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

나가사키의 종-II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7-12-26 21:37
조회
1440
3.원자폭탄

치모토 씨는 카와타이라 타케에서 풀을 베고 있었다. 여기에서는 우라카미가 남서 3 킬로미터의 꽤 경사진 아래로 내려다 보였다. 우라카미의 아름다운 마을과 언덕 위에는 한 여름의 태양이 천연덕스럽게 빛나고 있다. 치모토 씨는 돌연 묘한 작은 폭음이 들리는 듯한 느낌을
느꼈다. 낫을 든 채 허리를 펴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대체로 맑은데 똑바로 머리 위에는 손바닥 모양을 한 커다란 구름이 하나 떠 있다. 폭음은 그 구름 위에서 났다. 잠시 보고 있으니 무엇인가가 나타났다. B 29다. 손바닥 형의 구름의 가운데 손가락에 해당하는 곳의 돌출 부분에서 반짝 은색으로 빛나는 작은 비행기 그림자. 고도 팔천 미터 정도나 될까 하고 생각하며 보고 있으니, 앗! 떨어졌다. 하나의 검은, 가늘고 긴 물체. 폭탄, 폭탄, 치모토 씨는 그대로 그곳에 넙죽 엎드렸다. 5초, 10초, 20초, 1분, 숨을 죽이고 있는 동안에, 시간은 상당히 흘렀다.
번쩍. 갑자기 빛이 났다. 굉장한 밝기였다. 소리는 전혀 없다. 치모토 씨는 조심조심 고개를 들었다. 당했다. 우라카미다. 우라카미 성당 상공 근처에... 뒤이어 지금까지 없었던 커다란 흰 연기 덩어리가 떠오르고 있고, 그것이 무럭무럭 팽창한다. 그것들 가운데에서도 마치 치모토 씨의 간을 콩 알 만하게 만든 것은 흰 연기 아래의 우라카미의 언덕과 산과 평원 이쪽을 향해 맹렬한 기세로 밀어 붙여오는 하나의 물결이었던 것이다. 언덕 위의 집들이라고도 할 수 없고, 산과 들판의 나무라고도 할 수 없고, 온갖 것들을 장기판 뒤집듯 뒤엎고, 부스러뜨리고, 불어 날려 보내고, 아, 아, 앗 하는 동안에, 조금 전에 있었던 작은 산들의 나무를 닥치는 대로 넘어뜨리고, 이 카와타이라 타케의 산중턱을 향해 뛰어 올라 온다. 이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롤러가 땅을 고르며 굴러 오고 있는 것 같다. 이번이야 말로 무너지면 치모토 씨는 양 손을 합쳐, 하나님, 하나님 하고 기도하며, 또다시 땅에 얼굴을 파묻었다. 가,가,가, 하는 무시무시한 소리가 귀를 울림과 동시에, 넙죽 엎드린 채 그대로 사뿐히 불리어 날라 간 것은 동시의 일이었다. 5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밭의 돌담에 부딪쳐 내린 치모토 씨는 눈을 들어 사방을 돌아보았다. 주변에 서 있는 나무들이 전부 눈높이부터 똑똑 부러져 내려, 나무라 할 수 없고, 풀이라 할 수 없다. 나무 잎은 전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을씨년스럽게 송진 냄새만 풍길 뿐.

후루에 씨는 미치노오에서 우라카미로 돌아오는 도중이었다. 바로 병기공장 앞을 자전거로 달리고 있을 때, 묘한 폭음을 들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 보니 마츠야마초 위 근방, 대략 이나사야마 산 높이 정도의 푸른 하늘에서, 한 점의 붉은 불덩어리를 보았다. 눈을 찌를 정도의 빛은 아니고, 스트론튬(은백색의 금속 원소; 원소기호 Sr.- 역주)을 커다란 초롱 속에 태우고 있는 것 같은 새빨간 불덩어리였다. 그것이 쉿- 하고 지면에 닥아 온다. 무엇인가 하고 안경의 한 손을 대고 다시 보는 순간, 곧 눈앞에 마그네슘을 폭발시켰다고 생각되는 정도의 섬광이 일고, 신체가 허공에 떴다. ---자신이 논 속으로 처박힌 자전거에 깔려 있다는 것을 후루에 씨가 깨닫게 된 것은 몇 시간인가 후이었고, 그 때 눈 한 쪽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을 알았다.

우라카미에서 7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고카구라 초등학교 직원실에서, 타가와 선생은 방공일지에 오늘 아침의 경보기사를 기입해 넣고 있었는데, 잠깐 얼굴을 들어 창밖을 보며 피곤한 눈을 쉬었다. 눈앞에 작은 산기슭이 있었고, 그 위에 나가사키 항의 하늘이 파랬었다. 그 푸른 하늘이 순간 번쩍 하는 빛이 났던 것이다. 그 빛은 예리하게 눈을 쏘았다. 한 여름 한 낮의 태양빛이 순간 굉장히 어둡다고 느껴졌었기 때문에 그 광도는 태양의 몇 배가 됐을 것이 틀림없다. 주간의 조명탄이라 하더라도 이렇지는 못해 하고 중얼거리며 타가와 선생은 허리를 들었는데 돌연 이상한 물체를 인식했다. “아니, 아니, 아니, 이게 뭐야?” 타가와 선생의 외침에 교실 안의 선생들은 창가로 달려갔다. 나가사키의 우라카미 부근의 상공에 한 점의 흰 구름이 나타나, 그것이 옆으로 그리고 위쪽으로 굉장한 힘으로 뭉게뭉게, 뭉게뭉게 팽창해 나가고 있지 않는가? “저게 뭐야, 저게?”하고 떠들고 있는 가운데, 직경 1 킬로미터 이상의 부풀은 만두가 만들어졌다. 그 때에 다아-앙 하고 폭풍이 도달하여, 직원실 안의 모두는 놀라 떨었고, 산산 조각난 유리 파편에 맞았다.
