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시사

세계 경제 정치를 위한 세계 윤리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1-03-12 23:29
조회
1382
세계 경제정치를 위한 세계 윤리
(A GLOBAL ETHIC FOR GLOBAL POLITICS AND ECONOMICS)

한스 큉 지음(옥스퍼드대학 1988 출판, 헬렌 오'슐리반 수녀 발췌- 메리놀회)


서문

미래에 대한 전망을 원하다

오늘날엔 그 누구도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가진 사람이 없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 아니면 먼 장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어떤 무력함 같은 것이 문화 저변에 감돌고 있으며, 공허감이 주는 압력이 점점 더 넓게 퍼지고 있다. 이것이 우리시대에 이름 있는 많은 자유로운 조언가들이 털어놓는 불평이라고 매리언 카운테스 단호프는 말한다. 이에 덧붙여 그녀는 알도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1922)와 죠지 오웰의 [ 1984년](1949)이 담고 있는 유토피아를 참조하여, 우리 문명인들이 찾는 길잡이가 될 계시를 줄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나 역시 그녀의 언급에 동감한다. 모든 방면에서 미래에 대한 실제적인 전망이 부족하다. 정치인들이나 경제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너무 자주 이 문제에 대하여 얼버무려 왔으며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언급하기를 기피해 왔다. 어쨌든 이 문제는, 이 시대의 고민인 국가의 생존과 세계 인류의 생존문제가 정치적인 안건으로 표출되면서 계속적으로 압력을 가해오고 있다.

이 시대가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경제 문화적으로 대 변화의 시점에 말려든 이상, 적어도 현재를 미래지향적 안목으로 볼 수 있으며, 인간의 정신적인 면 또 문화의 기반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방향제시가 필요하다. 과연 누가 이러한 방향제시를 해 줄 수 있을까? 내가 여기서 시도해보려는 것은 단지 근거 없는 고상한 탁상공론이나 정교하지만 실현 불가능한 그 어떤 계획(plans), 혹은 현실을 감안하지 않는 미래에 대한 허구적인 개념이나, 이론가들, 몽상가들, 자칭 세계 구원자들, 그리고 비판하기만을 좋아하는 설교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려는 것이 아니다. 과연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가? 간결하게 말해서: 이 글이 지향하는 것은 정치와 경제의 윤리의식을 되찾고 그것을 다시 재발견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도덕성에 관한 것이다(긍정적인 면에서). 그러나 반면에 이것은 도덕주의에 저항하는 것이다(부정적 의미의 도덕성) 즉 도덕주의화(moralism) 하며 도덕성에 과잉 가치를 부여하고, 너무 과한 것을 요구하는 것에 대한 저항 인 것이다. 그 이유는, 도덕주의자들은 도덕 단하나 만을 인간행위의 척도로 간주하여 상대적 독립성을 지닌 여러 다양한 형태의 인간의 삶의 면모를, 즉 정치, 경제, 법 같은 것을 다루는데 태만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들은 어떤 사회규정과 가치( 평화, 정의, 환경, 삶, 사랑)를 본질적인 것으로 정당화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이들을 절대화하는 경향이 있으며 어떤 특별한 기관이나 재단(정부, 당, 교회, 이해그룹)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 도덕주의는 한쪽만의 그리고 어떤 특별한 도덕적인 입장( 예를 들면, 성적 행동-Sexual behaviour-문제에 있어서)만을 주장하며 그 어떤 다른 견해와 소신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합리적인 대화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새 천년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사회적 방향제시의 위기를 맞으며, 이 글은 정치계와 경제계와의 대화에 있어 기본적인 방향제시(오리엔테이션)을 위한 길을 여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적인 전망과 그에 대한 전반적인 안목을 제시하며, 좀더 평화롭고 정의로우며 인간적인 세상을 위한 윤곽을 찾는 것을 추구하는, 이 시기에 요구되는 대화에 참여하는 것이다. 여기엔 아무런 중심적인 요인(principle)- 국가나 시장 또는 교회-그 어느 것도 모든 것을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규정하는-도 없다.. 나는 여기서 역사적인 경험들이 감안되고, 현 사회 현실에서 나타나는 것이 직시되며 동시에 (상대적으로) 이런 요인들을 더 좋은 세계질서를 추구하는 데로 승화시키는 미래를 위한 가시적인 윤곽을 선보이려는 것이다. 여기 제시되는 전망들은 단지 설교되거나 선포나 공고 될 것이 아니라 논쟁의 주제로 남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와 같은 전망(단순히 해답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은 여러 방면의 전문가들이나 권력자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그들이 전략을 발전시키고 필요한 노력들을 거쳐 저자의 능력과 기대를 훨씬 초월하는 어떤 것이 나올 지도 모른다.


