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

나가사끼의 종-1 (서문, 원폭투하 직전)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7-11-16 21:36
조회
1786
지난 8월 19일부터 24일 까지 본원은 <기독청년아카데미>와 <생명·평화·역사기행>이 50명의 대규모의 기행단을 꾸리어 5박 6일을 일본여행을 다녀왔다.
22일 나가사끼 평화공원을 방문한 기행단은 <원폭박물관>을 관람하고, 핵무기의 가공할만한 파괴력을 실감하던 가운데 핵투하 당일 나가사끼 의과대학에서 강의중 피폭당하여 원자병으로 서거할 때까지 <나가사끼의 종>, <이 아이를 남겨 두고>등 다수의 글을 통하여 반핵평화를 호소하였던 나가이 타카시(長井 隆) 박사를 만난다. 다음 아침(8월 23일) 나가이 박사가 서거할 때까지 어린 아들 딸 둘과 보냈던 다다미 하나짜리 단칸집 <여기당>(如己堂)을 찾아 참배하였다.
이 때 기행단장 김재일 목사는 “전쟁을 싫어하고 평화를 지키자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나가이 박사의 글들을 소개하자고 제안하여 , 본인은 <나가사끼의 종>을 시작으로 매월 한 두 편의 글을 번역하여 <기사연 세상읽기>에 연재하기로 마음먹었다.
서문에 밝혀져 있듯이 나가이 박사는 1908년 일본 시마네 현(島根縣) 마츠에 시(松江市 )에서 태어나, 1932년 나가사끼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상기 의과대학 물리적요법과 조수로 근무, 1944년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1945년 8월 9일 근무지인 나가사끼 의대에서 원자탄에 피폭당해, 1946년 1월에 상기 대학 교수가 되었으나, 동년 7월부터 병상생활을 시작하여 1951년 5월 1일 사거하였다. 당년 43세-(역자 주)

나가사키의 종

서문

1945년 8월 9일 원폭에 피폭당한 나가사키의과대학 제11의료대대장 나가이 박사는 3일간의 구호작업이 일단락된 후 완전히 타버린 집으로 돌아 와 부인 미도리 씨의 유골을 수습하고 두 아이를 소개(疏開)시킨 미츠야마에 갔다. 여기에는 다수의 부상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제11의료대를 재편성하여 구호작업을 한 후, 9월 25일에 원폭으로 잘려졌던 오른쪽 경동맥(頸動脈; 목을 거쳐 얼굴이나 머리로 피를 보내는 동맥의 분맥-역주)이 재차 잘리어 백혈병과 자지 못하고 쉬지 못하면서 계속한 구호활동으로 인한 과로가 겹치어 실신, 위독한 상태에 빠졌다. 그 후 기적적으로 회복되어, 먼저 <제11의료대 구호활동 보고서>를 써, 나가사키 의과대학에 제출하였고 이어 쓰기 시작한 것이 이 책이다.
1946년 8월 탈고했지만, 점령군 사령부의 발행 금지 명령을 받아, 원고는 아메리카 국방성에 보내졌다. 필리핀에서 일본군이 행한 일들을 기록한 <마닐라의 비극>이라는 글을 부록으로 첨부한다는 조건으로 마침내 출판이 허락되어 1949년 1월, 히바야 출판사에서 발행된 것이다.(점령이 해제되면서 <마닐라의 비극>은 제외되었다.)
박사는 서문 가운데 “현장 스케치도, 상처의 사진도, 해부한 적도, 표본도 없기 때문에 의학논문으로서는 가치가 없지 않을까요?”, “이 글은 의사의 입장에서 본, 원자폭탄의 실상을 널리 알려, 사람들에게 전쟁을 싫어하고, 평화를 지키자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쓴 것입니다.”고 기술하였다.
원자물리학자, 의과대학의 방사선과부장이었으며, 자신이 피폭을 당하고, 다수의 피폭환자들을 치료했던 박사의 이 책은 그 이후 출판된 많은 ‘나가사키의 증언’ 가운데 가장 뛰어난 책으로 평가되는 “인류사상 대사건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며, 또한 강한 인간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유럽과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어 세계적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며, 가요곡으로도 널리 퍼지고 있다.
<나가사키의 종>이라는 책이름은 우라카미 성당의 성종(聖鐘)에서 유래한다. 과거 나가사끼 의과대학 학생이었던 박사는, 매일 이 종이 안젤라스의 시각을 알리는 것을 듣고 감명을 받아 가톨릭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전후, 피폭지인 우라카미에서 타버린 함석지붕의 가건물 오두막에서, 허탈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의 정신을 분발시켜, 생활재건과 피폭지 부흥의 의욕을 부추겨 올리자고 천주교 성당의 폐허에서 성종을 찾아내어, 삼나무 원목 세 그루를 얽어매어 급조한 종루에 매달았다. 1945년의 크리스마스의 밤 미사부터 이 종은 다시 울리기 시작하였다. 크리스마스는 ‘평화’를 가져 온 날이다. 이 책의 제목에도 박사의 평화에의 소망이 담겨있다.

