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

반세계화 진영 ‘의미있는 승리’ (한겨레, 4/12) (2006/06/07)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07 01:35
조회
1098
**반세계화 진영 ‘의미있는 승리’ (한겨레, 4/12)
[2006프랑스] ① 프랑스의 봄은 거리에서 시작됐다.

프랑스 정부가 고용의 유연성을 내걸고 추진했던 최초고용계약제가 프랑스 전역에서 10주간에 걸쳐 계속된 학생과 노조의 시위에 굴복해 결국 철회됐다. 이를 두고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한 중요한 승리라고 평가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프랑스 사회가 변화를 거부했다는 상반된 비판도 나온다. 고용불안이라는 절박한 현실문제에서 비롯된 젊은이들의 시위는 좌파나 우파 모두에게 새로운 해법을 요구하는 것도 사실이다. 현지 취재를 통해 프랑스 사회의 고민과 모색을 살펴본다.

2006년 프랑스의 봄은 거리에서 시작됐다. 겨울 외투를 벗어던지기엔 아직 쌀쌀한 날씨였지만 거리의 열기는 어느 해 봄보다 뜨거웠다.

전국 200여 도시에서 300여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최초고용계약제(CPE) 철회 촉구 시위는 고용시장 유연화를 겨냥한 우파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급제동을 걸었다. 신자유주의 공세에 속수무책이던 반세계화 진영에겐 오랜만에 거둔, 작지만 의미있는 승리로 기록될 전망이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도미니크 드빌팽 총리의 10일 ‘퇴각선언’에 학생과 노동계는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선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일부 학생과 노조는 11일에도 ‘확실한 대체입법 마련’과 ‘비슷한 고용불안 계약의 철회’를 요구하며 예정대로 거리시위에 나섰고, 당분간 대학 점거도 계속하기로 했다. 프랑스 교육부에서 확인한바, 이날 현재 전국 84개 국립대학 가운데 32개교에서 점거가 계속되고 있고, 이 가운데 세 학교는 완전 봉쇄된 상태다.

이번 프랑스 시위는 지난해 5월 유럽연합 헌법 거부와 지난해 11월 파리 교외 소요사태의 연장선 위에 있다. 프랑스 사회는 시라크의 11년 통치로 대표되는 우경화에 대한 ‘불만의 계절’에 들어섰다.

이번 시위는 프랑스적 시위문화의 전설인 68운동의 낭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주요 도로, 철도역, 공항, 관청 등에 대한 학생들의 기습점거 시위와 ‘부수는 자들’(카쇠르)로 불리는 소외지역 청소년들이 보여준 산발적인 폭력시위양상은 예전과는 달라진 점이다. 특히 ‘카쇠르’의 등장은 지난해 방화소요사태의 후유증이다. 축제 같고 소풍놀이 같은 시위행태에 폭력적 저항이 가미되기 시작했다.

4일에 이은 11일의 대규모 시위는 ‘최초고용계약제’에 대한 사실상의 장례식이었다. ‘축제와 저항’의 새로운 시위문화가 평화행진의 출발점인 파리 레퓌블리크광장에서 바스티유광장을 거쳐 이탈리광장에 이르는 도로를 가득 채웠다. 프랑스 사상가들과 작가들의 요람인 소르본대학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물대포와 함께 시위진압 장비로 완전 무장한 ‘로보캅’ 같은 경찰들의 ‘그린존’으로 변했지만, 시위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경찰의 강제진압은 오히려 자신들의 미래를 불안해하는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을 더욱 거리로 몰았다. 분열과 반목 속에 패배주의에 빠져 있던 노조 세력을 한데 모으는 구실도 했다.

68운동의 진원지인 낭테르의 제10대학 학생들의 출정식이 열린 A동 대형강의실에는 ‘꿈은 현실이다’라는 68운동 당시의 구호가 내걸렸다. 하지만 이번 시위와 68운동의 차이는 분명했다. 더 나은 삶, 미래를 위한 싸움이라는 점에서는 똑같은 사회운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학생들의 요구는 좀더 현실적이다. 68운동 세대가 꿈을 가졌다면, 현재의 프랑스 학생들은 두려움을 갖고 있다. 대학생들은 최초고용계약제가 고용불안을 제도화하고 자신들을 희생시키는 것이라고 간주했다.

현대문학을 전공하는 10대학 3학년생 마틸드 에상베르(23)는 “프랑스 학생 10만여명이 최저생활비로 생활하고 있고, 나 자신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하루 2시간씩 일주일에 12시간을 일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부를 마치고 교사나 교수가 되는 게 꿈이지만, 미래에 대해선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불안하다. “우리는 혁명을 원하는 게 아니다. 직업을 원한다. 베이비부머들은 직업을 선택해 평생 직업을 가졌다.”

1968년 당시 6%에 불과했던 대학졸업자 실업률이 현재는 29%나 된다. 청년실업이 23%이고, 소외지역에선 그 갑절에 이른다. 대학졸업장은 취업에 별 도움이 안 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젊은이들이 부모 세대가 젊었을 때보다 더 적은 액수를 벌고 있다. 할 수 없이 부모에게 의지하며 동거하는 비율도 크게 늘었다.(표)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에게 이번 시위는 일종의 세대 간 싸움이며, 나이가 많은 정치인들에 대한 도전인 것이다. “그들은 우리들과 같은 세상에서 살지 않는다. 어떻게 그들이 우리의 의지에 반해 우리의 미래를 설계해줄 수 있냐”고 학생들은 반문한다.

최초고용계약제 철회는 노동조합과 전 사회세력이 연대한 결과다. 1995년 알랭 쥐페 총리의 연금개혁(쥐페법안)을 일치단결해 패퇴시킨 이후 처음으로 성향이 다른 프랑스의 12개 노조가 최초고용계약제 반대 깃발 아래 모였다. 2003년 현 정부의 퇴직연금제 개악에 대한 대규모 투쟁이 노동총동맹(CGT) 등 일부 노조의 전열 이탈로 패배한 것과 대조된다. 이런 점에서 지난 10일 시라크 대통령의 ‘항복 선언’은 지난 20여년간 신자유주의 공세에 수세로 일관해온 반대운동의 값진 승리다.

‘실업자 및 불안정 취업자 국민운동’(MNCP)의 로베르 크리미유(63) 전 회장은 “노조를 비롯한 임금노동자, 대학생, 고등학생 그리고 실업자 연합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유례없는 사회적 연대가 얻어낸 결과이며 중요한 승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파 정부의 후퇴 이후 앞으로의 운동방향을 놓고 분열하는 양상도 보인다. 최초고용계약제와 비슷한 형태의 제도가 다시 나오더라도 이번과 같은 규모와 열기를 지닌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