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보존

[여적] 400년만의 화해 (경향, 4/12)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07 23:13
조회
445
**[여적] 400년만의 화해 (경향, 4/12)
  
미국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과 3대 부통령 애런 버가 벌인 ‘죽음의 결투’는 미국 역사상 ‘증오의 정치’를 가장 극적으로 표출한 사례로 꼽힌다. 독립전쟁 당시 조지 워싱턴의 부관이었던 두 사람은 1791년 버가 뉴욕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해밀턴의 장인을 누르고 당선되면서 감정대립이 격화했다. 3대 대통령후보 지명전에서는 보수파인 해밀턴이 진보파인 제퍼슨을 지지해 버를 부통령후보로 끌어내렸다. 버가 뉴욕주지사 선거에 출마하자 이번에도 해밀턴이 반대운동을 폈다. 격분한 버가 권총결투를 신청, 마침내 두 사람은 1804년 7월11일 뉴저지주의 강변에서 54구경 칼리버 권총으로 1대1 대결을 벌였다. 그 결과 버의 총탄이 해밀턴의 복부를 관통했고 살인죄로 피소된 버는 루이지애나와 멕시코 등에서 도피생활을 하다 35년 후에야 사망했다.

두 사람의 결투는 200년이 지난 2004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후손들에 의해 재연됐다. 하지만 그것은 증오의 대결이 아닌, 화해의 이벤트였다. 후손들은 1천여 관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결투장면을 재연한 뒤 두 사람을 기리는 추모동판 제막식도 가짐으로써 누대의 원한을 풀었다.

조선 중기 영의정을 지낸 심지원이 윤관 장군의 묘역을 파헤치고 일가 묘를 조성하면서 비롯된 파평 윤씨와 청송 심씨 간에 400년 가까이 끌어온 산송(山訟·묘지 다툼)이 후손들의 극적인 타협으로 막을 내렸다는 보도다. 당대의 최고 권력자였던 영조 임금도 말리지 못한 묘지 싸움을 두 문중의 후손들이 해결했으니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사사건건 ‘편가르기’와 ‘네탓타령’으로 증오와 갈등이 깊어가는 것이 작금의 우리 사회 현실이기에 구원(舊怨)을 풀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이들의 모습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진정한 화해는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만큼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지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19세기말 동학의 지도자들이 부르짖었듯 묵은 원한을 풀고 더불어 살자는 해원상생(解寃相生) 운동이 확산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