1976년 2월 순심(純心)여자단기대학 부학장 가타오카 야요시






원폭투하 직전

소화 20년(1945년) 8월 9일의 태양이, 언제나와 다르지 않게 평범하게 콘삐라 산에서 얼굴을 들어내고, 아름다운 우라카미는, 그 최후의 아침을 맞이한 것이었다. 강변의 평지에 가득 차 있는 각종 병기 공장들의 굴뚝은 하연 연기를 토해내고, 가도(街道)를 사이에 둔 상점가의 기와지붕은 자색의 파도를 이루고 늘어서 있으며, 언덕의 주택지는 가족의 단란함을 알리는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연기를 품어 올리고, 산 중턱의 계단밭은, 무성하게 자란 고구마 잎 위에 이슬을 빛내고 있다. 동양제일의 천주교 성당에는 하얀 베일을 쓴 신자들의 무리가 인간 세상의 죄를 참회하고 있다.
나가사키 의과대학은 오늘도 여덟시부터 정확히 강의를 시작하였다. 국민의용군 명령의 전투와 동시에 배운다는 방침을 기초로, 어떤 학급이나 연구실이나 병사도 각각의 전문의 임무를 갖는 의료구호대로 개편되어, 방공복을 몸에 착용하고, 구호재료를 허리에 찬 직원과 학생들이 강의에, 연구에, 치료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었다. 여차하면, 곧바로 배치에 따라 공습부상자의 수용에 관한 일을 하도록 되어 있는데, 사실은 지금까지 몇 번인가 그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특히, 바로 일주일 전에 대학이 피폭당한 때 등, 학생에게는 3명이 즉사, 수십 명의 부상자를 냈지만, 학생과 간호부들의 용감한 활동에 의해, 입원환자와 외래환자들에게는 1명의 희생자도 나오지 않았을 정도였다. 이 대학에는 이미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경계경보가 울려왔다. 병원의 큰 복도에 강당으로부터 학생들의 무리가 흘러 나와서, 몇 조론가 무리를 지어 각각 담당구역으로 흩어져 갔다. 본부전령이 먼저 메가폰으로 정보를 외치며, 복도로 달려갔다. 변함없이 오늘도 남 규슈에 대규모의 공습이 있는 것 같다. 계속하여, 공습경보가 울려 퍼지고 있다. 하늘을 쳐다보니, 맑은 아침 하늘에 반짝반짝 눈에 비치는 고층운(高層雲)이 빛나고, 어쩐지 적기가 나타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음파가 퍼지는 듯 기분이 좋지 않고, 아까부터, 아까부터, 이곳저곳의 사이렌이 윙윙 거리고 울린다. 벌써 알고 있어, 그러한 불길한 소리는 이미 딱 질색이야, 귀를 막고 싶어지기까지 하는, 윙윙거리는 것 좀 그만 둬, 윙윙거리는 것 좀 그만 둬. 그러나 이것은 적어도 용기를 흔들어 놓는 정도의 소리는 아니다.
배롱나무의 꽃이 새빨갛다. 협죽도의 꽃도 새빨갛다. 칸나는 꼭 핏빛이다. 병원의 현관을 대기소로 정하고 있는 들것 담당부대의 의전 1년생들이 이 빨간 꽃의 그늘의 방공호에 숨어 여차한 순간을 만반의 준비를 맞추고 기다리고 있다.
“도대체, 전체 전황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야?” 카고시마 중학교 출신인 자가 말했다.
“나는 동급생들을 굉장히 많이 예과동(豫科棟)에 옮겨두었는데..” 오사카 사투리가 방공호 안에서 들려온다.
“소용없어, 이런 일은, 아무리 노력을 해 보았자야....”
