국영철도를 철도시설 담당 회사와 운송 서비스 회사로 이원화한다고 발표하자, 노동자들이 회사 분할을 통한 지배의 공고화와 인원 감축을 의도하는 것이라고 저항한 것이다. 이어 2월 11일과 12일에는 역장들까지 파업의 물결에 동참하고 나섰다. 이태리에서는 이미 1994년 11월에도 로마의 150만명 집회 등, 연금제도 개악을 통한 정부의 공격에 맞선 대대적인 노동자 저항이 3개월 동안 일어나 몇 차례에 걸친 파업과 전국적인 연대 행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 결과 연금제도의 개악을 담은 예산안을 억지로 관철시키려고 한 베를루스코니 정권을 퇴진시키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또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프랑스에서는 1995년 5월 대선에서 보수당 정권(주페 총리)이 출범하여 가을부터 벌써 공무원 임금동결과 공공요금 인상, 국철 합리화, 사회보장 대개악('주페 계획')이라는 노동자에 대한 전면 공격이 나오자, 1995년 10월부터 공무원 및 공공부문 노동자 400만명에 의한 24시간 총파업을 시작으로 12월 12일까지 여섯 차례의 동맹파업 등, 1968년 5월 대투쟁 이래 비교적 유례없던 노동자 대투쟁이 전개되기도 했다. 그리고 1997년 1월 24일에 약 3만 4천 명의 버스 및 지하철 운전자들이 55세 정년제 도입과 주 35시간 근무제 도입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으며, 30일에는 철도 노동자들이 정부의 국영철도 회사 분할 계획에 반대하는 파업을 벌여 고속철도인 TGV가 마비되기도 하였다. 또 2월 초에도 수만 명의 운수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여 파리를 제외한 남부의 마르세유, 뚤루즈, 북부의 릴 지역 등에서 교통마비를 초래했다.

그리고 그리스에서는 농민들이 정부의 농업 보조금 삭감과 연금 동결 등 긴축 정책에 저항하며, 지난 1997년 2월 13일, 남북을 연결하는 간선도로인 테살로니케 고속도로를 트랙터로 봉쇄하며 시위를 벌였다. 또한 그리스의 초, 중등 교사들도 월급 인상과 임용 확대를 요구하며 2월 초부터 2주일 이상의 파업을 벌였다.

한편 1990년대 이후 자본주의적 체제 재편이 가속화되고 있는 동구권의 체코에서도 정부가 국영 철도회사를 민영화하려 하자 프라하를 비롯한 주요 도시들의 철도 노동자들이 2월 초부터 파업에 들어 갔다. 민영화가 계획대로 진행되면 현 10만 명의 철도 노동자 중 1/3이 '정리해고'로 인한 실직 위기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파업에는 80%의 철도 노동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노조는 바츨라프 클라우스 총리에게 반노동자적 경영합리화를 추진하는 경영진을 해임시키고, 노동자의 고용 안정 보장을 요구하면서 노조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파업을 계속할 것이라 하였다.

스페인에서는 1997년 2월 6일부터 트럭 운전사들이 프랑스와 포르투갈의 국경 지대에서 파업에 돌입하여 스페인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이들은 60세 정년제의 도입과 유류값 인하를 요구하며 주요 도로망을 봉쇄했다. 이로 인해 비스케아, 갈리체 등 자동차 공장의 부품 조달에 차질이 빚어졌고, 조업 중단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나아가 유류는 물론, 생선, 농산물 등 각종 생필품 운송이 중단되어 파업의 여파는 단시간에 국제화되었다. 스페인에서는 이미 1994년 곤잘레스 사회노동당 정권이 노동자에 불리한 '노동개혁' 법안을 강행하자 자그마치 800만 노동자가 동맹파업으로 전면적인 저항을 하고 나선 바 있다.