세계 윤리의 기반을 찾아

규약이 없거나, 도덕적 이상(ideal)이 없거나, 최소한의 구속력 있는 가치나 내적 자세가 없는 사회는 생존할 수 없다는 논쟁이 증가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이 기본적 윤리의 가치들에 무조건적인 타당성을 부여하는 근본이 되는 것인가? 항간에서는 근대화는 단지 피할 수 없는 세속화를 가져올 뿐 아니라, 우리 삶 안에서 피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세속주의, 즉 모든 것이 승화되고 맹목적으로 규정되었던 것이 사라지고 대신 허무함과 영적 공허함으로 채워진다는 사실을 깨달아 가고 있다. 이것이 단지 개인적인 주관적 판단일까?

모든 세속주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교를 재발견하는 과정에 처해있다. 종교의 이름으로 계몽되고, 단지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쇄신되는 것은 우리시대의 최대의 과제인 것이다.
물론 당대의 문제들을 풀고 동시대의 사람들이 처한 어려운 문제들을 다룰 수 있는 종교적 해답 패턴은 없다. 경제적인 문제들을 종교적으로 이해할 만한 전문지식이나, 상식 등이 없다. 그러나 근대 이원론이 발휘 한 파괴적인 영향력보다는 종교가 사회기반의식을 통해 근본적인 가치를 재발견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실은 번영이나 진보, 소비 또는 권력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만약 이것들을 절대화시켜 최대의 가치로 만든다면 그들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할 가능성이 있다. 그 아무 것도 "세속적인" 것을 도덕적인 면에서 나쁘다고 봐서는 안되며 인간의 삶이라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 어떤 의미를 절대화, 일반화시키는 것에 저항하고,
* 가치의 규정된 범위에 따라서,
* 무조건적인 타당성을 담고 있는 일반규범과 확고한 기준들에 따라서

그러므로 정치와 종교의 분리가 가능한 반면에 경제와 종교는 서로 분리될 수 가 없으며; 서로에게 건설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 뜻은 경제적 정치적 통솔과 윤리적 종교적 지휘는 상호의존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모든 분석이론에 덧붙여,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현실를 단지 기술적인 지식이나 전문적인 통념 면에서뿐만 아니라 통합적인 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실에 대한 시각은 기본적인 질문인 삶의 의미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충분한 생각에서 나오는 윤리적 신념도 포함해야 한다.


세계화

세계화는 어떤 이들에겐 대단한 희망이며 또 어떤 이들에겐 공포가 되는 것이다. 사실 세계 경제는 오름세에 있다; 이것은 함께 커가며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중국이나 구 소련까지 개방되었다; 동남아시아의 경제는 급속하게 그 활약을 보여주며 그 위세는 중국에까지 퍼져 간다. 전세계적으로 거대한 새 시장이 형성되어 상품과 노동 그리고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세계적으로 경쟁력은 강화되고 산업화된 국가들에서는 실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세계 경제가 자본과 노동이 잘 돌아가고 국경 없이 넘나들고 그래서 정말 세계화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기업들간에, 지역 또는 중앙이 없는 아무런 제약 없는 경쟁 안에서 과연 누가 승리자가 되고 누가 패배자가 될 것인가?

OECD 에 의한 세계화의 정의는, 경제의 세계화는 서로 다른 나라의 시장과 생산 과정이 크게 서로를 의존하게 되는데 이것은 서비스와 상품의 거래와 자본과 기술의 역동성에 기초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경제적 세계화는 기술의 세계화를 초래하며 특히 정보기술의 세계화를 불러온다. 그러나 우리의 의문점은 지속적이고 급속도로 전개되는 경제적 세계화와 기술의 통합을 우리는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현상을 경제나 시장논리에서나, 무역협회의 관점이나 국가적인 편의에 의해서만 볼 것이 아니라 전체 세계사회의 관점과 윤리적 관점에서 비판할 필요가 있다.