누구도 댓구를 하지 않는다. 이 오사카친구가 생각하고 있는 바에 슬며시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조국 일본은 지금 생사가 배척간두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전쟁이란 이기기 위해 시작한 것이 틀림이 없다. 설마 질 예정으로 정부가 이런 비극의 막을 올리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그러나. 사이판을 빼앗긴 이후 대본영 발표의 용어에는 무언가 의심스러운 그림자를 드리고 있는 것이, 민감한 학생에게는 언제인가는 모르지만, 어떤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이 급장, 어떻게 생각해? 이 전쟁은 어떻게 될 것이여?” 오사카 사투리가 좁은 입구로 붉은 얼굴을 내밀며 물었다. 로이드안경( 테가 굵고 둥근 안경. 미국의 희극 배우 해롤드 로이드가 쓴 데서 불리운 이름-역주)을 쓰고 있다.
급장 후지모토는 아까부터 푸른 오동나무 밑에서 팔짱을 낀 채, 우두커니 서서, 똑바로 하늘을 주시하고 있었다. 몸집은 작지만 간이 큰 남자로서, 철로 된 투구로부터, 검정 각반을 꽉 두른 다리 끝까지 빈틈없이 엄중하게 몸단속하고, 지금까지 수도 없이 피투성이로부터 부상자들을 짊어지고 나온 체험은 급우들의 여망을 잘 모아, 이 몸집 작은 사나이가 선두에 서서 뛰어드는 연기 속으로, 급우들은 하나의 보석이 되어 한데 합쳐 몰아쳤던 것이다.
아버지의 망원경을 가져 와 허리에 차고 있다. 적기가 머리 위를 날라 오면, 그것을 천천히 꺼내어, 목을 빙빙 돌려가면서 적기의 행동을 보고하는 것이 이 사내의 취미이다.
“급장, 어떻게 되것능가, 전쟁은?” 다시 물었다.
“전쟁을 어떻게 하는가---다.” 후지모토가 억누르듯이 말했다. “전쟁에 의해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 의해 전쟁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우리들과 상대가 되어 싸우고 있는 젊은이들인 아메리카의 학생들과 일본의 학생들의 힘의 비교에 의해 승리가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인가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래도 별로 좋지 않지 않능가? 최근의 되어가는 꼴은. 물량의 차가 지나치게 나지 않는가이? 우리들의 하찮은 노력이랑게, 아무것도 아니지비.”
“그건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렇지만이다. 어찌 됐든 최근 아래 동네에 폭탄이 떨어지면, 이치도 이론도 있을 수 없다. 곧 달려 나가, 지혈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최후까지 우리의 본분을 다할 뿐이다.” 후지모토와 결연히 말했다. 오사카와 납득하지 못했다. 거기에 커다란 각목을 메고 부급장이 다가왔다. 부급장은 고쿠라 중학교 출신으로 묵묵히 할 일을 하는 사내로, 지금도 감시호의 보강공사를 위해 혼자 땀을 흘리고 있던 것이었다.
“적이 참말로 여기에 상륙한다면 어떻게- 될 것일랑가? 어이 부급장>”
“생사는 명에 따르는 것” 고쿠라의 사내는 허리에서 부채를 꺼내 부채질하여 땀을 식힌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사람에게는 우스운 일일 뿐”
