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보존

[기고] 교과서 검정 일본의 속셈은 (경향, 4/8)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07 23:10
조회
504
**[기고] 교과서 검정 일본의 속셈은 (경향, 4/8)

〈김찬규/경희대 명예교수·국제법〉

지난달 29일 일본 문부과학성이 내년부터 사용될 자국 국립 고교용 교과서에 대한 검정 결과를 발표했다. 총 26곳에 걸쳐 제시된 검정의견 중 특히 우리의 신경을 자극하는 것은 독도와 종군위안부에 대한 부분이다.

-국제관계의 틀에 중대한 도전-

전자에 대해서는 독도가 일본 영토임을 명기토록 함과 동시에 한국이 독도를 강점함으로써 영유권 문제가 일어난 것으로 기술케 하고, 후자에 대해서는 종전에 쓰던 ‘일본군에 의해 위안부가 된 여성’이란 말 대신, ‘일본군의 위안부가 된 여성’이란 표현을 사용토록 했다. 앞의 표현을 쓰게 되면 종군위안부에 대한 귀책사유(歸責事由)가 일본에 있게 되지만 뒤의 표현을 사용하면 그 주체가 모호해져 일본이 책임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게 수정을 지시한 이유라고 생각된다.

이같은 일본의 소행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 것인가? 유엔 헌장 전문은 연합국 인민들이 선량한 이웃으로서 서로 평화롭게 생활하기 위해 유엔을 창설했다고 하고 있고, 1965년 한일 기본관계 조약 전문은 선린관계(善隣關係) 및 주권 상호존중의 원칙에 의거한 양국 관계의 정상화”를 위해 이 조약이 체결되었다고 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선린’이 국제관계의 기본 틀임을 보게 되거니와 이번에 내놓은 일본 문부과학성의 검정의견은 선린의 원칙에 역행하는 것일 뿐 아니라 국제관계의 기본 틀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일본이 종군위안부에 대해서는 책임을 회피하고 독도에 대해서는 한국이 불법 강점하고 있는 것으로 기술케 함으로써 자국 청소년들의 무의식의 세계에 일본은 선이고 한국은 악이며 일본은 피해자이고 한국은 가해자임을 각인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7차 범미주(汎美洲) 회의때인 1933년 12월26일 미주 국가들이 ‘역사교육에 관한 협약’이란 한 국제조약을 체결한 바 있었다. 여기서 당사국들은 젊은이의 여린 마음에 증오를 심어줄 수 있는 사실을 교과서에 넣어서는 안되며 이미 들어가 있는 것이 있다면 지체없이 삭제해야 한다는데 합의하고 있는데(제1조), 젊은이의 여린 마음에 증오가 심어진다면 그것은 평생 지속될 뿐 아니라 성장과 더불어 증폭, 후세에 전승됨으로써 국제적 불안의 중대한 요인이 된다는 게 협약체결의 이유였다.

교육이란 이처럼 중요한 것이며 청소년 교육이란 더욱 중요한 것이다. 해서 1966년 12월16일 채택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는 ‘이 규약 당사국은 교육이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운 사회에 효과적으로 참가할 수 있게 하고, 모든 국민 및 모든 인종적 종족적 또는 종교적 집단간의 이해 관용 및 우호를 증진시킬 수 있게 하고, 그리고 나아가 평화유지를 위한 유엔의 활동을 촉진시킬 수 있게 해야 한다는데 동의한다’는 규정이 들어가 있다(제13조1 후단).

-독도분쟁화 술책 대응 말아야-

청소년에 대한 교육이 국론통일 또는 국가 정체성의 확립 등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돼서는 안됨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감히 이를 획책하고 있다. 설사 진실일지라도 자라나는 세대의 마음에 증오를 심어 주는 것이라면 교과서에 싣지 않아야 한다는 게 국제사회가 지향하는 방향이거늘 일본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으니 그들이 과연 선량한 이웃인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이 상상을 뛰어 넘는 파격적 행동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현상타파를 하려는데 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바이다. 독도 문제같은 것은 국제재판이나 유엔 등 국제기구를 이용하지 않고는 현상에 대한 변경을 기대할 수 없다. 사안을 이런 데 회부한다고 해서 그들의 뜻대로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들로서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기회를 이런 데서 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또한 현실이기도 하다.

문제를 이런 데 회부하려면 그것이 ‘분쟁’이어야 한다. 따라서 일본은 한일 간의 현안 문제를 분쟁화하려 기를 쓸 것이며 우리는 우리의 주장을 당당히 펴되 불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음으로써 분쟁화하려는 일본의 술책에 넘어가지 않아야 하리라고 본다. 비 전문가가 느끼는 격화소양의 느낌이 무대응이 아님을 알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