독일에서도 1996년 들어 정부가 재정적자 감소를 위해 초긴축정책으로 사회보장 예산을 줄이려고 하자 고용 안정과 사회복지 수호를 요구하며 산별노조를 중심으로 파업을 벌여 교통, 의료, 교육 등 전 부문이 마비되기도 하였다. 특히 1996년 6월 15일에는 수도인 본에 약 35만 명의 노동자들이 집결하여 최근 들어 볼 수 없었던 대규모의 저항을 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노동자들은 74대의 특별 열차와 5,400대의 특별 버스, 그리고 배 3척을 타고 소속 모여 들었다. 어떤 사람은 분노의 머리띠를 두른 채 무려 70시간을 마라톤으로 달려 오기도 했다. 그 뒤 1997년 9월 7일에도 정부의 긴축안에 대한 저항은 6개 도시에서 일어나 25만명이 규탄대회를 열기도 하였다. 이 정책안은 9월 13일에 의회에서 가결되고 말았으나, 저항 운동 그 자체가 갖는 의미는 보수화되고 관료적인 독일 노동조합 상층부에 심각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중남미의 온두라스에서도 1997년 2월 12일, 정부가 심각한 재정적자와 외채를 줄이기 위해 자유시장 경제정책을 강행하려 하자, 6만 명 이상의 노조원들이 임금보다 집값이나 공공 요금, 음식비, 연료비가 훨씬 더 많이 올라 생활고에 허덕일 것이라며 총파업에 돌입했다.

그리고 지금 현재도 멕시코에서는 농민들이 반군을 조직하여 결사 항전을 하고 있다. 이미 1994년부터 미국 자본은 미국, 캐나다, 멕시코를 모두 하나의 단일시장으로 엮어내는 북미자유협정(NAFTA)을 출범시켰다. 이것은 모든 것을 경쟁력을 위해 희생시켜야 하는 체제이므로 특히 멕시코의 농촌 지역에 사는 원주민들(자파티스타)에게는 심대한 생존권적 도전이었다. 원주민들은 원래 15세기에 스페인의 침략으로 파괴된 마야문명, '마야 공동체 사회'의 후예들이다. 경제적 형편이 아주 열악하고 사회적으로도 인종 서열상 최하급으로 심하게 차별 받고 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지금도 원시공동체의 전통을 강고하게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를 기치로 하는 북미자유협정이 이들의 생존을 위협하자 이들은 전면적인 사투를 벌이고 있다. 자파티스타는 '신자유주의'의 거짓말("시장만능주의가 모두의 행복을 증진시킨다")에 대해 완강히 거부한다. 1994년 1월에 처음 봉기가 있은 직후에 멕시코 정부와 자파티스타 사이에는 협상까지 열렸으나, 현재는 결렬되어 중단 상태에 있다. 정부측이 자파티스타의 권리에 관해 이미 쌍방간에 합의한 사항들을 이행하지 않았고, 상호 대등하게 협상하려 하지 않았기에, 1996년 8월 29일 자파티스타측에서 협상의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현재 일단의 원주민 농민들은 치아파스 주의 산 크리스토발 읍과 기타 몇몇 읍들의 통제권을 장악했다. 그것도 대다수는 목총으로 무장을 하고서. 이들은 국가권력(위로부터의 권력)이 아니라 민중권력(아래로부터의 권력)의 창출을 꿈꾸고 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라는 위로부터의 거짓이 아닌 진정 아래로부터의 진실과 인간의 존엄성을 기치로 인간 해방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부사령관 마르코스는 말한다. 멕시코 동남부 지역의 정글 속에 모인 고작 수천 명의 "반란자 집단에 지나지 않는 자들"(정부의 시각)이 자본과 시장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직접적으로 정치 권력의 정당성에 제동을 걸며 저항하는 노동자와 시민들의 파업도 있다. 예컨대 불가리아에서는 집권 사회당의 퇴진 및 조기 총선을 요구하는 시위가 97년 1월 초부터 거세게 일어 났다. 수십만 명의 노동자와 시민 등 저항 세력은 수도인 소피아는 물론 전국 각지에서 정부 측의 책임성있는 총선 일정 제시가 이뤄질 때까지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 하였다. 필리핀에서도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보수화되는 정권에 반대하고 사회의 민주화를 외치며 싸움을 걸고 나왔다. 1997년 10월 현재, 경제가 파탄에 이르러 민중의 생활이 피폐해진 태국에서도 방콕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무능한 지배권력에 저항하고 있다.


