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몽골 아이보다 우리 아이가 행복할까?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9-18 23:55
조회
488
가난한 몽골 아이보다 우리 아이가 행복할까?

  
아낌없이 주는 나무 /

방학이면 이곳저곳 여행을 떠나는 일이 잦아졌다. 여행 후에 늘 잊히지 않는 것은, 내가 간 곳에서 만난 아이들의 얼굴이다. 그 중에서도 몽골에서 만난 아이들은 어제처럼 생생하다.

국경 도시 수호바타르에서 기차가 한참 머물 때였다. 이층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이들 몇이 창 밖에서 내게 손짓을 했다. 반갑다는 뜻인가보다 하며 나도 손을 흔들었는데, 아이들이 계속 내 침대를 가리키며 손짓을 했다. 아이들이 가리키는 침대 귀퉁이에는 지난 밤 내가 먹고 버릴 데가 없어 놓아둔 빈 음료수 페트병이 두 어 개 나뒹굴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 음료수 통을 던져달라며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마지못해 음료수 통을 던져주자, 아이들 얼굴이 순식간에 환하게 밝아졌다. 아이들은 음료수통을 비료포대 같은 데다 소중하게 담고, 내게 고맙다는 눈짓을 보냈다. 아마도 빈 음료수병을 모아 팔아 돈을 마련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얼른 주머니를 뒤져, 마침 남아있는 초코바 몇 개를 던져주었다. 아이들은 그것을 나누어 소중하게 주머니에 넣었다. 잠시 후 한 아이가 더 왔다. 그러자 주머니에 넣었던 초코바를 꺼낸 한 아이가 반을 잘라 그 아이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닌가. 두 아이는 형제간 같았다. 꾀죄죄한 얼굴에 삐쩍 마른 몸, 겨우 일고여덟 살 밖에 안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맞닥뜨리기에는 가난이란 현실이 너무 가혹하지만,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만은 무엇보다도 따뜻해 보였다.

몽골 초원에서 내 말고삐를 잡아주던 소년은 겨우 여덟 살이었다. 견마 잡이로 돈을 많이 벌어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하며, 에델바이스를 꺾어 꽃다발을 만들어 우리 일행에게 건네주던 그 아이의 얼굴에는 그래도 행복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요즘 학교는 대입 원서 때문에 난리다. 수능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고, 수시 원서도 써야 하고, 밀린 공부도 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눈코 뜰 새가 없다. 어디 고 3 뿐일까? 심심하면 바뀌는 입시 제도와 자꾸 추가되는 전형 요소들 때문에 아이들은 갈팡질팡이다.

휴대폰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고, 온갖 첨단 통신, 전자 기기들로 정보의 가장 앞자리에 서 있는 아이들이지만, 그 아이들은 마음속에 어쩌면 입시라는 무거운 닻을 하나씩 담고 살아가는 지도 모른다. 원서를 쓰느라 교무실에 와 하루 종일 매달리는 아이들에게 나는 문득 묻고 싶어진다. 에델바이스로 꽃다발을 만들 줄 아는 가난한 몽골 아이들보다, 너희는 정말 행복하니?

최성수/서울 경동고 교사 borisogol@hanmail.net

기사등록 : 2006-09-17 오후 08: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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