1, 세계화는 피할 수 없다

세계화는 미국이나 일본 또는 어떤 검은 힘의 계략이 아니라 근대 유럽의 기술과 경제적인 발전에 따른 것이다. 16 세기에 새로운 무역의 길이 발견되면서 국제적인 노동 분할이 시작이 되었다. 18세기의 산업화는 이 노동의 분리를 강화 시켰다. 경제와 무역의 세계화는 19세기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은 국내에 이익을 주는 요소를 바탕으로 이루어졌으며 감시와 금융정책을 위한 규격화된 법칙인 금본위제를 바탕으로 한 외국 무역의 자유화를 통한 것이었다. 초고속으로 가속화된 증기선, 철도 등의 교통수단과 전보 통신 등은 세계화를 퍼지게 한 요인들이다. 제 2 차 세계대전으로 한번의 방해를 받은 이후로, 이제 세기의 바뀜 앞에서 거의 현기증 나게 할만큼의 높이에까지 도달했다.
사람들은 왜 오늘날 세계 경제의 구조 개혁을 말하고 있는가? 팩스, 위성송신, 세계자료 유통, 인터넷사이트와 전산망을 통한 세계증권교환, 정보통신비의 절감 등, 사람들과 상품은 국내 경제에서 세계적 경제로의 도약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경제의 세계화와 그리고 기술적인 세계화와 네트워크 확산의 결과이다. 시장과 생산, 자본과 기술은 점점 더 그 경계를 확장한다. 무역 뿐 아니라 기업들의 상품은 세계화가 되어가며 전례 없는 경쟁력은 인터넷을 통한 판매로 성취되었다. 이것은 시장의 전환, 강도 높은 경쟁력, 혼란을 일으키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개혁적인 대 변화를 되돌리거나 멈추게 한다는 것은 매우 무모한 일일 것이다. 미국에서의 새로운 소외주의, 멕시코의 무역자유주의 영역에 반대, 구 소련의 자본에 대한 혐오, 중국의 전체주의 당 이데올로기, 유럽에서의 사회주의에 대한 향수 등등은 그 나라들을 이 세계화 과정에 참여하지 않게 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국가든 이 세계화 반열에 서지 않으면 제 3세계적 경제력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세계화는 유럽과 북미에게는 새로운 도전이 아닐 수 없는데 이는 그들의 시장을 새로운 경쟁력으로부터 방어하려는 자세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계화는 산업 국가들 내부의 구조 변화를 해야 함도 내포한다. 동시에, 어느 나라의 경제에 있어서도 소유권을 보장할 수 없는 그러한 새로운 경제적 정치적인 힘의 분배가 이 지구상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산업 개발도상국에 있는 나라들도 산업화된 나라들과 같은 수준에 올라가기 위해 세계화를 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라 할 수 있는 한국, 홍콩, 타이완과 싱가포르와 중국이 그러한 나라들이다. 새 천년을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세 부분 모두 중요하다 할 수 있는 경제적 구심체들을 계산해 두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유럽 권과 북미와 동아시아이다. 아마도 남아시아(인도), 라틴 아메리카와 동유럽이 성장할 가능성도 있다. 아직 아프리카의 나라들은 대부분 세계화 밖에 남아 있을 것이다.

2. 세계화는 불안정한 것이다

산업화된 나라에서는 매일 기술 세계화의 열매들을 즐기고 있다: 상품, 서비스 그리고 자본 등. 아주 많은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내용이 팩스로 날라 오고 발전이라는 과정에서 아주 싸게 그래서 더 많은 것이 더 많은 대중들에게도 이용 가능하게 되었다. 모든 것을 빠르게 단축시키며 사람들은 지구를 하루 안에 돌 수가 있고, 위성들은 거의 매 시간 간격으로 우리 위를 돌고 있다.

산업화된 나라들과 더불어, 개발도상국들도 지금 아주 새로운 기회를 갖고 있다. 그들은 숙련된 노동력으로 아주 싼 상품들을 세계 사장에 공급하는 공급자가 되어 기존의 공급자들을 실직하게 만드는 도전을 하고 있다. 동남아는 자신들의 세계 수출량을 20년 안에 4 퍼센트에서 12퍼센트로 증가시켰고 중국은 1995년 한해에 11퍼센트를 높였다. 10년 전 만해도 개발도상국의 수입은 세계총생산액의 34퍼센트였는데 지금은 40%에 달한다.

