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보존

[문화로 읽는 세상]죽음이라는 소중한 삶 (경향, 5/3)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12 23:30
조회
467
**[문화로 읽는 세상]죽음이라는 소중한 삶 (경향, 5/3)

〈최준식 이화여대교수·한국학〉

일전에 우연히 음반사업을 하는 친구를 만나 이야기 끝에 죽음 음악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 친구는 소리를 높여 죽음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역정을 냈다. 죽음을 그렇게 피해가면 안된다 했더니 그는 또 죽음은 죽을 때 가서 생각하면 된다고 더 강하게 말했다.

-인생의 참뜻 새길 마지막 기회-

그런데 문제는 죽음은 죽음이 닥쳐왔을 때 생각하면 늦다는 것이다. 게다가 죽음은 아무 예고 없이 어느날 갑자기 닥친다. 꼭 내 죽음이 아니더라도 내가 그렇게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가 어느날 죽음에 직면한다.

그런데도 죽음을 죽을 때나 가서 보자는 것은 말이 안된다. 아니 성교육은 중요하다고 생각해 어릴 때부터 시키면서 성교육보다 몇 배는 중요할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데고 가르치는 곳이 없으니 어찌 하겠다는 것인가?

나는 지금까지 우리 한국인들이 죽음을 너무 금기시하고 심지어 부정하면서 사는 현실에 대해 비판을 많이 했지만 오늘은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야겠다. 내가 한국인들이 죽는 현장을 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죽음이라는 소중한 삶의 기회를 너무나 쉽게 놓쳐버린다는 것이다.

인간은 살면서 많은 성장을 한다. 그런데 죽음은 그 마지막 성장의 기회로서 그야말로 천혜의 기회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오죽 했으면 세계적인 죽음학의 대가였던 고 퀴블러 로스 박사는 자신의 책 제목을 ‘죽음 그 마지막 성장의 단계’라고 했을까? 왜 죽음이 마지막 성장의 기회라고 하는 걸까?

우리는 죽음 앞에 서게 되면 그제야 자기 삶을 진실되게 되돌아보게 된다. 그전까지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돈이나 권력, 명예와 같은 세속적인 것이다. 그것이 전부인 줄만 알고 그것에 올인한다. 그래서 날마다 주식 시세를 챙기거나 아파트 값 승강이를 한다. 이런 데에 팔려 있을 때는 인생의 참뜻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다 갑자기 암이 걸려 앞으로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는다. 그때에도 주식 가지고 머리를 쓸 위인은 하나도 없다. 지금까지 쫓아 왔던 것이 다 허상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닫는다. 주식이든 집문서든 모두 아이들 딱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생을 진지하게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그런데 이때 많은 사람들은 그런 진지한 태도를 접고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데에만 급급하게 된다. 그래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고단위의 화학요법에 의지해 약에 취해 있다가 마지막이 되면 생명 연명장치에 매달려 의식이 꺼진 채 한 마디도 못하고 다음 생으로 떠난다.

-배움과 사랑, 긍정의 깨달음-

나는 이게 안타깝다는 것이다.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는데 왜 그냥 보내냐는 것이다. 우리는 이때부터라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품위 있고 아름답게 우리의 삶을 마감할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모두 생각해 본 결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코 돈이나 지위가 아니라 단 두 단어, 즉 ‘배움’과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때 말하는 배움은 세속적인 지식이 아니라 자신과 자연에 대한 살아있는 지식을 말한다. 그리고 사랑은 평생 얼마나 남을 사랑했는가에 대한 것이다. 인생에는 남을 위해 봉사하고 자신을 위해 지혜를 닦는 것 외에 다른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일을 어떤 사람은 80년을 살아도 못하는 반면 임종을 맞이한 사람은 단기에 집중적으로 이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세계의 거의 모든 종교에서는 죽음 뒤의 삶을 긍정한다. 죽은 뒤에는 다른 형태의 삶이 있다고 말이다. 이것을 퀴블러 로스 박사는 애벌레가 죽어 나비가 되는 과정으로 묘사했다. 사람은 죽어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 더 높은 영적인 차원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생에서 가지고 가는 것은 배움과 사랑, 이 두 가지밖에는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