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보존

등 떠밀려 떠난 유학, 아이들은 “쫓겨났다” 반항심만 (한겨레, 7/2)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7-12 23:45
조회
585
**등 떠밀려 떠난 유학, 아이들은 “쫓겨났다” 반항심만 (한겨레, 7/2)


외국으로 나간 유학생이 이제 곧 20만을 바라본다고 한다. ‘남들이 하면 나도’ 정신에 투철한 학부모는 물론, 일관되지 않은 정부 정책도 유학생 증가에 일조를 하는 것 같다. 임상에서 관찰해 보면, 조기 유학을 보낸 가족들이 만만치 않은 갈등을 겪고 있다. 조기유학 중에도 ‘기러기 가족’과 ‘나홀로 유학’은 심리적 문제에서 차이가 난다.

우선 나홀로 떠난 조기 유학생을 보자. 자기가 원해서 유학을 간 경우와 부모에게 등 떠밀려 떠난 경우는 또 완전히 다르다. 자신이 선택한 경우에는 유학생활 중 느끼는 외로움, 좌절감을 그래도 잘 견뎌내는 편이다. 스스로의 결정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다.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유학을 준비한 학생들은 자발성과 독립을 강조하는 영미권의 가치관이 오히려 편안하고 행복하게 느껴진다. 부모에 의해 수동적으로 유학을 떠난 학생들은 부모가 날 쫓아 냈다는 분노와, 도대체 왜 내 집, 내 조국 떠나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의미 상실감 때문에 외국 생활이 힘든 경우가 많다. 어디 정 붙일 데가 없으니 친구들에 대한 의지도 너무 심해 마약이나 술, 문란한 성생활에 쉽게 빠진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돈도 많이 쓰는데, 외국 생활 수준을 모르는 부자 부모들이 무조건 돈을 많이 보내야 안심이 되니 결국 절제하지 못하는 낭비벽을 조장하기도 한다.

기러기 가족의 경우도 부모가 원해 자녀가 따라가게 되었는지, 아이에 의한 결정에 부모가 따라간 것인지에 따라 매우 다르다. 대부분은 한국 교육에 실망하고 불안해 하는 부모들의 선택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수동적으로 학교 생활에 임하게 된다. 기러기 가족이라도 어머니가 일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또 그 반응이 다르다. 아버지가 보내주는 돈을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근검절약하고 아르바이트라도 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일찍 철이 드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돌봐주는 부모나 친척이 없이 혼자 지내다 보니 비딱하게 나가는 아이들도 있다. 반대로 어머니가 골프나 반지 계 같은 것을 하면서 호화롭고 편안하게 사는 경우, 아이들 역시 돈 씀씀이만 크고 공부는 별로 열심히 하지 않는다. 피를 말리는 경쟁으로 일단은 책상 앞에 앉아야 하는 한국과 달리, 영미권은 하기 싫으면 얼마든지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돈 많은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공부에 대한 동기가 별로 없다. 아쉬운 것도 없고 간섭하는 선생님도 없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 하고 못 하고를 떠나 유학생 자녀를 가진 부모들은 자녀들의 서양적 가치관에 융통성 있게 따르지 않는 한, 계속 자녀들과 심리적인 갈등을 겪게 된다. 뭐든 혼자 해결해야 하는 유학생활, 독립심과 자기 주장을 강조하는 구미 교육 덕에 아이들이 부모들에게 순종적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보다는 ‘우리’를 강조하는 집단주의적인 한국정서도 유학생들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 없으니, 자녀들의 서구적 개성과 가치관을 인정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유학생이 많다 보니 일부 아이비 리그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취업 전선의 프리미엄도 사라진 지 꽤 되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외국 유학생들이 제대로 된 직업을 갖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지라 대부분은 돌아 오게 되는데, 문제는 이들에게 들어간 학비를 뺄 만큼 보수를 넉넉히 주는 직장이 없다는 것이다. 비교적 재력이 탄탄한 부모들이나 씀씀이가 늘어난 유학생 자녀 모두, 그 정도 보수를 받느니 차라리 노는 게 낫겠다며 백수생활을 하는 숫자도 만만치 않다. 노후대책도 안 되어 있으면서, 공부에 흥미도 없고 자신의 생활도 책임 지지 못하는 아이들을 그저 외국어라도 배우라고 등을 떠민다면, 시대의 변화도, 자신들이 겪어야 할 앞날도 읽지 못하는 안타까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신경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