4. 저항 사례 3: 편협한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에 대한 저항


세 번째는 갈수록 세계화되고 지구화되는 사회경제적 경향성 속에서도, 아니 바로 그러한 흐름의 한 귀결이 불행하게도 편협한 민족주의와 인종주의(racism)라는 형태로 점점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차별적 경향에 대한 성숙한 의식이 나타내는 저항의 물결이다. 편협한 민족주의나 인종주의의 물결은 지금 세계 각국에서 일고 있다. 미국의 로스 페로 대통령 후보나 캘리포니아 주의 이민법 개악안(그리고 최근에 미국 연방이민국은 오는 12월 19일부터 미국 거주 친척의 보증에 의한 이민허용 기준을 강화한다고 발표함), 호주 폴린 핸슨의 '백호주의', 이태리의 움베르또 보씨, 프랑스의 르팽, 오스트리아의 요르크 하이더, 독일의 공화당 등이 바로 그 대표적 예이다. 그러나 문제의 뿌리를 '외국인'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사회관계' 속에서 찾는 노동자와 지성인들은 이러한 극우 대중선동주의에 철퇴를 가하고 있다. 예컨대 프랑스에서는 1997년 2월 말에 새로운 이민법이 통과되어 외국인에 대한 경찰의 감시를 제도적으로 강화하였고, 외국인의 장기 체류 요건도 강화하는 등 외국인들에게 불리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유럽의회도 이 반이민법의 인종차별적 위험성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나타내었고, 특히 고등학생, 영화감독, 지식인들을 비롯한 시민들은 이 법안에 반대하여 경찰과 투석전을 벌이는 등 광범위한 저항을 조직하기도 했다. 특히 최종 개정안이 통과되기 이전인 2월 22일에는 미테랑 전 대통령의 부인을 비롯한 10만여 명의 시민들이 개정 이민법으로 인한 '불고지죄'의 가능성에 대해 분노하며, 전국 각 도시에서 시가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외국인에 대한 '불고지죄' 삽입은 저지되었으나, 경찰을 비롯한 당국의 통제와 감시권은 광범위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강화되었다. 또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여성 하원 의원인 폴린 핸슨이 '백호주의'를 내걸고 "이대로 가면 호주는 앞으로 아시아계 이민들에 석권당한다"며 '일민당'이라는 극우적 신당을 창당하였는데, 이에 대해 호주의 지식인 200명은 캔버라에서 반인종차별 집회를 갖고 극우파의 준동에 대해 거세게 항의했다.


5. 맺는말 : 지배 체제에 저항만 할 것인가, 새로운 대안 사회를 만들 것인가?


요컨대 이러한 범지구적 파업 물결은 삶의 질 저하와 민주주의의 후퇴에 대한 저항에서 나온 것이라 정리할 수 있다. 앞으로도 경제의 세계화와 지구화 과정에서 만일 이것이 '지구촌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을 고양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것이 된다면, 비록 시간 차는 있을지라도, 그리고 그 강도와 형태는 다소 다를지라도 지구촌의 모든 '일하는 사람들'에 의한 범지구적 저항은 계속될 것임에 틀림없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첫째, 노동자들은 자본과 정권에 의한 온갖 이데올로기적, 물리적, 정치경제적 공격에도 불구하고 결코 '순응'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저항'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둘째, 신자유주의, 신보수주의적 자본의 공격과 그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셋째, 노동자들의 '아래로부터의' 생동하는 자발적 저항이야말로 노동자들이 직접적으로 행사하는 민주적 권력이자, 지금까지의 '위로부터의' 국가 권력이 가지는 허구성을 폭로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는 점이다.