조용해졌다. 배롱나무도 협죽도도, 칸나도 활기 없어진 피와 같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 가운데 맥박 치는 것처럼 매미의 소리가 건너편의 야마오 신사의 큰 녹나무에서 들려오고 있다.
이 날은 방공 당번 교관에 해당된 내가 병원의 현관에서 들어가 큰 복도 뒷문까지 돌아본다. 어떤 병실의 입구에도 씩씩하게 복장을 정돈한 간호부와 학생들이 작업을 시작할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바케츠에는 물이 가득 들어 있다. 수도 호스도 늘여져 있다. 두드려 불을 끄는 도구, 쇠갈고리, 삽, 괭이, 여차하면, 소이탄 정도야 잠깐 동안에 해치울 정도로 준비해 두고 있다. 입원환자는 방공호 속에 조용히 운반해두고 있다. 라디움 실 앞에는 의전 3년생의 우에노 군이 있다. 이 사내는 상당히 용감하다. 그 동안 공습으로 부인과에서 발화한 때, 옆의 피부과의 옥상에 혼자서, 감시의 중임을 다 했었다. 우리들이 부인과의 불길에 바케츠를 가지고 달려 들었을 때, 아직, 적기는 계속하여 급강하 폭격을 하고 있었지만, 우에노 군은 폭탄이 떨어지는 그 가운데에도 “어-이, 적기 머리 위 통과, 괜찮다, 나와라, 불 타 오른다.” 라든가 “ 또 왔다-. 떨어진다. 대피, 위험하다.” 라든가, 일일이 소리쳐 지도하였다.
“열심히 해!” 라고 나는 감사의 뜻을 보내며 말했다. 이노우에 군은 수줍어하며 머리를 끄떡이었다.
“최근 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었습니다. 다른 분들의 눈총을 받아 좋니, 부끄럽지 않아? 이젠 어린애가 아니지 않니? 라고요.”
뒷문에는 수동식 펌프대(隊)가 모여 있었다. 모든 것이 소이탄과 폭탄에 대해서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나는 만족하여, 이번에는 병동의 동쪽을 돌아보았다. 그 동안 폭탄에 당한 외과, 부인과, 이비과(耳鼻科)의 흔적은 사람 몸의 상처보다 비참했다. 그 옆에는, 여기에도 아직 협죽도가 핏빛으로 피어 있는데, 조용히 석탄산(石炭酸)이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나에게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경보해제의 사이렌이 신체 중의 의심을 벗겨주기 위한 것처럼 울려 왔다. 교실에 돌아 가니, 모두가 왁자지껄 떠들어 대면서, 철 가면의 끈을 풀고 있던 때였다. 정보계의 이노우에 간호부가 똥그란 눈을 한층 더 똥그랗게 하고. 조금 작은 머리를 갸웃거리며, “규슈 관내 적기 없음”라고 라디오에서 말한 대로를 보고했다. 불그레해진 턱에 땀이 조금 배어 있고, 머리카락이 세 개씩 붙어 있다.
“곧 바로 수업 시작!” 본부전령이 거듭 외치고 돌아다녔다. 학생들은 각각 교실에 들어갔고, 대학은 다시 조용해진 진리탐구의 상아탑이 되었다. 병원의 임상학과 쪽은 환자들이 접수처에 몰려들어, 예진을 하는 학생들의 하얀 가운이 그 가운데를 누비고 움직이고 있다. 내 교실과 복도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있는 내과에는 학장인 츠노오 교수의 임상 강의의 상쾌한 목소리가 문틈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