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보존

[문화로 읽는 세상]생·노·병·사 없는 삶 (경향, 4/19)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07 23:19
조회
419
**[문화로 읽는 세상]생·노·병·사 없는 삶 (경향, 4/19)

아직도 남도는 꽃 사태다. 하얀 목련은 진작 목을 외로 비틀며 뚝뚝 낙하하였다. 비탈진 둔덕에 폭포처럼 쏟아지던 개나리의 노랑색이며, 그 틈새에서 고개를 내밀던 진달래의 빨강색도 벌써 혀를 깨물었다. 온 산과 거리를 은회색 파스텔로 눈부시게 하던 벚나무들마저 이젠 짙은 분홍색으로 가뭇해졌다. 도리어 지금은 철쭉이다. 아파트 주변은 빨갛고, 파란 철쭉으로 띠를 둘렀다. 한데 문득 주변이 너무 환하다 싶다. 언제부터 우리 봄이 이토록 찬란하였던가? 목련은 ‘너무도’ 희고, 개나리는 ‘지나치게’ 노랗고, 벚꽃은 ‘눈부시게’ 밝고, 철쭉은 ‘선명하게’ 빨갛다.

-‘지나치게’ 찬란한 우리의 봄-

도시의 나무들은 꽃부터 피운다. 아니 꽃만 피워댄다. 나무가 나무다우려면 꽃에선 향이 나서 나비와 벌이 꼬여들고, 그래서 열매를 맺고 또 숲을 이뤄야 할 터이다. 한데 그들에겐 향도 없고, 나비와 벌도 없고, 숲도 없고, 열매도 없다. 오로지 꽃만 있다. 지나치게 선명하고, 눈부시게 밝기만 한, ‘의심스러운’ 꽃들만 지천으로 피어난다.

학교로 가는 전철 안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다. 노약자 석에서 머리를 염색한 ‘젊은’ 노인들 사이에 일어난 다툼이다. 요컨대 ‘나이도 몇 살 되지 않은 놈’이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묘한 일이다. 젊게 보이려고 염색한 사람들 사이에 ‘나이도 몇 살 되지 않은 놈’이란 욕설일까, 칭찬일까. 늙으면서도 늙지 않으려 화장하는 이 사회는 한 그루 꽃나무다. 꽃만 피우는 나무다. 언젠가부터 아이는 집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탯줄을 끊을 줄 아는 젊은 여자가 없고, 피를 온 방에 쏟으며 태어나는 아이도 없다. 병원에서 ‘탄생’하거나 또는 ‘제왕’처럼 ‘절개’된다.

아파트 주변의 아이들은 다 예쁘다. 못난 아이가 없다. 그런데 어디선가 많이 봤던 아이들이다. 그렇구나.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던 아이들이다. 그 아이가 입던 분홍색 유아복을 입고, 그 아이가 타던 수레를 타고, 그 아이가 빨던 젖꼭지를 빤다. ‘화장한’ 아이들이다.

아픈 사람도 없다. 아니 아픈 사람도 아프지 않다. 질병을 다루는, ‘비타민’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선 환하게 밝은 질병들이 게임처럼 즐겁게 다루어진다. 출연자가 ‘그날의 병’에 걸린 것으로 판명되면 관중석에선 언제나 ‘우~와~’하는 환호와 탄성이 나온다. 병원도 얼마나 밝은지 모른다. 우리 동네 병원 이름들은 ‘속편한 내과’ ‘미소 치과’ ‘밝은빛 안과’, 또는 ‘굿모닝 외과’ 등이다.

다만 도시에는 정신질환이 많은 듯한데, 결코 그것도 ‘병’은 아니다. 참고로 장국영이 죽었던 우울증은 모든 사람들이 감기처럼 일생에 한번쯤은 다 앓는 것이며, 일찍 전문가에게 의뢰하면 결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그건 ‘정신’이 아니라 ‘신경’ 쪽이다. (요즘은 다 ‘신경정신과’다.)

-향기없는 꽃을 닮은 인생들-

죽음조차 있을 법하지만, 도시에선 보이지 않는다. 아파트숲 속에도 가끔은 ‘근조’라고 쓰인 붉은 등이 걸리고 하얀 화환들이 도열하여 죽음을 생각하게 하더니, 언젠가부터 마을에서 죽음이 사라졌다. 병원에서 맞은 죽음은 장의사의 손에 의해 처리되고, 죽은 지 대략 사흘쯤 안에 주검은 ‘화장’된다.

지금 우리는 태어나는 것을 보지 못하며, 늙은이를 보지 못하며, 병든 자를 보지 못하고, 죽음을 만지지 못한다. 생·로·병·사가 다 텔레비전 속 드라마처럼, 아니 만화처럼 드라마틱하게 남의 일처럼 진행된다. 이렇게 우리네 도시와 마을엔 태어남이 없고, 늙은이가 없으며, 아픈 사람이 없고, 또 죽음도 사라졌다. 이리하여 유토피아가 완성되었다.

한데 생·로·병·사를 쫓아낸 이 ‘소독한 마을’에서의 삶이 정작 행복하고 안녕한 것 같진 않다. ‘비만이 암보다 무섭다’며 천지사방으로 뛰고, 달리고, 오르고 내리는 모습들이나, 텔레비전만 틀면 쏟아지는 웰빙이며, 영양제며, 장수비법의 그늘에는 초조와 불안이 가득하다.

어쩌면 도시의 꽃나무들과 우리네 삶이 이토록 닮을 수가 있을까. 꽃만 피우다가 끝내 뽑히고 마는 나무와 내내 젊은 척, 건강한 척 화장(化粧)하기에 급급해하다가 끝내 한 줌의 가루로 화장(火葬)되어 버리는 인생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