“폭탄투하, 교사에 명중, 피난,” 타가와 선생은 이렇게 외치며 그대로 뒷산의 방공호에 달려가고 말았다. 그리고, 바로 그 시각에 우라카미의 자택에는 부인과 자녀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숨을 거두고 있는 것을 신이 아닌 이상 알 방법이 없이, 타가와 선생은 홀로 차디 찬 땅바닥에 앉아 있었다.

오오야마라 하는 지구는 나가사키 항의 남쪽, 하치로타케의 산기슭에 있는데, 우라카미에서 8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여기에서 바라보면, 우라카미 분지는 나가사키 항보다 더, 저 쪽에 희미하고 흐릿하게 보인다. 카토 군은 소를 몰고 초원으로 나와 있었다. 번쩍 하는 것을 본 것은 초록색 풀잎이 반짝이는 것을 바라보며 한 잎 두 잎 세고 있는 중이었다. 깜짝 놀라, 소의 목을 당겼다. 우라카미의 하늘은 하얗고, 짙고 짙은 솜과 같은 구름이 생겨나, 무럭무럭 커진다. 그 색은 꼭 초롱을 솜으로 두른 것 같이, 밖은 하얗지만, 안에는 타오르는 빨간 불을 품고 있다. 그 흰 구름 속에는 반짝 반짝 반짝 반짝, 아름답게 방전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 작은 번개의 색깔은 빨강색, 황색, 보라색 등 여러 가지로 아름다웠다. 이 새로운 구름은 만두 형태가 되어, 이윽고 그 모습 그 대로 위로 위로 올라가, 송이버섯 같은 모습이 되었다. 그 때에, 이번에는 하얀 구름이 바로 밑의 우라카미의 계곡 한 면에서 검은 흙 연기가 무럭무럭 빨려 올리어지듯 솟아올랐다. 위의 송이버섯구름은 높이 높이 푸른 하늘 높이 오르고, 그 위에서 흩어져 동쪽으로 향해 흘러가기 시작하였다. 아래의 흙 연기도 산보다 높이 올라, 그 일부는 밑으로 다시 흩어져 내리기 시작하고, 일부는 동쪽으로 흘렀다. 어느 쪽도 아주 맑아 태양 빛은 산과 바다를 비추고 있지만, 이 구름의 바로 아래의 우라카미 만은 커다란 구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아주 새카맣게 보였다. 이윽고, 퉁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입은 옷이 펄럭거리며, 나뭇잎들이 불리어 날려갔지만, 폭풍도 여기까지 오니 상당히 약해져 있고, 소가 날 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카토 군도 역시 또 한 방의 폭탄이 바로 가까운 곳에 떨어진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타카미 씨는 소를 끌고 목장으로 돌아가고자 우라카미에서 2킬로 떨어진 오도리세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가, ‘번쩍’하는 섬광에 당했던 것이다. 번쩍하고 빛날 때, 화로에 닿은 것 같은 뜨거움을 느꼈었는데, 소도 자신도 열상(熱傷)을 입었다. 그 다음에 쉬- 하고 으르렁거리며, 불덩어리가 비처럼 내렸다. 그 하나가 발에 닿았다. 거기에서 흰 연기를 일으키면 꺼졌지만, 파라핀 초불을 불어 끈 다음에 나는 냄새가 났다. 그 불덩어리로 말미암아 여기저기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다.

4.폭격직후의 정경

대학은 폭탄 파열 지점에서 3백 미터 내지 7백 미터의 범위에 건물을 연이어져 있다. 대체로 폭발중심권내에 있다고 봐도 좋다. 기초의학교실은 폭탄에도 가까웠으며, 목조건물이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눌리어 무너지고, 불리어 날아가고, 불타버리고, 교수도 학생도 모두 죽었다. 임상의학교실 쪽은 조금 떨어져 있었고, 콘크리트 건물이었기 때문에, 운 좋게 살아 남은 사람이 몇 사람인가 있었다.
