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보존

수요시위 700회 “용서를 빌어라, 이놈들” (경향, 3/15)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07 22:55
조회
457
**수요시위 700회 “용서를 빌어라, 이놈들” (경향, 3/15)
  
매주 수요일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할머니들의 시위가 있다는 것을 이제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한 여름 폭우와 땡볕, 엄동설한과 폭설 속에서도 ‘수요 시위’는 변함없이 이어졌다.

1992년 1월8일 처음 시작해 올해로 15년째. 15일이면 꼭 700회를 맞는다. 매주 10~20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교대로 참석하며 일본군에 꽃다운 청춘을 저당잡힌 한을 쏟아냈지만, 일본대사관의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다.

이들이 일본 정부에 내건 요구조건은 간단하다.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이미 비인도적 범죄라고 규정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정부가 공식 사죄하고 배상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반응은 묵묵부답. 오히려 잊을 만하면 “종군위안부란 말은 원래 없었다”거나 “위안부는 전장에 있는 불안정한 남성의 마음을 달래주므로 자존심을 가질 만한 직업”이라는 등 일본 관료들의 망언이 잇달아 터져 나온다.

할머니들에게 한국 정부도 야속하기는 마찬가지다. 노구를 이끌고 힘겹게 시위에 나서고 있지만, 정부는 팔짱만 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1965년 한·일협정에 포함되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대일 배상청구권을 정부가 적극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요시위는 한가지 목표를 위해 최장기간 이어진 집회로 기네스북에도 올라, 국내외 많은 시민단체와 인권운동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매주 수요일, 기록이 경신되는 셈이다.

그동안 할머니들은 한을 품은 채 하나 둘씩 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에만 17명이 세상을 뜬 것을 포함해 위안부 할머니 225명 중 105명이 삶을 마감했다.

17세때 연행돼 해방될 때까지 위안부 생활을 한 박두리 할머니는 지난달 오랜 투병생활 끝에 83세를 일기로 삶을 등졌다. 초창기 시위부터 누구보다 열심히 시위에 참여했던 그는 딸에게 “내가 죽더라도 일본대사관 앞에서 죽어야 하는데…. 너라도 앞으로 나 대신 시위에 참석해라”는 유언을 남겼다.

700회 수요시위는 한국뿐 아니라 독일 베를린, 미국 뉴욕, 영국 런던, 대만 타이베이 등에서도 해외 유학생과 현지 시민단체들이 연대해 벌인다. 일본에서도 도쿄, 오사카 등 7개 도시의 여성단체로 구성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행동네트워크’가 힘을 싣는다.

황금주 할머니(88)는 “일본 정부가 납득할 수 있는 사과를 하는 그날까지 우리들의 시위는 1,000회, 2,000회 계속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앞으로 매월 주제를 정해 연극과 춤, 노래, 토론회 등의 문화행사를 수요시위에 도입하기로 했다. 또 위안부 피해자들이 모두 숨진 뒤에도 이들의 역사를 잊지 않도록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을 건립하는 데 힘을 기울일 방침이다.