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보존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옵소서” (한겨레, 4/25)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12 23:24
조회
556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옵소서” (한겨레, 4/25)
  

“죽음을 두려워 의를 버리며 죽음 면하려고 믿음을 버린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사망의 권세를 이기게 하소서. 칼로 베고 불로 지지는 형벌이라도 한두 번에 죽어진다면 그래도 이길 수 있으나 한달 두 달씩 1년 2년 10년이나 계속되는 고난은 도저히 견뎌내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오랜 고난을 견디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80이 넘은 어머님이 계시고 병든 아내가 있고 어린 자식들이 있습니다. 이들과 내 사랑하는 교우들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여 주시옵소서. 옥중에서 혹은 사형장에서 그 어디에서든지 내 목숨 끊어질 때 꼭 내 영혼을 받아 주시옵소서.”
  
23일 오후 3시 서울 서초3동 산정현교회에서 열린 ‘소양 주기철 목사 순교 62주기 추모 예배식’. 추모사를 한 김중은 장신대 총장이 주기철 목사(1897~1944)의 ‘5가지 나의 기도’란 유언 기도를 소개하자 예배장의 분위기는 더욱 숙연해졌다. 조선 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신사참배 찬성 결의에 반대해 경찰서에 두 차례나 끌려가 몇 개월씩 손발톱이 모두 빠질 정도의 고문을 받았던 주 목사는 1940년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설교 도중 이 유언기도를 하면서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고, 신자들도 눈물 바다를 이뤘다.

이번 추모예배가 어느 때보다 의미 깊은 것은 일제 때 신사 참배를 거부했다고 교단에서 목사직까지 파면됐던 그의 목사 자격을 ‘대한 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 평양노회’가 지난 17일 67년 만에 복권시킨 때문이었다. 주 목사 순교 뒤 사택에서마저 쫓겨나 거리에서 말할 수 없던 고초를 겪던 가족들 가운데 4남 주광조 장로(75)를 비롯해 손자인 주승중 장신대 교수 등 유족들도 참석했다.

평양 산정현교회는 해방 뒤 서울 서초동, 회기동, 후암동 등 3개 교회와 부산 산정현교회 등 4개 교회로 나뉘었다. 하지만 1995년부터 서울 3개 교회가 이렇게 함께 추모예배를 드린다. 이날도 3개 교회에서 온 300여명이 공동으로 찬송을 하며 예배를 드렸다. 서초동 산정현교회 담임 김관선 목사는 “4개 교회가 공동으로 산정현교회 100년사를 함께 출간하기로 했고, 오는 6월 22일 서울 숭실대 한경직기념관에서 ‘교회 100돌 기념 예배’도 함께 드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언제부턴가 하나 되기보다 분열이 익숙해진 개신교에서 주기철 목사의 신앙 정신으로 하나 되는 예배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