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

[세상읽기] 노동자 고통분담론의 이율배반 / 장지연 (한겨레, 4/12) (2006/06/07)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07 01:34
조회
1167
**[세상읽기] 노동자 고통분담론의 이율배반 / 장지연 (한겨레, 4/12)

‘노동자는 이제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각각 다른 처지인 사람들에게 이 말은 어떻게 이해될까?
약자란 누구누구보다 약하다는 상대적인 개념이며, 강자를 전제하는 관계적인 개념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말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를 비정규직이나 영세기업 노동자와 구분하는 것이며, 여기서 노동자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를 지칭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차라리 진정 노동자이고 싶다는 영세사업자와 회사 밖에서까지 황제로 대접받는 재벌기업의 회장을 자본가라는 하나의 범주에 넣기 힘든 정도는 아니지만, 노동자 집단도 그 안에 정말 열악한 형편에 있는 사람과 그보다 나은 사람이 섞여 있는 것은 당연하다.
좀더 형편이 나은 처지인 대기업 노동자는 비정규직이나 영세기업 노동자와 연대해야 하며, 노조는 이들을 위해서 뭔가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 그러나 여기서 비정규직을 생각해서 정규직이 양보하라거나 고통분담 차원에서 임금을 동결하라는 주장으로 곧바로 넘어가기에는 개운치 않은 점들이 있다.

우선, 고통은 노동자들끼리만 분담해야 하느냐 하는 점이다. 현대자동차가 도요타를 넘어서려면 스스로 임금동결을 결의하는 도요타 노동자들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기 전에 먼저 한번 살펴볼 일이다. 그 회사는 작년에 이사들의 보수는 37% 인상해 놓고 올해는 회사 형편이 어려우니 다같이 임금을 동결하자고 하던가? 경영권을 대물림하려고 몇 천억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하는 불투명한 경영을 하던가? 불법파견 쓰고 부당 노동행위를 하던가?

임금을 올리라고 파업을 해도 괜찮을 정도로 경제형편이 좋아질 날이 도대체 오기는 올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언론에서는 저번에는 유가로 이번에는 환율로 기업이 어려우니 노동자들이 참아주어야 한다고 하고, 어떤 시민단체는 대기업 노조가 각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니 이제 사용자 단체가 당당하게 나선다. 올해 임금은 2.6% 정도만 인상하고 특히 대기업은 임금을 동결하라고. 지난해 한 해 10대 그룹 이사의 보수가 평균 16.7% 오른 것은 덮어두고 고통의 ‘분담’은 누가 누구랑 하는가? 노동자에 비하면 절대 강자인 사용자가 고통분담을 이야기하려면 그만한 명분과 도덕성을 축적해 두어야 했다.

고통분담 논리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또하나의 이율배반은 비정규직의 채용과 처우는 사용자의 고유권한이므로 노동조합과 이 문제를 논의할 수 없다는 사용자 쪽의 태도다. 얼마 전 전국 3000여 사업장에 배포된 경총의 단협지침에는 단체협약상 조합원의 범위에 비정규직을 배제하는 규정을 둘 것과 비정규직이나 하도급업체의 임금인상과 조합원의 임금을 연동시키는 노조의 요구는 거부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정규직 노동조합의 이기주의 때문에 비정규직을 쓸 수밖에 없고 전체 파이가 일정하기 때문에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기 어렵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알아서 비정규직에게 나누어줄 테니 너희는 너희 몫의 일부를 내놓고 참견은 하지 말라는 이야기인가? 정규직이 양보해야 한다는 요구와 비정규직 처우에서는 노조와 논의할 수 없다는 주장을 나란히 내놓는 것이 우리나라 대표적인 사용자 단체의 후안무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최근에 어떤 사용자 대표가 “세금 많이 내는 기업이 애국자 아닌가?”라고 말한 것이 신문기사 제목으로 뽑힌 것을 보았다. 그 질문 아닌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아니다!” 번 만큼 세금을 내는 것은 누구나 하는 기본 중에 기본일 뿐이다. 그것으로는 한참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