시계는 11시를 조금 지난 채 있었다. 병원 본관 외래진료실의 2층에 있는 내 방에서 나는 학생들에게 외래환자 진찰을 지도할 수밖에 없어, 렌트겐·필름을 선별하고 있었다. 눈앞이 번쩍하고 번뜩였다. 정말로 청천벽력이었다. 폭탄이 현관에 떨어졌다! 나는 곧바로 엎드리려고 했다. 그 때에 이미 창은 쾅 하고 부셔져, 맹렬한 폭풍이 내 몸을 둥실 공중에 불어 올려 날려 보냈다. 나는 동그랗게 눈을 뜬 채 날아가고 있었다. 창유리의 파편들이 돌풍에 휘말린 나무 잎 같이 날라 들었다. 잘리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는 가운데, 상반신이 잘리고 말았다. 오른 쪽 눈 위와 귀 부근이 특별히 크게 상처를 입은 것 같이, 뜨뜻미지근한 피가 뿜어져 나와 목으로 흘러내렸다. 아프지는 않다.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주먹 같은 것이 교실 안을 날뛰며 돈다. 침대도, 의자도, 책장도, 철가면도, 구두도, 옷도, 무엇이든지 간에 맞아 깨지고, 튕겨져 날아가고, 긁히어 돌아가고, 덜렁덜렁 소리를 내며, 바닥에 굴러 넘어져 있는 나의 몸 위를 덮쳐 왔다. 먼지투성이의 바람이 갑자기 코 속으로 돌진해 들어 와, 숨이 막힌다. 나는 눈을 똑 바로 뜨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밖은 순식간에 어슴푸레 어두워 왔다. 찰싹찰싹 바다 소리처럼, 윙윙 하는 돌풍처럼, 공기는 한편으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돌고, 널판이 부셔지고, 의복, 함석지붕, 등 여러 가지 물건들이 회색의 공중에 빙글빙글 춤추고 있다. 주변은 얼마 안 있어, 썰렁하게 태풍 지나간 가을의 끝과 같이, 불가사이 한 삭막함으로 가득하였다.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나는 최소한도 톤 정도의 대형 폭탄이 병원의 현관부근에 떨어졌겠다고, 판단을 새롭게 했다. 상처를 입은 사람 수는 약 백여 명이다. 이 사람들을 어디로 옮겨,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어찌됐든 교실인원들을 끌어 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인원 가운데 아마도 반 정도는 당했을 것 같다. 어떻게든, 이렇게 매몰된 곳에서 탈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무릎을 움직여 보고 허리를 펴보며,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어슴푸레 어두워져, 두 눈도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고 만 것이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처음에는 눈 근처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눈 밑 부근에 출혈이라도 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했지만, 눈동자를 움직여 보니 움직인다. 눈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은 아니라고 판단을 내리니, 처음으로 두려워 오싹해진다. 완전히 이 건물이 부셔져내려, 생매장된 것이 틀림없다. 생매장이라면, 또한 보람이 없는, 변변치 못한 개죽음이다. 어찌됐든, 할 수 있는 한 해보자고, 물건들의 파편의 밑에 죽기 살기로 목숨 걸고 계속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센베이 굽는 기계에 끼어 있는 센베이처럼 이렇게 꼭 끼어 있으면, 몸 어디를 중심으로 어떻게 움직일까 생각 할 수도 없다. 얼굴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이, 그 족이 온통 유리 파편의 사포(砂布)다. 그 위 아주 깜깜한 어둠 속에, 자신의 위에 어떤 물건 이 어떤 모양으로 평행을 이루어 올려져있는 지도 알지 못한다. 조금 오른 쪽 어깨를 움직이니,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것이 와르르 하고 무너져 내렸다. 나는 “어이-, 어이-, ”하고 불러보았다. 그 목소리는, 내 생각에도 전혀 한심한 울림으로 어둠속에 퍼지고 있었다.
옆방의 렌트겐 실에서는 하시모토 간호부가 있었다. 운 좋게 책장 사이에 끼어 있었기 때문에, 깨끗이 상처 한군데 입지 않았다. 만물이 마법에 의해 생물로 변한 것 같이, 덜컹덜컹 끔찍하게 뛰어 돌아다니는 무서운 시간은 벽에 의해 휘어져 지긋이 감추어져 있는 가운데, 10초, 20초 경과하여, 주변은 온통 먼지와 흙 연기 등으로 목구멍이 맑힐 정도로 자욱이 끼어들어 왔지만, 큰 물건들은 거의 모두 바닥 위나 땅 위에 떨어져 있는 것 같다. 그런데 하시모토 군은 구호작업을 하겠다고 넘어진 책장 뒤에서 기어 나왔지만, 앗 하고 몹시 놀라고 말았다. 모조리 뒤죽박죽이다. 잡동사니를 밟아 넘어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보니, 새삼스레, 철렁 가슴이 내려앉았다.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돌연 방금 전까지, 이 창 아래에 보랏빛의 파도가 늘어서 있던 사카모토초(坂本町), 이와가와초(岩川町), 하마쿠치초(浜口町)는 어디로 살아졌단 말인가? 하얀 연기를 품어 내던 공장들은 없어지지 않았는가? 저 품어 오른 푸른 잎으로 가득 차 있던 이나사산(稻佐山)은 불그스레한 돌산으로 변해 있지 않는가? 여름의 녹색이라는 녹색은 나무 잎, 풀잎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 아아 지구는 벌거숭이가 되고 말았구나!
현관 차고 앞에 무리지어 모여 있던 사람들은? 하고 내려다 본 광장은 좁은 공간까지 크고 작은 식수(植樹)들이 마구 넘어져 있고, 거기에 섞이어, 몇 명인지 셀 수도 없는 벌거벗은 시체들. 하시모토 군은 무심코 양손으로 눈을 가렸다. 지옥이다, 지옥. 신음소리 한 마디 내는 사람 없이, 완전히 사후(死後)의 세계다. 눈을 가리고 있는 사이에 완전히 컴컴해지고 말았다. 눈을 들어 고개를 돌아보았지만, 물건 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실 가닥 하나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이 세계 속에 단 한 사람 살아 있구나하고 생각하는 순간, 등골이 오싹하며, 다리가 움츠러들고 말았다. 사신의 손톱은 이윽고 나의 목덜미를 죄고 있구나. 갑작스레 고향 집이 보였다.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하시모토 군은 엉-하고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아직 열일곱의 여성이었었다. 그런데 그 때에 “어이-, 어이-”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 왔다. 바로 가까운 곳에서 나는 발걸음소리 같기도 하고 몇 장인가 벽을 사이에 둔 저 쪽인 것 같기도 하다. “어이-, 어이-” 또 소리쳤다. 부장 선생의 목소리다. 부장 선생이 살아 있다. 선생과 두 사람이 살아 있다면, 현관 앞의 죽은 사람들 정도의 처치는 할 수 도 있을 것 같다. 하시모토 군은울상을 짓는 소녀에서 곧 바로 용감한 간호부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 목소리를 전하러 옆방으로 가고자 하였으나, 어둠 속에서 렌트겐 촬영대인지, 전기 코드인지, 하는 것이 가는 방향을 막아, 발을 옮길 수가 없다. 스코프를 놓아 둔 구석 쪽으로 손으로 더듬어 가보니, 그것은 어디로 날라 갔는지 없어져 버렸고, 그 대신 메가폰이 손에 닿았다. 계단 아래의 투시실에는 괭이도 있고, 부장님들도 있다는 것이 생각 나, 그렇다면, 모두의 힘을 합친다면, 좋을 것이다, 고 판단하여, 촬영실을 빠져 나왔다. 매일 밤 등화관제로 익숙해진 복도였지만, 2,3보 걸으니, 물컹한 것에 걸려 넘어질 뻔 했다. 살짝 만져 보니 사람. 끈적한 피 같은 것이 손바닥에 묻었다. 어깨 쪽을 쓰다듬어 내려 손목을 잡아 보니 맥박이 없다. 불쌍하게도.... 하시모토 군은 합장을 하고 그곳으로부터에서 또 2, 3보 더 가니, 또다시 쓰러져 있는 사람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머리카락이 미끈하고 끈적끈적하게 손목에 달라붙는다. 아직 주변은 아주 컴컴하다. 이 어둠 속의 나의 주변에 도대체 몇 사람이 죽어 있다는 말인가? 하시모토 군은 맥을 짚어보며, 보이지 않는 눈을 떠, 주변을 둘러보았다.