국경 없는 세계경제는 한정된 국내적 경제면에서 보는 진보가 아니었는지? 형식상으로 국내적인 경제의 진보가 지역 경제면에서의 진보로 비춰진 것은 아닌가? 여러 국가들이 유전자 사업 등 큰 프로젝트가 왔을 때 다국적 참여와 사람들과 장비와 비용을 들여 더 효과적이고 더 비용을 절감하는 지식 시스템이 초국가적인 세계화가 아닌가? 국제적인 정보 네트워크의 세계화는 지구 어디에서나 동시에 뉴스나 영화를 볼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민주화 운동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이 아닌가? 어떤 면에서의 독재자들이 자국의 사람들을 바깥세상과 단절시키기는 것이 이젠 어려운 일이다. 세계화의 혁신적인 경제구조의 변화는 이제 더 이상 관망만 할 수는 없다. 단지 노동이나 생산 쪽 뿐만 아니라 과학과 미디어 분야도 국내적 기반에서 점점 떨어져 나아간다. 이 새로운 자유는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하는 반면에 경제, 사회, 그리고 환경의 새로운 정책을 세우는데 전반적인 어려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열성적인 세계화의 주창자들(경제학자나 기업인등)이라 해도 세계화가 미치는 좋은 결과들뿐만 아니라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미치는 나쁜 결과 즉 고용과 생활기준에 미칠 나뿐 결과들도 의식하고 있다. 여기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면:
저개발 국가들에게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지만, 이 나라들의 값싼 노동력 착취로 지속된 발전을 가져오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노동에 따라주어야 할 경제정책의 부재가 불균형을 지속시킬 수 있다.
산업화되고 정치적인 보호를 받는 유럽공동체의 농산물 수출 정책이 도움이 될 수 도 있지만 이는 개발 도상국의 자급자족하는 전통적인 형태의 농업을 파괴시킨다. 산업화된 나라에 의한 새로운 투자는 더 많은 소비를 가져오긴 했지만 그러나 아주 빈번하게 지역 생산체계를 망치곤 한다. 또한 새로운 세계의 금융을 다루는 사람들이 한 국가의 정부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듯하다. 통화 유통을 다루는 사람들이나, 무역하는 사람들 또 단기 이익을 내는 투자가들이 증권시장의 위험과 통화의 혼란의 책임을 갖고 있다. 국내 은행들은 국제통화시스템을 지도해야 함에도 불고하고 위의 투기꾼들의 조작으로 인해 본연의 역할을 하는데 여간 힘들지 않다.
* 소형화되는 회사들과 값싼 노동력을 얻을 수 있는 나라들로의 생산수단 유출은 세계화를 가속화 시켰으며 그 결과 산업화된 나라의 노동력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세계적인 면에서 실직자수를 본다면 몇 억만 명 중 몇 백만 명이 대부분 산업화된 나라에 있는데, 예를 들면, 독일에만 4백 만 명 이상이 된다.
* 세계적으로 활약을 많이 하는 기업들은 자국의 간섭을 피하고 있다. 그러므로 원래 유럽에 본거지를 둔 기업들은 자국에 점점 더 적은 세금을 내고, 다른 요인들이 함께 작용하여 사회안전 시스템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1995년 거대 기업인 지멘스는 독일에서 합법적으로 세금을 전혀 내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는 경제적 기술의 세계화는 거의 필수적으로 지구전체의 생태계의 문제들을 불러온다: 바다와 강의 오염증가, 오존층의 구멍으로 인한 대기오염과 기온의 상승,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제적 기술면의 세계화는 또한 마피아 같은 세계화된 조직 폭력단을 만들기도 한다.

경제, 기술, 정보와 생태계의 불균형적인 측면에서의 세계화를 보면, 미래에 대한 평가나 진단이 아주 다를 것이라는 사실이 그다지 놀랍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한마디로 세계화는 장단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볼 때 우리는 단지 그 중 어떤 것이 미래를 지배하게 될지를 모를 뿐이다. 그러므로 세 번째로 생각해 볼 문제는:

3. 세계화는 예측하기 어렵다

세계화는 단지 우리가 예상했던 효과뿐 아니라 예상하지 않았던 부작용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앞날을 길게 놓고 진단하면 할수록 그 위험성이 더해진다. 그래서 "카오스 이론(Chaos theory)"은 경제학자들이나 기상학자들에게 의미 있는 이론이 될 것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처음에는 눈에 뛰지 않는 시스템의 작은 교란이 종국에는 극적인 변화로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한 예로 1995년 1월의 멕시코 경제의 위기는 세계의 통화 정책 비판가들 빼고는 그 아무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이 위기는 세계 금융 시스템의 위기로 몰고 갔을 수 도 있었다. 그러나 극적으로 500억 달러에 달하는 국제 신용대출을 통하여 마지막 순간에 그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증권 시장를 통찰하는 사람들은 또다시 금융위기가 찾아 올 것이며 이전과 같이 쉽게 처리되지 않을 것임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화가 어떻게 30년 동안 경제 붐을 일으키고 그 예측에 의해 2025년에 가면 제 3 세계의 2백-3백만 명의 사람들이 빈곤층에서 중산층까지로 올라갈 수 있다고 보는가? 우리는 국제경제가 국내 경제와 통합하여 세계의 경제가 수평위로 떠오르리라는 낙관주의자들의 말을 믿고 있는가? 아니면 방대한 지역의 원자력 오염과 다른 생태계의 파괴가 세계경제 시스템을 파괴할 수 도 있을 것이라는 비관론자들을 믿는가? 그들은 세계화로 인한 많은 실업자 배출과 이미 벌어지고 있는 개인적, 사회적 불행들을 보면서 세계화가 정말 인류의 운명을 더 좋게 발전시킬 수 있을 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이와 같이 원초적으로 불투명한 면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우리가 이 세계화의 과정 전체를 그냥 그대로 놔두어서는 안되다는 것이다:

4. 세계화는 조정될 수 있다

세계화는 확연히 무기력에 빠진 어떤 사람 앞에 다가갈 수 있는 것처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해 엄밀히 평가하는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규제도구로서 실패할 수도 있기 때문에 질서를 동반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 할 것이다.


세계시장경제는 세계 윤리가 필요하다.

1989년 유럽의 공산체제의 붕괴로, 경제적 기술적인 세계화는 급속히 온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 세계화는 세계적인 정책이나 세계화윤리가 없기 때문에 어떤 제한도 받지 않으려는 경향이 짙어져 갔다. 그러나 조금씩 국제적인 질서 체제가 그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발전되고 있다. 이와 같은 시스템에서는, 규제를 없애고 개인화 하는 것이 모든 문제의 키라고 보는 듯 하다. 그러나 이 체제에서 고려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현 세대 뿐만 아니라 앞으로 올 세대가 겪을 사회와 환경의 손실(희생)인 것이다. 이와 같은 경향은 이론상의 모순뿐만 아니라 실천적으로도 역행하는 것이다.

A. 인류에게 기여하는 시장 경제

고대유럽의 경제 사회학자들(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과 또한 근대 경제학 과 도덕철학의 창시자인 (아담 스미스)는 경제와 정치는 사회성과 윤리성 전반을 중심으로 삼고 있다고 말한다. 핵심이 되는 정치적 경제적 질문은, 무엇이 인간 사회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가? 이다. 분명한 것은, 경제가 모든 것을 좌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뜻이 시장 경제에서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가?

시장 경제는 그 자체를 목표로 두는 것이 아니다. 시장경제는 인간의 필수 요구를 채우는 도구이지 시장 논리에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세계시장 또한 인간을 위한 것이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적인 입장에서 볼 때, 시장경제가 민주주의의 보완적인 것 일뿐 민주주의를 대행하거나 민주주의의 새 형태는 아니다. 이것을 사회학적으로 본 다면, 경제와 시장은 다른 하부조직들(법, 정치, 과학, 문화, 종교)처럼 단지 하나의 보조 시스템 일 뿐이다. 세계화가 되어가면서 시장이 정치를 대행 또는 새 형태로 만드는 위험이 그 어느 때 보다 높다. 실제로 시장경제가 절대적 중심 시스템으로 급히 올라가고 있으며 그리하여 법, 정치과학, 문화와 종교 등이 경제의 도구들로 분석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와 같은 보조 체제들은 가내(domestic) 적이 되어가고 그 영향력을 잃게 되어 무력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절대 시장경제는 끔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데:
--법, 법은 전 인간 존엄성, 인권이나 인간의 의무에 바탕을 두는 대신 경제적 요소와 몇몇 그룹의 기호에 의해서 형성되고 조작될 것이다.
--정치는 시장에 항복하여 압력을 가하는 그룹에 로비를 하고 세계전망이 국내의 통화시스템을 뒤흔들게 될 것이다.
--과학은 경제적 이익에 편승하게 되고 가장 객관적인 논리를 제공하는 기능을 상실할 것이다.
-- 문화는 시장에 기여하는 것으로 타락하고 예술은 상업적으로 하락할 것이다.
* 윤리는 힘과 재산에 희생되고 "성공을 불러오는 것" 이나 "향락을 가져오는 것" 으로 대체될 것이다.
*종교는 슈퍼마켓처럼 상품 대신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정도를 벗어난 종교, 사이비종교로, 마치 칵테일처럼 합성되고 혼합될 것이다.

B. 경제와 정치 이전에 먼저 강조되어야 할 윤리

기본 적으로 경제와 정치는 온 세상 인간의 삶을 둘러싼 한 면으로써 윤리적이어야 하고 인간을 위해 인간적 기준으로 봐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경제나 정치가 우선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며, 인간 존엄성이 그 어느 면에서나 우선 되어야 한다는데 있어서 논박의 여지가 없다. 기본적인 인권과 책임성(윤리)은 경제면에서도 고려되어야만 한다.

