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보존

[김소희의 영화와 삶] ‘유사 가족’을 위하여 (경향, 6/28)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7-12 23:45
조회
591
**[김소희의 영화와 삶] ‘유사 가족’을 위하여 (경향, 6/28)
  
최근 나온 한국영화 가운데 영화계 종사자들을 흥분시킨 작품이 하나 있었다. 직업적 판단을 위해 날을 세우기 일쑤인 업계 사람들이 ‘가족의 탄생’(감독 김태용) 시사회장에서는 헤벌죽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운 것이다. 이 영화는 또한 배우들이 사랑한 작품으로 기록될 것이다. 여러 명의 유능한 배우들이 앙상블을 이루는데, 톱클래스의 류승범씨가 단역으로 출연하고 있을 정도다.

‘가족의 탄생’은 핏줄을 나눈 부모형제들이 전쟁을 치르다시피 서로 상처 주고 다투고 미워하던 끝에, 결국은 이리저리 얽혀 새롭고도 특이한 가족을 이루고 사는 이야기다. 영화의 서두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온전한 가족 형태를 이루고 있지 않으며 성격도 어딘가 특이하거나 괴퍅하다. 예를 들면 제각기 떡볶이 장사 혹은 궁궐 관광가이드를 하는 나이든 미혼여성 두 사람은 자기 생활하기도 바쁜 처지에 한심하기 짝이 없는 부모형제 한두 명씩을 혹처럼 달고 산다.

이 ‘혹’들이 피우는 말썽의 수준은 사회에서 흔히 보는 각종 만화경 중에서도 약간 어이없는 축에 속한다. 이를테면 몇 년 만에 나타난 남동생이 엄마 또래의 연상 여인과 결혼했다며 대책없이 더부살이를 시작하더니, 조금 있다가 그 연상 여인의 어린 딸이 찾아온다거나 하는 식이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휴, 저거 그냥 단호하게 거절해야지, 저러다간 서로 못산다’ 하는 생각이 들고, 그러다 보니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주인공들의 성격과 그들의 속내가 저절로 이해가 된다.

영어 속담에 모든 집안의 벽장에는 해골이 있다고 하는데, ‘가족의 탄생’은 가문의 수치들이 벽장 밖으로 튀어나와 헤집고 다니는 순간들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런 문제를 겪으며 살아온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그들의 성격이 형성된 내력을 묘사하고 있다. 김태용 감독은 늘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다니는 본인의 성격대로, 이 우스꽝스러운 삶의 정경을 따뜻하게 껴안음으로써 보는 이에게서 우정어린 미소를 끌어낸다.

젊은 감독에게서 예리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발견할 때 감독으로서의 미래를 각별히 기대하게 된다. 소재를 대하는 태도와 영화를 연출하는 스타일이야말로 감독의 작품세계를 결정하는 관건이기 때문이다. 만약 ‘가족의 탄생’이 좀더 많은 관객에게 보여지고 좀더 많은 언론에서 주목한다면, 전통적인 혈연가족이 아닌 유사가족의 문제를 진지한 이슈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인생에 대한 경험이 쌓인 사람일수록 가족의 중요성에 대해 더욱 절감할 것이다. 한 사람의 인성에 미치는 영향은 물론이고, 각종 사회문제도 가족 안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모든 정책적 지향과 윤리교육, 각종 드라마와 대중 담론들이 가족을 절대적이고 신성한 것으로 강조한다. 옳은 이야기다.

그러나 올바름이 새로운 아픔을 낳는다. 사회가 강조하는 이른바 정상적인 가족을 유지하기 어려운 사람들, 즉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붕괴된 가족 혹은 어떤 이유로든 새로운 선택을 해야만 했던 사람들에게는, 가족에 대한 강조가 역으로 자신의 삶이 비정상이라는 자괴감의 뿌리가 되는 것이다. 내 경험으로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수의 사람들이 가족문제로 인한 심리적 상처를 갖고 있으며 그것을 위장하거나 극복하기 위해 인생의 에너지를 쏟고 있다. 가족 담론이 선의의 폭력이 되지 않도록, 가족의 개념과 테두리를 적극적으로 확장할 필요를 깊이 느낀다.
〈김소희/영화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