돌연 확 하고 밝아 왔다. 창밖에 불이 타 올랐던 것이다. 순식간에 불길은 점차 커졌다.
그 불그스름한 불빛에 비쳐진 눈앞의 광경은! 하시모토 군은 불현듯 죽은 사람의 맥에서 손을 떼고 갑자기 일어섰다. 넓은 병원의 복도에 빨간 역광선을 받고 넘어져 있는 육체. 엎드려 있기도 하고 옆으로 누워 있기도 하며, 위를 보고 누어있기도 하고, 무릎을 구부리고 있기도 하고, 허공을 움켜쥐고 있는 자도 있고, 일어서려 허우적거리는 자도 있다. 하시모토 군은 혼자 힘으로 이것에 손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선 구호대를 모아 조직적인 집단활동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깨달았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서든 부장선생이 묻혀 있는 곳으로 모든 사람을 불러 모으자. 미안해요, 미안해요, 하고 사과의 말을 하면서 죽은 사람을 뛰어 넘어 계단을 내려 가 투시실 쪽으로 갔다.

투시실의 일행은 막 렌트겐 투시대를 조립해 세우고 있는 중이었다. 퉁 하고 기묘하게 우리는 소리 높은 폭음이 들렸다. 간호부 학생인 츠바키야마가 “어머 무슨 소리일까?” 한다. “저건 B-29의 폭음일거야.” 천천히 벤치를 옮겨가고 있던 기사 시로가 말한다. “폭탄 투하일거야”. 얼마 전의 폭격에 넓적다리를 다친 경험이 있는 노장(老壯) 기사가 말한다.
“숨을까요?” “음” “여성부장님, 피신, 피신,” 3인은 커다란 탁자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피-웅, 퉁! 하고 떨어졌다. “또 떨어졌네!” 시로의 목소리도 철컥철컥 교실 안을 날뛰고 돌아치는 폭풍에 삼키어 사라지고 말았다. 모두가 그대로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츠바키야마가 숨을 쉬지 않는다. “어이 맞아땅가?” “어이 당신은?” “어디도 아픈 곳은 없는디요.” “여보시오, 여성부장님!” 큰 목소리로 불러 본다. “예에” 곧바로 옆방에서 언제나 그렇듯 애교있는 대답이 들려 왔다. “잠깐 기다려주세요. 무엇인가가 내 몸 위에 넘어져 있네요.”
그 때 기차가 터널에 들어가는 때처럼, 주변이 웅웅 하고 으르렁거리며 암흑으로 변하고 말았다. 마주보고 있는 츠바키야마의 하얀 얼굴이 갑자기 사라졌다.
“이것은 도대체 뭐랑가?” 노장의 목소리.
“신형폭탄일거여, 일전의 히로시마에 떨어진...”
“아니어, 태양이 폭발해버리지 않았는지 몰러.”노장의 말.
“음 그럴지도 모르지. 갑자기 기온이 내려간 것 보니께.”시로가 생각하고 생각하던 끝에 말한다.
“태양이 폭발했다면, 세계는 어떻게 되나요?” 츠바키야마 간호부가 울음석인 목소리로 물었다.
“지구도 끝이제.” 노장이 냉큼 대답하였다. 모두 입을 닫고 있지만 역시 밝아지지 않는다.
일분이 지났다. 어둠 속에서 시계의 초침이 찰깍거리는 소리가 인상깊다.
“그런데 점심은 어떻게 해?” 시로의 말.
“근방 먹어치웠는디, 자네 가지고 있능가?”
노장이 이 세상의 이름을 남기고 죽어가는 순간에도 한 입 먹고 싶다는 듯 말한다.
“음, 죽기 전에 나누어 묵자고들.”
하는데 기차가 턴넬을 빠져 나올 때처럼 주변이 조용해지며 희미하게 밝아졌고, 노장의 하얀 이가 보이고 시로의 긴 코가 보이고, 츠루키야마의 조그마한 보조개도 보이게 되어, “아아, 태양은 별일 없었구멍” 하고 시로가 말하자, “그렇지만, 점심은 나누어 주어야혀”하고 노장이 말하였고, 세 사람은 옹색스러운 탁자 밑에서 유리가루, 기계의 잘라진 조각, 의자의 잔해, 전선 그물 속으로 기어 나왔다.
