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보존

말이 통하지 않는다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07 23:12
조회
627
<말이 통하지 않는다>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원정을 위해 알프스를 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는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이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알프스를 등정하기 위해 병사를 끌고 산 아래까지 다다른 나폴레옹이 배고프고 지친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일장 연설을 한 다음 큰소리로 외쳤다. \"돌격, 앞으로!\" 그런데 병사들이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병사들이 한국어를 전혀 몰랐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질문의 답이다. 물론 싱거운 농담이다. 그러나 싱겁지만은 않고 또 농담만 같지도 않다. 소통의 중요함에 대한 전제가 이 이야기 속에는 들어 있다. 그리고 소통의 어려움이 결국 언어 문제라는 생각도 하게 한다.

  “돌격, 앞으로!”, 장수의 외침에 병사들은 무반응

최근 몇 년 간 우리 문학 작품의 해외 소개가 비교적 활발해졌다. 지난해에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우리나라가 주빈국으로 초청되면서 작가들의 해외 나들이가 잦았다. 나에게도 그런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유럽 쪽의 문학 행사장에서 낭독회를 하거나 인터뷰를 할 때면 간혹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으며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장면이 떠오르곤 했다. 그들은 내 한국어를 못 알아듣고, 나는 그들의 언어를 못 알아듣는다. 그래서 이쪽 언어와 저쪽 언어를 연결해 주는 통역의 기능이 중요해지는데, 훌륭한 통역자를 만나면 걱정이 덜하지만 항상 그런 행운이 따르는 것은 아니다. 가령 이런 일이 일어난다. 나는 제법 재치 있는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말을 했는데 청중들의 반응이 썰렁할 때가 있다. 진지하지만 명쾌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질문자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몇 차례나 같은 질문을 반복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당황하게 되고 조금 더 가면 짜증이 나게 된다. 누구에게라기보다 소통이 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짜증이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돌격, 앞으로!\"를 외치고 있는 나폴레옹 꼴이 아닌가.

말이 그럴 텐데 글은 오죽하겠는가. 아무리 좋은 번역이라고 해도 원 텍스트의 느낌과 생각을 고스란히 전하지는 못한다. 이야기 구조를 가진 산문은 좀 낫지만 상상력과 은유가 핵심인 시는 근본적으로 번역이 불가능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언어간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통역과 번역의 중요함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가 하나의 촌락으로 축소되었지만 장벽은 여전히 존재하고, 세계가 하나의 촌락으로 축소되었기 때문에 장벽을 허무는 일은 더욱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이쪽 언어와 저쪽 언어의 같음과 다름에 대한 통찰이 필수적이라고 하겠다. 해독하기 어려운 번역문은, 원 텍스트 자체가 워낙 난해해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이쪽 언어와 저쪽 언어(언어 속에 들어 있는 특유의 문화와 감각을 포함하여)의 같음과 다름에 대한 통찰이 부족하거나 이쪽이나 저쪽 어느 한쪽 언어 및 문화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서 그런 경우가 더 많다. 이쪽의 언어나 문화에 대한 이해는 충분한데 저쪽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을 때는 왜곡의 위험이 따른다. 저쪽의 언어나 문화에 대한 이해는 충분한데 이쪽에 대한 이해가 모자랄 때 그 번역은 국적 불명이거나 공감을 불러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어느 쪽이든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같음과 다름에 대한 통찰 있어야

그런데 이러한 소통의 어려움은 비단 모국어와 외국어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을 흔히 쓴다. 실제로 말이 통하지 않는 경험을 많이 하기도 한다. 사용자와 근로자, 기성세대와 신세대, 야당과 여당, 심지어 요즘에는 같은 여당 내에서도 말이 통하지 않아서 혼란을 야기한다. 같은 사안을 놓고 같은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 표현을 하는데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장수가 \"돌격, 앞으로!\"해도 무반응일 수밖에.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를 쓰기 때문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돌격, 앞으로\"는 한국어이고, 그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은 프랑스 병사가 아니지만, 말은 통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용하는 말이 난해해서가 아니라 말에 대한 이해와 감각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말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문화의 결정이다. 우리는 말 속에 자신의 입장을 담고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기 위해 말을 사용한다. 그러니까 말이 통하지 않는 현상은 어떤 사안에 대한 인식과 감각, 그리고 무엇보다 입장과 욕망들이 다를 때 나타난다.
통역이나 번역자가 가져야 할 필수조건으로 언급한 이쪽 언어와 저쪽 언어의 같음과 다름에 대한 통찰은, 상식적이지만 여기서도 여전히 유용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언어를 하나로 통일할 수 없듯이 입장이나 욕망을 똑같이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언어가 다른 사람들, 입장이나 욕망이 다른 사람들이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 전제 위에서 소통의 가능성을 추구해야 한다. 이쪽의 입장이나 욕망만을 내세우지 않고 저쪽의 입장이나 욕망을 헤아리는 마음을 가질 때 우리 사회는 조금씩 말이 통하게 될 것이다.
 
글쓴이 / 이승우·
소설가 / 조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 1981년 <에리직톤의 초상>으로 <한국문학> 신인상 수상· 1993년 <생의 이면>으로 제 1회 대산문학상 수상· 대표작 : <심인광고><구평목 씨의 바퀴벌레>              <미궁에 대한 추측><일식에 대하여>

출처:<다산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