C. 세계 경제가 해야 할 일

세계화는 사회나 환경 그리고 인류에게 적절해야 하고 그 경쟁력과 형태를 윤리적으로 정립할 수 있는 세계적 틀을 요구한다. 그렇다고 세계적으로 계획된 경제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윤리적으로 정립된 세계적 틀(framework)의 요소는:

1. 국제적 경쟁력을 지닌 질서를 창조해야 한다. 자유경쟁은 중, 소기업을 산업에서 배제시키는 전략이며, 전세계적으로 많은 개발 도상국들을 소외시키는 문제점을 야기 시키는 큰 위험이 뒤따른다. 만약 경쟁력이 세계적으로 그 기능을 하려면 정치(책)적으로 규정된 법이나 경쟁의 질서로 보호받아야 한다.
2. 국제금융의 흐름과 경제의 실질적 목적인 성장과 고용과의 강한 연결이 필요하다. 돈은 상품이나 서비스로 묶여 그 중립적인 기능을 잃고 독립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금전과 자본의 완전한 자유적 흐름은 세계의 시장에서 지역의 적정 가격를 왜곡시키고 세계 금융 체제를 불안정하게 하며 이율과 환율을 자체적으로 변동시킨다.
3. 하나의 보호 장치로 사회의 기본적 안전보장이 필요. 이에 관해서는, 이미 산업화된 나라에서 보듯이 세계화된 경제와 자유사장의 힘이 인간의 기본권과 사회안정보장을 유린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래도 산업화된 나라에서는, 기본 사회안정보호 장치가 사회의 평안을 가능하게 했으며 필수적인 대중의 힘을 지지하는 장치가 되어 주었다.
4. 여러 나라간의 경제적 사회적으로 극적인 큰 차이점들을 좁혀 나아가야 한다. 사회적인 비대칭은 대부분의 개발 도상국들의 산업개발로 인하여 단지 개인간뿐 아니라 국가간 지역간에 눈에 뛰게 드러나게 되었다.
5. 세계화에 의해 계속 커 가고 있는 사회와 환경 부문의 손상을 꼭 지적해야 한다. 당대의 문제점에만 집중하고 모든 자원을 물질적인 성장만을 위한 것으로 소모하는 것은 인간의 다른 어떤 면도 보지 못하는 것이며 미래의 안전을 저당 잡히는 것과 같다.
6. 재생 불가능한 자원을 남용 할 수 없게 하는 어떤 국제적 제재 법이 필요하다.
현재의 수요는 미래의 그 어떤 부족현상과 필요성을 전혀 감안하지 않고 있다. 이 시대의 자원의 부족현상과 부채는 그대로 새로운 세대에게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

역사를 거슬려 올라가 보면, 산업국가에서의 영향력 있는 경제적 규제는 1929년 세계경제의 붕괴와 2 차 세계대전 이후에 도출 된 것을 볼 수 있다. 그 당시와 똑 같은 경제규제들이 세계화 과정에서는 국가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 가면서 위기에 처 해있다. 우리는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이해 할만한 세계경제 질서를 찾기도 전에 또 다른 세계경제 위기를 초래할 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전문 경제학자가 아니더라도, 세계화된 금융시장에서 매일 수천 억 불이 거래되는 것을 본다면, 새 천년으로 바뀌는 이 시점에서도 1920년대의 급 상승국면에서 가격과 비정상적인 증권시장의 거래량을 보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사람들이 인식을 하고 세계적 시장 규제를 원하게 했던 1987년도의 증권가의 몰락 보다 더할 것이다.

내가 1990년에 '세계적 책임'에 관한 책을 썼을 땐 세계윤리에 대해 참고할 만한 자료가 그 어떤 기관에도 없었다. 6 년이 지난 다음에서야 아주 중요한 4개의 국제적 자료가 나왔다. 이들 자료는 인권관련 선언과 인간의 책임과 세계윤리에 대해 거론했을 뿐만 아니라 인권 면을 확실하게 못 박아 놓으려한 자료들이 생겼다. 물론 국제 금융 질서가 효과적이고 장기적이 되려면 세계경제 질서를 이해할 수 있을 만한 틀 안에서 놓고 볼 수 있어야 한다. 도덕은 정치적인 행위면 에서 보면 미약한 것으로 보여 질 것이다. 특별한 이익을 추구하고 집단 이기주의적인 면에서의 국가들을 보면서, 윤리적 의식 없이 세계경제 질서를 향한 정치적 행위는 이루어지기가 힘들 것이다.