“도대체, 어디로 떨어졌었단 말인가? 이런 정도도 부셔진 것을 보니 이 방에 명중되지 않고서야..... 천정에 구멍이라도 난 것 같구먼.”
“폭탄 떨어진 소리 들었었능가?”
“아니, 못 들었어.”
“그렇다면.....공중어뢰였던가?”
“어쨌든, 굉장한 놈이었었서, 그놈.”
그때에 옆방에서 히사마츠 부장(婦長)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흐트러진 머리를 양손으로 쓸어 올리면서, “모두 괜찮아?” 하고 물었다. 그 후에 간호부 학생 1학년생이 달려 나와 부장의 허리를 붙들며 울기 시작하였다.
“바보이시네, 자네. 살아있지 않아?”
1학년생은 흐느껴 울었다. 친구가 바로 옆에서 죽은 것 같다.
“자 자, 방공두건을 쓰고 붕대 주머니를 찾아오세요.”
히사마츠 부장님은 좔좔 물을 품어내고 있는 수도관 있는 곳으로 가서, 양손을 정성껏 씻고, 세수를 하고, 물로 입안을 가셔냈다. “무언가, 가스를 마신 것 같은 기분이 드네.” 하며, 폐 속까지 씻어내겠다는 기세로 네 번, 다섯 번 물로 가셔내었다.
“츠바키야마 씨도 와서 손을 씻으세요. 그런 흙투성이의 손으로 가제를 취급하면, 상처가 곧 곪아요. 토모끼요 씨 당신도 얼굴이랑 손이랑 씻으세요. 시 씨 후딱후딱 준비 하세요 예? 부상자가 상당히 많은 것 같아요.”
토모키요 시로 군은 “예”하고 대답하고, 시 노장은 “야”라고 대답하고, 곧 바로 준비를 착수하였다.
톡톡 소리가 들렸다. 창 쪽으로 달려 간 츠루키야마 군이 “불났어요. 불이요.” 하고 소리쳤다. 다섯 사람은 그곳에 뒹구는 바케츠를 집어 큰 물통 쪽으로, 내가 늦어서는 안 되지, 라는 듯이 뛰어 나갔다. 이전의 렌트겐 교실로서 목재 등 소개(疏開)된 흔적들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광장은 불길은 세지는 않지만, 온통 불 바다였다. 다섯 사람은 전부터 방공연습에서 했던 것처럼, 한쪽 구석부터 바케츠로 물을 끼얹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불길은 이곳만이 아니었다. 병원의 복도는 완전히 타버려 형체도 없고, 식당도 부셔져 온통 불을 뿜고 있었다. 남아 있는 것은 드문드문 콘크리트 동(棟) 뿐. 목조 건물은 전부 없어지고, 그 대신 불길이 치솟고 있다. 곧 물을 퍼붓고 있었지만, 꺼진 면적보다는 타올라가는 것이 빠르다. 아무래도 바케츠 물 붓기로는 충분치 않다는 판단이 섰다.
“기계를 끌어 내오자”하고 시로가 말한다.
“부상자들을 치료하재” 하고 노장이 말한다.
“입원환자들을 피난시키죠” 하고 츠바키야마가 말한다.
불길은 순식간에 검은 연기를 내 품으며 큰 불이 될 기세를 보였다.
“부장(部長) 선생님의 지휘를 받지요.” 하고 히사마츠 부장(婦長)이 말했다.
거기에 하시모토 군이 나타났다.
“부장선생님이 살아계신 채 묻혀 있습니다.”
“괜찮여, 괜찮여” 노장이 빠른 말투로 말했다. 하시모토 군을 따라 다섯 사람은 나무를 뛰어 넘고, 책상을 넘고, 촬영실로 내달렸다. 정상의 통로는 무너져, 막혀있어 갈 수 없어, 창을 뛰어 넘고, 파이프에 매달리고, 이리 돌고 저리 돌아, 대장 구출에 달려갔다. 약국의 높은 창을 넘어 가기 위해서는 사람 사다리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노장이 가스 미터기를 붙잡고, 받침대가 되고, 그 위에 시로 군이 올라타고, 그 무릎, 등, 어깨를 차례로 밟고, 부장님도 하시모토 군도 츠바키야마 양도 올라 타서 높은 창을 넘었다. 그리고 나서, 시로가 뛰어 오르고, 마지막으로는 모두가 다리 긴 새우의 긴 다리 같은 노장의 양손을 당기면, “어이 싸” 하고, 언제나 했던 것처럼 어이싸! 하고 소리를 지르며, 뛰어 올라 갔다.

