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생각, 아이 마음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9-18 23:55
조회
506
순간의 분노좌절로 가출, 세심한 심리상담 필요

이나미 어른생각, 아이마음 /

가발에다 속눈썹 붙인 화장을 짙게 한 ㄱ 양은 겨우 고등학교 일학년이었지만, 성매매 하는 유흥업소일에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간신히 딸을 찾아 끌어내어 병원에 데려왔더니, ㄱ 양은 이른바 삼촌들이 화장품이랑 예쁜 옷도 사주고 가끔 다른 아저씨들이랑 놀러 나가면 돈도 더 주는데 왜 하기 싫은 공부를 해 가며 잔소리쟁이 부모랑 살아야 하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ㄱ 양에게 유흥업소는 집이나 학교보다 훨씬 더 편한 곳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조기 유학을 갔다 여름방학에 잠시 돌아온 ㄴ 군은 부모 몰래 도망쳐 주유소에 취직을 했다. 어머니는 직장에 나가고 아무도 휑한 미국의 집, 친구 하나 없는 학교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러기 가족생활을 하던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끝내 이혼을 요구하자, ㄴ 군은 부모도 서로 헤어지는데 왜 내가 부모와 떨어져 살면 안 되냐며 집으로 돌아오지 않겠다 했다.

못 먹고 못 살던 과거에는 돈 벌어 금의환향 하겠다는 뚜렷한 목적으로 가출을 하기도 했는데, 요즘 청소년들은 분노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집을 떠난다. 무관심하거나 독재적인 부모, 잘 알아 듣지도 못하는 수업, 나쁜 친구들의 꾀임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겉으로는 신체발달이 훌륭한 청소년들이지만 심리적으로는 아직 공고하게 확립된 자아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누군가의 적절한 심리적 도움과 지도가 필요하다. 물질만능과 이기주에 물들어 있는 부모들은 아이들의 심리적 문제들을 제대로 돌봐줄 능력도 의욕도 없는 경우가 많다.

정신과 영역에서는 일단 가출과 학교 거부는 심각한 응급상황으로 보고 외래에서 통제가 되지 않으면 입원을 권유한다. 1996년 미국의 통계를 보면 전체 인구의 7% 밖에 안 되는 청소년들이 살인의 15%, 성폭행의 17 %, 강도의 32%를 저지른다고 한다. 보호자 없이 거리를 떠도는 청소년들이 결국 중대한 범죄의 유혹에 빠진다는 뜻이다. 정신병적 증상과 관련있는 도파민이라는 호르몬, 폭력적 성향을 강화하는 성 호르몬 등의 분비량이 가장 높은 청소년 시기에다 노동과 성착취 등 성인들의 범죄에 보호막 없이 노출되는 탓도 있다.

못된 부모 밑에 자라도 이웃집이나 친척 어른들이 대신 마음을 달래 주어 엇나가는 청소년들을 다독거려 주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젠 누가 죽을 만큼 옆집에서 맞고 있어도 모르는 터라, 아이들은 가정과 학교에서 좌절감을 느끼면 내몰리는 심정으로 가출을 선택한다. 그나마 주유소나 편의점 같은 곳에서 직장을 얻으면 다행이고, 놀이터나 빌딩 지하실, 하수구 같은 곳에서 잠을 자며 노숙자로 전락하는 아이들도 많다. 몰려 다니다 돌아가며 각자의 집에 들어가 라면으로 배를 채우거나 돈을 가지고 나오기도 하는데, 아예 그러려니 하고 가출 신고도 하지 않는 부모들도 많아 통계를 잡기도 힘들다고 한다. 아버지들이 노름과 술로 거리를 헤매던 시절, 그래도 굳세게 집을 지켰던 어머니들 조차 이젠 가정을 떠나 부유하고 있으니, 집 떠나는 아이의 마음을 이젠 누가 붙잡을 것인가. 높은 이혼률로 인한 가정의 해체를 걱정함과 동시에 불행하고 무책임한 가정과 학교에 등 떠밀리다시피 집을 나서는 청소년들의 가출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도 함께 고려해야 하지 않나 싶다.

청소년 가출을 막아 줄 상담교사들을 교육시켜 놓았지만, 실제로 임용되는 경우는 턱없이 적다고 한다. 상담 교사뿐 아니라 다른 교사들도 학생들의 심리를 보다 세심하게 다룰 수 있도록 심리상담 쪽의 재교육이 계속되야 하지 않을까도 싶다. 부모가 부모 노릇을 못하고, 지역사회가 그 완충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 가출학생들의 현실이라면 학교에서라도 제대로 된 상담을 해 주어 아이들이 범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미 일어난 범죄를 감옥에서 교정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먼저 예방하는 것이 국가적으로도 훨씬 더 이익이 아닌가.
» 이나미/신경정신과 전문의  nleekr2000@yahoo.com

기사등록 : 2006-09-17 오후 08: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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