인간의 권리와 의무: 세계 행정에 관한 국제위원회

유엔에서 만든 세계행정관한 집행 위원회는 '세계이웃'과 '새로운 세계 질서'라는 개념에 대해 보고하였다. 세계화라는 현상을 이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세계 행정이라는 말은 세계정권을 의미하는 것처럼 오해의 여지가 많다. 이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가치를 부여할 만한 것도 아니다. 이것은 또한 세계 시민권에서나 민주주의 의미에도 부합치 않다. 이 보고서는: "세계화에서 다루는 것은, 세계화는 모든 사람들의 이익에 부흥하며 인간 가치를 바탕으로 하고 세계적인 다양성의 현실을 인정하는 균형을 추구하도록 하는 도전이다." 어떻게 세계 정치 질서의 윤리적인 면이 형성되는가를 살펴보면, 위에서 말한 그 선언문은 황금률을 중심 원리로 하고 있다. "사람들은 본인들이 남에게서 받고싶은 대우를 남들에게 베풀어야 한다". 이 근본에서 생명에 대한 존엄성, 자유, 정의, 상호 존중, 베풀 수 있는 준비성과 순수성(인간 본질성) 등이 발전되었다." 이 모든 가치들은 어떤 면에선 모든 종교의 교리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라 할 것이다. 자기가 받고 싶은 대로 남들을 대하라. 이 보고서는 또한 이 가치가 인간의 권리와 의무가 포함된 세계 시민 윤리로 표명되도록 요구한다. 이 윤리관에 따르면, 모든 시민들 즉 개인이나 여러 사적인 단체들과 연합단체들 모두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하는데 협력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받아 드려야 하는 것이다. 이 윤리는 국제적 규정이라는 직물을 짜는데 합쳐져야 한다. 이와 같은 세계적 윤리관은 비인간적으로 행하는 일들과 금권주의와 시장, 경쟁적이고 자신들만을 섬길 줄 아는 개인이나 집단을 인간적이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진정 이 세계적인 윤리 없이는 점점 더 커 가는 세계 시민 사회는 중심을 잡을 수 없게되고 통제가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모든 인간은 인간으로서 권리가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반복하여 강조해도 모자랄 것이다. 인권이라는 의미에는 생명에 대한 안전성의 권리, 공정한 대우, 삶을 꾸려갈 돈을 벌 수 있는 동등한 기회와 그들 자신의 복지를 마련 할 수 있는 권리, 각자의 다른 면( 공정한 의미에서)을 정의하고 보존할 권리, 정책의 모든 부분에 참여할 권리, 부정의(Injustice) 에 대하여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자유롭고 정당한 청원의 권리, 정보를 공유할 수 있고 세계적 공통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권리 등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전 대부분의 국제 선언문에는 확실하게 나타나는 인간의 의무가 반드시 인간의 권리와 연관되었다는 사실을 거의 포함시킨 적이 없다. 동시에 모든 사람들은 의무를 나누는데:
* 보편적 이익에 공헌
-- 그들의 행위가 남의 안전과 복지에 미치는 영향;
-- 평등 추구, 남녀 성에 관한 평등성 추구 포함;
-- 지속적인 발전과 인간 문화와 지적인 유산을 보존함으로써 앞으로 올 세대를 보호;
-- 정치에 열성적인 참여 그리고
-- 부정을 척결하는 일에 투신 등.

더군다나, 유엔의 시민 윤리 보고서가 아주 구체적인 희망을 갖고 끝맺는데, 즉, 언제나 이 원리들이 국제적인 문서들의 구성원리가 되는 것, 즉 시민사회의 세계적 헌장이 되어 세계이웃을 다루는 기본 규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기대한다..


문화와 발전을 위한 세계 위원회: 우리의 창의적인 다양성

문화와 발전을 위한 세계 위원회는 유엔과 유네스코와 함께 우리의 창의적인 다양성이란 제목으로 보고서를 펴냈다. 이 문서의 새로운 면은 인간이 보편적으로 지닌 것이 무엇인가를 강조한 장(chapter)이다: '새로운 세계 윤리관', '인간의 윤리', '세계 윤리'. 이와 관련된 중요한 질문은:

1. 왜 세계(global) 윤리인가? 왜냐하면 협력은 모두가 공통적으로 나누는 헌신으로써 함께 하고 같은 동기로 엮어져 문화와 취향이 다른 사람들 사이를 좁히고 그들의 충돌을 줄이고 제한시킬 것이다. 오늘날 세계윤리를 모색하는 것에 하나의 전체적인 문화가 있다. 이 모색은 이미 그 자체로서 휼륭한 문화적 행위인 것이다. 다음과 같은 질문들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떤 면에서 서로에게 또 인류에게 관계되어 있는가? 우리의 의미는 무엇인가? 등은 문화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2. 무엇이 이 세계윤리관의 근원인가? 이 세계윤리의 기본을 문화적인 근원, 통찰력, 감정의 경험들, 역사에 대한 기억과 사람들의 영적인 오리엔테이션으로부터 도출해야 한다. 서로 다는 문화에도 불구하고 각 문화전통에는 공통적인 주제들이 있는데 이것이 세계 윤리에 주는 영감인 것이다. 이 근원에서 첫 번째는 중요한 문화 전통들이라 할 수 있는데, 특별히 인간의 나약성에 대한 생각과 고통을 완화하기 위하여 윤리의식을 갖는 것, 각 개인에게 보안을 제공하려는 것 등. 이 보고서는 또한 유교나, 도가, 힌두교, 불교, 유대교, 조로아스터교,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등 다양한 전통에서 보여준 황금률을 말하며, 각기 다른 신앙의 표현을 내재한 것이다. 이것인 모든 인간의 평등한 도덕가치를 가르치는 것이다.

거대한 문화전통에서 따온 요소들과 더불어, 이 위원회는 또한 "세계 시민 문화"와 새 세계 윤리에 포함시켜야 하는 그 비슷한 것으로부터 도출한 요소들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이것은 다음에 오는 다섯 가지 윤리 기둥을 고려한 것이다.

1. 인간의 권리와 의무
2.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요소들
3. 소수에 대한 보호
4. 평화적인 문제해결과 정당한 협상
5. 모든 세대에 대한 동등한 대우(세대간의 평등성)

지속적인 발전과 세계윤리관

지속적인(질적) 발전이란 자연적인 근본이 보존되어 오늘날 세대의 생활 환경이 또한 앞으로 올 세대에게도 선물이 되는 것이다. 지속적이란 뜻은 경제적 또는 환경의 개념이 아니며, 더구나 과학적인 개념도 아니며 윤리적인 요구인 것이다. 지속적인 발전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윤리적인 결단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특별히 어떤 환경 요소나 삶의 환경을 보전시킬 지를 선택하는 것. 이 선택은 전적으로 경제적인 면이나 환경적인 것으로 편중될 수 없다. 단지 문화와 윤리 그리고 정치의 자발적인 이해 문제인 것이다.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윤리적 기반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핵심이 되는 윤리에 관한 질문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제기되고 있다; 인간으로서 이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또 우리 자신이나 사회에 인간미를 부여하는 것인가?
다음에 개념들은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윤리의 기본을 표명하려 한 것들이다.
생명중심적인 개념에서는 식물계 뿐 아니라 동물과 생태계 조직과 생물적 종류 모두에게 그 존재의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 개념은 어떤 구체적인 기준을 담지 않은 면에서 좀 더 실용적인 결단을 내리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간 중심적인 개념이 전통적인 것으로 동물들의 고통과 환경을 제외시킨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적인 통합적 개념으로 서양의 기독교사상에서 보다는 인도나 중국의 영성(사상)에서 강조된 것처럼 우주와 하나로 통합하는 인간사상이 필요하다. 자연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에 편입하는 협력관계가 필요하다.

세계경제, 세계정치와 세계환경 문제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윤리기준과 목표는 환경과 더불어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인간은 지금껏 해온 형식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최상의 인간 사회가 될 수 있도록 그리고 인간 가치에 부응되고 환경으로써 제 기능을 다하는 한마디로 살만한 환경을 만드는데 여러 방면으로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

세계윤리는 구체적인 태도와 생활방식이 요구될 수도 있는데: 자아통제, 평화 정착 노력, 공정한 분배, 생명 우선 등. 그러나 이와 같은 태도와 생활방식 문제는 도덕적인 동기에 대한 질문을 드러낸다. 이 질문은 앞으로 올 세대와 자연을 위한 장기적인 면에서의 의무와 관련된 것이다. 동기는 무엇보다 의식의 변화를 미리 감안하는 것이다. 우선 중요한 것은 연대적으로 본인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의식을 발전시키는 것이며 만약 모든 인류에 대해 느끼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어떤 문화나, 국가 아니면 지역 단체에 대한 세대를 초월한 공동체 의식을 느끼는 것이다. 이를 통한 의식의 변화는 미래를 준비하는데 있어 자신의 의무를 인지하고 또한 감사의 태도를 갖게되는, 양 측면 모두를 인정하는 태도를 갖도록 할 것이다.
신학은 사람들에게 세계윤리와 그를 실행하며 살아 갈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는데 특별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 이글은 한스 큉의 저서 <세계 경제정치를 위한 세계 윤리>의 발췌문을
사회책임투자운동의 장영옥 사무차장이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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