바로 그때 현상실에서는 시 선생이 렌트겐에서 폐의 사진을 현상탱크에서 꺼내고 있었다. 뒷산에 세워져 있는 대공감시를 맡은 학생이 “괴상한 비행기가 머리 위에 침입했습니다아-아. 피신. 피신”하는 돌연 큰 소리 치는 것이 들렸다. 묘하게 날카로운 높은 폭음을 뒤이어 들려 왔다. 그는 급강하하는 폭탄이라고 생각하고, 그곳에 엎드렸지만, 사진이 못쓰게 되면 안된다하고 생각하고 물로 씻어 정착 탱크에 조용하게 넣었다. 그런 다음 엎드리는 것과 쿵하고 무너지는 것과 동시였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자신이 꼼짝도 못하게 목재 같은 것에 끼어 바닥에 쭉 늘어져 있었다.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려 해보니, 허리가 자유롭게 되고, 양 어깨가 내 것이라고 느껴지게 되어, 어깨를 사용하여 자신의 몸 위에 쌓여 있는 목재를 제거하고,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정착 탱크 속의 사진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둘러보니, 안경이 날아가 버렸고, 주변의 모든 것이 핀트가 맞지 않아 잘 보이지 않는다. 옆에서 함께 일을 하고 있던 모리우치 군은 어떻게 되었을까? 몇 번인가 불러 봤지만 대답이 없다. 그쪽의 목재 밑을 찾아보았지만, 손만 아니라 발도 보이지 않는다. 잘 빠져 나갈 것 같다. 산처럼 쌓인 잡동사니를 넘어, 복도로 나가 보고, 깜짝 놀랐다. 마치 알 수 없는 집에 처음 들어 온 것 같다. 안경을 잃어버린 때문 일거야, 하고 재차 삼차 눈을 비비며 둘러보았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콘크리트 건축물의 안에 있어서 방사선의 직사광선을 받지 않은 운이 좋은 무리들의 관한 것이다. 옥외에 있던 사람들은 어떠했던 것일까? 아오끼 선생은 약학 전문부의 뒤쪽에서 학생들과 함께 방공호를 바지런히 파고 있었다. 정확히 그 순간, 방공호 밖으로 나가 있던 자가 죽음의 제비를 뽑을지, 안에 들어 와 있던 자가 죽음의 제비를 뽑을지를 그 누가 미리 알고 있었을 것인가? 모두가 팬츠 한 장을 입고 바지런히 땅을 파고 있었다. 이곳은 폭심점(爆心点)으로부터 4백 미터.
번쩍, 하고 방공호 안쪽 땅이 빛났다. 둥 하고 울렸다. 호의 입구에서 소쿠리를 들고 있던 토미타 군이 호 안으로 날리어 들어갔다. 그곳에 쭈그리고 앉아 곡깽이질을 하고 있던 아오끼 선생의 등에 둥, 하고 부딪혔다. “뭐야? 무슨 일이얏!” 아오끼 선생은 화난 듯이 소리를 지르며 돌아보았다. 토미타 군의 뒤로부터 나무 부스러기랑 천 조각이랑 기와장들이 짤그랑짤그랑 날아들어 온다. 선생의 등 뒤에 커다란 각목이 쿵, 하고 맞으니, 선생은 그 대로 진흙 속에 넘어졌다.
몇 분인가가 지난 것 같다. 아오키 선생은 문득 자기가 불길과 연기가 소용돌이 쳐 오르고 있는 참호 속에 넘어져 있는 것을 깨달았다. 뜨거운 공기가 맹렬히 참호 속에 불어 닥쳤다. 선생은 죽을상이 되어 비틀거리며 발을 옮겨 그 불길을 돌파해 나왔다. 단숨에 참호 입구로 도달하자, “어이구 살았다.”......하고, 눈을 부릅뜨고, 입을 떡, 하고 벌린 채, 아까부터 꽉 쥐고 있던 곡갱이가 손에서 떨어진 것도 모른 채, 그 곳에 꼼짝 못하고 멍하니 서고 말았다.
커다란 약학 전문부의·교사(校舍) 몇 동인가가 사라지고 없다! 생화학 교사도 없어졌다! 약리학 교실도 없다! 목책(木柵)도 없다! 목책 밖의 민가(民家)는? 이것도 없다! 모조리 없어지고 말았다. 온통 불 숲!
원자를 전공하고 있던 이학박사 아오끼 선생도 이 순간, 이것은 원자폭탄이다, 라고는 깨닫지 못했다. 설마 미국의 과학진이 오늘날 여기까지 성공하였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학생들은? 아오끼 선생은 발목 쪽으로 눈을 돌리는데, 갑자기 얼음물이 부어진 것 같이, 전신이 얼어오는 것을 느꼈다. 이 물건처럼 엎어져 있는 것이 내 학생인가? 아니, 나는 아까 참호 속에서 등 뒤를 맞은 후 아직 의식이 회복되지 않은 것일 것이다. 악몽이다. 이런 비참한 사실이 전쟁 때문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선생은 허벅다리를 꼬집어보았다. 자신의 맥도 잡아보았다. 이리저리 봐 봐도 자신의 육체는 잠이 깨어 있는 것이 확실한 것 같았다.
이것이 악몽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악몽이상의 나쁜 꿈인 게 분명하다.
선생은 우선 검게 변한 몸뚱이의 발목부분에 냉큼 손을 대보았다. “어이, 어이”.... 대답이 없다. 양 어깨에 손을 얹어 끌어 일으키려고 하니, 피부가 수밀도와 같이 벗겨졌다. 오카모토 군은 죽어 있었다. 그 옆에 “음-”하고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뒤집었다. "무라야마 군, 무라야마 군, 정신 차리게“ 선생은 수밀도처럼 피부가 벗겨진 학생의 무릎을 껴안았다. ”선생님, 아아 선생님“ 하고는 무라야마 군은 푹 쓰러졌다. “아아-” 선생은 깊은 한숨을 쉬며, 무라야마 군의 식어가는 벗은 몸을 땅위에 눕히며, 합장을 한 다음, 아라키 군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호박처럼 물컹물컹 부풀어 올라, 여기 저기 피부가 벗겨진 얼굴 가운데 가늘고 하연, 눈을 크게 뜨고, “선생님, 당했습니다.” 하고 조용히 말했다. “더 이상 안 될 것 같습니다. 신세 많이 졌습니다.”
