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보존

조기 영어교육 문제없나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07 22:56
조회
826
조기 영어교육 문제없나

교육인적자원부는 1월 11일 ‘국가 인적자원 개발 기본계획’을 확정 발표했는데 이 계획에 의하면 2008년부터 초등학교 1,2학년 학생도 학교에서 영어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되어있다. 현재 3학년 이상만 받는 영어교육을 1,2학년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전국 초등학교의 30% 정도에서 1,2학년을 대상으로 영어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대부분 방과 후의 특기적성 시간을 이용하고 있는데 이를 정규 교육과정으로 편입하려는 것이다.  

교육부의 이번 발표 이전에도 조기 영어교육은 일반적인 추세였다. 각 지방자치 단체에 의해서 ‘영어 캠프’, ‘영어 마을’, ‘영어 전용 지구’ 등이 설치되어 운영 중이다. 뿐만 아니라 영어권 국가로의 단기 연수나 조기 해외 유학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른바 ‘기러기 아빠’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심지어는 임신부가 ‘영어 태교(胎敎)’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일반인들의 영어 사용도 이미 보편화되어 있다. 신문기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홈리스(homeless)’나, 시내 어느 곳에서나 마주치는 ‘웨딩홀(wedding hall)’ 같은 간판이 그것이다. 나아가 대통령께서도 ‘로드맵(road map)’, ‘아젠다(agenda)’, ‘테스크 포스(task force)’ 등의 영어 용어를 매우 즐겨 사용하신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화의 시대에서 불가피한 일인 듯이 보인다. 영어를 국가 공용어로 채택하자는 어느 분의 말대로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기술인 영어”를 전 국민이 습득해서 개인의 행복과 국가의 발전을 도모하자는 주장과 교육부의 발표는 그 궤를 같이한다.  

     민족의 흥망과 세계지배구조 반영하는 언어

그러나 조기 영어교육의 실시는 국어교육의 강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한글은 그 과학적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언어이다. 이렇게 자랑스러운 한글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우리 국민의 의무이다. 그런데 이 한글이 지금 천대받고 있다. 이른바 ‘외계어(外界語)’라 불리는 인터넷 언어가 한글을 파괴하는 정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한글 맞춤법’이란 규정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 정도로 심각한 현 사태를 그대로 두고 조기 영어교육을 서두른다면 아마 언젠가는 한글이 없어질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지금 이 지구상에는 6800개의 언어가 있는데 그나마 실제 통용되는 언어는 3000여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100년 이내에 전체 언어의 90%가 사라질 것이라 예고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 한글도 이 ‘멸종 언어’의 대열에 끼일까 두렵다.  

한 민족의 언어는 그 민족의 숨결이요, 민족혼의 응결체이다. 그 민족은 자기네들의 고유 언어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한 민족의 정체성을 보장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고유 언어인 것이다. 만주족이 청(淸)나라를 세워 300여 년간 중국대륙을 지배했지만 청나라가 망한 후 지금은 만주족의 존재조차 희미하게 되었다. 만주족이 만주어를 가지고 있었으나 자기 언어를 계속해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만주어는 몇몇 전문적인 언어학자들에 의해서만 연구되고 있을 뿐이다.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는 중국의 조선족이 그나마 우리와의 동질성을 공유하고 있는데 비하여, 한국어를 모르는 러시아의 고려인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말이 바로 선 연후라야

초등학교에서부터 영어를 배우자는 것은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영원히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21세기는 중국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그렇다면 영어교육 뿐만 아니라 중국어교육도 서둘러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미국에서는 이미 중국어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중국어는 결코 낯선 언어가 아니다. 한자(漢字)와 함께 가르치면 국어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고 중국어 학습에도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국가 백년대계인 교육정책을 관장하는 교육부는 언어교육에 관한 한, 국어교육을 최상위에 두고 그 바탕 위에서 영어, 중국어, 한문의 중요성을 장기적인 안목에서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글쓴이 / 송재소
·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 저      서 <다산시선> 
               <다신시연구> 
               <신채호 소설선-꿈하늘> 
               <한시미학과 역사적 진실> 등

출처:<다산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