넷째,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지배 체제의 모순에 대한 저항만 '사후적으로' 계속한다고 해서 우리의 미래 전망이 열린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저항과 동시에 부단히 대안적 사회경제 체제와 대안적 삶의 방식에 대해 '사전적으로'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진정한 대안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일단 두 가지의 중요한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하는 사람들이 모든 의사결정의 실질적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는 결코 높은 사람들에 의해 '대변'될 수 없기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산의 목표, 내용, 속도, 방식, 시간, 그리고 분배와 소비의 방식 및 형태 등을 결정하고 이를 자기 책임 하에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노동의 인간화요, 민주화다.

둘째, 기존의 성장과 개발, 경쟁과 효율 지상주의 원리에 기초한 사회경제 패러다임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이러한 문제의식을 사회화하며,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고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원리에 입각한 삶의 방식을 하나씩 '실험'해 나가야 한다. 바로 그 속에 진정한 대안이 있다.

이러한 대안적 프로젝트를 '사회재구성'(society reconstruction) 프로젝트라고 부른다면, 이는 크게 세 가지 수준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각각 사회 일반 수준, 주거지 수준, 그리고 일터 수준에서의 '사회재구성 프로젝트'를 다음과 같이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1) 사회 일반 수준: 국민총생산(GNP), 경제성장, 생산성, 국제경쟁력 같은 지표에 갇힌 사고가 아닌, 풀뿌리 민주주의와 삶의 질을 중심으로 삼는 완전히 새로운 경제사회 패러다임을 추구해야 한다. 나라(세계) 전체의 건강한 발전 방향은 물론이요, 편협한 민족주의를 경계하면서도, 신토불이적 생활방식(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측면에서)을 연구하고 개발하고 실험의 형태로 하나씩 실천('성찰적 비판'과 함께)해 나가야 한다.


(2) 주거지 수준: 생활 스타일, 주거 방식의 건강한 재편, 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한 창의적인 구상들, 육아 문제는 물론, 교육(지식암기식 교육이 아닌 사회와 생태계를 올바로 인지하고 느끼고 삶의 지혜를 배우는 살아있는 교육) 문제를 공동체 속에서 올바로 해결하는 방안, 세대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교류 형태의 다양화 및 이웃간 교류의 활성화를 위한 창조적인 구상들을 조직적으로 해나간다.


(3) 일터 수준: 누가, 무엇을, 언제, 얼마나, 어떻게 만들고(원료 채취, 생산과정, 분배, 소비방식, 재생·폐기 등 경제의 총체적 과정), 분배하고 소비하는가 하는 문제를 일터 수준에서는 물론 삶터 운동과 조직적으로 연대하여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해결해 나가도록 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일터 수준의 사회재구성 참여와 주거지 수준의 사회재구성 참여가 사회 일반 수준에서의 참여 과정과 조화 내지 통일을 이루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모두가 각자 따로 놀게 된다면 그 결과는 별로 훌륭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대안적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모든 살아있는 움직임과 적극 연대하고 유기적으로 협동해야 할 것이다.





<미주>


1) 국제문제연구소의 <아침 세계소식>은 세계각국 노동자들의 동향에 대해 성실히 정리해주고 있다. 그리고 '국제적 리스트럭처링과 유럽·미국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서는 『노동경제동향』1996년 12월호 참조.

2) 이 UPS 파업에 관한 보다 자세한 소개는 『현장에서 미래를』 1997년 9월호 및 『민주노동과 대안』 1997년 9월호 참조. 참고로, UPS는 세계 200개 나라에서 영업을 하는 다국적기업으로, 전세계적으로 34만명 이상의 저임금 파트타임 노동자를 고용하여, 1996년에만도 10억달러의 이윤을 획득했다.

3) 미국노동총동맹(AFL-CIO)에 따르면 1993년 이래 UPS에 의해 창출된 46,000건의 직업 중에서 38,000개가 파트타임으로, 그리고 이들은 시간당 9달러 이하의 임금(정규직은 20달러)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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