귀와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 자가 있다. 두 개(頭蓋) 밑을 당하여 즉사한 것 같다. 굉장히 강하게 지면에 부딪힌 것 같다. 입에서 피거품이 품어져 나오는 자도 있다. 토미타 군이 그 사이 계속, 물을 마시게, 하고 말을 걸며, 민첩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자신의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자는 한 사람도 없다. 아직 신음하고 있으니까, 이 학생 다음에 가서 진찰 하자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고 생각되어 가보니 이미 눈동자가 하얗게 뒤집혀져 있었다. 누군가가 가세해주지 않을까 하고, “어-이, 누군가 와줘!” 하고 북쪽을 향해 소리쳐 보고, 동쪽을 향해 소리쳐 보고, 서쪽을 향해 소리쳐 보았다. 꼼짝 않고, 귀를 기우리고 있으니, 공기는 아직도 안정을 회복하고 못하고, 방향을 일정하지 않게 이리저리 돌풍이 그때그때 휘익휘익 휘돌아 치는데, 그 바람 소리에 섞여, 눌리어 부서진 지붕 밑 저 쪽에서 도와 달라는 목소리들이 들려 왔다. “도와주세요!” “괴로워요!”, “누구 좀 와 줘요!”, “뜨거워요, 타들어 가요. 물 좀 주세요!”, “어머니-” “어머니-”
선생은 현기증을 느끼고, 다시 쓰러졌다. 잠시 후 눈을 들어 보니, 하늘이 온통 고체와 같이 짙은 마운(魔雲)에 덮혀, 태양은 빛을 잃고, 불그스름한 원판으로 보인다. 주변은 석양처럼 어둑어둑하고, 오싹하게 추웠다. 귀를 기울이고 들으니, 도움을 바라는 목소리는 점점 줄어갔다. 엄마를 부르던 아이는 이미 타 죽은 것 같았다.

일년생 학생은 조용히 손에 노트를 들고 있었다. 아직 귀에 익숙하지 않은 라틴어의 해부학 강의를 듣고 있는 자신이 어쩐지 이미 당당한 한 사람의 의사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스스로 자신이 쓴 가로쓰기 글자들을 자랑스럽게 들어다 보면서 교수의 말을 좇아 펜을 달리고 있었다. 번쩍, 하고 빛이 지나가고, 우르르 하고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교수의 말이 아직 중단되지 않는 채였다. 머리를 들어 주변을 돌아 볼 여유도 없었다. 교실에 단정히 나란히 앉은 그 자세로 무거운 지붕 아래에 묻히고 말았던 것이다. 급장 후지모토 군은 자신이 대들보인가 무언가에 살짝 끼여 있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칠흑 같은 어둠이다. 먼지와 흙 연기를 들여 마셔, 목이 막혀 기침을 했다. 책상과 책상 사이 좁은 공간에, 겨우 자신의 몸은 자유를 되찾았다. 바로 옆에서 음, 음, 하고 신음하고 자가 있다. 어-이, 어-이 하고 부르는 자도 있다.
그러나 8명의 급우 가운데, 목소리를 셀 수 있을 정도로, 몇 사람도 살아 있지 않는 것 같다. 그러는 가운데, 좁은 목재들의 공간으로부터 무엇인가가 타는 냄새가 흘러들어 왔다. 이어 뜨겁고, 메케한 연기가 흘러 들어온다. 불이 타오르고 있는 것 같다.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안달하기 시작했다. 위로 빠져 나가 보려 했지만, 꼭 끼어있는 대들보와 기둥과 서까래, 기와, 흙 따위가 쌓여 누르고 있는 까닭에, 도무지 움직이지 못하겠다. 탁, 탁, 가까운 곳에서 불이 타오르는 소리가 난다. 초미(焦眉)의 급함이라는 것이 이런 상태였던가? 눌러 보고, 밀쳐 보고, 머리와 어깨와 등을 대고 모든 힘을 다해, 몸을 펴 보려 하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역학을 생각하며 움직여 본다. 중력의 크기를 내용 없이 계산해 본다. 잡동사니의 좁은 공간으로 숨을 마셔보니 공기는 점차 뜨거워져, 언뜻언뜻 빨간 불길이 반사되어 나온다. 바다노래를 부르는 자가 있다. 모든 힘을 다해 큰 소리로 천천히 노래를 불러 가고 있다. 후지모토 군은 전신의 힘을 잃고, 그대로 맥없이 넘어져, 친구의 마지막 노래에 귀를 기우리고 있었다. 후렴을 하지 않고- 노래는 끝났다. “제군들, 안녕-, 나는 다리에서부터 타고 있다.” 이후 2분이 지나면, 나도 타버릴 것이다. 후지모토 군은 자기의 운명을 알고 있었다. 합장을 하고 지그시 있자니,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버둥대지 마라라.” 라고 말했다. 어머니의 웃는 얼굴이 보였다. 동생 타다오가 떠올랐다. 타다오가 나대신 의사가 되어주겠지. 렌트겐 실의 동료가 한 사람 한 사람 생각났다. 사각모를 쓰는 날까지, 렌트겐 기술원으로 공부하여 왔던 교실. 아아-, 함께 입학시험을 보고, 똑같이 사각모의 영광을 얻었던 친구 타코 짱은 어찌 됐을까? 렌트겐 동료로서 밤낮으로 주고받은 짧은 말들이 하나 둘 머리에 떠올랐다. “서두르지 마.” 이 좁은 잡동사니의 공간에게 모든 자유를 빼앗기고, 무저항 상태로 타서, 숯이 되고, 재가 되는데 무엇을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 “표묘(?渺; 끝없이 넓은 모양-역주)”. 이 말은 육체는 촌척(寸尺)의 활동의 여지를 갖지 않으나 정신은 천지우주 사이에 표묘하게 흘러간다는 말이다. 다음 1분 더 부자유다. 살이 타는 냄새가 난다. 젊은 육체가 연소하는 상쾌한 냄새다. 내 냄새도 좋겠지? “ 중대사라는 것은 오직 지금의 것일 뿐”. 확실히 그렇다. “此亦妨尿喫飯脫糞之從耳” 후지모토 군은 무심코 빙긋 웃었다. “아무리해도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는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본다.” 시험공부의 한 중간에 시(施 )선생이 자주 가르쳐 주었던 말. 전혀 반대의 것을.... 글쎄, 그렇다. 후지모토 군은 혹시나 하고 생각하며 바닥을 만져 보았다. 바닥 널빤지 이음새에 손가락 끝이 걸렸다. 힘을 주어 당겨 보았다. 성공할 수 있을까? 달깍하고 벗겨졌다. 폭풍이 지면에 닿아, 부딪혀 밑에서 바닥을 뒤흔들었기 때문에 못이 헐거워져 있었던 것이다. 음, 하고 들어 올려 손가락을 밑에 걸었다. 으드득 하고 기분 좋은 소리가 나며, 마루 널빤지가 떨어지고, 구원의 공기가 섬뜻, 하고 밀리어 들어 왔다. 2장, 석장, 수월하게 떨어져, 쿵하고 몸이 마루 밑바닥 위에 굴러 떨어졌다.
세균학교실의 뒤쪽 창문을 열고, 지금 정차장에서 표를 사가지고 돌아 온 야마다 선생과 츠다 군 등이 들어 온 바람을 맞으며 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지금부터 토오쿄오의 전염병 연구소에 혈청제조법을 배우러 출장을 가려는 참이었다. 드디어 나가사키 농성의 날이 다가오고, 이러한 방면에도 서둘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다. 남자들이 대다수가 전장에 나가 있기 때문에, 이 젊은 두 여성과학자들이 지금부터 커다란 책임을 지게 된 것이었다. 테니스 코트도 여름 잡초로 무성해져, 스포츠를 즐기는 일 등은 몇 년인가 전에 잊어버리고 모든 것이 전쟁 오직 그것뿐이었다. 코트 저쪽 편에 쑥쑥 자랐던 녹나무와 소나무 숲이 있었는데 그것들을 베어내 지금은 식량증산을 위해 고구마 밭으로 변한 운동장이 있고, 그 위에 크고 빨간 천주교 성당이 높이 솟아 있다. 테니스 코트를 가로질러 오면서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몸빼( 주로 농촌이나 산촌 여성이 작업복·방한복으로 입는 바지 모양의 아랫도리옷-역주) 차림의 두 사람이 있었다. 렌트겐 과의 간호부인 하마 씨와 고야나기 씨 같았다. 이전에 렌트겐 과의 기사로 일했던 츠다 군이 얼굴을 창문으로 내밀며 신호를 보낸 것이었다. 츠다 군은 불쑥 일어서서 손수건을 흔들었다. 운동장에서는 렌트겐과의 야마시타 씨, 요시다 씨, 이노우에 씨 등이 붉게 탄 얼굴로 풀을 뽑고 있었다. 우라카미 언덕의 계단밭에는 갑작스러운 공격이 중단된 사이의 시간들을 이용하여 제초작업을 하는 농민들의 모습이 이곳저곳에 점점으로 보였다. 천주교 성당에는 신자들이 꼬리를 물고 예배에 참여하고 있다. 길에는 양산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나가사끼는 언제 보아도 아름답군요.”
“2개월 후 우리가 토오쿄오에서 돌아 왔을 때도 역시 이대로 일까요?”
“저는 어쩐지 나가사끼가 사라지고 말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저는 어쩐지 나가사끼 만은 남아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거기에 “피카돈”(번쩍 쾅하는 의성어.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에 떨어진 원자탄의 속칭-역주)이 왔다.

야마다 선생은 가까스로 마루 밑에 나왔다. 근처에 묻힌 츠다 군의 “괴로워, 괴로워”라는 단 두 마디 끝에 숨이 끊어진 것이 꿈만 같다. 세균교실은 순식간에 한 덩어리의 불이 되었다. 탈출했던 사람은 야마다 선생 한 사람이었다. 나이토 교수이하 전원 즉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밖으로 기어 나와 보니 어두컴컴하고, 바람이 윙윙거리며 허공에서 울고 있다. 전망이 보인다고 생각하고 있자하니, 소나무와 녹나무 숲은 뿌리가 벗겨져 내리고, 주변의 교사 와 강당은 모두 부서져 내려 있다. 건너편의 천주교성당은 높이 50미터가 되었던 종탑을 시작으로 전체가 3분의 1 정도 만 남기고 날아가 버려, 마치 로마의 폐허와 같았다. 돌담에 거꾸로 대(大)로 걸려 있는 사람, 도로에 점점으로 넘어져 있는 사람, 밭에도 희미하게 몇 사람인지 셀 수 없이 죽은 사람들이 누워있다. 운동장에 있었던 간호부들은? 하고 보니 여기저기에 바람에 날아가 넘어져,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문 밖에 있던 사람들은 즉사하였다. 야마다 선생은 별로 큰 상처를 입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몸 안에 변조(變調)가 있는 듯, 4,5 보를 옮기니, 흐물흐물 무릎이 꺾이었다. 그리고 몽롱해져서, 포기하고 그곳의 함석 위에 벌렁 엎어졌다. 옆에는 낡은 독일어 세균학교과서가 떨어져 있었다. 이미 이런 학문은 더 이상 소용없다, 라고 생각하는 듯, 그 책을 베개로 삼아 베고 누었다. 거기에서 그대로 불안과 고민 사이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며, 구원자가 와 주기를 헛되이 기다리고 누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